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잖아,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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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다시 따가워진다.

"눈 깜빡할게." 내가 말한다.

"클리어." 랜달Randal이다.

"클리어요."Will이다.

랜달은 아직 청소 중이고, 윌은 내 뒤에 오른쪽에 서 있다. 몸을 돌려서 윌 쪽을 살펴보고 싶은데 지금…. 그래, 저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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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그냥 페인트잖아, 그치? 저게 눈인가?

무슨 지랄인가 몰라도 내 쪽으로 바로 쳐다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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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친구들도 자기도 똑같은 느낌들이란다. 좋같은 초록색 스프레이 페인트, 저네들 영혼까지 똑바로 들여다보는 모양이다.

윌이 보이지 않지만, 바지에 지리는 모습은 상상이 간다. 윌이 우리 중에 제일 새내기라.

잠깐 방금 움직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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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군… 쌍놈의 편집증.

동물한테 공격받아 본 적 있는지? 열두 살 때 개 하나가 다리를 물어서, 광견병 주사랑 가설라무네 등등을 맞았던 적 있었다.

"아… 여기, 눈 좀 깜빡할게요." 윌이 떨면서 말한다.

"클리어." 랜달이다.

"클리어." 나다.

그래, 분명히 지대 겁먹었지.

어쨌거나 공격을 받을 때 이야기를 하면. 몸이랑 머리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다 아는, 더구나 마음은 모른다 하는데도 그러는 때가 있다.

원시적인 일이다. 몸은 긴장하고 아드레날린은 뿜어나온다. 일명 투쟁-도피 반응, 나랑 개랑 같은 경우는 좋밥같이 냉동되는 반응. 그런 거랑 상관없이 몸은 반응을 준비한다.

지금 이 시간 내내가, 저 병신같은 조각상이랑 보내는 시간이 그렇다. 시발 멈춰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한테는 반응을 어떻게 해야 하지?

랜달은 뭔지는 몰라도 바닥에 그득한 뭔가들을 치우는 데 와따를 저기서 다하고 있다. 이런 지랄은 드론 갖고 다 하면 안 되나?

"눈 깜빡한다." 랜달이 말한다.

"클리어요." 윌이다.

"클리어." 나다.

뭐, 몇 분 지나면 내가 대걸레 맡을 차례군.

다 볼 만큼 몸은 못 돌리겠지만 지금 보이기로는 윌이 자기 구역에서 풀로 제대로는 못 하는 것 같다. 내가 나중에 대걸레 들—

땡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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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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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안 — 시발 나 지금 — 보기는 — 겨우 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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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랜달이 대걸레 떨궜다. 윌 덮쳤어…. 진짜 조금밖에 안 봤어! 본능적이었다고! 본능적… 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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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어떻게 벌써 나한테 다가오기까지 하고 있었지?

시발 왜? 무슨 좋은 데 써야 해서 사람 목 꺾고 다녀 지금? 왜 윌한테 그런 짓 해야 했냐고?

나 지금 빡쳤다. 저 새끼 빠개진 면상에 죽빵을 날리고 싶다. 투쟁 반응이 이제야 나타나는 건가 싶다.

젠장 시발, 이건 지금 좆이다.

모든 게 다 좆이다. 살고 죽을 놈새끼가 누군지 고르는 게 왜 저딴 새끼가 되는 건데?! 이 호로같은 곳에서 일 년은 지냈다고! 끔찍한 지랄 그득하게 보고… 끔찍한 지랄에서 몇 번이나 살아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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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눈이 날 심판하는 느낌이다.

좋아요 판사님. 제가 말똥같은 일 좀 했습니다만 이런 썩창보다 더한 일까지 당할 정돕니까!? 저도 할 말은 있어요! 해야 할 거 다 했잖아요! 시발 나는 치를 대가 다 치르고 있다고!

나는…

치를 대가 다 치르고 있다고.

"으으읍… 하아."

입에서 소리가 터져나온다. 얼굴에 썩은 미소가 떠오르는 느낌이다.

랜달이 뒤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윌? 시발 뭔데… 대걸레. 아니 이거… 윌…."

"하! 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내 웃음에 랜달이 멈칫한다. 저것의 눈길에 정신이 뚫어지는 느낌이다. 이해할 것만 같다.

나는 낄낄낄 웃고 있다. 조각상을 가리키면서 웃고 있다. 눈이 따갑다. 깜빡할 수 없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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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왜 그래, 레오Leo?"

랜달이 걱정에 찼다. 그럴 만도 하지.

가운 입은 사람들이 인터컴에다 뭐라뭐라 하는 소리가 들린다. 뭐라는지 들리지는 않는다.

모든 것, 이 모든 노력, 그 위험, 그 불안. 대체 왜? 평생을 싸웠다. 돈을 더 벌려고, 더 잘 살아 보려고, 엄마를 다시 보려고. 그랬는데 이딴 곳이다. 니미 종말이랑 면대면으로 만나는 곳이다.

그게 바로 이 새끼다.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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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끼는 영혼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다. 죽이고 싶어하는 거지. 세상의 그 모든 헛짓거리, 내 모든 헛짓거리를 보고 있다. 삶이란 혼돈이고, 날 때부터 계속된 몸부림이고, 시간 속에 빠져서 개헤엄치다 구덩이 바닥에 떨어지는 과정이다. 그리고 끝이 난다. 그러면 사라진다. 그러면 잊혀지지.

이새끼가 원하는 건 눈을 감아주는 것뿐이다. 그러면 모두가 끝나겠지.

참 간단한 목적일세. 그 목적에 맞춰 준 윌이 저기 보인다.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 모습.

"레오, 이자식아, 니가 무슨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나 눈 깜빡해야 돼. 그, 바로 지금."

랜달 말이 들린다. 나도 깜빡해야 한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흐른다. 얼굴에 진작 맺힌 땀방울하고 합쳐져서, 아래로 밑으로, 턱선으로, 목에까지 흘러내린다. 더는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클리어."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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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화신의 눈은 움직이지 않는다. 진짜일 리가 없는 눈이다.

아니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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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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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잖아,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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