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가 부족합니다


Error: 잉크가 부족합니다


텁텁한 공기가 방을 가득 메운다. 눈 앞에는 날이 밝기 전까지 마감해야 할 문서가 놓여 있다.

벌써 며칠째인지도 몰랐다. 수면 부족 탓인지 머리의 혈관들이 지끈거렸다. 책상 위에 널부러진 빈 캔커피 캔 중 하나를 집어들어 입에 털었지만, 끈적한 몇 방울만이 흘러나왔다. 캔을 다시 책상 위에 던지고 아쉬운대로 입맛을 다시자 저녁삼아 먹었던 인스턴트 라면의 기운이 침을 타고 쓰라린 위장으로 넘어갔다.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열두 시 십오 분. 오늘도 일찍 들어가기는 글렀군.

눈을 다시 모니터로 돌리자 문서 위에 깜빡이는 안내 문구가 다시 보였다.


Error: 잉크가 부족합니다


분명 어제 갈아 끼웠는데. 또 왜 이런담.

한숨을 내쉬며 목을 뒤로 젖힌다. 몇 시간 만에 펴지는 목이 나무 토막 마냥 뿌드득거렸다. 낮에는 사람들로 북적였으나 지금은 모두 빈자리인 사무실 위로 쨍한 형광등이 비추었다. 눈이 부시다. 졸려서인지도 모른다. 눈을 억지로 깜빡이자 안구가 뜨뜻한 것처럼 느껴졌다.

프린터 창을 열어 뭐가 문제인지 확인한다.


검은색 잉크가 부족합니다.


눈살을 찌푸렸다. 하루 만에 잉크를 다 썼다니, 말이 안 되었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는다.

형광등에서 웅, 하고 소음이 들려온다. 소리가 나는 줄도 몰랐던 벽걸이 시계에서 나는 똑딱 소리가 묵직한 침묵을 규칙적으로 깨뜨린다. 어디선가 쿵쿵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닐 수도. 밖에서 지나다니는 차들의 경적 소리가 작게 들린다.

눈을 뜬다.

방 반대편에 프린터가 얹어져 있다.

의자에서 몸을 억지로 일으켜 방을 가로지른다. 다리가 무겁다. 바닥에 깔린 카펫이 푹푹 밟힌다.

이끼 같은 카펫이라…

잉크 탱크가 담긴 칸을 열어본다. 축축한 기운이 푹 풍겨온다.

물이 차 있다.

정신이 몽롱하다.

손가락을 담가본다. 차가운 기운이 손가락을 타고 어깨까지 시리다.

손가락을 빼 본다. 손가락 주위로 미끈한 막이 생긴 것처럼 보인다. 잠시 주저하다가 입에 넣어본다.

짠맛이 난다.

짠맛.

얼굴을 다시 한 번 찌푸린다.

왜 프린터에 바닷물이 있지?

물에 젖은 검은색 잉크 통을 꺼낸다. 잉크가 없다.

귀에 가져다 대고 조심스럽게 흔들어본다. 찰랑, 찰랑 하고 조금 남은 잉크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색 잉크 통들도 꺼내 본다. 꽉 차 있다.

거 참, 이상하군.

창고에서 검은색 잉크를 하나 가져온다. 건조하고, 묵직하다.

딸깍, 하고 청량한 소리가 들린다. 잉크 칸을 닫는다.

벌어지는 시야를 가까스로 집중한다. 조명이 밝다. 눈부시다.

프린터가 조용히 웅웅거린다.


100% normal


됐다.

방을 가로질러 자리로 돌아온다.


출력하기


프린터가 덜컹이며 종이를 뱉어내기 시작한다. 다시 방을 가로지른다.

ink


검은 잉크가 가득 튀어 있다. 누가 쏟은 것처럼. 종이가 축축하다. 젖은 손을 입에 대 본다.

짠맛

잉크 통을 다시 연다.

찰랑이는 물이 빛을 받아 일렁인다. 검은 잉크통을 분리해 꺼낸다. 가볍다.

망가진 건가?

프린터가 뱉어낸 종이를 다시 살펴본다.

잉크 위에 찍힌 빨판 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몸을 숙여 프린터의 종이가 나오는 칸을 들여다본다.

빛이 닿지 않아 어둡다. 안쪽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작은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손을 조심스럽게 안으로 밀어넣는다. 좁지만 어떻게 들어가기는 한다.

이리저리 더듬어본다. 바닥의 축축한 물결이 만져진다.

반대쪽 끝에 손이 닿는다. 동그란 고무 마개 같은 무언가의 감촉이 느껴진다.

끝부분에 손톱을 넣어 당겨본다. 생각 의외로 부드럽게 빠진다.





파도소리가 사무실 안에서 휘돈다. 청량한 바닷바람이 짭짤한 내음을 품고 맞이한다. 구멍으로 빛이 들어온다.

손을 빼고 안을 들여다본다. 동그랗게 뚫린 구멍으로, 구름 사이 햇살이 비치는 몽롱한 바다가 펼쳐져있다.

한숨을 내쉬고 뒤의 사무실을 돌아본다.

어지러히 늘어진 의자, 책상이 보인다. 방금까지 작업하던 책상도 눈에 들어온다.

졸음이 엄습한다. 하품이 나오고 눈이 감긴다.

손을 뻗어 구멍으로 넣어본다.

의외로 쉽게 들어간다.

머리를 숙여 밀어넣는다.

잠시 끼는가 싶더니 구멍 밖으로 나온다.

산들바람의 감촉이 볼을 어루어만진다.

햇빛이 따뜻하다.

몸과 다리도 구멍을 넘어온다.

짧아진 팔다리를 움직여본다. 옷이 헐겁다. 몸이 옷 사이로 빠져나온다.

따뜻한 모래가 부드럽게 몸을 감싼다.

까슬까슬한 감촉이 닿을 듯 잊혀진다.

어디선가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평가: +9+x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