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형식적인 절차
평가: +7+x

다니엘 에슬링어 박사는 재단에 속해 있지 않은 자기 또래의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 사람들은 인류의 분별력을 무너뜨리고 있는 21세기의 삶이라는 문제만 처리하면 될 뿐이었고, 예전에는 그도 그 정도면 충분한 문젯거리라고 생각했었다. 이 세상에서 날뛰고 있는 변칙개체들 없이도, 인류에게는 아무 도움 없이도 자신들의 정신을 망가뜨릴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현실을 깨닫는 과정에 내재된 정신적 충격에 관여한다는 건 헛된 일이었고, 그래서 얻은 게 뭐란 말인가? 에슬링어 같은 사람들에게 떨어지는 엄청난 골칫거리뿐.

그는 제103기지에 마련된 예비용 사무실에 서류가방을 내려놓고 눈가를 문질렀다. 그는 여기까지 오는 비행 내내 깨어있었는데, 간절히 잠이 필요했지만 다시 한 번 몸이 거부한 탓이었다. 비행기를 오래 타면 항상 그의 몸은 피로로 쓰러지는 걸 거부했다. 그리고 깜빡 잠이 들더라도, 기침소리나 말소리 때문에 깼다. 정말로 짜증나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는 이런 일 때문에 약을 복용하거나 하기는 거부했다. 그는 정말로 필요할 때를 대비해 약은 남겨두고 있었다.

"커피," 그가 웅얼거리고선 복도에 있는 기계 중 하나에서 가져오기 위해 다시 나갔다.

그가 돌아왔을 때, 누군가가 책상 맞은편의 사무실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자는 40대 중반으로, 값비싼 검은 양복처럼 보이는 옷을 흠 잡을 데 없이 입고 있었다. 그자는 아주 진지해 보였고, "남는 음식 담아놓을 통이 부족해서 고민하는 일이 있으십니까, 부인?" 같을 일을 하러 온 분위기가 아니었다.

"에슬링어 박사, 반갑습니다."

에슬링어는 잽싸게 종이컵을 근처의 서류 캐비닛에 내려놓고 악수했다.

"감사합니다. 누구시죠?"

"만웰 커틀러 박사, 재단 윤리 위원회에 속해 있습니다. 아마 저희에 대해선 들어보셨겠죠?"

에슬링어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까딱했다.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커틀러 박사님? 재단의 비밀스러운 인형사들. 우리의 절차와 규정부터 제가 지금 가져온 커피향 나는 물의 질과 농도까지 모든 걸 궁극적으로 통제하는 분들 아닙니까. 이를테면."

커틀러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에슬링어는 그가 짜증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재미있어서 그런 건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양쪽 모두일지도.

"뭐, 그것도 확실히 하나의 시각이겠지요. 하지만 아닙니다, 그들이 모든 걸 조종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우린 가능한 한 재단이 자체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걸 선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통제를 좀 주장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 경우도 그 중 하나이고요."

이번에는 다니엘이 아주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오? 그러면 제가 왜 여기 있는건지 진짜 이유를 알려주실 건가 보죠?"

그가 책상 뒤의 의자로 걸어가 앉았다. 다른 의자를 가리키면서 그가 말했다. "앉으시죠."

커틀러가 다시 자리에 앉고 웃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네, 제가 지금 할 일이 바로 그겁니다. 봅시다, 당신은 여기 있으면서 제103기지의 특정 직원들에 대한 심리 평가를 진행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 여러 명이 한 명이 되어버렸다고 보면 됩니다."

"한 명이요?" 에슬링어가 말하면서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어우!" 그가 소리치고 컵을 황급히 다시 내려놓았다. "어느 기지에선 이 기계들이 이걸 끔찍하게 뜨겁게 내오고 다른 데에선 미적지근하게 내온다는 걸 계속 깜빡한다니까. 망할."

커틀러는 에슬링어가 커피 컵을 가지고 호들갑떠는 것을 끝마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네. 내일 비행기로 테니슨을 데려올 겁니다. 그가 당신이 보기로 한 인원들을 맡을 거고요. 반면에, 당신은 한 명에게만 집중하면 될 겁니다."

"오?" 에슬링어가 정신을 차렸다. 난제의 냄새가 풍겼다. "그게 누굽니까? 아마 완전히 뒤틀렸거나 당신들한테 엄청나게 중요한 사람일 테지만."

