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世之說 勇力篇 第一章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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危世之說

勇力篇

사대부(士大夫)들이 항시 염려함은 어떻게 하여야 국태(國泰) 민안(民安)케 할 것인가 하는 것이로되, 이를 위해서라면 때로는 이물(異物)들과도 맞부딪치며 싸워야 하는 법이라. 내 이금위군(異禁衛軍)이 항거(抗拒)하여 복종(服從)케 하는 것을 보았는데, 저 불가(佛家)의 일이었던 만큼, 꼭 사대부들이 흔히 생각할 수 있을 법한 방식인 것은 아니었도다.

위세지설(危世之說) 용력편(勇力篇) 제일장(第一章) 2:1

자시(子時)쯤 되었을까 하는데, 검은 옷을 입은 이금위군 병사들이 동분서주(東奔西走)한다.

"빨리, 빨리! 서둘러라!"

"남쪽 뜰이다! 을호(乙號) 귀신(鬼神) 금영(禁營)!"

비광이 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려는데, 갑자기 뒤통수가 섬찟한 느낌이 온다. 먼발치에서 들려 오는 낮고 묵직한 괴성.

쿠르르르르 ──────

"…으헉!"

비광은 몸을 일으키려다 도로 방구들에 주저앉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어인 소란이냐!"

"귀신 을미(乙未) 제… 아무튼 그것이 금령(禁令)을 깼다 하옵니다! 어서 피하시지요!"

어딘가로 황급히 달려가던 의녀(醫女)가 아뢴다. 그러나 비광은 급히 신발을 발에 꿰며 이를 악문다.

"내 봐야겠다! 남김없이 보고 기록하는 것이 내 일이니! 남쪽 뜰이라 하였느냐!"

"그렇사옵니다. 가시겠거든, 소녀를 따라오시지요. 이쪽이옵니다!"


"용기 없는 자는 뒤로 물러나라!"

"금계(禁界) 구축(構築)!"

비광은 두 눈을 믿을 수가 없다. 눈 앞에는 키가 밤하늘 별들에까지 닿을 만한 거뭇한 인영(人影)이 버티고 있음인데, 이금위군이 횃불과 감로수(甘露水), 죽비(竹篦)를 들고 둘러 섰으며, 땅바닥에는 뜻밖에도 선연(鮮然)하게 눈부신 흰빛이 팔괘(八卦)의 형(形)으로 빛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각각의 여덟 모퉁이에는 그에 해당하는 괘들이 빛나고 있다.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선다.

"되었다! 진(陳)을 베풀었고 하늘과 땅이 모두 닫히었으니, 더 이상 저 요괴가 날뛰지는 못할 터. 이제 모두 저 놈을 내려다보라! 절대로 올려다보지 마라! 저 놈은 인간의 두려움을 먹고 살진대, 두려운 자는 이곳을 떠나라!"

이금위군이 실제로 이와 같은 것을 보기는 비광으로서는 처음이다. 두려움은 뒷전이고 그저 넋을 놓고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툭 친다.

"오, 자네도 왔군 그래."

무영(無影) 선생이다.

"이 일에 대해서도 기록하여야 할 터이니 말입니다."

"그저 사건이 터지는 곳이라면 어디든 불나방처럼 달려드니…"

웃음 섞인 목소리 끝에 무영 선생의 목소리가 점차 진지해진다.

"자네의 모습을 보면, 마치 삼십 년 전의…"

"예…?"

"……아, 아닐세. 아직 자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알려 줄 필요는 없네."

비광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 있으려니, 무영이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혹여나, 나중에 자네가 자네에게 얽힌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그걸 왜 우리가 진즉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따지지는 말게."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아, 그냥 잊어버리게. 그건 그렇고, 여기 소개할 사람이 있네."

이제는 웬만한 삼척동자(三尺童子) 모습처럼 쭈그러든 그 귀신을 바라보는 비광에게, 무영은 그의 몸을 억지로 돌려서 한 사람을 가리킨다. 눈빛이 날카로운 한 중년(中年)의 사내가 서 있다.

"인사하게. 수정(水晶) 선생일세. 이금위군 십일호(十一號) 금위대(禁衛隊) 보좌관(補佐官)이네. 시신(屍身)을 감식(鑑識)하고, 추론(推論)을 통해 용병(用兵)하는 재주가 있지. 그야말로 앉은 자리에서 천리(千里)를 내다보고, 선 자리에서 군사 부리기가 청산유수(靑山流水) 같은 천하(天下)의 귀재(鬼才)일세."

