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성기초론 오리엔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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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러분 모두 안녕하십니까. 다들 앉아 주시고요.

환영합니다 여러분. 여기는 이상성기초론(théories fondamentales de l'anormalité) 오리엔테이션 자리입니다. 저는 발보그리Valbeaugris 박사라 하고, 양자역학 박사과정 학생이자 이상성기초론 연구자입니다. 이런 상황 같으면 제가 응당, 이 자리로 모이신 여러분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인재겠구나, 그렇게 말씀드려야 하겠군요.

뭐 최고 맞으시겠죠. 저야 관심 없습니다.

여러분이 직함만 요원이든 박사 두 개를 동시에 준비하시든, 저희가 찾는 사람은 혁신적으로 행동하고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체계를 구상할 줄 아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본인이 연구했던 특정한 SCP 몇 개만 가지고 생각하지 마세요. 크게 보세요.

네 그럼요, 제 분야를 보고 여러분이 품은 생각, 모두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중에 질문은 얼마든지 하셔도 좋습니다. 오리엔테이션 도중에 여러분을 잃어버리면 정말 유감스러우니까요.

네, 그러니까 가장 먼저 간단하게 실제로 하나 시연해드리려고 그럽니다. 거기 첫 줄에 앉으신 분, 여기 면도칼 잘 바라보세요. 네네 그래요, 좋습니다. 몇 초만 지나면… 짠! 이제 턱수염이 생겼습니다!

보통 이런 말도 안되는 사건을 목격하고 나시면 여러 가지 질문을 떠올리시고는 합니다.
아뇨, "왜 재단 인원이 변칙개체를 마음대로 사용하는 건가요?"는 빼고 얘기하죠.

네, 아까 그 말씀. "어떻게?" 바로 그겁니다, 젊으신 분. "어떻게?"는 변칙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것을 "왜?"라는 질문하고는 선명하게 구분하시기 바랍니다. "왜?"라면서 목적을 묻는 것은 꽤나 부질없는 의문입니다. 변칙개체가 자연발생했으면 처음부터 목적 따위는 없습니다. 결정론 따위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시구요. 그리고 변칙개체가 제3자한테서 만들어졌으면 목적은 그 제3자가 준 목적일 겁니다. 더 왈가왈부할 것도 없어 보이는군요.

다시 "어떻게?"로 돌아오죠. 이 질문 하나가 이 세상 기초과학의 근간이고, 저희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단의 온갖 과학 부서에서 이 질문을 탐구하죠. 변칙개체가 갑자기 수염을 만들어내든 존재하는 모든 다중우주를 위협하든, 그놈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해내느냐 그걸 연구합니다. 하지만 그런 부서들한테 한 가지 따져보겠습니다. 재단 과학자는 각기 변칙개체를 한 번에 하나씩 연구하고, "어떻게?"라는 소중한 질문을 개별적 방식으로만 대답하려고 합니다. 틀린 짓입니다.

네, 다들 과학 부서에서 오신 줄 잘 압니다. 네 그럼요, 여러분이 틀렸다는 소립니다.

전구가 빛나는 이유를 왜 연구합니까, 전기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지도 모르는데? 이 면도칼이 첫 줄의 저 분한테 갑자기 턱수염을 만들어준 이유를 왜 연구하나요, 이상성 자체가 존재하는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바로 그래서 오늘날 우리 앞에 이상성기초론이 등장했습니다. 훨씬 더 고아한 목표와 지난한 이론적 계산 과정으로 무장한 학문이죠.

네? SCP-001이요? 풋! 으흠, 죄송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SCP-001은 구라라고 생각합니다. 아 이거, 집행부에서 저보고 세미나에서 주관적 의견 표시했다고 또 문책하겠군요. 제가 안 잘리면 저 말고 사람 없어서 그런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공식 입장으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상성기초론은 변칙현상을 해석할 때 과학적이고 엄밀한 수단을 추구합니다. 그 수단들은 일정한 전제들에서 출발하고, 전제들은 물론 변칙적 내용을 담았겠지만 그건 외견상의 모습일 뿐이죠. 충분히 파고든다면 언젠가는 과학이 화답할 겁니다.

