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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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싫다. 내 몸의 근육이 하나하나 다 싫다.
동전이 엄지를 지그시 내리누른다. 엄지는 덜덜 떨리며 검지가 놓아주길 바라는 투석이다. 오늘은 운이 좋을지도 모르지.
나는 내가 싫다. 그리고 재단이 싫다.
왼손 두 손가락에 끼인 이 금속 쪼가리가 살을 에는 듯하다. 시간이 다 됐다. 또 그 시간이.
나는 내가 싫다. 이런 짓 덕분에 수십억 명을 살릴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싫다.
손가락을 누르던 압력이 갑자기 사라진다. 동전이 땀에 전 내 손을 떠나 가만히 책상 위로 날아간다.
나는 내가 싫다. 우리가 희생을 바쳐야 한다는 이 인류도 싫다.
동전이 빙빙 돌아 눈높이까지 올라간다. 다시는 떨어지지 말아주면 안될까… 그러나 역시 더는 올라오기를 멈춘다. 시간이 흐른다. 지구는 오늘도 돈다. 시간이 다 되었다.
나는 내가 싫다. 당신들도 전부 싫다. 그 잘난 삶을 공짜로 사는 줄 아는 당신들이 하나하나 다 싫다.
동전이 더는 올라가지 않는다. 오늘도 역시 떨어지겠지. 금속은 언제나 차갑다. 세상은 계속 돌아가겠지만 그래도 나는 멈출 수 있다. 내보내줘… 제발. 딱. 동전이 래커칠한 나무책상에 부딪힌다. 그러고도 계속 돌아간다.
나는 내가 싫다. 보내줘.
책상 위 동전의 움직임이 갑자기 멎는다. 의식 있는 사람이라면 나를 죽여줘. 그 정도쯤 무리한 요구도 아니잖아. 손가락이 축 늘어지며 총 손잡이에서 미끄러진다. 불타오르는 눈에서 눈물이, 뒤흔들리는 뱃속에서 혐오감이 느껴진다. 늘 그랬지만 이번에도 힘들겠지. 그러나 언제나처럼 내 비참한 마음도, 내 혐오감도, 내 공포도, 이 미친 임무를 알리려 기지 모든 스피커에 차갑게 울려퍼지는 내 목소리에는 담기지 않는다.

"미인가 인원은 전원 대피하십시오. 110-몬톡 절차를 이제 실시합니다."

나는 내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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