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世之說 序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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危世之說

序章

무릇 세인(世人)들도 비밀이 있으되 이를 필담(筆談)이나 밀사(密使)를 통해 지키려고 하나, 천지 가운데 그것이 밝혀진다 한들 어찌 세상을 뒤집어놓을 수 있으리요? 그러나 실로 세상을 뒤집을 만한 비밀이 지켜지는 곳이 두 군데 있음이니, 하나는 전하(殿下)께서 계옵신 궐(闕)이요, 다른 하나는 세상에 그런 비밀이 있으리라고도 믿지 못할 만큼 내밀(內密)한 곳이라. 이 비밀이 깨어지거든 세상을 뒤집고 또 뒤집어도 족히 남음이 있을 것이니, 이 기록을 읽는 대장부(大長夫)들은 삼가 자신을 살펴, 행여 경거망동(輕擧妄動)하여 일을 그르치지 않을까 주의하도록 하라.

─ 위세지설(危世之說) 서장(序章) 1:1 중에서

한 줄기 음산한 바람이 호롱불 밑동을 위태로이 휘감고 지나간다.

멀리서 아기 울음인지, 들짐승의 울음인지 알 수 없는 날카로운 소리가 언뜻 스치다 잠긴다.

"……"

청사초롱 불빛에 비친 서생의 모습은 이제 갓 약관(弱冠)을 넘겼을까 싶은 앳된 얼굴이다. 손에 저 흔한 호미자루 한 번 쥐어 보지 않았을 듯, 백옥처럼 흰 피부에는 귀태가 흐른다. 그러나 지금 아랫것들의 인도를 받아 급히 들어서는 서생은 지극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분가루가 묻어나올 법한 서생의 목덜미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이 그 증거이리라.

서생은 충분히 단정하기 짝이 없는 옷매무새를 다시 바로 한다. 몇 번 옷고름을 매만지던 서생은 떨리는 손으로 한번 더 옷고름을 바로 하고, 이윽고 한 줄기 길게 심호흡을 내어뱉은 후 천천히 기척을 들이고 있다.

나지막하면서도 거친 목소리 한 줄기가, 서생의 기척보다 먼저 들어선다.

"지금 당도하였사옵니다."

서생의 눈에 문이 열리는 것이 보인다. 서생의 귀에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의례(儀禮)들이 다가왔다 사라진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방 안으로 발을 들여놓던 서생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로 하여금 황급히 윗목 구들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었다.

"차… 참판 어르신……! 어찌……"

"편히 앉거라. 야심한 밤인데도 날이 꽤 덥구나."

참판의 시선이 그의 담뱃대 끄트머리를 향한다. 한 줄기 연기가 구천을 떠도는 귀신처럼 스며나오다 사라진다. 흡사 성정(性情)이 없는 존재가 말을 한다면 아마 이러할 것인가. 서생은 바로 그날 낮에 멀리서 참판을 뵈었으나,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는 처음이다. 서생은 잠시 동안,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 상대가 오늘 낮에 뵈었던 그 참판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는지라, 생각이 어지럽다.

"소, 소생, 뜻밖에 어르신을 뵈어 생광(生光)하옵니다. 참판 어르신이라는 기별을 소생이 미처 전해듣지 못하여, 부끄럽사오나 경황(驚惶)한 점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신경쓰지 말거라. 그보다, 내 그대를 이렇게 비밀리에, 급하게 부른 연고는 이미 알고 있음이야."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소생, 작일(昨日) 과분하옵게도 국가대사의 중책을 맡았사온데, 어르신께서 이 물정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소생에게 한 말씀 해 주시기로 하신 것이 아니옵니까."

참판이 껄껄 웃는 소리가 서생의 귀를 때린다. 인간의 웃음소리라고 하기에는 이상하리만치 공기를 긁는 듯한 소리다. 역시 성정이라고는 없는 건조한 웃음 같다. 무릎이 닿은 구들이 울린다.

"허… 중책이라면 중책이겠지. 그대가 맡은 일이 중책이기는 하나, 어찌 세상 소인(小人)들이 말하는 그런 중책이라 하겠는가."

"무슨…… 말씀이시온지……"

다시 목덜미로 땀방울이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창호지 바른 문으로 희미하게 비치는 달빛이 팔각형 모양으로 쪼개져 구들 위로 떨어지고 있다.

"지금부터 이 늙은이가 하는 말을 잘 듣도록 하거라. 노옹(老翁)의 한낱 실언이 아니라, 이야말로 국가대사의 중책인 것이니. 그러나 그대가 알고 있는 세상의 법도(法道)와 이치를 새롭게 깨우치지 못한다면, 어찌 그대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담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소생, 전심으로 귀담아 듣겠사옵니다."