한마디로 이겁니다. 이 부서로 정말 들어오시려면 SCP-001일랑 잊어버리세요. 그리고 변칙성 기초론 학자한테 그런 이야기는 말도 꺼내지 마세요.

그래 이상성기초론이 우리 앞에 등장해서 뭘 하느냐, 그 이야기 중이었나요? 뭐랄까, 거기부턴 어떻게 접근하냐에 달렸습니다. 이상성기초론은 대강 세 가지 분야로 나뉩니다. 첫째 분야는 거의 모든 SCP 개체들의 관계 자체, 그리고 그런 관계가 물질이나 에너지를 조작하는 방법을 탐구합니다. 이것을 공략하고자 새로운 모형들이 여러 가지 제안되었습니다. 입자 간의 새로운 상호작용을 도입하기도 하고, 새로운 입자를 추가하기도 했죠. 그러니까 이 분야는 물질을 더욱 깊이 탐구하여 변칙개체의 보편적 공통점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양자역학과 초끈이론을 연구하고, 가끔은 스칼라파 같은 낯선 개념도 만나보실 겁니다.
둘째 분야는 제 전공인데, 다중우주 내 우주간 상호작용과 변칙성의 주관적 양상을 연구합니다. 이 때문에 저희는 멀티-U와 긴말하게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제일 중요한 도구는 이론물리학이겠지만, 변칙성이란 무엇이냐, 우리가 변칙성을 어떤 원리로 인식하느냐 등 철학에 가까운 질문도 고민하실 겁니다.
마지막으로 셋째 분야는 인식성 변칙현상을 해명하는 방법을 탐구합니다. 밈이나 정보재해나 그런 것 있죠. 신경과학자나 밈학자가 있으시면 환영합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세 분야를 구분하는 선은 방금 말씀드린 것만큼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분야 안에서도 이론의 개수는 무궁무진해요.

왜냐? 저희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로를 연구하면서 부적합한 이론을 하나씩 배제하며 맨 마지막에 유일하게 적합한 이론만을 남기는 방법을 추구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자기주도성을 매우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러냐면 말이죠, 자기주도적 자세가 여럿이 모였을 때만이 그 속에서 기초론이 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웠던 저 18세기에는 변칙성을 해명하고자 시도했던 이론들이 넘쳐났습니다. 숱한 철학자와 과학자 들이 이 문제를 연구하며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도 자존심을 굽힐 줄 몰랐고, 그 때문에 저마다 어딘가 부족한 이론을 내놓고 말았죠.
어떤 가톨릭교도 독일인은 인간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았다고 믿었습니다. 대신 에덴 동산이 타락해서 지구가 되었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변칙개체는 그 타락의 상징으로, 신의 징벌이 내린 결과라고 보았습니다. 지옥은 불타는 심연이 아니라 이상이 끓어넘쳐서 인간이 이성을 상실해 되찾지 못하는 곳이라고 생각했고요.
맥스웰이라는 영국 사람은… 왜냐고 하시면 저도 모릅니다만, 변칙성을 열역학으로 해명하려고 했습니다. 온도가 높아진 유체가 팽창하는 원리가 눈에 안 보이지만 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연유체"에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자연유체가 팽창하며 우리 현실이 같이 팽창하면서 변칙개체가 출현한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팽창시키는 데 필요하다고 추정되는 온도는 지표면 온도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이에 맥스웰은 변칙개체가 지구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고, 화산을 변칙개체의 매개체로 두는 체계를 구상했습니다. 이 연구는 왕성하게 이어지다가 1763년에 갑자기 끊어졌습니다. 맥스웰이 에트나 화산을 찾아갔을 때 화산이 기분이 달갑지 않았는지 10kg짜리 화산탄을 머리에다 떨궈버렸거든요.

