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世之說 混世篇 第五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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危世之說

混世篇

여기가 어디란 말인고? 실로 암중모색(暗中摸索)이로다. 발디딘 곳은 그 끝간 곳이 없고, 팔을 뻗어 무엇을 짚으려 하여도 짚이지가 않는구나. 동짓달 그믐밤에 산 속을 헤매어도 이보다는 명징(明澄)하였으리라.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인가? 삭풍(朔風) 굉굉(轟轟)한 소리 가운데 휘말려 사바(娑婆)의 끄트머리에 이르려는 것인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 이 귀곡성(鬼哭聲)은 뭇 혼백(魂魄)들의 것인가, 산중(山中) 들짐승들의 것인가? 활로(活路)가 보이질 않으니, 내 어찌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으리요? 두렵지는 않으나, 자못 한스럽도다.

위세지설(危世之說) 혼세편(混世篇) 제오장(第五章) 8:26

어머니, 아버지, 내내 기체후(氣體候) 일향(一向) 만강(萬康)하옵신지요? 불효(不孝)한 소자(小子) 근래(近來) 미처 찾아뵙지 못함을 한스러이 여기어, 이렇게 일편(一片) 서간(書簡)으로나마 강녕(康寧)함을 여쭈옵니다.

소자, 부모(父母) 슬하(膝下)를 떠나 어언 삼 년, 그저 학업(學業)에만 매진(邁進)하리라 작심(作心)하였사오나, 뜻밖의 기담괴설(奇談怪說)에 얽매여,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 저자에 소자에 관(觀)하여 괴이(怪異)한 공론(公論)이 퍼진지라, 행여 어머니 아버지께서 염려(念慮)하실까 하여 이렇게 서간을 존전(尊前)에 바치옵니다.

그간 소자에게 있었던 일들은 소자 역시 되새겨 보면 차마 믿을 수 없사오나, 소자 감히 고(告)하건대 지금부터 여쭙게 될 일들에 대해서는 한 치도 실상(實相)에서 어긋남이 없고 있는 그대로를 보고 들은 대로 전(傳)하옴을 미리 밝히옵니다.


소자 그 노부(老夫)와 다른 자(者)들을 만난 것이 보름쯤 되오니, 보름 전에 학동(學童)들 중에 성삼이란 놈이 산에 어딜 그리 돌아다니는지 금번에도 또 어딜 같이 가자고 꾀었사옵니다. 소자 일전에 성삼이에 대해서는 일차(一次) 말씀드린 바 있사온데, 지난날 부모님의 간곡(懇曲)한 당부(當付)를 마음에 새겨 이번만큼은 다시는 천렵(川獵) 따위 하지 않으리라 하였사옵니다. 천렵 탓에 이렇게 객지(客地)에 머무르는 것이온데 소자 어찌하여 다시 천렵에 마음을 두겠사옵니까? 하여, 소자 이번에도 헤아리기를, 성삼이가 다른 동류(同流)들을 쉬이 끌어들이지 못하니, 이번에는 또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사람을 꾀는구나, 하였사옵니다.

「 얘애, 얘애, 떡만아. 너 저 뒷산에 가 봤니? 산도 좋고 물도 맑다. 」

「 대장부(大長夫) 큰 뜻 품고 경서(經書)를 탐독(耽讀)하니 공연히 유혹(誘惑)치 마라. 」

「 뭣, 너답지 않게 웬 소리냐. 글월 싫어해서 고향서 쫓겨났담서. 」

「 그래서 맘 고쳐먹었다. 볼 일 없으니까 고만 가라. 」

소자 힐끗 일별(一瞥)하건대 성삼이가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듯 머뭇거리더니 그냥 가길래, 내심(內心) 뿌듯하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로는 그가 자못 딱하기도 하였는데, 잠시 후 다시 헤아려 보니, 성삼이 표정이 뭔가 좀 번민(煩悶)하는 것도 같고, 무슨 말인가를 꼭 하고 싶었는데 꺼내지 못하고 그냥 가는 것이 아닐까 하여, 읽던 것을 다 읽고 일차 만나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사옵니다.

저녁에 모른 체하고 성삼이를 한번 더 만났사온데, 성삼이 하는 말이,

「 정말로 뒷산에 갈 생각 없니? 」

하길래, 소자 언뜻 이상하여 반문(反問)하기를,

「 성삼이 아까 낮에 표정이 좀 어둡길래 그냥 일차 와 보았는데, 뒷산에 무슨 일이라도 있니? 꼭 내가 가야 할 연유(緣由)는 없을 터인데. 촉새도 있고 칠복이도 있고. 」

하니, 성삼이는 답(答)은커녕 오히려 낯빛이 변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이옵니다. 얼마간 기다리니 결국 몇 마디 한다는 것이,

「 그것이, 촉새네는 사, 상중(喪中)이라 하고, 왜 저번에 그 밤나무골 잔칫집에도 안 갔었던 것처럼. 치, 칠복이넨 막둥이 돌봐야 한다고… 」

하여, 소자 답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나랑 이렇게 놀고 싶었나 하여,

「 내 보기에 공연(空然)한 소리니, 솔직한 심경(心境)을 말해야 가든 말든 할 것이다. 그냥 나랑 천렵 하는 것이 원(願)이라고 흉금(胸襟) 터놓고 고하거라. 」

라고 반쯤 농(弄)으로 말하였는데, 성삼이 놈은 오히려 더욱 놀라더니 또 아무 말도 않는 것이옵니다.

여차여차(如此如此)하여 어찌 헤어져 돌아왔으나, 소자 성삼이와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요, 그런대로 알기로 저 놈이 저럴 놈이 아닌데, 하는 헤아림만 있는지라, 뭔가 숨기려는 게 있다고 느껴졌사옵니다. 소자 이제 되새기니 이것이 그 노부와 및 다른 자들과의 첫 연(緣)이었던 듯하옵니다.


그 익일(翌日)에는 성삼이가 다시 찾아왔사온데, 이번에는 진귀(珍貴)한 구슬 같은 것을 가지고 대뜸 내미는 것이옵니다. 생기기는 꼭 무슨 메추리알 정도쯤 되어 보이는 크기에, 그 영롱(玲瓏)한 푸른빛은 소자 보기에도 너무나 기기묘묘(奇奇妙妙)하였사옵니다.

「 참 신통(神通)도 하다. 고것이 무엇이냐? 」

「 …떡만이 넌 이런 건 본 적이 없지? 」

「 …… 」

소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참을 보고 있으려는데,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소자도 모르게 그 구슬 같은 것으로 손이 가는 것이옵니다. 그러자 성삼이가 얼른 그걸 등 뒤로 감추며,

「 이거 내 거다. 」

「 하나만 갖고 싶은데. 」

하여, 성삼이가 마지못해 준다는 듯이 한 손을 내밀고 구슬 하나를 주었사옵니다.

