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환자가 말한다.
'꿈속에서 누군가 저에게 금으로 된 목걸이를 선물해 주었어요. 그 목걸이는 풍뎅이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꿈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때 나의 직관이 무언가를 말한다.
'임박했다.'
창문에서 툭툭 소리가 난다.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풍뎅이가 있다.
나는 창문을 열어 그것을 방 안으로 들여보낸다.
풍뎅이는 얌전히 나의 손 위에 내려앉는다.
'그것을 잡아라.'
나의 직관이 말한다.
나는 그것을 쥐고는 환자에게 그것을 보여주며 말한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풍뎅이입니다.'
— 1930년 여름.

그해의 여름은 어느 때 보다도 강렬했다.
작열하는 태양이 스위스 볼링겐의 호수와 그 옆의 돌탑 집을 내리쬐었다.
마치 신의 계시를 받듯, 혹은 신에게 대항하듯, 그 집은 기이한 풍채로 위태롭게, 혹은 꿋꿋이 서 있었다.
나는 눈앞에서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벌레들을 손으로 내쫒으며 볼링겐의 돌탑 집, 혹은 레푸기움Refugium, 혹은 저명한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의 별장으로 향했다. 별장의 앞마당에는 다양한 상징이 각인된 여러 비석들이 솟아 있었다. 라틴어로 된 글귀와 함께 연금술 기호가 새겨진 비석들이 나의 시선을 가로채 갔다. 이 때문에 이곳은 심리학자의 집이라기보다는 마법사나 연금술사의 집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이윽고 대문 앞에 도착했다. 대문은 가장 커다란 독특한 원통형의 탑 한가운데에 있었다. 원통형의 탑의 한쪽에 흔히 볼 수 있는 네모난 건물이 붙어있는 그런 기이한 형태였다.
나는 그를 만나 뵙기 전, 깔끔한 정장의 옷매무새를 다듬었고, 포마드로 매만진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나는 심호흡을 깊게 쉬고 가볍게 문을 두들겼다. 내부의 동그란 형태 때문인지, 노크 소리는 예상보다 훨씬 크게 울렸다. 음파는 건물의 안을 깊숙이 파고들어 마치 종을 울리듯, 그 반향음을 꽤나 오랫동안 남겼다.
"들어 오시오."
부드러우며 단단한, 유연하며 힘 있는 목소리가 깊은 동굴에서 올라오듯 들렸다.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이것이 그의 목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표현이었다.
나는 천천히 문을 열고 어두컴컴한 그의 은닉처를 바라보았다. 둥근 천장과 원통형의 거실, 그리고 한가운데의 화로, 그리고 그 앞에 한 늙은 남자가 가부좌를 튼 채 명상을 하고 있었다. 이 공간은 평온함을 준다기보다는 조금 더 경외스러웠고, 압도되면서도 주술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이곳은…"
"레푸기움. 라틴어로 안식처라는 뜻이지. 내 별장이자 내 은닉처에 온 것을 환영하네."
그는 몸을 움직이지 않은 채 뒤돌아본 상태에서 말했다.
"내가 직접 설계하여 지은 것이네. 명상을 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지."
나는 그의 뒷모습만으로도 마치 고대 그리스의 용감한 장군을 보는 듯한 강인함과 혹은 오랜만에 고향에 찾아가 만난 어머니를 뵙는 듯한 포근한 양가적인 감정이 밀려들어 왔다.
"칼 구스타프 융 박사님이시죠?"
"기다리고 있었소. 편지를 보낸 게 당신이오?"
"그렇습니다. 테런스 M. 맥퀸 입니다."
칼 융은 그제야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나는 동그란 안경과 자글자글한 주름이 퍼진 넓은 이마, 포근하게 윗입술을 뒤덮은 희끗한 콧수염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그가 인자한 미소를 보였다.
그는 명상을 멈추고 자신의 앞에 펼쳐진 무시무시하게 두꺼운 책을 가볍게 들고 일어났다. 그 책은 제목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표지가 선명한 붉은 가죽으로 싸여있어 평범한 책이 아니란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저기 소파에 앉게. 내가 손님을 너무 오래 서 있게 했구먼."