"이거야 원. 과찬이네. 나야 뭐 그저 허구헌 날 송장이나 뒤지는 위인일 뿐이라. 아무튼 반갑네."

"비광(朏光)이라 하옵니다. 아직 처음이니 많은 가르침을 바라옵니다."

"나도 그렇게 대단한 인물은 못 되네. 그저 무영 이 양반이 일전에 내게 몇 번 빚을 진 적이 있으니 그렇지."

눈치를 보니 둘은 상당히 사이가 가까워 보인다.

"소생이 듣자하니, 시신을 감식한다 하셨는데…"

"아, 우리 이금위나 보전원(保傳院)이나, 송장만 생겼다 하면 그저 내게로 데려오니 원. 나는 보통 이 일만 하고 있네. 물론 이금위군과 함께 다니며 사건 현장을 조사하기도 하지."

"아까도 보았습니다만, 이금위군은 참으로 대단한 듯 하옵니다. 소생은 이십 평생 살면서 저러한 것을 본 적이 없었던지라…"

"뭐어… 그보다 더한 것도 많이 보게 될 걸세. 눈요기로는 제격이지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일이기도 하지."

곁에 있던 무영 선생이 끼어든다.

"자, 이제 그만 가지. 일도 끝났고 놈도 잡혔네. 간단하게 됐어. 그저 내리깔아 보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야."

그러자 수정 선생이 무영 선생에게 대뜸 말을 건넨다.

"이 친구, 내일 나랑 같이 과천현(果川縣)으로 좀 가야겠네."

"아니, 왜?"

"제보가 들어왔는데 낌새가 좀 꺼림칙하네. 일이 좀 커질 것 같아서 말이야. 보전원 사람을 한 명쯤 딸려놓아야 할 듯하이."

"또… 무슨 일이 있습니까?"

비광이 묻자, 수정 선생이 날카로운 눈빛을 들어 먼 밤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비광도 더는 묻지 않는다.


새벽 공기가 차다. 짧아진 해만큼 공기도 쌀쌀해져 있다.

"제 시간에 왔군 그래. 묘시(卯時)라면 좀 힘들었을 텐데 말이야."

"견문(見聞)을 넓히는데 어찌 한 시진(時辰) 더 자는 것을 아쉽다 하겠습니까."

"작일(昨日) 밤의 일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을 터인데, 괜찮겠나? 용력(勇力)으로 의심되는 놈일세. 힘든 하루가 될 수도 있네."

"…아직 어린지라 내세울 것은 그저 혈기(血氣)밖에 없으니, 이를 믿어 보겠습니다."

새벽인데도 벌써 이금위군이 도열(堵列)해 있다. 비광과 수정 선생이 도착하자, 이제 적지 않은 수가 다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척 보아 어림잡기에도 수십은 되는데, 인기척이 전혀 나지 않는다. 발소리도 없고, 숨소리도 없다. 그저 적막(寂寞)한 고요만이 있을 뿐이다.

고요를 뚫고 수정 선생이 말을 시작한다.

"자네는 이제 보전원 소속으로 이번 이금위군 제 십일호 병력과 동행하게 되네. 장소는 어젯밤에도 말했듯이 과천현이네."

"구체적으로 어떤 제보이온지요?"

그러자, 수정 선생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비광을 빤히 바라본다.

"…자네, 혹시 해괴(駭怪)하다는 표현이 무엇인지 아나?"

"놀랄 만큼 괴이하고 야릇한 일을 겪을 때 쓰는 표현이 아니옵니까."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딱 그런 감정을 느꼈네. 해괴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수정 선생은 한 차례 침을 삼킨 뒤, 나지막하게 말한다.

"……자네, 혹시 나무를 깎아 만든 여래입상(如來立像)이 눈빛만으로 아녀자들을 수태(受胎)케 한다면, 어떠한가?"

그 말이 하도 괴상하여, 비광은 얼마간 말을 잇지 못하다가,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는다.

"하핫, 하… 수정 선생께서도 참… 이 어찌 불경(不敬)한 일이 아니옵니까. 제가 비록 선비로서 유학(儒學)에 매진하고 불법(佛法)에는 한미하다 하나, 본디 여래입상이란 것이 허구한 날 계집들을, 그것도 눈빛으로 수태케 하는 물건은 아닌 줄로 아옵니다."

"바로 그거야."

