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초상조직의 간략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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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역사학술지Nonpublic Histories2011년 5월호에 게재된 논문 "한반도 내 역사적 초상조직 연구"[1]에서
 

역사시대 전반기의 한반도사는 사료 소실로 인해 대부분의 초상개체 관련 정보가 설화의 형태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이들 설화를 분석하면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초상개체들은 심각한 위험성을 갖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위협적인 초상개체가 인간과 관계를 맺어 동거한 사례도 많고, 공격적인 개체는 뜻 있는 개인에 의해 억제되어왔다. 주로 승려 등의 종교인과 선비 등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했고, 이들 중에는 도사(기적사)들도 다수 포함되어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중략)

이러한 기류는 유교 질서가 한반도에 점차 강력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변화했다. 초상개체들은 상덕치인의 길을 흐트리는 흉물들로 여겨지게 되었다. 자연히 기적술을 활용해 이들과 관계하거나 대적하던 도사들도 올바르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어 대부분의 도사들은 속세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수련에 힘쓰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보지 않는다 하여 초상개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조선 중기 SCP-953이 관련된 사건[2]을 계기로 이 안이한 접근법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1600년(선조 33년, 경자년) 설치된 불어도감(不語都監)은 한반도 국가의 역사에서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국가 주도의 초상기관이다. (이 사실이 조선시대에 들어서 초상개체의 위협이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을 암시한다는 학설도 존재한다.) 불어도감의 인적 구성에는 다시금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도사들도 다수 참가했지만, 전통적인 조정의 관료제에서 근무하던 관리나 무인들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이들의 주도 하에 불어도감은 왕명에 복종하는 직속 기구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조직 구조는 적지 않은 도사들에게 반감을 샀으나, 임란으로 혼란한 국기를 바로잡는 것이 최우선이라 여겨졌기에 갈등은 미루어졌다. 초상개체는 이물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었으며, 분류 체계에는 논어의 구절에서 딴 괴력난신[3]이 사용되었다.

불어도감의 직제는 모두 기밀로 부쳐졌다. 불어도감은 국왕과 소수의 대신들의 지시를 받았으며, 실무를 맡는 최고지휘관으로 불어선무사(不語宣撫使)를 두었다. 정식으로 품계가 주어지진 않았으나 그 입지는 당상관에 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선무사 휘하에는 각 종류의 이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네 부대가 있었다. 임란 중 조총을 비롯한 신식 화기가 도입되었지만 이물을 상대하는 데에는 부족하다고 여겨졌고, 이에 따라 괴이대, 용력대, 귀신대는 기적학적 요소를 대거 채택하여 활동에 응용하였다. 패란대는 민심 동요에 따라 임무의 성패가 좌우되는 특성상 재래식 무기를 주로 사용하였다.

불어도감은 초기엔 발견한 이물을 전부 제거하였지만 점차 그들의 능력으로 없앨 수가 없거나 위험 부담이 큰 이물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에 조정은 목표를 다소 변경하여 제거 불가능한 이물, 종묘사직에 보탬이 될 법한 이물들은 사로잡아 보관하되 엄중히 감시하도록 하였다.

이 무렵 조선의 초상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두 가지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병자호란이다. 정묘년의 침범이 채 잊혀지기도 전인 1636년(인조 14년, 병자년) 후금의 대군세가 압록강을 넘어 한양으로 치닫자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도피하였다. 불어도감도 이를 따라 피난하였으나 상황이 급박하여 보관하던 이물 대다수를 한양 도성에 남겨둔 채였다. 남한산성에 들인 이물을 활용해 국면을 타개하려는 논의가 있었으나[4] 강화도가 함락되자 인조가 항복을 결정하여 실행조차 해보지 못하였다.