칼 융이 손가락으로 벽에 기대어 있는 소파와 탁자를 가리켰다. 탁자에는 그가 직접 쓰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노트와 펜, 그리고 고급스러운 촛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한 켠에 우악스럽게 생긴 나무 인형을 바라보았다.
"이 인형은 뭔가요?"
"난쟁이 인형이라네. 내가 어릴 적에 직접 만들어 가지고 놀던 인형이지. 방해가 된다면 치우도록 하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칼 융 박사와 함께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그 인형 옆에 가져온 서류철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박사님께서 지난 20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신화와 주술, 예언과 마법을 탐독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의 말에 융은 껄껄 웃었다.
"그렇지, 영국의 고문서부터 중국의 예언서까지, 아프리카의 사막부터 남아메리카의 정글 속까지. 안 본 것이 없고,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걸세. 모두 인간의 정신에 대한 가장 날 것의 상징을 담고 있는 것이지."
"저희는 그런 박사님의 연구와 자료에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연구하는 것들에 대한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칼 융이 내 말에 눈썹을 치켜세웠다.
"아마 그렇기에 나에게 편지를 보냈을 터이지. 보여 줄 것이 있다고 말이야. 그리고 예상컨데, 자네가 가진 그 자료에 대한 내 해석을 원하는 것일 테고. 맞나?"
"그렇습니다."
"그것도 아주 의미심장한 것을 말이야."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종이 파일철을 들어 그 내용물을 꺼냈다. 수많은 쪽지와 편지 용지, 티슈, 그리고 그 위에 다양한 필체로 그려진 낙서들과 설명들이 있었다. 그 모든 낙서들은 모두 공통의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태양십자가 떠오르고 있군."
"알아보시겠습니까?"
"이건… 이… 원 안에 있는 십자가. 이건 태양십자라고 부르는 상징이야. 고대 유럽지역에 널리 퍼져있던 상징이지. 이건 아무래도… 한 사람이 그린 게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맞습니다. 이 네 보고서에 그려진 것은 저희 재단이 격리중인 초감각적 민감성을 지닌 환자 네 명이 지난달에 동시에 꾼 꿈을 그린 것입니다. 이 밖의 대부분의 자료들은 재단 밖에서 수집한 자료들입니다. 영국, 프랑스,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도, 중국, 미국, 남미까지 다양합니다. 모두 초감각적 민감성을 가진 것으로 예측되고 주시 중이던 사람들이었죠."
"초감각적 민감성이라, 아마 직관을 말하는 것일테지."
"아니요, 그런 일상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숨김없이 이야기하겠습니다. 초감각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확힌 텔레파시이죠. 네, 저희는 초감각자들을 격리하고 연구합니다."
"아니. 자네가 틀렸네. 텔레파시와 미래 예지, 이런 초감각들은 우리의 일상적인 기능인 직관을 통해 이루어진다네. 우리와 그들의 중요한 차이는 그 기능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이지."
칼 융이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그의 나무처럼 단단한 목소리의 표정은 내가 민간인에게 변칙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보통의 사람들은 헛소리하지 말라고 할 텐데, 박사님은 어째 덤덤하시군요."
"난 중국에서 내 마음을 읽는 사람을 만나보았어. 내가 무엇을 상상하던 그녀는 모든 걸 알고 있더군, 그리고 난 이미 예지몽을 꾼 적도 있다네. 그런 사람에게 초감각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론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지. 하지만 이건 분명히 흥미롭군그래. 이 모든 자료가 지난달 20일에 같은 꿈을 꾼 사람들에게서 나왔다고?"
"네. 그렇습니다. 잠깐, 정확한 일자는 말씀드리지 않았는데요?"
칼 융은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예리하구먼. 자네는 아무래도 외향-감각형 인격을 지닌 거 같아. 맞아. 자네는 자세한 날짜를 이야기 한 적이 없지."
칼 융은 손에 들려 있던 붉은 책을 탁자에 올려두고 천천히 펼쳤다.
"이 책은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책이 아니라네. 아주 특별한 손님에게만 보여주는 책이지."
"전 특별한 손님인가요?"
"방금 그 이야기를 나누며 특별한 손님이 되었지."
