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스필드, 1987년 여름 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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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 와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죽음을 열망했던 것 같다.

2.
그러나 그것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고,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나로선, 이 방파제들과 비린내와 비참함에 찌든 도시에서 사느니 그 영원한 침묵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아,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듯 싶다. 내 기록을 읽게 될 사람이 누가 되었든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를 원할 테니.

내가 무신론을 지지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이 도시에서 태어난 것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아무 조명도 없이 음산하게 철벅거리는 검푸른 바닷물과, 끔찍하게 느릿하게 들어오는 배들과 온갖 낡아빠진 건물들로 가득 찬 항구들. 그러나 가장 끔찍한 것은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다. 비참함. 가난. 범죄. 이상한 것들. 그들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역겨움을 감추기가 힘들 정도이다. 그래서 내가 십대일 때부터 인생의 최대 목표는 이 끈적끈적한 곳을 탈출하는 곳이었고, 죽음에 대한 내 열망과 맞물려 나는 의사가 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내 머릿속, 아니면 유전자에 그 끔찍한 바다 냄새가 배어버린 것인지, 결과적으로 내 인생의 종착역은 이 도시가 되어 버렸다. 내가 인생에서 성취해 낸 것이라고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 아파트 집 하나와, 중고 차 하나와, 한 20km쯤 떨어져 있는 도시에 있는 법원 서기직뿐이었다. 아, 거기에 끔찍하게 재미없는 삶도.

그러나 드디어, 약간은 이상하고 흥미로운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도시에 있는지도 몰랐던 시장이라는 작자가 이상한 현수막을 내걸고는 무언가 이상한 모임을 연다는 것이었다.

제4항구 매각 관련 주민 공청회

그 ‘공청회’의 내용은 꽤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불필요하게 도시에 지나치게 많이 분포된 항구 중 하나를 회사, ‘시체 비누 주식회사’에 팔아 도시의 발전을 도모한다고, 시장은 주장했다. 그러나 이곳의 주민들은 아둔하게도 그 엄청난 제안을 거절하고 나섰다. 아마 너무 자비로워서 어지간한 자선가도 하기 힘든 제안인데. 아니, 그들은 아둔한 게 아니었다. 보나마나 돈 냄새가 나니까 시체 먹는 벌레처럼 덤벼드는 것이겠지. 사람들은 시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야유를 보내고, 중간에 공청회를 우르르 나가버리는 것으로 참으로 훌륭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다음 날에는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오전 8시, 해가 떠도 이 도시는 외면하고 내리쬐는 듯한 이 시간에 문 밖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항구 일에 찌들어 새까만 얼굴을 한 주민들이, 비굴함을 가득 담고 문 밖에 서 있었다.

그들은 내게 부탁을 해 왔다. 예상한 대로였다. 돈 냄새에 찌든 이들로서는 일단 직감적으로 행동했지만, 그 녹조류에 찌든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 제대로 된 생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니까. 아마 이들에게 서기는 엄청나게 대단한 직업이겠지. 그들은 항구 매각에 대한 반대 모임을 조직하려 하고 있었고, 내게 그 대표를 부탁하고 있었다. 아니, 공동대표. 꽤나 놀라운 일이었지만, 이 시궁창에도 진짜 변호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아래 층에.