「 본디 내 것이지만… 떡만이 너는 특별히 준다. 어딜 가서 내가 주었다고 고하지 말어라. 」

「 그거야 염려 마라. 」

그걸 받는데 그 구슬이 더욱 찬란(燦爛)하게 빛나는 듯했사옵니다. 구슬 속에서 푸른빛의 물결이 감돌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이런 진귀한 것을 어디서 났나 궁금했사옵니다.

「 저, 성삼아… 」

하는데, 이미 고개를 들어 보니 성삼이는 어디론가 갔는지 보이지 않았사옵니다. 마침 나무를 하고 돌아오던 최가(崔家) 마당쇠에게 성삼이 행방(行方)을 물으니, 저 뒷산에 황급히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사옵니다. 참으로 이상도 한 일이 아니옵니까? 그 구슬은 갑자기 어디서 난 것이며, 작일(昨日) 가자고 했던 그 뒷산으로 황급히 올라감은 어찜인지, 무엇보다도 성삼이는 왜 그 구슬을 주고도 그저 아무 말 없이 혼자 돌아간 것인지 까닭을 알 길이 없었사옵니다.

허나 그 때만 하더라도 소자 이 구슬이 그저 신기하다고밖에는 헤아림이 이르지 못했사옵니다. 이런 구슬로 구슬치기를 한다면 어떨까도 싶었사옵니다. 익일 필(必)히 오촌(五寸) 당숙(堂叔) 어르신과 재종(再從) 아우들이 올 터인데, 그때 함께 구슬치기나 잠시 즐기어 볼 셈이었사옵니다.


소자 익일에 다시 성삼이를 만났는데, 그 놈이 만나자마자 대뜸 문(問)하기를,

「 어제 주었던 그거 어떻게 했니? 」

하기에,

「 아, 그건 재종 아우들에게 주었지. 지금쯤 마당에서 구슬치기를 하고 있을 거다. 오늘은 오래 못 만난다. 당숙 어르신께서 안에 계시니. 」

하자, 성삼이 놈이 눈이 휘둥그래져서 다그치기를,

「 너 그걸 마당 흙바닥에 굴린단 말이냐? 」

하면서 갑자기 대뜸 입을 벌리는 것이옵니다. 소자 들여다보니, 그 속에서 영롱한 푸른빛이 빛나고 있고 작일 보았던 그 푸른 구슬 같은 것이 구르고 있는 것이옵니다.

「 아아, 내 그것이 당과(糖菓)였을줄은 미처 몰랐다. 어떠냐, 입에 달더냐? 」

소자 그렇게 말하면서 뒷머리를 긁으니, 성삼이가 적이 실망한 듯,

「 이것이 얼마나 귀한데 구슬치기나 하라고 어린것들에게 준단 말이냐. 」

하여,

「 정히 그러하면, 어떻게 하나만 더 얻어다 줄 수 없겠니? 내 이번에는 허투루 하지 않으마. 」

하니, 성삼이는 잠시 초사(焦思)라도 하는 것마냥 하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가로되,

「 그것이 실은 내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분께 얻은 것이라. 일단 다시 존안(尊顔)을 뵈어 말씀은 드려 보겠으나, 떡만이 너 때문에 내가 적잖이 난처(難處)하게 되었다. 필히 크게 경(更)을 치실 것이니 앞이 막막하구나. 」

하는 것이옵니다. 소자로서도 미안한 심정(心情) 금할 길이 없었으나, 저도 모르게 내어 설(說)하고 만 것이,

「 네 말도 내 모르는 것은 아니나, 내 작일 이 당과를 받을 적에는 이것이 당과인 줄을 알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무엇을 물으려 하였거늘 네가 자리를 피하지 않았니? 나로서는 이 일에 대해 더 할 말이 없구나. 」

하니, 성삼이 그저 묵묵(默默)히 고개만 끄덕이는 것이옵니다. 장고(長考) 끝에 가로되,

「 그러면 내 너를 위해 한번 더 이 당과를 받아 오도록 하마. 허나 조만간에 이 당과를 만들어 주신 분께 찾아가서 직접 사은(謝恩)이라도 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

하기에, 소자도 대하여 가로되,

「 그 당과를 다시 얻어올 수만 있다면 마땅히 답례(答禮)할 것이나, 당과의 맛이 내 입에 맞았으면 좋겠구나. 」

하자 성삼이가 확신(確信)하여 가로되,

「 그것만은 괘념(掛念) 마라. 필히 마음에 합(合)할 것이니. 」

하고 가는 것이옵니다. 소자 들어가 보니, 재종 아우들이 구슬치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그 당과가 완전히 깨어져 못쓰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집안 어른들을 붙들고 울며 똑같은 구슬을 또 찾아달라고 투정하기에, 소자 그들을 어르고 달래느라고 진을 빼야 했사옵니다.


사연이 이러하여 마침내 소자 이튿날 그 당과를 받아 입에 넣으니, 소자 정녕 무릉(武陵)에 있는 것인지, 극락(極樂)에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사옵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실로 저 명절(名節)날 어머니께서 친히 만들어 주신 유밀과(油蜜果)와도 같고, 곡식 낟알에서 갓 뽑아낸 엿기름과도 같아, 아련히 어머니를 회억(回憶)케 만드는 그런 맛이었사옵니다.

그 모습을 본 성삼이가 확연(確然)히 안도(安堵)하며 가로되,

「 어떠하냐? 실로 우리 오대조(五代祖) 어르신께서도 이 맛을 보기 위해 묘소(墓所)를 박차고 뛰쳐나오실 맛이라. 」

하기에 소자 웃으며 가로되,

「 돌아가신 선대(先代)를 이토록 홀대(忽待)하니, 성삼이 넌 필경 천벌을 받을 것이야. 」

라고 받으니, 성삼이 또 머뭇거리다 왈,

「 아는 어르신께 작일에 호되게 욕을 듣고 간신히 얻어 온 것이라, 이제 떡만이 너도 마땅히 그 분께 사례(謝禮)하여야 할 터인데. 같이 가지 않겠니? 」

라 하여, 소자 부득불(不得不) 약간의 금전(金錢) 두어 냥, 남는 박달나무 모필(毛筆) 하나, 감초(甘草) 두어 돈쭝이나 챙겨서 성삼이와 동행하였사옵니다. 학동들이 흔히 다니는 길이 아니라 뜻밖에도 험하고 거친 두멧골로 들어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인적(人的)도 끊기고 산새들이나 울고 있어 실로 범이라도 나올 법한 산골이었사옵니다.