"예…?"

"바로 그래서…… 해괴하다는 것일세."

"……허면, 수태하였다면 필경(畢竟)은 그 아이가 있을 터, 아이는 어떻다 하옵니까?"

"아직은 모르네. 가 보면 알게 되겠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저 혼자 돌아다니는 여래입상, 그리고 태중(胎中)에 심각한 내상(內傷)을 입고 죽은 계집들의 송장밖에는 없네. 현(縣)의 나졸들이 그 불상을 잡으려 하였으나 전부 소식이 끊겼다 하니, 이 정도만으로도 그것이 용력으로 분류됨을 의심해 볼 수 있네."

"용력의 관건으로서…"

"제어(制御)가 까다로우며, 인간(人間)을 적대(敵對)하거나, 인간에게 위해(危害)를 입히는 존재일지니."

비광의 말을 수정 선생이 받는다.

"저기 보게, 동녘 하늘이 밝아 오고 있군. 저 해가 서산에 질 무렵에는, 우리가 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게 될 거야. 어디 한 번, 그 음탕(淫蕩)한 나무조각이 이기나 우리가 이기나 보자고. 자세히 알게 되거든, 어디 붙잡든 없애든 해 보세나."


과천현이다.

인적 드문 골짜기에 진영(陣營)을 차린 후, 수정 선생이 비광을 부른다.

"자네는 먼저 선발대로 들어가서, 마을을 수소문하며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 복귀하도록 하게. 녀석과 오늘 맞부딪치는 것은 좋지 않네."

"허나, 어찌 그것을 쉽사리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까 봐서, 자네와 함께 동행할 유능한 부관(副官)을 붙여주려 하네."

"부관…… 말입니까?"

수정 선생은 슬쩍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아, 이런. 이금위 말투가 이렇게 묻어나는군. 그냥 조수(助手)쯤으로 생각하게. 하지만 그 실력만큼은 의심할 바 없지. 우리 이금위의 정예(精銳) 중의 정예일세. 들어오너라!"

군막(軍幕) 안으로 한 사내가 들어온다. 무명 저고리에 평량립(平涼笠)을 쓴 것으로 보아, 그리 귀인(貴人)은 아닌 듯싶다.

"이제부터 같이 다니면서 탐문(探問)을 하되, 혹시라도 수상쩍은 낌새가 있거든 최우선으로 이 선비를 보호토록 하거라. 알겠느냐?"

"예이, 명을 받들겠습니다요."

수정 선생은 다시 비광을 바라보고 말한다.

"우리 이금위가 움직이기 전에 선견(先遣)을 삼아 보내는 것이니, 일차(一次)로는 금일(今日) 저녁까지일세. 자료가 충분하거든 명일(明日) 바로 돌입할 수도 있네. 물론 그 편이 우리에겐 좋을 것이야. 그 불상과 주민들의 횡액(橫厄)이 과연 관계가 있는지를 주로 살피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명일 중으로 일을 끝낼 수 있도록 분골쇄신(粉骨碎身)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침 산길을, 면식(面識)도 없는 사내 단 둘이서 걷기란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니다. 비광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연다.

"으흠, 그나저나 아직까지 이름을 서로 통(通)하지 못하였구나. 그대는 이름이 무엇인고?"

비광이 자못 점잖게 묻자, 그 조수가 얼른 공손하게 대답한다.

"예이, 나리. 저, 그저 월(月)이라고 부르시면 되십니다요."

"월이라… 그것 정말 좋은 이름이구나. 그대의 신분이 신분일진대, 어찌 이런 이름을 얻었는고?"

"쇤네가 이금위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받았습니다요."

"그렇군……"

월은 참으로 우습게도 생긴 외양이다. 피부는 거무튀튀하고, 평량립은 비뚤어졌으며, 무명 저고리는 이미 반질반질 낡아 있다. 수염은 제멋대로 덥수룩하고, 단춧구멍처럼 달린 두 눈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도 않은 것 같다. 헌데 정예 중의 정예라?

"그대의 재능이 무엇이기에 수정 선생께서 데리고 오셨는고?"

"예이, 쇤네는 유난히 감이 좋고 수상한 냄새를 잘 맡습니다요. 그래서 이금위의 높으신 어르신들도 종종 저를 데리고 다니기도 합니다요."

"허면, 신통력(神通力)이라도 있다는 말이더냐?"

"나리께서 신통력이라 하시면… 신통력일 수도 있겠습니다요. 허지만… 쇤네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런 감각입니다요."

