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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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다는 게 뭐라고 생각해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럴 수 없었으므로. 내가 직시하고 있는 어떤 무한한 심염의 내부를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것마냥 나는 한없이 두렵고 무기력할 뿐이었다. 내 앞에 서 있는 여자, 서유하의 앞에서는 아무런 말도 무색할 듯싶었다. 그것이 이 대자연의 어떤 섭리라도 되는 듯이.

"나는 생명이 다른 생명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단적인 형태라고 봐요. 더 크게 말하자면— 한 종이 다른 종에, 혹은 다른 종들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형태라고 할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 앞에 놓인 접시에 샐러드를 덜어냈다. 아주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내게는 평생 주어지지 않을 자연스러움이었다. 특히나 그것이 수백 명의 시체 앞에서 행해질 때는.

"그 기생이 상호적으로, 또 적절하게 행해질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이 대지의 섭리에 맞추어 살아간다면, 아무도 억울할 필요가 없죠. 아무리 억울하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아주 개별적인 억울함일 것이고 결국, 하나를 제외한 모든 종이 억울한 결과를 낳는 것보다야 나을 테니까."

그녀의 짙은 눈동자가 나를 스치고 지나가자, 나는 은연중에 몸을 떨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사람을 긴장케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나는 고심할 수 없었다.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두려워하고 있는 나의 영혼, 그리고 그 영혼의 크나큰 약함만이 부각되어 갔으니까.

영혼이 없는 자만이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으리라.

우리는 아주 거대한 탁자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16세기 프랑스에서 제작했을 법한 고풍스러운 탁자 위엔 채식 요리들이 도자기 그릇 위에 먹음직스럽게 플레이팅 되어 있었고, 그 만찬회장 한구석엔 아주 오래된 축음기에서 쇼팽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곳과 유일하게 어울리지 않는 물건은 벽면에 기대어 있던 녹슨 분쇄기 하나뿐이었다. 서유하는 천연 직물로 잔 정장을 입고 상석에 앉아 여유롭게 샐러드를 베어 물었다. 그녀는 이러한 상태로 식사하는 것에 대하여 어떠한 거부감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처음 한 젓가락만을 간신히 집고 그다음부턴 와인만 삼키고 있는 나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그 만찬의 유일한 손님이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는 분명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유일하게 대접받는 손님, 그것도 서유하의 손님이라니. 아주 독점적이고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던가. 특히나 그녀와의 그러한 자리는 근래 내게 닥쳐오는 모든 일과 견주어 볼 때 아주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었다. 서유하가 누구던가. 최근 BE 세포조직 중 가장 두드러진 활동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신예 조직, AC-397 "유혈목이"의 대표 활동가가 아닌가. 급진적이지만 효과적이고, 파괴적이지만 생태계 친화적인, 근래 가장 뛰어난 조직. 서유하는 바로 그 정점에 서 있었다. BE에서 젊은 나이에 리더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젊은 나이에 그만한 능력과 명성을 얻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노련하고, 아주 지혜롭지 않으면, 문자 그대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까.

나와는 다른 부류였다. 일을 한 번 그르쳐 반평생을 GOC 극동부문에게 쫓겨다니고 있는 나 같은 패배자와는 다른 부류.

그런 의미에서 이 자리를 얻어낸 것은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었다.

— 쳐다보는 눈동자들만 없었어도 분명 그렇게 생각하며 즐겁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인상적인 말씀이군요, 서유하 양." 나는 간신히 대답했다. "식사에 대한 담론은 오래전부터 환경론자들 사이에서 깊이 나누어져 왔지요. 최근엔 대중적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것으로 압니다."

"대중적인 많은 시간 낭비고요." 유하가 미소를 지었다. "아주 많은… 시간 낭비. 입만 떠벌리면서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 그런 자들이 각자의 말을 갈아 날을 세워 서로를 찔러대는 꼴들이 너무나 완연하게 퍼져있어요. 하지만 그들 중 정작 그것을 실천하는 자는 아무도 없지요. 친환경, 대안 생활, 채식… 글쎄요, 아라카기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라카치로 불러주십시오." 나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하하, 언행 불일치가 사회 문제긴 하지요. 허나 담론의 장이 없다면 사상의 발전도 저해되고 말 겁니다."

"물론 그것에 대해선 동의해요. 그러나 저 밖의 사람들 대다수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죠."

유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면으로 거닐어갔다. 그리고는 벽면에 걸린 자신의 트로피를 쓰다듬었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쉽게 휩쓸리고 요동쳐요. 이전처럼 진실이 뭘까 간구하지 않죠. 그냥 구글링 한 번이면 모든 게 끝이니까. 우리의 선조들이 살기 위해 지식을 추구하고 자연으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한 것과는 너무나도 달리."

트로피의 눈이 나를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하하, 그건 그렇습니다만," 나는 애써 웃었다. "하지만 그러한 새로운 세대로부터 새로운 환경운동이 드러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낙관론자시네요, 아라카치 씨는." 서유하가 웃으며 백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어 올렸다. "그럴 수도 있겠죠… 그들이,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더러운 것들의 자기위로적 논리에 현혹되지만 않는다면,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그녀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은 이제 자기만의 덩굴 안에 갇혀 나오려고 하지 않아요."

