불가능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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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은 연구실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그래, 내가 문제야. 내가 문제였어.'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그를 자책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케빈은 자신의 기계가 보관된 방의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케빈의 기억 속 보단 약간 낡아있었지만 거의 변한 곳이 없는 케빈의 기계가 남아있었다. 케빈은 사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도 이상 현상이 멈추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범위가 넓어졌던 이유를, 모든 것을 돌려놨는데 현실 세계는 돌아오지 않았던 이유를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머릿속으로는 혹시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것은 너무도 큰 도박이었기 때문에 그는 섣불리 자신의 가설을 실행하지 못했고, 이런 저런 방법들을 시도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방법이 실패했고, 그에게는 단 하나의 길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문제의 시작은 그였으니, 그 끝도 그가 맺어야했다. 그는 이쪽 세계에서 넘어가지 않은 게 아직 하나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그였다. 그의 존재, 그 자체가 이 세계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지금 그에게는 자신이 어류일 때의 기억(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지만)과 케빈의 기억. 모두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의 몸과 어류인 자신의 기억. 이 두개는 이 세계에 존재해서는 안됐다.

"…이것밖에 방법이 없어."

케빈은 기계를 보며 읊조리듯이 말했다. 재단에서 개조한 기계로는 그 세계로의 이동만 가능할 뿐이었고, 지금부터 그가 해야 하는 일은 그의 기억과 몸을 남겨두고 와야 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본래 몸을 되찾게 된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사실상 그가 하려는 것은 자신의 몸을 바쳐 현실 세계를 구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용기는 가상했지만, 전체를 놓고 본다면 당연한 책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는 것의 무게는 생각보다 큰 것이다. 그는 이미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하고 방에 들어왔지만, 쉽사리 결심이 서지 않았다.

만약 그의 기계가 원하는 대로 작동하여 모든 결과가 좋게 된다고 해도, 그는 그곳에 남아있어야 한다. 현실 세계의 안정을 위해서 그는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만약 그의 정신이 성공적으로 분리된다고 해도, 그의 정신이 돌아올 곳은 없었다. 케빈의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결과든 그의 죽음은 확실한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그는 뭔가 결심한 표정을 지은 뒤 근처의 컴퓨터로 향했다. 한참동안 무언가를 타이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엔터를 친 그는, 양 팔로 책상을 짚고 모니터를 보며 서있었다. 짧지 않은 그 시간이 지난 뒤, 케빈은 자신이 만들었던 기계에 앉았다. 위잉 거리는 기계음이 섬뜩하게 들려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그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의 이론은 불완전했고, 그의 기계는 불안정했고, 실험의 성공여부 또한 불확실했다. 그가 지금 앉아서 바라고 있던 건 작은 기적이었다.

"만약 성공하게 된다면… 에릭 녀석을 보러가야겠다."

그리고 섬광. 주변에 밝은 빛이 비춰졌다. 하지만 과거의 실험과는 달랐다. 그동안 그의 이론은 재단에서 행해진 수많은 연구와 실험들로 보강되어 있었고, 전보다는 훨씬 성공확률이 높은 편이었다. 어디까지나 확률이었지만, 폭발은 이전보다 훨씬 작은 규모였고, 주변에 어떤 피해도 입히지 않았다. 그저 잠깐의 눈부심이 있을 뿐이었다. 예전 참사 때 일어났던 주변 공간의 붕괴도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계가 있던 연구실에서의 소음과 빛을 본 연구원들 중 하나가 요원들을 불러왔고, 그들이 발견한 것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케빈이었다.

그는 기계의 앞쪽에 쓰러져있었고, 요원들은 그를 업고 의무실로 향했다. 뒤늦게 회의가 끝나 소식을 접했던 올리비아 박사는 케빈이 자신의 두 번째 실험을 했던 기계가 있는 연구실로 찾아갔다. 올리비아는 케빈이 그의 컴퓨터에 입력했던 여러 수식과 자료를 보았고, 그 자세함과 정밀도에 감탄했다. 이 기계가 만약에 제대로 작동했다면, 더 이상의 이상 현상은 없을 것이 자명했다.