그러더니, 갑자기 월이 문득 멈추어 선다.

"왜 그러느냐?"

"…어느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아침부터 닭이라도 잡고 있는 모양입니다요. 나리께서도 냄새가 나지 않으십니까요?"

"……후우우… 그 감이란 게 이런 것이었더냐……"

비광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쥘 뿐이다.


관아(官衙)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서 탐문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예, 그 송장들은 얼마 전에 나졸들이 전부 치웠다 하옵니다. 헌데 무슨 일로…"

"아, 아니오. 실례 많았소, 노인장."

비광은 하릴없이 문을 나선다. 조금만 더 서둘렀더라면 시신(屍身)을 볼 수 있었겠으나, 이미 관아에서 그것을 치워 버린 이후라 허탕을 친 셈이다. 신분이 드러나서는 안 되는 비광으로서는 그저 난감할 뿐이다.

"이게 다 월이 네놈 때문이 아니더냐."

"어이쿠, 나리, 죄송합니다요. 하지만 덕분에 요기라도 잘 하시지 않으셨습니까요?"

"잔칫집에 빌붙어 얻어먹은 주제에 말이 많구나."

그러자 월이 얼른 받는다.

"나리께옵서도 덕분에 배불리 드셨지 않습니까요."

"어흠, 어흠…"

비광으로서는 할 말이 없다. 가뜩이나 배고팠던 차에, 월이 잔칫집 문전(門前)에서 얻어 온 계육(鷄肉)을 보니 양반이고 체면이고 하는 것들은 그저 뒷전이라, 이미 뱃속을 든든히 채운 그로서는 무안하여 시선을 돌리고 헛기침만 할 뿐이다.

"쇤네가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 일에 대해선 나리께서 저한테 고마워하게 될 겁니다요."

"예끼 이놈, 고마워하긴 뭘 고마워한단 말이냐."

"쇤네가 알기로, 모름지기 사람은 속이 든든해야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법입니다요."

"네놈이 날 가르치려 드는… 것이냐."

막 호령을 하려던 비광은, 문득 스치는 것이 있어 말끝을 흐린다. 지금처럼 무턱대고 쫓을 이유가 없다. 이대로라면 하늘이 돕지 않는 이상에야 가치 있는 뭔가를 찾기 어려울 터다. 어쨌든 월의 말이 옳다.

"그래, 어흠. 그렇다면 내 한 가지만 좀 묻지. 이럴 때 수정 선생께옵서는 보통 어떻게 하시던가?"

"우리가 쫓는 것이 불상이니, 아마 먼저 절로 들어가셨을 겁니다요."

"오, 그래. 그럼 그것부터 해야겠구나. 마침 저기 산중(山中)에 다행히 암자(庵子)가 보이니, 저곳을 가는 것이 좋겠구나."


"아이구, 이 적막(寂寞)한 암자에 선비께서 어인 행차(行次)이니이까."

박박 깎은 퍼런 머리가 못나게 생긴 중이 절 마당을 쓸다 말고 허겁지겁 나와 엎드린다. 비광은 짐짓 노성(怒聲)을 발한다.

"너희 중들은 농사도 짓지 않고 학문(學文)에 정진(精進)함도 없으니, 밤낮으로 향불이라도 피우고 기도 외에는 여념(餘念)이 없어야 하거늘, 대체 얼마나 허투루 했기에 동리(洞里)에 이 사단이 난단 말이더냐."

"하이구, 무, 무슨 말씀이신지 소승(小僧)은 아둔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겠나이다."

중이 그 퍼런 머리를 더욱 조아리며 벌벌 떤다. 비광은 의아하다. 정녕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본디 군자(君子)일지언정 천성(天性)이 있으되 자연의 법도(法道)를 따라 그 기쁜 대로 아내를 맞아 혼례(婚禮)를 올리는 법이라. 하물며 저 여래(如來)라 하여 그런 성정(性情)이 없겠느냐? 너희 중들이 그를 제대로 받들어 모시지 않으니, 그가 파계(破戒)를 하면서까지 저 속세(俗世)로 도로 내려가, 마주치는 계집들에게마다 음란(淫亂)한 눈빛을 발(發)하며 정을 통하고 있지 않느냐?"

"…무…… 무슨……"

"어허, 평생토록 정진한 공덕(功德)이 도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 되었으니,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바로 너희들의 안일함과 나태함 때문이 아니겠느냐!"