「 얘 성삼아, 기암절벽(奇巖絕壁)이라도 타야 하는 것이더냐? 」

「 염려 마라, 거의 다 왔다. 」

이렇게 몇 번을 주고받은 끝에 비로소 그 노부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사옵니다. 수욕(水浴)도 제대로 안 한 봉두난발(蓬頭亂髮)의 괴인(怪人)일진대 그 안광(眼光)만큼은 번득이는 것이 몸서리가 절로 쳐졌사옵니다. 소자와 성삼이의 모습을 본 노부 왈,

「 성삼이 네 이놈, 주야장천(晝夜長川) 어딜 그리 쏘다니는 게냐? 시킨 일은 다 했더냐? 」

「 예 어르신, 저기, 저, 떡만이 놈을 데려왔사옵니다. 」

하기에 소자 경황(景況)없이 예(禮)를 갖추어,

「 성삼이의 친우(親友)이온대 이렇게 노부께서 만드신 당과를 맛보았사옵니다. 이에 변변치 못하게나마 예물(禮物)을 갖추어 찾아왔으니, 약소(略少)할진대 관대히 여겨 주시고 받아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

하자, 노부 돌연(突然) 낯을 바꾸어 이르기를,

「 어디 보자, 네 녀석이 그 떡만이라는 놈이더냐. 그래, 그래, 기쁘게 맛보았다니 만행(萬幸)이로구나. 이 늙은이가 묏자락에 틀어박혀서 한다는 일이 그 당과 몇 조각 만드는 것이거늘, 과연 그 진가(眞價)를 알아보아 주는 사람이 있으니 어찌 더 쉴 수 있겠느냐. 」

하기에 소자도 마음을 풀고 다시 길게 예를 갖추었사옵니다.

「 노부께서 제조(製造)하신 바 당과가 실로 소자의 마음에 합하였으니, 혹시 허(許)하신다면 몇 개를 더 얻어다가 일가친지(一家親知)에게도 나누어 줄까 하옵니다. 」

하였으나 노부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가로되,

「 그 당과는 오랫동안 공들여 만들어야 겨우 하나쯤 만들어질까 말까한 것이니, 지금 당장은 내어줄 수 없느니라. 네 녀석의 청(請)을 들어주자면 또한 그 동안 소용(所用)할 양식(糧食)과 약재(藥材)는 전부 어찌하겠느냐. 네가 듣기에 기쁘다면 성삼이처럼 네 녀석도 이곳에서 얼마간 일감을 도맡아 하며 내 의식주(衣食住)를 돌보아야 할 것이니라. 어떠하냐? 」

하시기로, 문득 학업(學業)이 생각이 난 소자는 다시 길게 예를 갖추며 대왈(對曰),

「 말씀이 실로 기쁘오나 소자에게는 공맹(孔孟)의 글월을 익혀 이름을 천하(天下)에 떨칠 일이 급한지라, 말씀만 감사히 받고 이만 물러갈까 하옵니다. 」

여쭈어 보니, 그 노부는 일순 짐작하기 어려운 낯을 띠더니 곧 너그럽게 웃으며 왈,

「 참으로 가상(嘉尙)한 포부(抱負)로다. 어찌 대장부 가는 길을 막을 수 있으랴. 내려가는 길은 성삼이 놈이 일러 줄 것이니 염려하지 말거라. 다만 내려가서는 당과 이야기는 절대 발설(發說)치 말거라. 특히나 관청(官廳)의 귀에 들어가서는 좋을 것 하나 없다. 」

라 하여, 소자는 절대 함구(緘口)하리라 약조(約條)하고, 성삼이와 함께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갔사옵니다.

어머니, 이것이 그 노부와의 첫 대면(對面)이었사오나, 소자 그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생각건대, 참으로 그 맛이 아직도 골(骨)을 울리는 듯하고, 당장이라도 당과가 입 속에 머무르는 것처럼 헛침을 삼키며, 절로 입술을 핥아보게 되니, 아무리 헤아려도 동이 트는 대로 다시 그 노부를 찾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무럭무럭 일었사옵니다. 노부가 설령 허드레나 쥐어 주고 이것저것 일을 시킬지언정 닥치는 대로 해야겠다고 굳게 다잡은 참에, 새벽 닭이 울기에 그 길로 자리에서 일어나 산을 올랐사옵니다.

소자 전에 내려오면서 보아 둔 표지(標識)를 짚어 가면서, 어렵지 않게 노부가 기거(起居)하는 움막을 찾았사옵니다.


어머니, 그 때로부터 소자의 산중(山中) 은거(隱居)가 시작되었사옵니다. 대단하달 것도 없이, 산을 넘나들며 천렵을 해서 양식을 삼고, 올무를 놓아 퇴끼나 몇 마리 잡아 끼니로 삼으며, 마른 남간 가지나 꺾어 와서 장작으로 삼으면 그만이었사옵니다. 이는 소자 기왕(旣往) 종종 즐기던 여가(餘暇)와도 같은 것이니 몹시 익숙한 것이옵니다.

노부는 홀로 음침(陰沈)한 곳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듯하였는데, 종종 도깨비불 같은 푸른 빛이 일렁이고, 알 수 없는 웃음소리를 내는 걸로 보아서는 도저히 당과를 만드는 자 같지가 않았사옵니다. 하오나 어머니, 그런 빛이 일렁이고 나면 꼭 당과가 두어 개씩은 만들어졌으므로, 소자 은근히 그 빛을 기다리기도 했사옵니다.

노부가 시키는 일은 어렵지 않았사오나, 성삼이 놈은 몸집이 작아 허약(虛弱)하였거니와 사사건건(事事件件)이 뺀질대는 천성(天性)이 있었으므로 노부가 자주 경을 쳤사옵니다. 할 일이 많았으므로 성삼이는 매를 맞고 나서도 곧바로 산을 타면서 일을 해야 했사옵니다.

하오나 어머니, 염려하지 마소서! 소자 지금껏 김(金)씨 가문(家門)의 장손(長孫)으로 태어나, 선조(先祖)를 욕되게 하고 양반(兩班)의 위신(威信)에 먹칠을 할 만한 상스러운 일은 하지 않았사옵니다. 소자 비록 한때의 치기(稚氣)로 허드렛일이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하였으되, 천행만행(千幸萬幸)하게도 노부가 소자에게 상것들이나 할 만한 일은 시킨 적이 없었사옵니다.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성삼이 놈은 그 처우(處遇)가 마치 노(奴)와도 같아서, 참으로 가벼이 여김을 받으며 온갖 모멸(侮蔑)과 수치(羞恥)를 당했사옵니다. 노부는 성삼이 놈에게 항시(恒時) 악담(惡談)을 퍼붓고, 매질을 하거나 짓밟기를 거듭하였사오니, 그 참혹(慘酷)한 모습을 이루 다 형용(形容)할 수 없었사옵니다. 성삼이 놈은 소자가 입산(入山)한 후로는 다시는 동리(洞里)에 내려가지 않았는데, 그처럼 맞아서 꽁지 빠진 새처럼 되면 동리로 내려가겠다고 다짐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사옵니다. 허나, 그런 날 밤이면 노부가 꼭 어떻게 알고 잠들어 있던 저희에게 성삼이 놈에게 그 당과를 두어 알 쥐어 주곤 하는 것이옵니다. 그리하면 그 밤은 당과를 입에 물고 잠들면서, 동리로 내려가는 건 다음에 해야겠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옵니다.

그런 식으로 달이 한 번 차고 기울었사온대, 그들 남녀(男女)를 만난 것이 바로 그 무렵이었사옵니다.


「 얘, 혹시 이 근처에 사는 학동이니? 」

소자의 등 뒤에서 갑자기 방년(芳年)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나서,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니 웬 낭자(娘子)가 서 있었사옵니다.