"바로 말하자면, 우리 조선이 온갖 힘겨운 역경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물론 홍문관(弘文館)이 있고, 의금부(義禁府)가 있으며, 주상 전하의 높으신 인덕과 승정원(承政院)의 보좌가 있었기 때문이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중다(衆多)한 유생들이야 어찌 일일이 거론할 수 있겠나?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말이니라. 무릇 만사(萬事)는 음(陰)으로 양(陽)으로 사대육신(四大六身)에 혼백(魂魄)마저 쏟아놓는 범부(凡夫)들의 땀방울에 의해 유지되고 전진하는 법이라. 그들이 양이라면 우리가 음이 될 것이니라."

"……어르신께서 말씀하시는 바가 잘 이해가 되질 않사옵니다. 조선 팔도에 그 직제(職制)와 권세(權勢)가 명약관화(明若觀火)하온데, 어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무언가가 더 있다는 말씀이시옵니까."

"도리어 그 직제와 권세가 음지를 가리웠으니. 세인들이 직제는 생각하여도, 그 직제가 다른 직제를 숨기고 있음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서생은 조금 시선을 든다. 의아하기 그지없는 말이다.

"그러하오면… 조정이 어느 한 기관을 세간의 이목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는 말씀이옵니까."

"진실로 그러하니라."

"하오나,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씀이시옵니까."

"믿기 어렵거든, 그 일에 실제로 내가 관여하고 있고, 마주하고 있다고 한다면 어찌하겠는가?"

"…송구하오나, 저로서는 차마 상상할 수조차 없사옵니다. 그렇다면 그 기관의 이름은 무엇이옵니까."

참판은 다시 껄껄 웃는다. 아까보다는 덜 긁는 소리지만 여전히 이상한 감촉이다. 쌉싸하고 매캐한 담뱃재 냄새가 확 달려든다.

"이름이야, 세상에서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마음에 이름을 짓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아는 사람들끼리는 그저 '이금위(異禁衛)' 라고 부르기도 하느니, 짐작하겠지만 처음에는 내금위(內禁衛)에서 갈라져 나왔다가, 경국대전(經國大典)이 편찬되기 전에 완전히 숨겨지게 된 것이니라. 그 중 신묘(神妙)한 보물들이 만세(萬世)에 보전토록 관리하는 자들도 있으되, 그들은 '보전원(保傳院)' 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니라."

"신묘한 보물이라면……"

"내 돌리지 않고 바로 말하지. 성현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괴력난신(怪力亂神) 말이니라."

순간 서생의 등골에 쭈뼛 소름이 돋는다. 일순(一瞬) 호롱불 불꽃이 크게 한 번 흔들린 듯하다. 참판의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날카롭다. 아예 작정하고 그리 언로(言路)를 정하였음인가.

"하… 하오나…… 어르신, 소생이 알기로 괴력난신은……"

"성현께옵서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지, 마주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으셨느니라."

참판이 담뱃대를 탁탁 두드린다. 이제는 턱이 달달 떨린다. 구들 위 팔각형의 달빛 위로 땀방울이 뚝뚝 듣기 시작한다.

"그, 그런 것들이…… 실로 있다는 말이옵니까."

"믿기 어렵거든, 그 일에 실제로 내가 관여하고 있고, 마주하고 있다고 한다면 어찌하겠는가?"

똑같은 대답이다. 정수리가 불타는 듯하다. 참판의 시선이 닿아 오는 곳이다. 무릎꿇고 앉은 두 다리가 떨리고 있다.

"허, 허면, 세상이 그런 것들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은……"

"선대왕(先大王)께옵서 분부하신 것이니라. 무지한 백성들의 동요를 막고, 역심(逆心)을 품은 도당의 명분을 제거하며, 조선의 안녕(安寧)을 도모하기 위함이니라."

"……"

"이제, 그대가 맡게 된 일이 왜 중책인지 알겠는가."

서생은 어떻게 대답했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세상은 그를 붙잡아 이끌고 어디론가로 데려가고 있다. 그것도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게다가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온갖 것들에 대항하기 위해 비밀리에 조직된 집단으로…

"이제부터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겠느니라. 모든 이물(異物)들은 네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느니, 첫째, 괴이(怪異). 괴이라 함은 만유(萬有)의 이치와 도리를 거스르고 그 기색이 자못 상서롭거나 패악한 것을 포함하나니, 국익(國益)에 견주어 보아 마땅히 지켜야 할 보물은 저 소위 보전원에서 봉하여 지키게 되느니라."

"괴이… 알겠사옵니다."

"둘째, 용력(勇力). 용력이라 함은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 어지럽게 하면서도, 그 기세가 심히 포악하고 거칠기 이를 데 없어, 제어(制御)하여 복종케 함이 지극히 곤란한 것을 포함하느니라. 그것들은 나졸들의 내지르는 창을 썩은 갈대 보듯 하며, 범 보기를 마치 고양이 보듯 하느니, 반드시 조심해야 할 것이니라."

"명심하겠사옵니다."