"아… 아이고… 제발 일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상세히 말씀해 주사이다. 대자(大慈) 대비(大悲)하신 여래께서 음란히 정을 통하신다는 건 대체 어인 사달이며, 소승이 나태하다는 것은 또 어인 말씀이옵니까."

"정녕 모르는 일이더냐?"

"예, 예, 참으로 금시초문(今始初聞)이니이다."

비광은 그 자리에서 주위 풍광(風光)을 한 바퀴 둘러본다. 다른 암자는 보이지 않는다.

"혹, 여래입상이 있는 암자가 여럿 있느냐?"

"소승이 알기로, 이곳 외에 다른 암자에서 따로 여래님을 모시는 곳은 들어보지 못했나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곳에 있던 여래의 소행이로구나. 지금 나무를 깎아 만든 여래입상 하나가 저 혼자 돌아다니며 계집들을 눈빛으로 수태케 한다고, 온 동리에 소란(騷亂)이 이를 데가 없느니라."

"소… 소승은 처음 듣사옵니다. 분명 하나도 빠짐없이 잘 모시어져 있을 터이온데…"

비광은 그 중과 함께 절간 안으로 들어간다. 수많은 불상들이 있는데, 중은 떨리는 손으로 그것들을 하나하나 센다.

"하나… 둘… 셋… 네, 네엣……"

"……"

"서른둘, 서, 서른셋…"

"……"

"예… 예순다섯… 예순… 여섯…… 예순… 이, 일곱……"

마지막 불상을 가리키는 중의 손끝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한다.

"어떠하냐?"

"그, 그게……"

중은 벌벌 떨면서, 그 세던 손을 천천히 내린다.

"하, 하나가…… 사라졌사옵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참으로 야릇한 일이 아닙니까요. 이건 뭐 절간에 멀쩡히 있던 여래입상이 저 혼자 걸어나가기라도 했다는 얘기올습니다요."

"어쩌면 뭇 세인(世人)들의 이목(耳目)을 여래입상으로 돌려 놓고, 원한(怨恨) 맺힌 자를 몰래 해치려 함은 아니겠느냐?"

"아마 수정 선생께옵서도 그런 걱정을 하시고 계실 겁니다요. 허지만 쇤네 생각에는 여래입상이 스스로 걸어다닐 법도 합니다요."

"거 농(弄)이 과하구나. 이금위 일만 아니었다면 내 당장 네놈의 희롱을 관아에 고발(告發)하였을 것이야."

둘이서 함께 저자를 걷는데, 갑자기 월이 멈추어 선다. 비광이 한숨을 내쉬며 돌아본다.

"또 무엇이냐? 이번에는 또 어느 음식이더냐?"

"……나리."

"음?"

월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채 저 멀리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저기…"

"무슨 일이냐?"

"저─어기───"

월은 한쪽 손을 들어 인파(人波) 속 어딘가를 가리킨다.

"저기 저 보부상(褓負商) 말이더냐?"

"아, 아닙니다요. 그 뒤에───"

"저 어물전 말이더냐?"

"그, 그게 아니라 그 옆에───"

그러고 보니 한 노파(老婆)가 이쪽으로 바로 걸어오고 있다. 허리춤에 달린 작은 방울에서 쉴새없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난다.

"저기… 얼굴 허연 처녀가 이쪽을 보고 웃고 있지 않습니까요?"

"가, 갑자기 무슨 말이더냐. 어기적거리며 걸어오는 늙은이 하나밖에는 없지 않느냐? 지금 또 나를 희롱하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요, 나리! 저 처녀… 정말이지 기분나쁘게 씨익 웃고 있습니다요…"

"네놈의 눈에는 할멈도 처녀로 보인단 말이냐?"

비광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애써 누르며 짐짓 호통을 치나, 기어이 월은 비광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꺼낸다.

"저 할멈의 어깨 위에… 얼굴 허연 처녀가 무등을 타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요?"

"……도, 돌아가자! 다른 길로 가야겠구나."

그 순간.

"…아침에는 운이 좋았구나. 피 냄새를 맡았어."

"흐읍…!"

비광은 등줄기가 서늘하다. 천천히 몸을 돌리니, 어느 새인지 그 노파가 자신의 앞에까지 이르러서 자신을 보고 있다. 노파의 목소리는 겨울철 된바람마냥 차갑다.