「 으잉, 뉘시오? 산중 낭자는 필시(必是) 여우라 하였는데, 사람이오 귀신이오? 」

「 얘도 참… 내가 사람이기는 하나, 어찌해야 네가 믿겠니? 」

「 사람이라 하시었소? 우리 동리 낭자는 아닌 듯하오만. 」

「 그야… 정처(定處)없이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중이니까 그렇지. 」

「 관아에서 도망 중인 계집종이시오? 」

하다가, 소자 헤아려 보니 과연 며칠 전에 이 낭자가 웬 기골장대(氣骨壯大)한 청년과 입술을 마주 비비던 것이 떠오르는지라,

「 아, 엊그제 저쪽 계곡에서 남몰래 어떤 청년하고 입술 비비시지 않으셨소? 구경 참 잘 하였는데, 도망 중인 몸이라니 조금 안쓰럽소. 도망도 힘에 부칠 것이거늘, 배꼽 맞출 남정네까지 있으니 어찌나 바쁘시오? 」

하니, 그 낭자 입으로는 애써 입꼬리를 올리되 눈으로는 질끈 감은 채 바들바들 떨며,

「 요 맹랑한 어린것이 못 하는 말이 없어… 」

라고 중얼거리고는, 다시 낯을 바꾸어 사근사근히 이르되,

「 너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 산중에 홀로 있는 거니? 보아하니 누군가에게 심히 맞은 것처럼 눈두덩이 부었구나. 」

라고 하기에, 소자 다급(多急)히 일러 주었사옵니다.

「 아… 아니오, 잘못 보셨소. 산비탈에서 구르다가 돌멩이에 눈두덩을 찍혔을 뿐이니. 」

「 저런, 조심하잖구… 사실 이 누나는 찾고 있는 것이 있단다. 듣자하니 이 고을에서 극상(極上)의 당과가 나온다지? 벌써 소문이 산 넘고 물 건너서 조선 팔도(八道)에 두루 퍼졌단다. 」

소자 속으로 헤아리건대, 그 노부가 비록 성질은 괴팍(乖愎)스럽고 고약하나, 당과 만드는 손재주 하나만큼은 과연 팔도에 다시 없을 위인(偉人)이로다 하여, 절로 흥이 났사옵니다.

「 나도 그 당과는 아오. 과연 한 번 맛보면 꿈 속에서도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것이니… 기실(其實) 그 당과를 만드는 노부가 이 산에 은거하고 있는데, 내가 그 노부와 유별(其實)히 가까운 사이라오. 」

소자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하니, 과연 그 낭자는 확연히 놀란 낯을 하고 관심을 보였사옵니다.

「 얘, 그렇다면 혹시 그 당과를 조금 갖고 있는 것이 있니? 」

소자 헤아리건대 소자에게 마침 당과 하나가 있으되, 금일 잠들기 전에 입에 넣고 잠을 청하려는 요량으로 챙긴 것이었사옵니다. 그래도 마침 금일은 걱정했던 것보다 더 일찍 일도 끝나고 기분도 좋은지라, 내친김에 이 낭자에게 당과나 하나 주고 마음이라도 얻어야겠다 싶었사옵니다.

「 하나 있기는 하지만… 낭자도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몹시 귀한 것이라오. 이건 내 특별히 주는 것이니 가벼이 여기지 마시구려. 예 있소. 」

하고 내밀자, 낭자는 기쁜 낯으로 그것을 받아서 품에 챙겨넣고 와락 끌어안으며 가로되,

「 정말 고맙구나. 이렇게 친절할 데가 있나! 일단 오늘은 해가 저물고 있으니 이만 머물 곳을 찾아야겠으나, 괜찮다면 이곳에서 계속 만났으면 좋겠구나. 누나는 편히 월화(月花)라고 부르면 된단다. 」

「 어어… 그… 그러시구려… 」

향기로운 내음에 일순 어질증을 느끼고 다시 정신을 차려 보니 낭자는 사라지고 없었사옵니다. 소자, 드디어 십사 년 평생에 낭자 하나를 건졌으니 기쁘기도 하고 성삼이 놈에게도 자랑하고 싶어서 냉큼 움막으로 돌아갔사옵니다. 허나 성삼이 놈이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노부는 성삼이를 찾아오라고 역정(逆情)을 내는지라, 소자 급히 성삼이를 찾으러 다시 산을 돌아보았사옵니다.

그러다가 문득 저 아래 으슥한 곳에서 다시 그 낭자를 보았사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때의 그 사내와 함께 있었는데, 아까 소자가 건네주었던 당과를 사내에게 보여주는 것이옵니다.

「 과연 천하(天下)에 두루 자랑할 만한 당과로다. 그대가 비록 기골이 장대하기는 하나, 내 당과만큼 여심(女心)에 합하는 선물이 그대에게 있겠느냐? 」

소자 흥에 겨워서 중얼거리고는, 그들을 엿듣기 위해 몰래 나무 그늘로 숨어들었사옵니다.

「 제대로 찾아온 것 같사옵니다. 오라버니, 아마도 익일에는 그 자를 만날 수 있겠사옵니다. 」

「 …이 당과가 과연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것인지 의도를 모르겠구나. 참으로 요사(妖邪)스럽고 불길(不吉)한 기운이 그 속에 있으되, 이 당과를 입에 넣은 사람을 어찌 만들겠다는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

「 소녀 역시 마찬가지이옵니다. 필시 무슨 목적(目的)이 있을 것이고 의도(意圖)가 있을 것인데, 섣불리 사람 입 속에 넣어볼 수도 없으니 암중모색과도 같사옵니다. 」

「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가 아니겠느냐. 」

「 그것이 무엇이온지요? 」

「 이제부터는 무영(無影) 선생의 방식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지. 우리 둘이 힘을 합쳐도 그 배경(背景)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느냐? 지금은 모르겠지만 나중에 밝혀지게 될 것이지만, 아마도 애초부터 배경 같은 건 없었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우리가 어찌할 수 있을 만큼 작은 사건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겠구나. 」

두 남녀가 이렇듯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있는데, 등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어깨를 탁 치는 것이옵니다.

「 얘! 」

돌아보니 성삼이 놈이기에, 소자 급히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는, 성삼이 놈을 이끌고 자리를 피했사옵니다.

「 지금 노부께서 역정이 단단히 나셨다. 오늘도 쉬이 넘어갈 일은 아닌 것 같구나. 」

「 …휴우, 다음 보름달이 되기 전까지, 내 반드시 이 산에서 하산(下山)하고야 말 것이다. 떡만아, 내가 누구냐. 한 번 말하면 끝까지 지키는 대장부 아니냐. 지켜봐라. 」


이튿날 소자 장작을 구하기 위해 산을 둘러보는데, 작일과는 다른 곳에서 우연히 그들의 모습을 보았사옵니다. 소자 이번에도 바위 뒤에 숨어서 엿보았사옵니다.

