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평가: +31+x

이브는 4월 3일에 납치되었다. 거짓말같이. 부서진 신의 교단은 78기지의 보안을 산책이라도 나온 듯 뚫어버렸고, 몇몇 개체와 연구원들을 납치했다. 재단이 그 빌어먹을 교단의 지부를 1년이나 질질 끈 후에 끝장내고, 애덤에게 이브의 시체와 같이 발견된 그의 딸을 던져줄 때까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SCP 재단의 연구원으로서 애덤은 작전에 참가하지 못했다.

혼돈의 반란의 미주리 주 총책임자로서 애덤은 눈에 띌 수 없었다.

이브의 남편으로서 애덤은 도와줄 수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지. 나는 제인의 아버지로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어.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어.


"애도를 표합니다."

애덤은 기지 관리자의 면상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브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가 눈에 선했다. 영화에서 보고 또 보면서 이브와 함께 자주 비웃던 장면이었다. 막 임신한 아내가 임신 테스트기를 흔드는 장면.

'이브, 어떻게 생각해? 난 내일 아침 저 여자가 납치될 확률이 70%라고 보는데.'
'음, 그거 너무 후하게 쳐 주는거 아냐? 나는 85%. 이건 할리우드 영화야, 애덤. 클리셰에 충실해야지.'

미안해, 이브. 현실은 너무나도 영화같아서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내가 일년동안 교단을 부수기 위해서 했던 모든 노력의 결과가 네 죽은 시체와 태어나보지도 못한 딸이라니. 난 이제 뭘 하면 되는거야? 기지를 박차고 뛰어나가서 전화통화라도 해야 하나? 그리고 이어지는 복수극? 이브, 난 이제 뭘 하면 좋은걸까?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한 달 동안 위로휴가가 지급되실 예정입니다."

아, 한 달 후에 다시 일에 돌아오라고요? 예. 알겠습니다. 원하는대로 뼈가 빠질때까지 일 해 줄테니까, 지금은 좀 닥쳐주세요. 제발. 난 지금 인생의 모든 실패를 맛보고 있다고.
애덤은 자괴감에 빠진 채 생각했다. 그는 정말로 최선을 다 했다. 교단이 그의 아내를 납치한 순간부터, 그는 반란의 정보망을 돌렸고, 교단을 필사적으로 찾아내었다. 여기까지 소모된 시간이 육개월이었다. 반란에서 허락만 해 준다면, 그는 그의 자랑스러운 동료들을 이끌고 교단을 쳐부수며 그의 아내를, 적어도 이렇게 되기 전에,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반란도 동료도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들의 주적은 재단이지 교단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애덤은 재단에 의지해보려고 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정보를 흘렸다. 78기지를 습격한 교단의 기지는 이 곳입니다. 기동특무부대를 파견해주세요. 연구원들을 구원해주세요. 내 아내를 찾아주세요. 그러나 재단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멍청하고 느렸다. 재단이 그 빌어먹게 무거운 궁둥이를 움직여 교단에 찾아갔을 때, 이브는 그의 딸을 출산하고 사망한 상태였다. 사망한 상태였다. 사망한. 상태였다. 죽었다. 교단이 그녀에게 행한 끔찍한 일들의 댓가로, 그녀의 딸은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했다.

재단은 단순히 말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고 가진 모든 걸 사용했지만,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었다고. 그들은 틀렸다. 난 그들이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할 수 있어.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어.

과정은 복잡했고 힘들었다. SCP-500 한 알을 훔쳤고, SCP-427을 연구 목적으로 빌렸고, 반란의 기지에서 개체 몇 개를 가져왔다. 일은 제인이 잠들어있는 영안실에서 시행되었다. 일몰부터 일출까지 고통스러운 시행착오 끝에 그는 마침내 해냈다.

해가 떠오를 때, 그의 손에 들린 작은 시체에서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제인이 잠에서 깨어났다.


난 최선을 다 했다. 제인을 숨겨보려고 노력했지만 재단의 정보망은 생각보다 날카로웠다. 그들은 채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이를 가져가, SCP-321로 명명했다. 항목에서 제외하려는 요청은 거부되었다. 윤리위원회의 주장은 안에 쓸모없는 봉제인형 몇 개를 늘어놓는 걸 제외하고 기각되었다. 재단의 연구원으로서는 내 딸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만 뼈저리게 깨달을 뿐이었다.