"저 최가(崔家)네 환갑(還甲) 잔치를 핑계로 사지(死地)를 멀리 둘러 돌아갔다니, 재미있구나. 정말 재미있어."

그러면서 노파는 혼자 키득거리기 시작한다. 섬찟한 느낌에 비광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저어… 노인장, 마, 말씀 좀 묻겠소이다. 혹시 여, 여래입상에 대한 일을 아시오?"

그 순간 노파가 비광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차례 쏘아본다. 골수(骨髓)에 서리라도 맞은 양, 오장(五臟) 육부(六腑)에 북풍한설(北風寒雪)이라도 맞은 양, 온 몸이 후들거린다.

"…네 처지에 대해 모르나 본데… 범 아가리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하였으니, 정신 또─옥바로 차려. 나중에 정신 차리거든 명도(冥途)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거야. 그게 네 녀석이 져야 할 짐이야."

"노… 노인장, 무슨 말씀이시오?"

노파는 한 차례 쿡 웃더니, 비광의 곁으로 혼령(魂靈)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러다가, 비광의 등 뒤에서 다시 그 송연(悚然)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 불상 때문에 골치가 아프던 차에 북(北)에서 귀인(貴人)이 온다 하였는데, 그게 저런 얼빠진 샌님이로구나. 관악(冠岳) 묏자락 넷째 집으로 가 봐."

"……"

비광은 비수(匕首)로 심부(心府)를 꿰뚫린 듯하여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내 처지가 무엇이길래 저 노파는 저리 말하는가? 작일 무영 선생이 말했던,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했던, 그 말과 어떤 관계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러던 차에, 문득 옆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나리, 나리! 아까 저 할멈이 분명 관악 묏자락 넷째 집이라고 했습니다요. 빨리 가 봐야 합니다요."

"……"

"아침의 일은… 아, 아닙니다요. 나리께서 배부르시면 그걸로 되지 않겠습니까요."

"……"


찾아간 그 집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다.

"…이상하구나.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 사람이 사는 집 같지가 않아…"

"쇤네가 보아하니 아직 장독에 장이 멀쩡히 있고, 마당이 깨끗이 쓸려 있으니, 사람이 살기는 사는 집입니다요."

"들어가 봐야겠다."

비광이 이를 악물고 들어가려는데, 월이 급히 앞을 가로막는다.

"나리! 몸조심하셔야 합니다요. 그 할멈이 여기를 일러 준 까닭은 필시 평이(平易)한 것은 아닐 겁니다요. 쇤네가 수상한 냄새 하나는 잘 맡으니, 먼저 들어가서 염탐(廉探)을 좀 하겠습니다요."

"오, 정 그러하면 그렇게 하거라."

비광의 앞에서 먼저 들어가려던 월은, 문득 사립문 앞에서 멈추어 선 채 바닥을 면밀히 바라보다가 말한다.

"…나리, 대략 두어 시진 전까지는 아무도 들어간 사람이 없습니다요. 이거 이상합니다요."

"그럴 수도 있지, 그게 뭐가 대단하다고 그러느냐?"

"그러하시면… 저라도 기억해 두겠습니다요."

그러면서 한 발짝 내딛으며 문간(門間) 뒤편을 넘겨다보던 월이, 저도 모르게 흐읍 하고 숨을 들이마신다.

"……"

"왜 그러느냐?"

"……"

"왜 그러느냐고 묻지 않느냐! 대답하거라!"

"나, 나리…"

"그래, 대체 무슨 일이더냐?"

"…나리께서는…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요. 물러서시고… 우리가 걸어왔던 쪽을 바라보셔야 합니다요."

사뭇 진지한 데다, 심지어 떨리기까지 하는 월의 목소리에, 비광은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물러선다.

"그, 그래…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온 집에 사달이 났는데…… 두 시진 동안 들어온 사람이 없습니다요."

아닌게 아니라,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비릿한 피비린내가 섞여 있다. 집 안은 이미 참혹할 것이다.

"그, 그리고…… 여래입상……"

월은 천천히 말을 잇다가 침을 꿀꺽 삼킨다.

"…확실합니다요. 여래입상의 소행입니다요. 일단은… 지금 보니, 그게 그다지… 날랜 것 같진 않아 보입니다요."

그 순간, 비광의 안색(顔色)이 변한다.

"워, 월이 네놈이 지금 설마……"

"…나리, 그래도, 하늘이 무너져도 살 길은 있는 모양입니다요."

그러면서, 월이 슬쩍 입가에 웃음을 띄운다. 비광의 눈에 그것이 들어온다.

