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역정보부 오리엔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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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다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들 보고 제가 앉으시라 해도 되겠죠? 그럼 앉아 주십시오. 안 앉으셔도 되고, 저야 뭐 상관없어요. 혹시 이 방에 의자가 없는데 있는 걸로 믿으시게 제가 만들었을 수도 있잖아요? 투명의자 한 시간 하고 계시면 내일 근육 왕창 뭉칠 텐데요. 그런데 그게 진짜로 뭉친 걸까요? 저야 모릅니다.
그 이야긴 여기까지 하고.

저는 옥타비오 제미니Octavio Gémini라 합니다. 이탈리아 사람, 62세, 뭐 등등이죠.
아, 그리고 제가 이곳 재단에서 검열 및 역정보 활동들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이곳에 계신다는 간 각자 분야에서 이름깨나 날리시는 분이라는 말씀이겠죠. 정치적 연출, 재판 거래, 멋진 광고 캠페인 등. 여론을 자기 마음대로 설정하고, 망각 불가능한 것을 망각시키고, 거인들의 신용도를 떨어뜨릴 줄 아는 사람들.

나쁘지 않습니다.
초짜들치고는.

검열역정보부Département de Censure et de Désinformation가 생산하는 것은 예술 작품입니다. 이 문명 속에 드러나 있으며, 또한 파라오의 초상화, 로마 사람들의 연설, 교회가 쓴 성서, 모든 시대의 모든 권력자가 품은 모든 미디어들 속에서 쑥쑥 자라 온 예술 작품들이죠.

다들 자기 나와바리에서 자기가 전문가인 것 같죠? 여러분은 고양이 사료 팔아먹는 정도밖에 안 됩니다. 여러분이 아는 "선전"이란 건 그냥 빙산의 일각이에요. 이쁘장한 포스터, 번지르르한 연설, 신문 검열… 그런 거 저희는 한 세기 전에 벌써 다 뗐습니다. 그 동안 저희는 개인의 정신, 대중의 정신 속으로 더 깊이 침투했죠. 행동을 예상하고, 의심이 가는 이유를 의심이 가게 하고, 의심이 가는 이유가 의심이 가는 이유가 의심이 가는 이유를 의심이 가게 하는 겁니다. 나치 때는 이런 식으로 5번을 꺾었고, 냉전 때는 8번을 꺾고, 또… 하하, 북한은 나 때는 말이야 하기엔 아직도 진행형이군요.

그거 아시나요? 북한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 유니콘, 햄버거를 처음 개발한 사람, 사스와 에볼라와 에이즈의 치료제가 있는 줄 압니다. 아주 상상초월… 진짜 웃기는 이야기죠?

"와하하, 에이즈 치료제래, 멍청한 북한놈들!" 라고 말한 여러분은 집에 가서 왠지 두통이 느껴져서 아스피린을 먹었어요. 그리고 여러분은 아직도 드골이 실존인물인 줄 알고 살게 되시겠죠. 이 소식이 진지하게 안 느껴지시는 분은 그만 나가보셔도 좋습니다. 아니 뭐, 제가 가시는 분 뭐하러 막나요.
아 네, 거기 입구 쪽에 계시는 요원.
앉으세요.

흠, 어디까지 말했죠? 아, 그래. 그래서 저희는 예술가가 되었고, 항상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역정보의 정수는 바로 《1984》입니다.
검열의 정수는 바로 《화씨 451》이죠.

여러분 중에서는 이 작품들을 이상향처럼 취급하는 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어떤 게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말고 하는 건 제가 결정하는 거랍니다. 저희 부처에 한 달만 주세요. "캐나다"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누구든지 길바닥에서 돌팔매질당하고 직장에서 잘리고 아내랑 자식한테 버림받고 그 외 모든 친척들한테 의절당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하.

아뇨, 진짭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재단의 이익에 배치되지 않는 한은요. 이 일이 재미로 하는 짓이었으면 저희는 아무것도 만질 것 없으니까요.
그리고 갚을 빚이야 누구한테나 남아 있지 않겠나요?

일 얘기나 합시다. 검열역정보부는 워낙 일을 다각도로 벌리는 부처라, 다른 부처랑 긴밀하게 협력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기억소거부에서 막 텅 비워놓은 공간을 채워넣을 다른 역사를 만드실 분도 계실 테고, 밈학부로 가게 되실 분도 계실 겁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센 줄 알아요. 고작 인간의 뇌를 분자 수준으로 조작할 줄 아는 걸 가지고. 그 사람들은 여러분 발목까지도 못 따라왔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고양이 사료 팔아먹는 수준밖에 여전히 안 되지만요. 외무부로 곧장 발령받을 사람도 있겠군요. 여러분이 출판사, 미디어 등등에서 저희의 정보원을 맡을 겁니다. 여러분의 임무는 아무래도 신문을 출판 하루 전에 "첨삭"하기, 역사책이나 천문학적 관측 결과 "교정"하기, 아니면 뭐 뉴스 앵커 두어 명 날려버리기 등등이 되겠죠.