작일 보았던 사내는 산중에서 웬 족자를 펼쳐 들고 족자와 밀담(密談)을 나누고 있음인데, 그 모습이 자못 진지하여 소자는 쿡 웃음이 나왔사옵니다. 허나 어딘가에서 낯모를 다른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니, 소자 보기에 과연 족자 속 그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대관절 어디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사옵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소자처럼 숨은 자는 보이지 않으니, 문득 소름이 탁 끼치기도 하였사옵니다.

「 …과연 이렇게 족자로 보기에는 그 정체를 확언(確言)할 수 없겠네. 천리낭(千里囊)을 통해 내게 그것을 전달(傳達)토록 하게. 」

「 무영 선생, 하오나 당과는 단지 하나뿐이니, 더 확보(確保)할 필요는 없겠습니까? 」

「 아마도 더 필요할지도 모르지. 계속 수고하게. 」

사내의 옆에 섰던 그 낭자가 다시 족자를 향해 왈,

「 첫 서찰(書札) 역시 그렇거니와, 뭇 어린것들이 구슬치기를 하는 곳 역시 잘 살펴보도록 하겠사옵니다. 」

「 음, 월화 너도 수고하거라. 아무튼 자네들, 내 채비를 갖추어 곧 그리로 가겠네. 」

가만히 듣던 소자는 가슴이 마구 동(動)하는 것이, 그 낭자에게 또 계속 당과를 주게 된다면 저 외간사내에게서 낭자를 빼앗아 올 수도 있지 않겠사옵니까? 어머니, 지금 돌이키건대 소자 그 당시에는 일의 전후사정(前後事情)을 다 헤아리지 못하여 그러했음이나, 그 때만 하더라도 노부에게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당과를 얻어낼 수 있을까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았사옵니다.


「 어머나, 너 또 만났구나. 기다리고 있었니? 」

「 아… 아니오! 그-그-그런 가당치도 않는 말씀을 하시오? 그, 그냥 마침 일감이 없어서! 」

「 호호호호, 아무튼 알겠다. 이 누나가 부탁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들어줄 수 있겠니? 」

「 이번엔 또 무엇이오? 」

대장부란 모름지기 낯모르는 낭자의 부탁은 쉽게쉽게 응낙(應諾)하여서는 안 되는지라, 소자 짐짓 낯빛을 매섭게 하고 올려다 보는데, 낭자 대왈,

「 저번에 주었던 당과는 잘 먹었다. 과연 맛이 달더구나. 조금 더 얻고 싶은데, 괜찮겠니? 」

하기에 소자 고개를 저으며,

「 지금은 없지만, 정녕 원하시거든 내 구해다 드리겠소. 하지만 얼마나 걸릴지는 잘 모르오. 」

하였사옵니다. 몇 번 짐짓 물리칠까 생각도 하였으나 낭자가 아예 단념(斷念)할까 두려워, 낯빛만 바꾸지 않기로 하였사옵니다.

「 투덜대는 걸 보니 형편(形便)은 내 잘 알겠다. 하지만 염치불고(廉恥不顧)하고 간청(懇請)하는 것이니, 이번 한 번만 더 얻어다 주었으면 좋겠구나. 이 누나의 청을 들어준다면 참 기쁠 것 같은데 말이다. 」

「 내, 내가 언제 안 가져다 준다고 하였소? 내일 아침 여기 꼭 서 계시구려. 여봐란듯이 당과를 가져올 터이니. 그 정도 수완(手腕)도 없어서야 어디 대장부라 하겠소. 」

하던 것이 그날 낮이었음이라, 밤에 노부가 잠든 사이 소자 몇 번이고 낮의 일을 떠올렸사옵니다. 그때 숙고(熟考)하였더라면 보다 좋은 방도(方道)도 없는 것이 아닐 터이나, 경각간(頃刻間)에 되는 대로 언약(言約)한 것이 이렇게 된 것이옵니다.

「 …얘, 성삼아, 자니? 」

「 으음… 이제 제발 잘 때도 되지 않았느냐. 」

「 금일 노부께서 분명 당과를 주리라 여겼는데, 이게 어찜이냐. 」

「 또 그 소리더냐. 이런 날도 있는 것이겠지. 」

「 …… 」

소자 더는 갈등(葛藤)할 수 없어, 금침(衾枕)을 박차고 일어나 노부의 일터로 향했사옵니다. 움막의 가장 깊은 곳이기에, 잠들어 있는 노부의 곁을 거쳐 가야만 했사옵니다.

「 떡만아 너… 」

뒤에서 성삼이가 부르는 소리에 멈칫하니,

「 …적당히 해라. 걱정돼서 그런다. 」

「 염려 마라. 」

한 줌의 심려(心慮)를 애써 털어버리면서, 소자 노부가 누운 곳으로 잠행(潛行)하였사옵니다. 노부는 과연 남루(襤褸)한 누더기만을 걸치고, 도야지 털처럼 뻗친 장발(長髮)을 널 평상(平牀)에 휘저으면서, 귀청이 떨어져 나가도록 요란하게 코골이를 하고 있었사옵니다.

「 …… 」

저절로 마른침이 삼켜지고, 사지(四肢) 육신(肉身)의 말단(末端)이 부들부들 떨리며, 턱이 저 혼자 딱딱 맞부딪는 것이, 마치 도적(盜賊)이 된 듯한 기분이었사옵니다. 하오나 소자 스스로 여기기를, 금일 행여 그 당과를 찾게 되면 딱 하나만 챙기고, 이튿날 노부가 기침(起寢)하는 즉시로 달려가 실토(實吐)하고, 다음 번에 당과를 받는 건 한 번 사양(辭讓)하여야겠다고 하였사옵니다.

조심조심 살피어 발걸음을 옮겨 노부의 곁을 지나는데, 문득 노부가 잠꼬대를 하기를,

「 으음, 여부가 있겠습니까… 」

하기에 등골이 오싹하여 털이 쭈뼛 서는지라, 덜덜 떨며 뒤로 돌아보는데 노부는 예와 다름없이 코골이를 하며 잠들어 있었사옵니다.

「 첫 투약(投藥)이 그리 성공적이라 하시니… 」

알 듯 모를 듯한 말만 늘어놓는 노부를 바라보며, 소자 뒷걸음질을 쳐서 일터로 몸을 숨겼사옵니다. 평소에 바라보면 푸른 광채(光彩)가 번득이곤 하던 바로 그 곳이었사옵니다.

지금껏 멀리서 들여다보기만 했지 이렇게 들어와 본 적은 없었는데, 어찌나 어두운지 한 치 앞도 분간(分揀)치 못할 정도였사옵니다.

「 분명 이쪽에 있는 주머니일 터인데… 」

더듬다 소자의 손 끝에 무언가 주름지고 털 많은 것이 잡힌지라, 조심조심 더듬어 살피다 보니 죽은 가이의 목 같은 것이옵니다. 어머니, 소자 바른 대로 고하건대, 그때 거의 실금(失禁)을 피하지 못할 정도였으며, 저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悲鳴)을 지를 뻔하였다가 간신히 입을 스스로 막았사옵니다.