"혹 방도가 있는 것이더냐!"

"쇤네가 이금위에서 배우기로, 병법(兵法) 삼십육계(三十六計)는……"

"……주위상책(走爲上策)이라!"


해가 저문다.

붉게 타오르던 하늘도 어느 새인가 파랗게 식더니 이내 그 빛을 다한다.

저녁 요기까지 한 비광은 주막 방문을 열어젖힌 채 방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고, 월은 바깥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바깥 밤하늘을 보고 있다. 영채(營寨)로 돌아갈까 하였으나, 날이 이미 저물었고 산길을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험하여 내일 아침을 기약(期約)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내 직접 겪어 보니… 정말 무엇을 믿어야 할지를 모르겠구나."

"나리께서도 정말 잘 하셨습니다요. 아까 뜀박질도 쇤네만큼은 하셨으면서 왜 그러십니까요."

"그 얘기가 아니다. 내 아까 서장(書狀)을 쓰면서도 곰곰이 헤아려 보았음이니, 이제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 어느 것도 허투루 보고 넘기지를 못하겠어서 말이다."

"나리……"

"가령, 저 궤짝이 갑자기 부스스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진 않을까, 저기 걸어둔 내 두루마기가 갑자기 저 혼자 춤사위를 보이진 않을까, 갑자기 방구들이 꺼지고 나는 저 밑 아득한 어둠으로 빠지진 않을까… 그런 잡념(雜念)이 든단 말이다."

"…쇤네로서는 그냥 뵈는 게 있는 거고, 듣는 게 있는 것이라, 무슨 말씀이신지 잘은 모르겠습니다요."

"…하긴, 네 녀석이 어찌 내 심중을 알겠느냐."

그러다가, 비광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다시 말을 건다.

"아, 그나저나 말이다. 그 노파는 대체 왜 우리에게 그 집으로 가라 하였던 것이더냐."

"쇤네 보기에는… 그래도 우리가 그곳에 간 덕에, 이 모든 일이 그 불상 때문이라는 걸 확증(確證)하게 되지 않았습니까요."

"그렇긴 하다만, 자칫 죽을 수도 있었다. 그 노파는 우리를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지."

"…하지만, 지금 나리도 그렇고 쇤네도 그렇고, 둘 다 살아있지 않습니까요. 어쩌면… 그 할멈은 우리가 충분히 살아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요. 혹시 압니까요? 이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었던 사람일지. 분명 그 얼굴 허연 처녀가 다 알려줬을 겁니다요."

아니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이제 와서 다시 헤아려 보니, 어째 월의 판단이 그럴 듯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월이 틀렸던 적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도 같다. 과연 정예 중의 정예로다… 비광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아침엔… 고마웠네."

"마땅히 제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요. 그 불상을 피할 바가 마땅치 않았던 곳인지라 부득불(不得不)…"

"……"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이번에는 월이 먼저 입을 연다.

"나리… 그 불상은 아무래도 제게 썩 흥미는 없어 보였습니다요."

"…아까 일은 상상하기도 싫구나."

"…분명…… 눈빛만 마주치면 애를 밴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요?"

"내 분명히 그러하게 말하였는데, 왜 그러느냐?"

월은 잠깐 망설이다가, 어렵사리 말을 꺼낸다.

"……너댓 척(尺)도 안 되게 가까이 있는 그 놈이랑… 눈이 마주쳤습니다요."

"……!"

비광은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청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화들짝 일어난다.

"그, 그게 무슨 말이더냐! 필경 죽는다고 하였느니!"

"분명… 눈이 마주쳤습니다요. 근데… 아무 일도 없지 않습니까요?"

"그, 그럴 리가……"

"나리, 하늘이 무너졌지만 쇤네는 구멍으로 솟아 나왔습니다요. 그럼 된 거 아니겠습니까요?"

"정녕 무탈(無頉)하냐?"

"예이, 나리. 하지만 아까 피 냄새가 났으니, 어쨌건 그 집안 식솔(食率)들은 변을 당하였음이 분명합니다요."

"그렇구나…"

"변고(變故)야 저자에까지 피 냄새가 이르렀으니 어느 정도 예상은 하였지만… 아무래도 하늘이 나리를 돕고 있는 모양입니다요."