케빈은 기계가 일으킨 폭발 이후로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케빈이 지금 현실세계에 있다는 건, 그의 가설은 잘못된 가설이었고 그의 실험은 실패했다는 것의 증거이기도 했다. 그의 컴퓨터를 확인하고 돌아온 올리비아 박사는 실망한 채로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있었다. 사실 말이 의무실이지 인간과 다른 구조로 이루어진 그를 치료할 방법은 없었다. 그냥 그가 깨어나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보다 상황은 심각했다. 현실 세계가 불확정성의 세계에 먹힐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이상 현상을 막는 것은커녕 붕괴의 때조차 예측할 수 없었다.

"이제… 뭘 해야하지…"

올리비아는 케빈의 옆에서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지난 한 달간, 그녀는 모든 가설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려 애썼지만, 그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건 민간인의 기억을 지워 정보유출을 막는 것뿐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조차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 현상을 숨기기엔 너무 크고 광범위 했고, 기억소거 시키기엔 현상을 눈치 챈 민간인의 수도 너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이상 현상이 계속 벌어진다면 이상한 점을 알아채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올리비아 박사는 전에 없던 무력감을 느꼈다.

"으으…"
"케빈! 정신이 들어요?"
"여긴… 어디죠?"
"의무실이에요 케빈. 정신을 잃고 쓰러졌었어요."
"제 이름이 케빈인가요?"
"아니 무슨… 케빈? 괜찮아요?"

정신을 차린 케빈은 무슨 이유에선지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면 케빈의 기억이었다. 그의 상태는 그가 목걸이를 부여받기 전과 같았다. 모든 기억이 전의 정신없는 어류의 기억으로 돌아와 있었다. 현실 세계에 남아있는 건 어류와 합쳐진 케빈의 몸뚱이와, 쓸모없는 기억들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 세계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상 현상의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몇몇 지역은 이미 완전히 평범한 곳으로 돌아온 곳도 있었다. 아무도 그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불가능한 결과였다. 케빈과 같이 연구했던 올리비아 박사만이 어렴풋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의 정신, 그러니까 케빈 피셔의 정신이 불확정성의 세계에 남아있던 케빈의 몸과 융합한 것 같습니다. 지금 의무실에서 격리 중인 케빈. 아니, 해당 개체는 현재로선 케빈 피셔와의 연관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만. 보고 내용은 그것으로 끝인가?"
"다만… 과거에 해당 개체가 출현했을 때 와 달리 지능수치가 훨씬 높은 편입니다. 현재 그는 재단에게 어떠한 적대감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곳의 업무를 즐거워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해당 개체의 연구원으로서의 활용을 건의하는 바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자네들은 지금 저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기다려보게, 끝까지 들어보지."
"현재 그의 몸의 분자구조는 이전과 달리 상당히 안정된 수치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주변의 환경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여기, 그와 함께 작업했던 연구원들의 정서가 훨씬 안정된 것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흠… 안전하다고는 생각되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통제할 수단은 있나?"
"그에겐 어떠한 전투적 능력도 없습니다. 만약에 그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일어날 것 같진 않지만… 간단히 제압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답변이 되지 않는다네. 이미 전례가 있는걸 알고 있지 않나."
"현재 계획으로는 주마다 심리검사와 공격성 테스트를 할 예정이고, 그에게는 최대한 제한된 업무만을 맡길 예정이긴 합니다만…"
"모든 책임을 질 수 있겠나?"
"지금 올리비아 자네의 요구는 어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요구일세. 알고 있나?"
"예, 알고 있습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올리비아는 케빈. 아니 그 생명체를 연구원으로 받아들였다. 올리비아는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피쉬(Fissh). 딱히 센스 있는 이름은 아니었지만, 그것만큼 그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었다. 그는 어류도 인간도 아닌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쉬는 모든 것을 해결하고 올리비아 박사가 이끄는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었다.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상 현상이 일어났던 곳은 모두 복구되었고, 해당 현상을 목격한 모든 민간인에게는 기억소거 조치가 취해졌다. 이제 더 이상 세계의 붕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올리비아는 휴게실에 앉아 편안한 마음으로 자판기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고, 결과적으로는 모든 게 잘 해결되었으니, 그녀는 이런 휴식을 취할 자격이 있었다. 그때, 휴게실로 누군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 박사님? 정수기 물이 다 떨어져서 그런데 혹시 물통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하하, 저번에 말해줬잖아요 피쉬. 기다려봐요. 조금만 더 쉬고 갈게요."
"그럼 전 여기서라도 물 좀 마셔야겠네요. 어… 혹시 동전 남는 거 있으십니까?"
"방금 이 커피 뽑는 데에 쓴 게 마지막 동전이었어요."
"아… 그럼 전 박사님이나 기다리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선 그는 박사의 옆 의자에 털썩 앉았고, 올리비아는 잠시 동안 세계의 평화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휴식을 만끽했다. 케빈이 일으켰던 폭발에 관한 기록은 모두 말소되었고, 지금 올리비아의 옆에 앉아 있는 생명체는 그와는 전혀 다른 피쉬라는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언제 케빈과 같은 인물이 동일한 실험을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에, 재단에서는 해당 연구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려는 자들을 모조리 기억소거 시키고 있었다. 관련된 장치들도 모두 폐기처분 되었다. 그들이 했던 노력은 모두가 잊어버렸고, 곧 올리비아 박사는 그동안 밀려있던 업무에 시달렸다. 이제는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고, 완전히 끝났다.
 