둘째는 표류해온 화란(네덜란드)인들의 정착이다. 1627년(인조 5년, 정묘년)의 얀 야너스 벨테브레(박연), 1953년(효종 4년, 계사년)의 페드루 데릭 얀스(남연수)가 가장 대표적이다. 이들은 양이에서 익힌 지식들로 총포의 개량에 기여했고, 특히 남연수의 경우 과거 화란에서도 이물을 다뤄왔기에 불어도감에 합류하여 다양한 이물 금제법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 두 사건으로 조정은 불어도감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이물을 모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1654년(효종 5년, 갑오년) 이물의 금제와 탐구를 맡는 전문기관 보전원(保傳院)이 불어도감 산하에 설치되었다. 보전원이 소장한 이물 갯수는 착실히 늘어갔고 그럴수록 불어도감 내에서 보전원의 존재감도 커져갔다.

한편 불어도감 내부에선 도사들과 관출 인원들 사이의 갈등이 수면 아래에서 점점 커지고 있었다. 도사들은 지금껏 자신들이 맡아왔던 일에 끼어들어 불합리한 제약과 경직된 조직 구조를 강요하는 자들을 경멸했으며, 반대측에선 이물과 다를 바 없는 초상적인 능력을 다루는 도사들이 자유롭게 풀려나있는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러한 조직내 불화가 계속되던 상황에서 보전원이라는 신조직의 등장은 비상한 관심을 불러모았다. 특히 도사들의 대이물 전투력의 존재감에 밀려 불어도감 내에서 언제나 약세한 입지에 몰려왔던 반대파는 이를 기회라 여겼다. 이들은 보전원의 요직을 차지한 후 기적학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이물을 제어할 수 있는 방도를 물색하였고, 이러한 목적에 매우 유용한 이물과 도구를 상당수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연구 방향은 기적학을 비롯한 비유교적 수단을 완전히 배제하자던 애초의 목적과는 다소 모순되는 것이었다. (연구가들은 이 시점을 주술파와 기술파가 확실하게 형성된 시기로 지목하고 있다.)

(중략)

내부의 계파 충돌로 말미암아 불어도감은 폐지되고 이금위라는 이름으로 재편되었다. 대부분의 도사들은 조직에서 완전히 축출되었고, 추적 대상인 용력 개체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재래식 수단이 도술을 완전 대체해낸 것은 아니었다. 사용 방법이 연구된 이물들이 금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고, 협력을 약속한 잔류 도사들 역시 임무에 계속 참여했기 때문에 초상조직의 실제 임무 수행 양상은 다소의 비중 변화를 제외하면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중략)

조선 말기, 조정의 재정적 뒷받침이 사실상 철폐되자 이금위와 보전원은 사실상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한다. 조직을 유지하는 것 만으로도 여력이 없게 된 이들은 적극적인 금제 목적의 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자금 지원을 약조한 세도가의 비밀 군사력으로 고용되는 것은 물론이요, 민간에 은신한 도사들이 이물을 다루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하거나 도리어 금제 역할을 거의 위임하는 지경에 이른다.

개화기가 도래하고 조선왕국이 대한제국으로 전환되면서 초상조직 역시 다소간의 중흥기를 맞는다. 조직 정상화와 서구 기술 도입을 비롯한 이런 움직임은 별 성과를 거두기도 전에 일본제국에 의해 대한제국이 합병됨으로써 중단되었다. 이후 이금위는 대한제국군과 마찬가지로 해산 조치되었고, 보전원 금제소의 소장 이물들은 이자메아(IJAMEA)의 관할로 넘어갔다. 일부 구성원은 이러한 전개를 예상하고 적지 않은 이물을 빼돌려 잠적했다. 이들의 행적은 다소 다양하게 갈리는데, 크게는 통상의 독립운동단체에 투신한 부류와 과거 결별했던 도사들에게 합류하고자 한 부류로 나눌 수 있으며, 후자는 이후 뱀의 손에 가담했을 개연성이 크다. 극히 드물게 특수한 경로를 통해 재단에 접촉한 사례도 존재한다.

Bibliography
1. 한국사령부 과학부 초상사연구국, "한반도 내 역사적 초상조직 연구", 1-5, 2011.
2. 한국사령부 과학부 초상사연구국, "재단 이전의 SCP-953 추적 및 분석", 34-77, 2010.
3. 한국사령부 과학부 초상사연구국, "불어도감의 운영에 대하여", 15-19, 2005.
4. 한국사령부 과학부 초상사연구국, "병자호란에서의 변칙 개체 활용과 한계", 1-8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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