"……"

비광은 주춤거리며 무너지듯 다시 눕는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는다. 실로 하늘의 도우심인가? 아니다. 그 불상이 월에게는 아무런 해악(害惡)을 끼치려 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렇다면 왜인가? 아니, 애초에 해악을 끼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또 왜인가?

생각 위에 생각이 겹쳐 얹어지는 가운데, 밤은 깊어 가고 멀리서 아직 강남(江南)가지 않은 소쩍새 우는 소리만 들린다.


깜박 잠이 드는가 싶다가, 비광은 문득 입가로 불어드는 한 줄기 기분나쁜 바람을 느끼고 튀어오르듯 일어난다.

"헛!"

방은 어두컴컴하다. 창호지(窓戶紙)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도 별빛도 없고, 세상은 이상하리만치 어둡다.

그리고… 불현듯 불길한 느낌이 든다.

"……월아!"

고요하다. 대답이 없다.

"워… 월아! 월이 네 이놈! 어딜 간 게냐."

호통이라도 치려 했지만 불안감에 목소리는 잦아들고 점차 떨려 온다. 그 순간, 비광은 아차 싶다. 만에 하나라도 내가 자던 사이에 월이 변을 당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나를 지켜 줄 사람은 누가 있다는 말인가.

"게… 게 아무도 없단 말이더냐. 정녕 아무도 없느냐!"

이에 화답(和答)이라도 하듯, 갑자기 문이 저 혼자 스르르 열린다.

"허… 허어억!"

문이 열리고 아무도 없는 대청(大廳)에 홀로 서 있는 어두운 그림자. 키는 고작해야 이척(二尺)이나 될 법하다. 그 순간, 비광은 염통이 얼어붙는 것만 같다. 숨조차 잘 쉬어지지 않는다.

"……네, 네놈은…!"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그 작은 그림자가 조금씩 움직여 다가오는 것이 또렷이 보인다. 어떻게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은 지금 천천히 문지방을 넘고 있다. 비광은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나, 스스로를 지킬 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시선을 돌리면 어느 순간 홱 달려들어 해코지를 할 것 같은 불안감에, 비광은 부들부들 떨면서도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고만 있다.

"네… 네 이 놈, 이 음탕한 놈! 그렇게 많은 무고(無辜)한 백성들을 잡아 죽이고도, 이제는 나까지 죽이려 하느냐! 네, 네놈이, 정녕 백정(白丁)이 아니면 뭐란 말이더냐. 그러고도 네놈이 과연 여래더냐!"

그러자 마치 이에 화답하듯, 그 작고 검은 그림자가 다시 천천히 움직인다. 바른손은 얼굴 앞에서 엄지와 중지를 마주 댄 채 손바닥을 앞으로 향하고, 왼손은 앞을 향해 흡사 돈냥이라도 달라는 듯 내밀고 있는 모습인데, 그 내민 왼손이 비광을 향해 점차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불상의 어두컴컴한 얼굴에 진득한 미소가 퍼져나가는 것이 눈에 띄인다.

"……!"

불상의 입꼬리가 천천히 말려올라간다. 저것은 무엇인가. 사냥꾼의 여유로운 미소인가. 어찌 불상의 미소가 자애(慈愛)롭기는커녕 저렇듯 음침(陰沈)할 수가 있단 말이던가? 비광은 불상의 은은한 미소가 점차 잔인하고 끈적한 것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보며 두려움을 느낀다.

"…네… 네…… 네노옴…"

이가 딱딱 마주친다. 한미(寒微)한 가문에서 장원(壯元) 급제(及第)하여 양반집 장손(長孫)의 체통을 지키나 하였더니, 아직 다 피어 보기도 전에 이렇게 운명을 달리하게 된단 말이던가. 이대로 죽으면 꼼짝없이 몽달귀가 되겠구나. 대를 잇지 못하게 되었으니 어찌 구천(九泉)의 선조(先祖)들의 낯을 뵈올꼬?

불상이 다시 다가오기 시작한다.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다. 비광은 방 구석에 완전히 몰려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저 그것을 떨며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비광과 불과 삼척(三尺) 어림까지 이르렀을 그때.

"……"

불상의 입술이 천천히 열린다. 그리고 그 속에서 번득이는 그것들이 드러난다. 흡사 범의 이빨이라 하여도 그것만큼 예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 순간.

퍼억 ─────

"아아아악──!!"

비광의 시야가 시뻘건 핏물로 물들어 간다. 눈 앞이 어두워지고 비명 소리가 점차로 멀어져 간다. 이렇게… 죽는 것이던가……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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