 
 


 
 
 

fissh.png

대상의 유일한 사진. 이후 사진사는 촬영을 거부했다.

파일 번호: 9709-a-16

개체 위험도:

최초발견 위치: 경기도 ██시

설명: 대상은 어류와 인간이 혼합된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통 인간보다 수분을 더 필요로 하는 것으로 나타남. 대상의 지능검사결과 상당히 높은 수치를 나타났고, 대상이 재단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기는 커녕 오히려 호의를 표하고있으므로, 현재 대상은 재단의 과학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다.

대상의 사교성은 높은 편이며, 현재 재단의 연구원들 사이에서 Fissh 박사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음. 대상의 월등한 수행능력을 인정받아 대상은 현재 4등급의 보안등급을 받음.

이 멍청한 녀석이 자꾸 자기가 4등급이라고 떠들고 다녀서 다들 4등급이라고 착각하고 계신데, 이녀석 2등급입니다. 고의적인 것 같진 않고, 그냥 숫자 개념을 자꾸 까먹어서 생긴 일인 것 같습니다. 명심하세요. 이 녀석은 2등급이라는 걸. - 올리비아 박사

부록1 - 대상이 2등급을 부여받기 전 실시되었던 면담.

Fissh 박사: 어… 안녕하세요

김건형 연구원: 흠… 정식으로 2등급을 부여받기 전에, 자네의 위험성을 한 번 더 테스트하라는 명령이 내려와서 말이야. 이해해줄 수 있지?

Fissh 박사: 뭐… 상관없습니다. 다만 오늘 약속이 있어서 얼른 끝냈으면 좋겠네요.

김건형 연구원: 알겠네. 우선 첫 번째로 자네의 기억에서 가장 인상깊은 곳은 어디인가?

Fissh 박사: ████근처의 바다입니다. 제가 제일 처음 태어난 곳이죠.

김건형 연구원: 자네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시가 아닌가? 여기엔 그렇게 써있는데.

Fissh 박사: 그건 제가 재단에 처음 발견된 위치지 않습니까?

김건형 연구원: 아, 그렇구만. 그럼 두 번째 질문, 현재 재단에 대해 호의적인가?

Fissh 박사: …질문이 대체 왜 이러죠. 여기서 제가 아니라고 대답할리가 있나요?

김건형 연구원: 여기에 질문이 이렇게 써있는 걸 어쩌겠나. 그냥 대답하게

Fissh 박사: 물론, 호의적입니다. 제가 바다에 있던 때보다는 훨씬 낫죠. 거긴, 정말 어후. 정말 할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제 지적수준과 비슷한 동물은 하나도 없었- 아니다. 하나 있었구나, 저랑 말이 통하는 문어 친구가 하나 있었죠. 그 친구가 도와줘서 뭍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지금 제가 재단에서 하는 일은 정말 생산적이고 보람찹니다. 대답이 되었나요?

김건형 연구원: 마지막 질문일세. 자네의 가치관에 대해서 말해주게.

Fissh 박사: 흠… 가치관이라…

김건형 연구원: 간단한거라도 좋으니 대충 말하게. 어차피 형식적인 절차니까 말이야.

Fissh 박사: …"은혜와 원수는 반드시 갚는다?"

김건형 연구원: 자네 답구만, 자 끝났네. 이제 가서 밥이나 먹지.

Fissh 박사: 다행이군요. 그나저나 오늘 반찬이 뭐죠?

김건형 연구원: 삼치구이로 기억하네만.

Fissh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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