"세째, 패란(悖亂). 패란이라 함은 그 존재가 밝혀지거나, 또는 그것이 우리의 통제에서 벗어났을 때에, 필경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하고 천하를 집어삼키는 것을 포함하느니라. 본래 그 성질이 순하여 제어가 쉽다고는 하여도, 만일 제어에서 풀려났을 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면, 그 또한 충분히 패란에 속할 수 있음이니, 자못 경계하여야 할 것이야."

참판은 한 문장 한 문장에 힘을 주어 말하려 하는 듯하나, 점차 그 기세가 빨라지는 것은 숨길 수 없다. 참판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말을 잇는다. 호롱불 불꽃이 기세 좋게 화르륵 흔들리자 방 안의 모든 그림자가 일제히 춤을 춘다. 참판의 담뱃불은 이미 꺼져 있다.

"네째, 귀신(鬼神). 신체발부(身體髮膚)가 뚜렷치 못하고 허공을 자유로이 누비며, 사람처럼 생겼으나 사람이 아닌 모든 것을 포함하느니라. 경우에 따라 소통을 할 수도 있고 하지 못할 수도 있느니, 이런 존재들을 대할 때에는 마땅히 신중해야 하느니라."

"소생, 빠짐없이 기억하겠사옵니다."

"중요한 것은… 경우에 따라 어떤 요물들은 하나뿐 아니라 둘, 셋의 분류에 속할 수 있느니라. 이 때에는 짧게 괴, 력, 난, 신으로만 기록할 수 있나니, 많은 분류에 속할수록 그만큼 대처가 까다로워지고, 동요하는 민심을 진정시키기 어려움을 절감케 될 것이야."

"……어르신, 두렵사옵니다. 어찌 이제 막 햇병아리밖에 되지 못한 소생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사옵니까?"

서생은 참판이 다시 껄껄 웃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들려오는 것은 괴로운 듯 나지막한 신음뿐이다. 신음 끝에 참판이 천천히 입을 연다. 아까보다 훨씬 기세가 약해지고, 어찌 보면 보잘것없는 늙은이의 그것 같은 연약한 목소리다.

"…그래, 솔직하구나. 이 늙은이도…… 소시(少時)에는 그대와 다를 바가 없었느니라. 두려움도 두려움이었지만… 죽을 동 살 동, 이곳이 이승인가 저승인가, 내 머리가 아직 내 목 위에 붙어 있는가, 내가 도망쳐 달아나고 있는가 산비탈을 날고 있는가, 혼백이 경황한 중에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지금 이곳이더구나."

"어르신……"

그러나, 잠시 누그러지던 참판의 목소리는 곧 차가운 감촉으로 돌아갔다. 후덥지근한 한 줄기 바람이 다시 한 번 호롱불을 스쳐간다. 연기가 피어오른다. 불꽃이 거의 꺼질 듯하다가 다시 힘겹게 일어난다.

"…명일(明日) 입궐(入闕)하거든 그대에게 도움을 줄 만한 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니라. 그들의 계책(計策)과 잡기(雜技), 신력(神力)은 그대가 의지할 만한 것일 터이니, 그대는 그들을 따르되, 그대가 보고 들은 것을 상세히 기록하여 비록(秘錄)으로 남겨, 자손 만대에 대대로 교훈을 삼아 배우도록 하게 할지니라."

"명심하겠사옵니다. 소생, 어르신의 상세한 지도에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령(領) 제(第) 오호(五號) 서세(逝世)

시(時) [某][某] 일 인시(寅時)
자(者) 령(領) 제(第) 오호(五號) [某] 참판(參判)
인(因) 용력(勇力) 갑자(甲子) 제(第) 십칠호(十七號)에 의한 간접 중독(中毒)
후(後) [某] 가선대부(嘉善大夫) [某] 인계(引繼) 및 [某] 외 십팔인(十八人) 양성(養成)


선비가 말한다.

오호 참판께옵서는 작년(昨年) 있었던 용력 갑자 제 십칠호 중독에 의하야 서세하셨으나, 이미 전하를 뵈옵고 [某] 관직에 대한 모든 이양을 필(畢)하였으며, 마지막 날 밤까지도 [某] 을 부르시어 금위(禁衛)의 업(業)에 대하여 친히 지도하셨으니, 실로 이는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을 아시고 미리 준비하신 일이라 할 것이다. 이번 일은 지극히 애통하기 이를 데 없으나, 모든 과업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유지될 것이다. 다만 상(上)께서 차후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할 것을 당부하시는 친서(親書)를 보내셨으니, 각인(各人)은 다시 한 번 각오를 새롭게 하여, 모쪼록 불의의 사고로 명(命)을 다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여야 할 것이다.

용력 갑자 제 십칠호에 의해 중독된 자는 아직 더 알려지지 않았으나, 발견되거든 즉시 상부에 보고토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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