그리고 최근 몇페이지 앞을 펼쳐 나에게 보였다. 그 책에는 내가 가져온 파일들과 유사한 장면을 그린 그림이 나타났다. 한쪽 구석에 칼 융의 사인이 있는 걸로 보아 칼 융 본인이 직접 그린 것으로 보였다.
"세상에, 박사님도 그 꿈을 꾸신 거군요."
"땅속에서부터 거대한 태양 십자가 떠오르는 꿈. 그래. 나도 꾸었지. 그리고 이것과 비슷한 꿈을 꾼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책은 상급감시사령부가 최우선적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칼 융의 예언서, '레드북'이었다.
칼 융은 곧바로 내 시선을 의식하고는 손으로 책의 페이지를 거꾸로 훑었다.
"이것은 내 꿈과 환영의 기록이라네. 1913년 그 꿈을 꾼 이래로 지금까지 내가 겪은 모든 꿈과 환영을 빠짐없이 기록했지."
가장 최근의 기록부터 과거의 기록들 순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영적인 상징들과 텍스트들은 겹겹이 포개어져 층위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 흐름은 맨 첫 장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팔랑이는 소리와 함께 책의 가장 맨 첫 번째 장이 드러났고, 그곳에는 아까 보았던 것과 매우 유사한 태양 십자가 노란 홍수의 한가운데에서 떠오르는 그림이 있었다.
"17년 전의 일이었지. 1913년 10월 중순쯤, 내가 여행을 가려고 가방을 싸던 날… 갑작스레 어떤 강렬한 환영이 나에게 찾아왔네. 두세시간 동안 이어진 그 환영은 나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고, 그 공포 속에서 난 그것이 내 직관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가 세심하게 그린 홍수와 그 가운데의 불타는 태양 십자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난 그 경험 이후로 이것을 꼭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렇게 이 '레드북'을 작성하기 시작했네. 처음 그 홍수의 환영 기록을 담은 '블랙북'을 포함하는 책으로 말이야. 그리고 그 노란 홍수에 대한 꿈을 꾼 지 1년도 채 안 되어서 그것은 현실이 되었지."
"1914년 7월 28일…"
"그래 모든 전쟁을 끝낼 단 하나의 전쟁."
"전례가 없던 규모의 대전쟁인 세계대전이 일어났죠."
"그래. 그때 나는 깨달았어. 우리의 깊숙한 곳에 있는 정신과 시대의 흐름이 나에게 어떤 중요한 메세지를 던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야. 꿈과 환시를 통해서. 하지만 우리는 너무 둔감하지. 우리는 전근대의 시절처럼 이러한 광기를 숭앙하지 않는다네, 헛소리로 치부하며 덮어두고 무시하고 의식화하지 않지. 그러면 더욱 우리는 깊은 정신의 자기와 멀어지고 한 시대가 만들어낸 세계와 유리될 수밖에 없어."
"박사님의 그 꿈은 일종의… 예지몽입니다. 박사님과 초감각자들의 꿈을 연구한다면 미래에 있을 어떤 중요한 사건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예지몽이라고? 틀렸어. 이건 그저 나침반이야.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자아를 찾고, 자기, 그러니까 우리의 숙명적 통일체를 찾고, 더 나아가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알리는 메시지이지. 델포이의 신탁이 예언이라 생각한 사람들의 최후를 보게나."
"하지만 이걸 보십시오."
나는 조금 흥분하여 내 손에 들린 자료들을 들이밀었다.
"또다시 그 태양 십자의 환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박사님도 보셨잖습니까. 어쩌면, 지금 인류는 또 다른 세계대전의 문턱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희는 박사님의 자료와 저희가 보유 중인 초감각자들을 통해서 미래에 일어날 커다란 사건이 언제 인류에게 일어나는 것인지 알아내야 합니다."
칼 융의 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그가 고심하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것이 자네가 나를 찾아온 가장 궁극의 목적이로군."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이 프로젝트엔 박사님의 혜안이 필요합니다."
융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만 먹으면 어쩌면… 할 수 있을 거야. 충분히 많은 직관이 발달한 사람들의 꿈과 환영에 대한 자료가 있다면 말이야. 하지만 인간의 정신이란 정말 모호하고 기묘해서 우리가 제대로 짚어내지 못할 수도 있네."