그들은 제인에 커터칼을 대었다. 상처의 회복 속도를 재었다. 기록했다. 저건 사람이야. 내 딸이라고.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괴물이 아니란 말이다. 내가 제인을 잠에서 깨우기 위해 저지른 일들은 모조리 들켰다. 모든 개체가 압수되었고, 반란의 일원이라는 사실 역시 드러날 뻔 했지만, 잘난 O5 평의회는 SCP를 창조한 공이 있다는 이유로 그 직전에서 수사를 멈췄다.

나는 제인을 희생해서 나를 지켰다. 내가 이렇게 무능한 사람이었나. 새삼 자괴감이 들었다. 제인은 내게 생명을 다시 주었지만, 내가 제인에게 준 건 커터칼을 들이대는 사람과 격리실 안에 갇혀있는 삶이다.

반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또 다시 거절했다. 목적이 너무 명확하고, 대상을 구출하는 동안 내 정체가 드러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들의 무능한 말은 늘 이랬다.

"미안하지만 애덤, 영혼이라도 팔지 않는 이상 그 소녀를 격리실에서 해방시킬수는 없을 겁니다."

가능하다면 뭐든지 하고 싶었다. 영혼을 팔던, 내 몸을 팔던, 내 머리를 팔던, 내 생명을 팔던. 뭐라도 팔아서 저 아이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다. 내 딸에게 일반적인 행복을 선사하고 싶었다. 친구들을 사귀고, 영화를 보고, 사랑을 하게 해 주고 싶었다. 내가 지옥 위를 걷는 한이 있더라도.

머리를 쥐어뜯던 애덤은 그에게 한 가지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청을 거부한 주체는 O5 평의회다. O5 평의회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어쩌면 그가 그의 딸을 되돌려받을지도 모른다. 그의 딸 대신 무언가를 넘긴다면. 하지만 내게 넘길 게 뭐가 있지? 내 아내는 죽었고, 딸은 갇혔다. 돈이야 그들에겐 휴지만도 못한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게 뭐지? 뭘 팔아넘겨야 내 딸을 되찾을 수 있지?

방황하던 애덤의 눈이 그의 컴퓨터로 향했다. 그 곳에서 그는 마침내 해답을 찾았다. O5가 원할만한 것. 그는 어떠한 것 하나를 팔아넘기기로 결심했다. 그의 컴퓨터 한 켠에 켜져있는 채팅방의 존재를.

혼돈의 반란 미주리 지부.


스미스가 죽었다. 존은 체포되었다. 리처드는 자살했다. 채팅방에 그는 혼자 남아있었다. 이제 미주리 안의 혼돈의 반란은 사라졌고, 그 사안은 그를 인사부장으로 진급시켰다. 하지만, 인사부장의 권한으로서도 그의 딸은 자유를 얻을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무능했다.

그의 동료들을 팔아넘겼지만 그는 제인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봉제인형이 조금 늘어났고, 식단의 변화가 있었지만. 제인은 아직 말을 떼지 못했다. 이제 14살인데. 어린 아이가 매일 겪는 일이 그런 끔찍하고 빌어먹게 쓸모없는 일 뿐이라면 말을 못 떼는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마 평범한 딸로 길렀다면 지금쯤 중학교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터였다. 어쩌면 월반을 했을지도 모르지. 분명 이브를 닮아 똑똑할 테니까. 키가 그 나이 또래에 비해서는 조금 작지만, 알 게 뭔가. 제인은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예쁠 수 있었다. 그걸 망친 건 나다. 내 무능함이야.

애덤은 결심했다. 더 이상 무능해지지 않기로.


기지 관리자는 큰 직함이다. 애덤은 표면적으로는 78기지의 관리자였고, 내부적으로는 수십개의 개체를 격리하고 요주의 단체를 말살한 유능한 직원이었으며, 북미 지역의 가장 믿을만한 리더였다. 그러나 그 스스로의 자평은 늘 똑같았다. 그는 여전히 무능한 아버지였다. 제인은 이제 서른 살이 다 되었지만, 얼핏 보기에는 중학생처럼 보였다. 나이를 적게 먹다니. 평범하게 살았다면 저거만한 행복이 없었을텐데. 내가 제인을 해방시켜 줄 수만 있었다면. 내가, O5 평의회의 마음을 어떻게든 돌릴 수만 있다면.