나는 나의 잔에 담긴 적포도주를 홀짝였다. 뇌에서는 상투적인 찬사나 대꾸가 일렁였지만, 혀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전조등 앞에 선 사슴처럼, 나의 온몸은 그저 굳어있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트로피들도 그런 부류였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렇습니까."

"자기가 자연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불쌍한 영혼들. 허나 그 본질은 사냥에의 희열을 지속적으로 맛보고 싶은 욕망에 있었음을 그들 자신도 알았을 거에요. 아아, 욕망. 욕망이 뭔지. 사람들은 욕망으로 말미암아 일어섰고 또 멸망해 가요. 욕망, 욕망. 이 인간이라는 종족은, 더 맵시 있게 보이려고 여우와 수달을 죽여 그 모피를 취하고, 더 따뜻하게 살려고 북극곰을 죽이죠." 그녀가 슬픈 듯 고개를 저었다. "진기한 요리를 먹기 위해 살아있는 원숭이의 뇌를 파먹고."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동안 내가 외면해왔던 서유하의 수많은 트로피에 조심스러운 눈길을 던졌다. 벽면에 걸려 있는 수십 개의 사람 대가리. 목이 잘린 채로 박제되어 걸려 있는 수십 개의 사람의 두부(頭部). 그 옆을 장식하는 것은 나체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열 명 안팎의 사람들이었다. 아니, 사람의 시신들이었다. 어떤 얼굴들은 놀랄 정도로 친숙해서 구역질이 났다. 그곳에 걸려 있는 이들의 대다수는 트로피 헌터였다. 빈곤해서 팔 것이라고는 야생동물 사냥권밖에 없는 제3세계 국가로 가서 사자를 죽이고 재규어를 쏘고 하마를 잡는 사냥꾼들. 환경운동가들이 비판하면 자신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환경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역설하던 부유한 나라의 엽사들.

"멋지지 않나요?" 서유하가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나의 시선이 향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나도 내 저격소총을 꽤나 잘 다루는 편이거든요. 매번 목을 맞추죠. 이마를 맞춰버리면 항상 모양이 이쁘게 나오질 않길래."

위장이 뒤틀리더니 내부에 들어 있는 것을 게워내려고 발버둥 쳤다. 배추 쪼가리가 목으로 상승했다가 가까스로 되돌아갔다. 손발이 차가워지면서 목덜미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트로피 헌터를 트로피 헌팅하는 게 내가 가진 유일한 취미에요." 서유하가 싱긋 웃었다. "원래는 유화를 그렸는데, 항상 시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일터에서 할 수 있는 취미를 계발했죠."

"…그렇군요."

"모든 사냥꾼은," 그녀가 금발 머리 중년 여자의 박제로 걸어갔다. "자신 역시 사냥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하죠. 생명을 사냥하고 죽이는 데에서 오는 그 유아적 쾌감이… 자신의 목을 베는 단도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해요."

그녀의 흰 손이 박제된 머리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이 밀렵의 천사는 그러질 못했네요."

무릎이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가진 자들은 정보를 통제해요. 이 지구가 얼마나 빨리 죽어가는지는 알리지 않고, 계속 소비하라고 이르죠. 환경의 경고나 이상기후에 대해 떠드는 소리는 광고의 화려한 CM에 다 묻혀버리고 말아요. 내 트로피들도 그랬어요. 죽지 않기 위해 야생동물들을 밀렵해야 했던 제3세계 국민들과 같은 처지도 아니면서, 그저 트로피를 얻기 위해, 그 경이로운 생명을 박제하기 위해 사냥했어요. 그러면서 자신이 자연을 지킨다고 홍보했죠. 자신들이 그 나라에 횡행하던 밀렵을 막고 체계적인 트로피 헌팅 사업을 함으로써 '약간의 희생으로 많은 생명을 살렸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얻어낸 유명세는 그들에게 협찬한 총기 회사에 고스란히 돈을 벌어다 주었고요."

서유하는 이내 분쇄기를 작동시켰다.

"버러지 새끼들."

그녀는 이내 벽면에서 여자의 머리를 때어, 분쇄기에 던져버렸다. 순식간에 머리는 잘게 다져진 고깃덩이로 변해 바닥에 흩뿌려지고 말았다.

나는 내 접시에 구토했다. 위액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바닥으로 추락했다. 양상추 몇 점과 와인의 잔해가 접시에 튀었다. 나오는 게 없을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헛구역질을 했다. 공포와 불쾌와 혐오가 나의 위를 강하게 쥐어짜고 있었다.

"나 아라카치 씨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아요." 서유하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목소리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굉장히 감명 깊었어요. 오사카 한복판에 바오밥나무를 자라나게 한 그 퍼포먼스. 상징적이고, 효과적이었죠. 난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그녀가 내게 미소 지었다.

"그래서 오늘 저녁 식사에 초대한 거에요. 당신이 나와 함께 일하면 좋겠거든." 서유하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마침 그쪽이 연합 때문에 숨어다니고 있다는 것도 알고요."

나는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거기 그녀가 있었다. 트로피 헌터의 트로피 헌터가 그곳에 있었다. 자연의 분노가 그곳에 있었다. 서유하의 그을린 얼굴은 확신과 열정, 그리고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무서운 분노였다. 물러설 길이 없는 아주 고통스러운 분노였다. 인간의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손으로, 그녀는 온 대자연을 다 껴안을 것만 같은 자애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랑 같이 일해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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