커틀러가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미소지었다. 마치 상어가 이빨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아주 적합한 묘사로군요, 에슬링어 박사. 아마 그 양쪽 다 맞을 겁니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당신은 그를 약…" 커틀러가 말하면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44분 후에 만나게 될 겁니다."

다니엘이 숨을 들이쉬웠다. 아마 난제가 될 테지만, 동시에 다시 한 번 계획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는 계획을 바꾸는 건 잘하지 못했다. 계획을 바꾼다는 건 경계심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일하면서, 계속 집중해서 처리해 나간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는 자신의 뇌가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지 빠르게 굴러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머리 세 개 달린 소와 자연발화하는 닭으로 유명한 미국 위어즈빌을 통과하는 우회로를 타자 차의 내비게이션이 발작적으로 그를 고속도로로 다시 돌려놓으려고 했던 것처럼 … 그는 그 생각을 떨쳐내려 머리를 흔들었다. 커틀러는 약간 재미있다는 듯이 그를 보고 있었다. 그는 즉시 확고하게 커틀러를 어슬링어의 캠프 마음에 안 듬(Camp Do Not Like)의 2단 침대에다 넣어버리기로 했다.

"그럼, 제가 누구를 평가하게 되는 건지는 혹시 알아도 되는 겁니까?" 그가 목소리에 약간의 적대감을 실으려 애쓰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에슬링어 박사. 그만한 최소한의 예의는 보여야 마땅하겠죠."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당첨자는?" 다니엘이 이제는 진짜로 짜증을 담아, 조심스레 말했다.

"우린 그자를 빌이라 부릅니다."

"그럼 진짜 이름은 아니군요."

"그게 문제가 되나요?"

"저한테는 그렇습니다만, 커틀러 박사. 이름이라는 건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있거든요, 아실지 모르겠는데."

커틀러가 웃었다. "아마 심리학자한테는 그렇겠군요. 빌이면 될 겁니다, 에슬링어 박사. 고양이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세요."

"고양이요? 무슨 고양이요? 제가 뭘 잘못 이해했나요?"

"그런 것 같네요.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들 하죠?"

"오. 속담이군요. 죄송합니다. 가끔씩 이런 게 머리에 문자 그대로 들어와서요."

"뭐. 그런 것 같군요." 커틀러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럼, 더 이상 시간 뺏지 않겠습니다. 아마 준비를 하셔야 할 게 있겠죠. 방금 받은 이메일에 알아야 할 건 거의 다 있을 겁니다."

"전 아무 새로운…"

에슬링어의 핸드폰에서 땡 소리가 나며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고 알렸다.

"행운을 빌죠, 다니엘." 커틀러가 의기양양하게 말하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에슬링어가 등 뒤에서 부르자 그는 멈춰섰다.

"이봐요, '커틀러 박사', 만약 윤리 위원회에 속해 있는 척 할 거라면, 최소한 대명사라도 제대로 쓰려고 해보시죠."

커틀러가 에슬링어에게 돌아섰다.

"뭐라고요?"

"당신은 '그들이' 모든 걸 조종하지는 않는다고 했죠. 내가 O5 평의회에 속해 있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당신네들이 일하는 방식이 정말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은 할 수 있겠네요."

"그럼 제가 그냥 대명사를 잘못 쓴 게 아니라 평의회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뭐죠?" 대답이 돌아왔다.

"재단의 급여명단에 올라 있는 사람들 중에서 브리오니 양복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그 명단의 주인 말고는. 다음번에는 좀 섞어보시죠. 하지만, 당신에게 잠재되어 있는 자가도취증을 생각해 볼 때, 그건 힘들겠죠, 안 그래요?"

"정곡을 찌르시는군요, 에슬링어 박사. 그들이 장담한 대로 관찰력이 뛰어나네요. 그걸 좋은 일에 써주길 바랍니다, 아시겠죠? 우리한테 좋은 일 해주는 겁니다."

그는 등 뒤의 문에 손을 뻗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고는 사라졌다.

다니엘 호라티오 에슬링어는 깨끗한 셔츠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그는 또 기억소거제 1회분과 알래스카 시골 마을의 심리학자로 일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그의 동료들보단 곰들이 더 나은 이웃임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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