「 으… 으으… 」

바로 그 옆에 요행(僥倖)하게도 주머니 같은 것이 있어, 손을 넣어 보니 당과가 마침 딱 하나 들어있었사옵니다. 소자 급히 그것을 품에 넣고, 다시 조심조심 노부의 곁을 빠져나와 잠자리로 돌아갔사옵니다.

「 떡만이, 다녀왔니? 」

「 아직도 안 자고 있었느냐. 」

「 …어쩌려고 그러느냐, 너. 」

「 신경쓰지 말거라. 성삼이 너 같은 뭇 소년(少年)들이 어찌 대장부의 기개(氣槪)를 알겠느냐. 네가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경지(境地)의 용건(用件)이 있느니라. 」

아쉽게도, 노부는 소자가 일어나기도 전에 당과 하나가 없어진 줄을 알았사옵니다.


「 오, 과연 당과를 가져왔구나. 」

「 어제 내가 누구라 하였소? 나 같은 실력 있는 대장부를 또 찾긴 힘들 것이오. 」

하면서 소자 으쓱해 보이는데, 낭자와 함께 섰던 그 사내 놈이 왈,

「 모양새를 보아하니, 더는 당과를 요구하기 힘들 것 같구나. 」

여기에 낭자도 대왈,

「 더 이상 요구하는 것은 이 아이에게 크게 실례(失禮)일뿐더러, 가능해 보이지도 않사옵니다. 더불어, 우리가 상대해야 할 그 자의 성정(性情)이 얼마나 모진지도 짐작할 수 있사옵니다. 」

하므로, 이에 소자 황급히 가슴을 치며 이르되,

「 지금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오? 내 지금이라도 당장에 가서 당과 한두 개쯤은 더 얻어다 줄 수 있소. 따라와서 내가 하는 것을 똑똑히 보시구려. 」

라 외치고는, 그 길로 움막으로 내달려 내려가, 노부의 일터로 뛰어들었사옵니다.

움막에 노부가 마침 없던지라, 소자 냉큼 주머니를 가져다가 속에 든 것을 땅바닥에 흩어 뿌리려 하였사옵니다. 허나 주머니에 더 든 것은 없고, 소자 무슨 정신(精神)으로 그러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일터 사방에 있던 온갖 괴이(怪異)한 것들을 한꺼번에 뒤엎고 그 속에서 당과를 찾기 시작하였사옵니다. 언제 노부가 들이닥칠지 몰라, 소자 마음에 원(願)하는 만큼 침착(沈着)하게 톺지 못하고, 그저 주마간산(走馬看山)하듯이 돌아볼 뿐이었사옵니다.

허나 얼마간 찾던 중에, 등 뒤에서 노부의 목소리가 들리니,

「 네놈이었구나, 이 배은망덕(背恩忘德)한 놈, 어젯밤에도 당과를 훔친 놈이 성삼이 놈이 아니라 바로 네놈이렷다! 」

소자 그 염(念)에 움찔하였으되 자못 기세를 펴고,

「 소자가 노부께 무슨 은혜(恩惠)를 입었기에 배은망덕이라 하는 것이오? 그간 소자가 입을 것은 소자가 입고, 소자가 먹을 것은 소자가 먹고, 소자가 씻을 것은 소자가 씻었거늘, 당과 한두 개 정도 더 미리 받아놓겠다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하다는 것이오? 」

하니, 노부가 빽 소리를 지르며,

「 이 썩을 놈이 조금 우대(優待)하였더니 위 아래를 모르는구나! 오냐, 내 처음부터 네놈들에게 주는 당과가 아까웠느니라! 네놈들 뱃가죽 속에서 당과가 도로 뭉쳐져서 입으로 토(吐)하여 나올 때까지 두들겨 주마! 」

하며 몽둥이를 높이 치켜드는데, 때마침 사내의 목소리가 들린지라, 노부가 저를 어찌하지는 못하였사옵니다.

「 힘없는 어린것에게 손이 너무 모지시구려. 」

「 네놈들은 또 누구냐? 」

「 노부의… 당과에 꽤나 구미(口味)가 동하는 젊은이들이올시다. 」

노부가 매서운 안광을 번득이며 사내와 낭자를 쏘아보는지라, 다시 사내가 능글맞게 웃으며 왈,

「 두둑이 값을 치르도록 할 터이니, 그 당과를 가진 만큼 팔지 않겠소이까? 」

하니 노부가 탄식하여 왈,

「 허어! 팔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니라! 」

사내가 느긋하게 부채질을 하면서 되묻는데,

「 허면… 무슨 용도로 그런 사특(邪慝)한 정제(錠劑)를 만드시는… 것이오? 」

하니, 소자 뒤에서 듣기에도 너무나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 사지가 떨리는데, 순간 염념천사(念念千思)가 일어나며 소자를 집어삼키니, 노부가 설마 소자를 천천히 죽이려고 비상(砒霜)이라도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소자의 육신에 대고 무엇이라도 시험(試驗)하여 보려는 것인지, 또 아니면 소자를 사람이 아니라 도깨비 같은 것으로 만들려고 하려는 것인지 두려워졌사옵니다. 하오나 어머니, 심려 마옵소서. 이 서간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소자는 무탈(無頉)하옵니다.

여하간(如何間) 노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안광이 변하며, 아까보다 한참 더 사나워진 모습으로 쏘아보다가 나직하게 묻기를,

「 네 이 연놈들… 누구냐? 어디서 왔느냐? 」

하니, 사내가 미소(微笑)를 일순 거두고 싸늘하게 대왈,

「 그대의 사특한 짓을 막으려는 사람들이오. 순순히 항복(降伏)하시구려. 」

「 허면… 이금위(異禁衛)더냐? 」

「 뭣하면 그들을 불러 그대를 결박(結縛)할 수도 있소만. 못난 꼴 보기 전에 현명(賢明)히 판단하시구려. 」

얼마간 번민(煩悶)하는 듯하던 노부는, 순간 이를 빠드득 갈면서 왈,

「 내 네놈들과 같은 자들을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니, 쉽게 당하진 않을 것이니라! 」

하면서 낭자와 사내를 향하여 왼팔을 크게 휘두르는데, 노부의 넓은 옷소매 자락이 펄럭이며 지나간 후에 보니,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완연(完然)히 서 있던 두 사람이 말끔하게 사라지고 없는 것이옵니다.

「 …… 」

노부가 팔을 크게 휘두르고 나서 두 사람이 사라지자, 노부는 자신이 승리(勝利)한 것처럼 껄껄껄 웃으면서 수염을 쓰다듬고 한동안 흥에 젖어 있었사옵니다.