내부 치안을 맡은 곳에는 항상 검열이 존재합니다. 오만 데 김가루를 웅장하게 휘날리고, 몇몇 정보들이 더 이상 아무도 알지 못하는 채로 영영 남을, 그런 보고서가 몇 장인지는 감도 안 오실 겁니다. 여러분이 등급이 조금만 더 올라가시면, 검찰 자리 맡으면서 과학자건 기자건 쓸데없이 설득 안 받아들이는 목격자건 누구든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실 수가 있죠. 그리고 거기서 등급이 쫌만 더 올라가시면… 이렇게 그냥 말씀드릴 줄 아셨나 봅니다? 어휴. 여러분께 말씀드렸다간 제가 바로… 아니다, 여러분을 죽일 필요도 없겠네요. 한 문장 말하면서 거짓말을 세 번 넣고, 그러면서 여러분의 이름을 갈아주고 또 무의식 속에 왠지 권총 총구를 입으로 물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넣어드리고, 그러면 될 겁니다.

뭐 그냥 해보는 말이었구요.
근무하실 때 여러분은 더욱 다재다능하게 되고, 또 동시에 뭐든지 조금씩은 다 할 줄 알게 되는 기회를 얻으실 겁니다. 파일 하나를 처리하려면 종종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이 도맡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위장정보가 서로 모순되면 안 좋잖습니까? 대신 밤에 주무실 수 있다는 기대는 접어두시고요.

자. 좋습니다, 이제 제가 여러분한테 질문 있냐고 물어볼 법한 때가 찾아왔는데, 하지만 여러분은 굳이 손 드실 필요 없습니다. 질문해 봤자 여러분은 진짜로 대답을 들으실 가능성 별로 없습니다. 들어봤자 제 말씀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아실 방법도 없을 테고요.

왜냐면,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게 됐습니다만, 여기서는 모든 사람한테 거짓말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똑똑히 말씀드립니다. 모든 사람, 이라 했습니다. 여러분의 친구. 가족. 동료.
여러분 자신한테도.
O5들한테도.
나한테도.

격리 실패가 발생해서 사람들이 기억상실증을 일으킨다면, 그건 내부 위장공작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동료가 비행선 추락 사고로 죽었다면, 그건 우리 부처에서 비행선 쪽이 8층에서 떨어진 피아노보단 훨씬 그럴듯하고 벵골호랑이보단 훨씬 깔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진실을 절대 몰라요. 전혀. 여러분 스스로의 진짜 정체가 뭔지, 어디에 있는 건지, 재단의 의도가 뭔지, 재단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이제부터 의심이 여러분을 잠식하고, 절대로 여러분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먹어치울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천천히 미칠 겁니다.

유일한 탈출구라면, 그 상황에 신경 쓰지 않는 것뿐입니다.

진실이란 개념은 참 아름답지만 여러분은 진실을 저버려야 합니다. 여러분만의 사실을 꾸미세요, 여러분 자신만의 현실을 꾸미세요… 그러고 나면 아마 여러분을 먹어치우는, 진실이 없다고 귓가에 속삭이는 그 느낌이 살짝 무뎌질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믿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도, 이 세상도, 저도요. 그리고 똑같은 이치 때문에 여러분은 항상, 상황을 모면하시고 속임수를 쓰시고 거짓말을 내뱉으시고 이 시스템을 뜯어먹으시고 O5들을 직접 속이셔도 좋습니다.

저도 사실 재단에 입사해서 들어온 적 없습니다.
그냥 어느 날 가다 보니 어떤 시설에 들어와 있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저는 구라 쳐서 살아남고, 구라 쳐서 고용되고, 구라 쳐서 승진되고, 그래서 여기 있게 된 거죠.

헤헤. 막 궁금해집니다, 무슨 테스트 같기도 하고 그쵸.
"이거 진짜야 뻥이야?" 막 속으로 그렇게 질문하고 계시죠? 두말할 것 없이 뻥입니다. 아니 저 따위가 재단을 어떻게 속여요. 그리고 제가 진짜로 시스템 전체를 등쳐먹었으면, 그런 이야기를 여기서 풀면 진짜 멍청한 짓이에요. 여기 사람 많은 알레프 기지 49B호실에서, 여러분 앞에 서서, 보안 요원 두 명이랑 또 곳곳에 숨겨진 마이크랑 카메라들 앞에서는.

아, 그 말씀을 다시 드려야겠네요. 제 이름은 옥타비오 제미니Octavio Gémini라 합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름 속 "e"에 악센트 안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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