사람이냐는 소리를 지겹게 들었다. 인간이냐는 소리도 지겹게 들었다. 왜 사람들은 그 둘을 나누어서 쓸까. 어차피 같은 의미일텐데. 애덤은 부서진 신의 교단 포로의 사살을 허가하며 중얼거렸다. 왜 사람은 내게 항상 인간이냐고 묻는 걸까. 난 인간의 외형을 하고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지.

아내를 잃은 부하직원에게 태연하게 한달 후에 업무에 복귀하라는 말을 했을 때였나, 주변 사람들의 중얼거림이 심해졌었다. 저것도 사람이라는게 신기하다, 시체를 짓밟고 올라가면 기분이 좋을까, 내가 언젠가 윤리위원회에 찔러버리겠다, 그리고 저런 놈도 자랑스럽게 고개를 들고 다닌다니 분하다. 난 내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해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딸 하나 자유롭게 살지 못하게 해 주는 남자가 어딜 봐서 자랑스러운 사람인걸까.

애덤은 그의 책상에 놓인 사진을 보았다. 제인의 20살 생일, 기지 관리자로서 억지를 부려가며 찍은 사진이었다. 제인은 고통을 참아가며 웃어주었다. 케이크 하나 제대로 먹여주지 못하는 아버지를 향해서 브이자를 하고 미소지어주었다. 그가 여태까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던 이유는 저 사진이 가장 클 것이다.

애덤은 흐느끼며 속삭였다. 제인, 조금만 기다려라. 아버지가 너를 반드시 자유롭게 살게 해 줄 테니까. 무슨 짓을 해더라도, 네게 친구와, 애인과, 일상을 줄 테니까. 애덤의 흐느낌은 도장이 되어 서류에 찍혀갔다. 그의 울음이 서류에 찍혀나갈 때 마다 그의 평판은 올라만 갔다.


몇 달 전에 낸 건의사항은 기각되었다. 윤리 위원회가 그에게 가져다 준 것은, 제인이 죽지 않도록 인공심장을 개발할 수 있는 허가서뿐이었다. 제인의 몸은 서서히 썩고 있었다. 이 일을 빨리 끝내지 않는다면 결국 그는 제인에게 고통만 주다 그녀의 죽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는 안 되지.

애덤은 왼손으로 혼돈의 반란 기지에 대한 폭격 명령서를 치우며 생각했다. 여기서 내가 더 유능해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여태까지 재단을 위해 어떠한 더러운 일이라도 해왔다. 가능한 모든 개체를 찾아냈고, 가능한 모든 요주의 단체를 끝장내버렸다. 하지만 재단은 여전히 제인에게 자유를 주는 걸 거부했다. 애덤은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 이상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뭘 해야 O5에게 제인이 사람이란걸 가르칠 수 있을까.

문득 애덤의 머릿속에 O5 평의회라는 단어가 스쳐지나갔다. 평의회. 그래. O5도, 결국 사람의 집합체다. 그렇다면 내가 O5가 되면 되잖아.

O5는 너무나도 오래 살았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시절부터, O5의 13명은 바뀌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바뀌지는 않겠지. O5 개개인의 사적 정보는 기밀이니까, 그걸 굳이 늘리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아무리 잘 해도 O5가 살아 있는 한 O5가 될 수는 없었다. O5가 살아 있는 한.

애덤의 예상이 맞다면 이 일은 그가 여태까지 해왔던 모든 노력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것이다. 그가 져왔던 모든 위험도 가장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이게 가져다 줄 보상은 정말로 터무니없이 클 것이다. O5가 13명이라는건 하루는 24시간이라는것과 같은 수준의 진리니까. 공석이 있을 만한 자리가 아니잖아.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내는데 3년이 걸렸다. 성이 무엇인지 알아내는데 5년이 걸렸다. 거주지를 특정하는데에는 10년이 더 걸렸다. 제인의 인공 심장은 완성되었고, 냉전은 끝났다. 그리고 그 모든 게 확정된 순간 애덤은 그가 예전에 팔아넘겼던 단체에, 무언가 중요한 정보를 공급했다. 정확히 2년 뒤에 재단의 기지에 O5-8의 머리가 소금에 절여진 채 배달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룩해낸 사나이는 10년 후에도 여전히 그의 딸이 격리실에 갇힌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