「 내 네놈들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잡힐 위인이 아니니라. 암, 그렇고말고. 소매 속에서 당분간(當分間)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거라. 사내놈은 종놈으로 쓰고, 계집년은 갈보로 쓸 것이야. 」


당일(當日) 밤에 성삼이 놈이 소자를 끌어안고 소리 죽여 통곡(痛哭)하며 이르기를,

「 얘애, 내 괜히 떡만이 너를 끌어들였다. 우리의 꼴이 이러하니 어찌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 낯을 뵙겠느냐마는, 지금이라도 어서 이곳을 떠나는 것이 합당(合當)할 것 같구나. 」

「 나 역시 당과를 얻는 사례를 하고, 당과를 조금이라도 더 얻을까 하여 이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 더 당과를 바랄 수 있겠느냐. 우리 같이 이곳을 속(速)히 내려가야 할 것이다. 」

「 허나 보다시피 오늘 밤부터는 노부께서 저 바깥 양지바른 곳에서 지새면서 우리를 지키고 있으니 어찌한단 말이더냐. 」

「 궁리(窮理)를 하다 보면 방도가 있을 것이다. 당장 지금 우리 소곤거림도 들리지 않으니, 계교(計巧)를 의논(議論)함도 어렵지 않을 것이 아니냐. 노부 성정으로도 밤을 지새우는 것은 결코 쉬이 할 일이 아니니, 얼마 못 가서 평소처럼 잠들게 될 것이다. 당분간은 근신(謹愼)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하지 않겠니? 」

「 처음으로 당과를 맛보았을 적의 일이 후회된다. 게다가, 실은 내가 일을 잘 못 하니, 노부께서 친우(親友) 하나를 더 불러오라고 시키셔서 내 너를 불렀던 것이야. 친우를 불러오면 당과를 세 개 얹어 주겠다고 했다. 그 당과가 대단하면 무에 대단하다고 일을 이리 저질렀는지… 」

「 내 그것은 문제삼지 않으마. 허나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이 있으니, 노부께서 우리를 끌고 다른 뫼로 가자고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야. 금일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분명 경계심(警戒心)이 생기지 않았겠니? 」

「 실로 그렇게 되면 재액(災厄)이 될 것이다.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속히 집으로 돌아가야 할 터인데, 만일 내일 당장 해가 뜨자마자 자리를 옮기면 어찌 집을 찾을 수 있겠니? 」

하여 소자 위로하여 이르기를,

「 허면, 오늘 밤에 혹시 노부께서 잠들지는 않는지 내 계속 감시(監視)할 것이야. 행여 잠들게 된다면, 그 길로 우리는 이곳의 모든 것을 버리고 몸만 빼내어 내려가는 것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가서, 곧장 관청 문을 두드려야 할 것이야. 」

하니 성삼이 놈도 얼른 맞장구치기를,

「 그래, 그래, 그거 좋다. 감시하는 동안 내 쪽잠을 잘 터이니, 혹시 졸음이 쏟아지거든 나를 흔들어 깨우도록 하려무나. 」

하였사옵니다. 허나 소자, 감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성삼이 곁에서 곧바로 쓰러져 잠들고 말았사옵니다. 문득 눈을 뜨니 이미 동편(東便) 산에 해가 걸려 있었사옵니다.


이상하게도 노부는 당장 소자를 내어쫓지도 않았거니와, 평소처럼 일을 해 오라고 할 따름이었사옵니다. 그 선선함이 오히려 의혹(疑惑)이 되어, 소자는 움막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더 떠나지 못하였사옵니다.

「 얘 떡만아, 참으로 의아(疑訝)하다. 우리가 이 길로 내려가서 관청에 신고(申告)하리라고는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더냐? 」

「 그래서 나 역시 더는 내려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어쩌면 어제의 그 요술(妖術)을 써서 산에서 아예 내려가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

소자 대답하니 성삼이 놈은 아예 겁에 질려서 애걸(哀乞)하기를,

「 떡만아, 떡만아, 그런 무서운 말은 하지 마라.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노부가 인간이 아니고 다른 무엇이라는 말이더냐. 」

「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겠니? 우리에게 이상한 당과… 아니, 정제를 먹이고, 어제 찾아왔던 남녀를 소매 속에 넣었으니, 가히 선인(仙人)이 아니라면 적어도 도인(道人)이나 이인(異人)은 된다고 할 것이야. 」

하니 성삼이 놈이 잠시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는,

「 …적어도 선인은 아니겠지. 그가 선인이라면 나를 이렇듯 함부로 구타(毆打)할 리가 없다. 」

하던 중에, 문득 소자의 눈에 웬 낯선 인물이 들어왔사옵니다.

「 쉿, 저길 봐라! 처음 보는 사람인데… 노부의 움막으로 향하고 있다. 」

「 …아는 사람이냐? 」

「 나도 처음이다. 」

단정한 선비 같은 차림새에다, 작은 눈에 쥐처럼 생긴 인상(人相)이며, 두상(頭相)은 흡사 오이처럼 길쭉하고, 움막을 곁눈질로 쏘아 보면서 팔자(八字) 걸음을 하는데, 삐딱하게 곰방대를 들어 물고는 아주 심기(心氣)가 불편(不便)해 못 견디겠다는 낯을 하고 있었사옵니다.

「 이리 오너라. 」

얼마 못 가서 노부가 움막에서 얼굴을 내밀었사옵니다.

「 허어, 이리 오너라? 이번엔 웬 미친 놈이냐? 」

「 그대인가? 」

그 선비는 몇 차례 곰방대를 빨더니 연기를 피워 올렸사옵니다.

「 그대는… 이제부터 내 앞에 전부 다 내놓아야 할 걸세. 그대가 만들던 정제며, 그대가 납거(拉去)한 사람들이며, 전부 다 말일세. 」

「 흥, 저번에 왔던 연놈들과 관련이 있는 게냐? 왜, 네놈도 당하고 싶으냐? 」

멀리서 보니 노부가 허공(虛空)에 대고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악을 쓰는 꼴이 꽤나 우스워 보이기도 했사옵니다.

「 지금 전부 다 내놓는 게 좋을 걸세. 내 경고(警告)하였네. 」

「 경고? 경고라? 허허허 이 놈 보게, 내가 그리 쉬이 잡힐 것 같더냐? 네 놈도 사라지거라! 」

일성(一聲)과 함께 노부가 힘차게 소매를 휘두르는데, 이번에는 선비의 모습이 사라지지가 않았사옵니다.

「 …어어? 」

「 마지막 경고일세. 전부 다, 내놓게. 」

노부가 당혹(當惑)하여 이번에는 광인(狂人)처럼 연신 두 팔을 마구 허공에 휘둘렀으나, 아무리 소매를 휘둘러도 선비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사옵니다. 도리어 선비는 팔자걸음으로 노부에게 다가가고 있었사옵니다.

「 허엇… 흐아앗… 저리 가라 이 놈! 어… 어째서… 어째서 소매에 들지 못한단 말이냐! 이… 이 노부의 소매에 담을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단 말이더냐! 」

「 보아하니 그대가 그 소매를 그토록 의지(意志)하는 연유(緣由)를 알 것도 같군. 허나 지금은 아닐세. 이만 포기하게. 」

이제 노부는 아예 털썩 주저앉아서 부들부들 떨면서 더듬거릴 뿐이었사옵니다.

