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00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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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를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말소리에 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문이 열리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느껴지는 이 중압감…. 내 일 때문에 오는 것이지만 항상 싫었다. 연구 조교에서 어느덧 선임 연구원이 되고, 지도받는 입장에서 지도하는 입장이 되어도 이곳에 오는 것은 항상 고역이었다. 스피커에 몸을 가까이 대고, 언제나 말하는 세 음절을 입에서 끄집어내었다.

"멧비둘기는 높이 날고."
[천사는 모든 것을 내려다본다. 음성 인식 확인. 어서 오십시오, 마크 큐빅 박사님.]

문이 열렸다. 안에서 한기가 흘러나왔다. 아니, 한기가 흘러나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번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건 정말로 한기일까. 만약에 이 느낌이 한기라면, 어디서 나오는 거지? 지하라서? 지금이 겨울이라서? 그도 아니면, 차원의 틈에서 흘러나오는 건가?

이것도 연구해볼만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복도 벽에 디지털시계가 하나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지난번에 내가 걸어둔 것이었다. 새벽 5시 28분, 현재 온도 18도. 이곳의 온도는 언제나 일정하게 유지된다.

복도는 일자형이다. 음성 인식으로 열리는 문을 지나, 이 짧은 복도의 끝에는 보안 카드, 지문, 홍채, 그리고 또 한 번의 음성 인식을 통한 4중 보안문이 있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엔….

복도는 짧다. 열 발자국이면 문에 다다른다. 칙칙하고 일관적이면서 우울한 회색빛 콘크리트가 기분을 즐겁게 가라앉혀준다. 붉은 카펫이 깔린 바닥은 정신을 부드럽게 불안정하게 만든다. 제정신인 사람이 삼 일만 갇혀있어도 미칠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자적 살해 물질로 만들어진 바닥이다. 허가가 나지 않은 이가 들어오면 곧바로 한줌의 재가 되어버릴 것이다.
물론, 정신 쪽을 말하는 것이지만.

키카드를 긁자 손잡이 쪽에 달린 네 개의 LED등 중 첫 번째에 초록불이 들어왔다. 악어 열쇠를 넣은 것이다. 이제 돌려야할 것은 딱따구리 열쇠와 개구리 열쇠, 그리고 고슴도치 열쇠. 지문을 스캔하고 붉은 빛이 홍채를 유린하자, 아까 들었던 그 기계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암호를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천사는 막을 찢는다."
[그리고 멧비둘기는 자유롭게 여행한다. 2차 확인 완료. 어서 오시지요, 큐빅 박사님.]

두 번째 음성 인식까지도 끝났다. 내가 할일은 이 문을 열고 메티스가 묶인 선착장으로 갈일밖에는 없다.

"오셨나요, 박사님."

안에는 이미 내 조수가 와 있었다. 클라인 로우밀. 내가 이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부터 내 조수가 되었다.

"어떻게 되고 있나."
"샘플의 양자 공명율이 87%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100%까지로 늘려야 하네. 지금까지 수집된 데이터는?"

내 질문에 클라인은 보고서를 들고 와 내게 넘겨주었다. 난 그 종이뭉치를 받아들고 한장 한장 넘기며 읽었다.

"지금까지 샘플의 공명에 반응한 다중 차원이 1000개가 넘습니다. 이 수치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고요. 공명률이 100%에 다다르면 반응률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크엔젤 네트워크와의 연동은?"

프로젝트 멧비둘기. 다차원 해석 방정식과 차원체 방정식을 연립시켜 나온 해를 기반으로 하여 '이 세계'의 샘플을 양자 공명시키는 것으로 다중우주를 탐구하는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된 후 난 제안서를 하나 냈다.

재단에는 아크엔젤 네트워크라는 것이 있다. SCiPNET이 위치해있기도 한 이 네트워크는 재단의 모든 정보가 위치해있으며 동시에 감시 통로 및 정보 수집용으로도 쓰이고 있는 네트워크이다. 내가 한 제안은 이렇다.

'프로젝트 멧비둘기를 아크엔젤 네트워크에 연동시킨다면?'

다중우주를 탐사하는 프로젝트 멧비둘기.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아크엔젤 네트워크.

다중우주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지 않을까?

"연동시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몇 개의 반응을 얻었습니다."
"좋군. 보여주게."

클라인은 모니터에 문서 파일을 몇 개 띄웠다. 인사 파일이었다.

전부 내 인사파일이었다. 다중우주의 나. 수많은 마크 큐빅.

"편의상 지금 이 나를 큐빅-001로 지정하는 것이 좋겠군."

파삭!

그 말을 하자마자 양자 공명 중이던 샘플이 바스러졌다.

"샘플을 바스러뜨리지 않고 공명시킬 방법을 찾아야겠어요."
"빨리 하는 게 좋을 거야. 언제 내가 대머리가 될지 모를 일 아닌가."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카락을 한 가닥 뽑아 샘플 자리에 올려놓았다. 작은 진동 소리가 나더니 기계가 다시 작동했다.

샘플을 다시 올려놓은 뒤 아까 보던 모니터로 돌아왔다.

"비슷한 점이 아주 많군."
"이래봬도 다 박사님이잖아요. 그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공명률을 높여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한다면 공통점은 이름 정도가 고작인 세계도 있을 것이라는 게 내 의견이라네. 혹시 아나? 내가 여자인 세계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거 한 번 보고 싶은데요."

낄낄거리는 클라인을 내버려두고, 인사 파일은 저리 치운 뒤 창을 하나 띄웠다. 검은 화면에 가운데에 수많은 흰색 점. 각각의 점은 저마다 흰색 선으로 연결되어, 마치 거미줄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직 근원점을 찾진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공명률이… 아. 90%까지 올라갔네요. 샘플을 새로 갈아 낄 때마다 점점 올라가는 것 같은데요."
"기계가 점점 익숙해지는 거야. 100%가 되면 이 지도도 완성되겠지."

근원점. 우리가 지금 찾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다중 우주의 시작점은 어디인가? 그 시작점이 되는 우주가 바로 근원점이다. 우리도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말하는 이 '다중우주', 혹은 '멀티-U'는 하나의 우주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근원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을 밝혀내기 위해 12년을 허비했다. 이제야 그 성과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공명률을 높여보도록 하게."
"넵."

클라인을 저쪽으로 보낸 뒤, 다중우주들에서 보내진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카메라 기록, 사건 기록, 영상 기록….

정말이지, 역시 또 다른 나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쿡쿡 웃으며, 또 다른 폴더를 불러왔다…….

Vid_Lab_A2: Cubic-002
Corridor_4619:9AD81

progressbar.gif

[불러오는 중]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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