융은 미간을 짚고 사색에 빠졌다.
"어쩌면 인류의 존망이 달린 문제일 수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잘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항상 내가 가능하다고 말은 했지만… 이 정도로 직접적으로 명확하게 상징을 짚어내야 하는 경우는 처음이야. 꿈의 상징에 대해 아주 넓고 깊은 지식이 필요할 테야. 난… 난…"
칼 융이 미간을 주물렀다.
"자신이 없네. 미안하네…"
나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납득을 할 수 없었다. 그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가 거절할 때에 투약할 기억소거제를 만지작거렸다. 상급감시사령부는 그가 승낙을 하던, 거절을 하던 이 레드북을 꼭 회수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하지만 그가 없이 어떻게 레드북의 모호한 상징들을 해석할 수 있겠는가. 나는 표준 절차를 무시하기로 마음을 먹고 입을 열었다.
"… 한번만 더 재고해 주십쇼. 상급감시사령부는 레드북을 회수하는 게 최우선사항이라고 지시했지만… 박사님이 없다면 이 책을 해석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고 또…"
내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추천인께선 박사님만이 그 분야에서 최고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난 수십년간을 그 상징을 연구하는데 쏟으셨잖아요. 저는 박사님이 왜 이것에 그리 자신 없어 하는지를 전 이해를 못 하겠군요.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요."
융은 고개를 들고 맥퀸을 바라보았다.
"추천인이라고?"
"아…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네요. 사실 박사님 이전에 제가 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다른 분을 찾아갔습니다만, 그분이 극구 거절하시고 박사님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레드북에 대해서도 그때 알게 되었고요."
"그 사람이 누군가?"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사님입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프로이트?"
"그… 네. 맞습니다. 프로이트 박사님이 직접 융 박사님에게 찾아보라고 말씀을…"
"대체… 왜?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동공은 혼란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20년… 장장 20년이 지났는데, 왜 그이는 날 신경 쓰고 있는 거지?"
"프로이트 박사님과 사이가 안 좋으셨다고는 들었는데…"
"내가 내 손으로 직접 나갔어. 난 그를 내동댕이쳤어. 그날 그가 나를 붙잡으며 애원했는데… 마치 내가 자신의 아버지라도 되는 양 우러러보며 떠나지 말라고 부탁했는데, 난 그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왔다고."
그의 머리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박…박사님?"
"그는 날 황태자라고 불렀어, 장남, 후계자라고 불렀는데… 그는…"
그는 그 말을 끝으로 탁자 위로 쓰러졌다.
"융 박사님!"
나는 놀라 그를 부축했다. 그의 온몸은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고, 입에서 거품이 흘러나왔다.
"제길, 간질 발작이야. 저기요! 관리인! 누구 없나요?"
내가 황급히 별장의 다른 사람을 찾았지만, 돌아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하아, 제발!"
나는 그가 최대한 안정을 할 수 있게 그를 소파에 편히 눕히고 머리에 쿠션을 받쳐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작 증세가 가라앉고, 호흡이 규칙적으로 변했다.
"박사님? 박사님? 괜찮으십니까?"
칼 융의 주름진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열렸다.
"박사님? 정신이 드시나요?"
내가 그의 손에 찬 물컵을 쥐어주었다. 그러나 그는 물컵을 마다하고 내게 손을 뻗었다.
"필요한 거 있으시나요?"
그는 무언가 강렬히 열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내 어깨 너머의 반쯤 열린 창문을 가리켰다.
"문을 활짝 열고 공기를 순환시키겠습니다."
내가 창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창문에 붙어있던 풍뎅이가 안쪽으로 날아들어 왔다.
그 풍뎅이는 금빛 몸체를 뽐내며 둥근 방 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칼 융 박사의 손가락 위에 내려앉았다.
칼 융은 그 풍뎅이를 천천히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바라보았다. 그는 심각하고 복잡한 표정으로 그것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손을 쥐고는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함께하겠네."
"네?"
"자네의 그 프로젝트. 함께 하겠네."
나는 갑작스러운 그의 번복에 당혹스러우면서도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함께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칼 융은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 황금 풍뎅이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풍뎅이는 힘껏 날아올라 레푸기움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SCP 재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칼 융 박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