「 누… 누구냐? 아니… 네, 네놈은 대관절… '무엇' 이냐? 」

「 …지금 그대가 어찌해 볼 수 있는 존재는 아닐세. 」

「 내, 내놓겠다! 그 두 남녀를 풀어주마. 목숨만큼은 부지(扶持)케 해 다오! 」

하면서 노부가 필사적(必死的)으로 오른손을 왼소매에 넣었다가 도로 뿌리니, 아무도 없던 하늘에서 두 사람이 갑자기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이옵니다. 소자 그 모습을 도무지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사옵니다. 성삼이 놈을 힐끗 바라보니, 완전히 입을 쩍 벌린 채 넋이 나간 채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사옵니다.

「 아직 끝이 아닐세. 그대가 만든 것들을 전부 내놓게. 」

「 시… 싫다, 그것만큼은 하지 않을 테다. 그것만큼은 내놓을 수 없다! 」

선비는 방금 떨어진 두 사람을 일별(一瞥)하더니, 곰방대에서 입을 떼고 연기를 한 차례 훅 불고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것이옵니다.

「 그렇다면 별 수 있나. 부득불 문초(問招)를 위해 압송(押送)하는 수밖에. 」

「 히… 히익… 아, 안 된다…! 」

선비는 문득 성큼성큼 다가가, 품에서 웬 호리병 같은 것을 꺼내더니 그 마개를 뽑고 대뜸 노부의 봉두난발에 대는 것이옵니다. 그 순간, 믿을 수 없게도, 노부의 모습이 호리병 속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지는 것이옵니다.

「 놀라운 물건이다! 얘 떡만아, 저거 혹시 서유기(西遊記)에 나오는 그 병이 아니냐? 사람을 병에 넣으면 그 들어간 사람이 완전히 죽처럼 녹는다고 하던데. 」

「 실없는 소리 그만 해라. 방금 저 선비께서 압송한다고 하지 않으셨느냐. 헌데 어찌 녹이는 병이겠느냐? 」

「 …그나저나 노부께서 저리 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니? 」

그 순간, 그 선비가 우리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사옵니다.


「 무영 선생, 결국 이 아이들은 괜히 혹사(酷使)당했다고 할 수 있겠군요. 」

「 음, 그렇지. 자신의 정제를 당과라고 속여서 철부지 어린것들을 유혹하였을 것일세. 정제에다 단맛을 넣는 것 정도는 이 늙은이에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걸세. 염려된다 싶으면 약간의 중독(中毒)을 일으키는 처방(處方)도 하였을 것이고. 」

「 어찌 되었든 정제의 영향을 받았을 터인데, 함께 조사를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

「 아닐세. 내 일전에 환약(丸藥)에 대해 배운 바 있으니, 이 아이들이 섭취(攝取)한 정도로는 큰 문제는 없을 걸세. 설령 이만큼으로도 약효(藥效)가 듣는 극약(劇藥)이라면, 애초에 저 정도 늙은이가 만들 만한 일이 아니었겠지. 」

사내와 선비가 소자와 성삼이 놈을 앞에 두고 말을 주고받는 중에, 소자 먼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사옵니다.

「 저어… 은혜가 하해(河海)와 같사오니, 어찌 답례를 해야 할지… 」

「 정히 답례하고 싶거든, 우리 보전원(保傳院)으로 와서 당분간 일하면서 은혜를 갚도록 하거라. 내 당과만큼은 넉넉히 준비해 놓도록 하마. 」

하더니, 그 선비가 혼자 파안대소(破顔大笑)를 하는 것이옵니다. 옆에 섰던 사내와 낭자 역시 어색(語塞)하게 따라 웃었사옵니다.

「 호호호, 소녀 보기에도 무영 어르신께선 농(弄)을 치는 재치(才致)가 남다르십니다. 」

허나 소자 보기에 그 낭자는 그다지 마음 속 깊이 그렇게 여기지는 않는 눈치였사옵니다. 소자 낭자를 잠시 빤히 바라보는데, 낭자 문득 소자를 보더니 선비에게 아뢰어 왈,

「 다행히 이 어린것이 잘 협조(協助)해 주어 일이 잘 진척(進陟)되었사옵니다. 눈치를 보아하니 소녀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은지라, 지난(至難)함을 무릅쓰고 용케 정제들을 잘 구해다 주었사옵니다. 」

그 말을 듣자 사내가 껄껄 웃었사옵니다. 소자 낯이 화끈거려 땅만 바라보고 있는데, 사내 왈,

「 예끼 요 녀석, 어서 가서 글월이나 더 익히고 오거라. 」

하여, 성삼이 놈과 함께 부랴부랴 자리를 피하려 하는데, 문득 선비가 불러 세웠사옵니다.

「 거 마을에 내려가게 되거든,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말거라. 」

「 여,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필히 함구하겠사옵니다. 」

부리나케 도망치는 소자의 등 뒤로 그들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 왔사옵니다.

「 그나저나 소맷자락 속을 체험(體驗)하여 보니 어떻던가? 」

「 말도 마시지요. 꼼짝없이 몽달귀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




혼세(混世)괴이(怪異) · 귀신(鬼神) 병술(丙戌) 제(第) 칠호(七號)

상(詳) 옷소매에 기물(器物)과 인간(人間)을 담아 숨길 수 있는 노옹(老翁)
당(當) 감찰관(監察官) 비사대부(批士大夫) 무영(無影)
결(結) 비사대부(批士大夫) 무영(無影)에 의해 회수(回收)
현(現) 비록(秘錄)에 기록 후 금제소(禁制所)에 금제(禁制)

선비가 말한다.

이 이물은 불명(不明)의 연유로 인하여 자신이 착복(着服)한 옷소매에 물건과 인간을 담아 숨길 능력을 얻은 자로, 금제 당시 지천명(知天命)을 갓 넘긴 상태이다. 본디 이금위(異禁衛)와 관계가 없었으나, 금제 당시 이금위의 존재(存在)에 대해 약간의 지식(知識)을 갖추고 있었다. 이 이물은 산중(山中)에 독처(獨處)하며, 자신이 갖고 있는 초보적(初步的)인 환약(丸藥)과 음양(陰陽) 술법(術法)의 지식을 따라 약간의 정제(精製)를 제조(製造)하여 왔다. 문초(問招)한 결과, 정해진 시일(時日) 내에 정제의 제조를 맞추는 것이 어려워지자, 두 명의 인근(隣近) 동리(洞里) 학동(學童)들을 꾀어서 자신의 의식주(衣食住)를 대신 담당(擔當)케 하였음이 드러났다. 회수 이후 금제의 법(法)이 금제대전(禁制大典)에 기록되었다.

이 이물이 제조한 정제의 효능(效能) 및 목적(目的)에 관하여는, 따로 허가(許可)를 득(得)한 자만 극비(極祕) 문건(文件) 병술(丙戌) 제(第) 십이호(十二號)를 볼 것이니라.

[붙임] 학동 중 하나가 서찰(書札)을 발송(發送)한 것이 발견(發見)되어, 그것이 목적지에 도달(到達)하기 전에 보전원에서 입수(入手)하였다. 해당 내용은 금제에 있어 참고(參考)토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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