그리고 그 밖에도 많습니다. 다른 연구자 중에 장바티스트 라뱅 드 쿠르빌(Jean-Baptiste Ravin de Courville)과 조세핀 다스트(Joséphine d'Hast) 부부가 있는데, 이분들 이론은 오늘날에도 연구 대상이 됩니다. 제 전공이기도 하고요. 1774년 드 쿠르빌은 "특이교량(pont singulier)"이라는 개념을 창안해 이를 바탕으로 변칙성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특이교량이 뭔지 미주알고주알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일단 들어오시면 그 말을 자기 이름보다 더 자주 들으실 테니까요. 하지만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드 쿠르빌과 다스트의 그 유명한 《특이체론Traité de la Singularité》을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변칙현상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바로 계몽의 세기가 요구했듯이 변칙현상의 원리를 깨달음으로써 인간의 조건을 진보시키기를 희망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인본주의를…

네 아무튼.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며 기초론은 인기가 낮아지고 말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만 과학이 발전하며 기초론 대부분이 신용부터 떨어져나갔죠. 하지만 변칙개체의 실용적인 면을 파악하고 싶어하는 욕심이 커져가는 것을 막을 방법이야 있었겠습니까. 그런 걸 파악해서 변칙개체를 더 효율적으로 격리하거나 뭐… 영문을 모르겠다니까요.

하지만 언젠가는 기초론이 드디어 증명받는 그날이 찾아오리라고 저는 진심으로 믿습니다. 그날이면 특정 변칙개체만 연구하는 방법은 생을 마칠 겁니다. 그날이면 어떤 개체든지 우리가 보지도 않고 해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날이면 재단은 마침내 변칙현상에게 승리를 얻어낼 겁니다.

그러나 그날이 온다 해도 그것이 오늘은 아닙니다. 기초론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은 이 분야가 재단에서 보조 수단 취급받고 실용적 접근에 치이고 있음을 나타내겠죠. 하지만 잠시, 정확하게 다시 말해봅시다. 알레프 기지처럼 규모가 있는 데만 이상성기초론 전문 부서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연구 대상이 특이교량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에요. 지금까지 연구된 수많은 이론들이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기 때문에, 결국 여러분의 목표는 마음에 드는 이론을 직접 찾아나서는 겁니다. 또 저희는 멀티-U나 밈학부처럼 과학부 중에서 소중한 데이터를 제공해주는 분과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 대다수에게 저희는 자뻑하는 자칭 천재라는 이미지가 박혀 있죠. 다른 부서에서는 저희를 자꾸 자기들 이론 추상화시키는 데만 집착하는 방구석 수학자로 취급하고요. 하지만 명심하세요, 이상성을 이해해야지만이 진정 안전하게 격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SCP 개체들을 방정식 한 줄로 설명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수학적 완전성을 이룩하고 지난 몇백 년 이래 과학을 최대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아, 벌써 시간 다 됐네요. 자,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현학적인 수학자 여러분들, 저희 부서로 들어오면 무엇을 얻을지 궁금한가요? 저랑 원만하게 지낼 기회와 보너스 약간은 뺀다면?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론 중에 확고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곳에는 두 가지가 풍부한데, 연구하다 나오는 막다른 길과 연구진에게 팽배한 우울증입니다. 어떤 신조를 품었더라도 너무 매달리려 하지 마세요. 일은 고되고 이따금 고통스러우며 지원은 드물 겁니다. 하지만 어느 날에, 누군가 여러분께 "어떻게?"라고 물을 겁니다. 이 질문의 답으로 누군가는 "거대한 파스타 접시"를 생각하고, 누군가는 "다색 우주 뱀"을 생각하며, 누군가는 "자연"을, 누군가는 "신"을 생각하겠죠.

여러분은,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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