나와 그 변호사의 만남은 처음부터 전혀 순탄하지 않았다. 처음 만났던 것은 내 집에서였다. 그 변호사는 62년생, 놀랄 만큼 젊은 사람이었고, 자기 이름은 스티네(Stine)라고 했다. 그는 침대에 느긋하게 기대 앉아서는 내게 보상금을 크게 늘릴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론이나 정치권에 호소하는 것도 거부했고, 그런 것들은 모두 일종의 협박용으로만 남겨두어야지, 실제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폭탄을 터뜨린다고 협박하는 건 먹히지만, 폭탄을 터뜨려 버리면 응징이 뒤따를 뿐이죠.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건 개소리에 불과했다. 이 회사는 항구를 임대할 수도 있는데도 굳이 사들이고 있었고, 거기에 거의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항구를 사들이겠다고 나서고 있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비누회사였다. 도대체 비누회사에서 수입이나 수출을 한다 해도 얼마나 한다고 항구를 사야 하는 걸까? 보나마나, 무슨 구린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 이런 표현을 쓰니 꼭 이 도시 사람들 같다. 보나마나, 무슨 수상한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내가 변호사가 아닌 서기에 불과할지는 몰라도, 최소한 인생 경험만큼은 내가 더 많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이 일은 뭔가 큰 일이었다. 내 동기는 돈이 아니라 무언가…인생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었지만. 나는 이 변호사가 뭐라 하든, 전혀 이 일을 쉽게 넘길 생각이 없었다. 보상금이 어떻게 되든 나야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나와 스티네는 단체를 짰고, 시위를 어떻게 할지 구성했고, 하부 조직을 만들었고, 연판장을 짜고, 토론회를 열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대표가 아무리 서기에 변호사라도 그 단체의 구성이 끔찍하게 우둔한 작자들로 되어 있다면 상황은 끔찍하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단체를 짜고 조장이니, 팀장이니 하는 칭호를 주었지만 아무도 제대로 나오는 사람은 없었고, 시위를 열려고 해도 나오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고, 하부 조직은…뭐, 안 하느니만 못했다. 연판장을 가득 채우는 건 나와 스티네의 독촉 끝에 그나마 성공적이었고. 토론회는 최악의 악몽이었다. 회사 쪽의 사람들은 여유롭게 우리를 몰아쳤고, 나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무언가 실마리를 찾아보려 했지만 스티네는 재수 없게 싱글싱글 웃어대며 만담을 나누다시피 했다.

아마 보상금은 약간 적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항구의 모든 시설을 다 재건축할 겁니다.

말도 안 됩니다. 그 시설은 결국 당신들이 이용하게 될 것 아닙니까. 실질적인 보상이 되야죠.

그래도 뭐, 그 시설을 짓는데 여기 지역 사람들을 고용하시겠죠. 안 그렇습니까?

결국 이 모임은 아무 성과 없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마 그 때부터 무언가 의심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스티네가 하는 일은 결국 사실상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회사 측에서 나온 사람 같아 보일 정도였다.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었다.

3.
이름 스티네. 62년생. 변호사. 내 집 아래 층에 거주. 그게 내가 그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돈은 얼마나 버는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한 번 들기 시작한 의심은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왜 나는 법원 서기인데도 법원에서 그를 본 적이 없을까? 변호사라고 하면서 왜 법원까지 이동할 수 있는 차는 가지고 있지 않은가? 변변찮은 사무소 하나 없고, 찾아오는 의뢰인은 아무도 없는 이유가 뭔가? 점점 그런 의심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무언가 수상쩍기 짝이 없는 인물이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 회사에서 온 인물일까? 첩자나 스파이처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었다.

4.
먼저 필요한 것은 스티네가 갑작스레 들이닥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법원에 놔 두고 온 서류가 있으니 가져다 달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법원에서 이 곳의 거리는 왕복 40km. 아무리 적게 잡아도 1시간은 걸릴 것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집 문을 따고 들어가는 시시한 일조차도,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냥 한 번 걷어차기라도 하면 무너질 것 같은 문도 따고 들어갈 수 없다니.

젠장.

사실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냥 길거리에 있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돈을 적당히 쥐어주며 시키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한 번 돈 냄새를 맡고 달라붙는 그 작자들을 때내기도 어려울 게 뻔했다. 결국 고민이 계속 들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좀도둑질 따위 하지 않고 살아온 내가 가택침입을 제대로 해 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나 곧 꽤나 쓸만한 생각이 났다. 이 거지같은 아파트는 나름 이 도시에서는 꽤나 호화찬란한 급에 속했고, 집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난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난로의 연기 구멍들은 서로 모아져 있으니까, 내 집에 있는 난로 구멍으로 들어가면 그의 집에 있는 난로 구멍으로 통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가장 헌 옷을 입고 난로 구멍으로 기어들어갔다. 구멍은 꽤 컸고, 잠시 끙끙댄 끝에 스티네의 집 난로로 나올 수 있었다.

생각보다 깨끗하군. 하기야, 난로를 사용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무릎을 털어내며 몸을 일으키자, 그의 집 안이 눈에 들어왔다. 집 안은 이상하게 휑했다. 거실에는 책도, 화분도, 소파도, 아무것도 없었고, 기껏해야 의자 하나와 책상 하나밖에 없었다. 침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파트에 기본으로 딸려오는 낡아빠진 침대에 매트리스.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지만, 있는 거라고는 우유 한 통에 사과 두 알뿐이었다. 이 스티네라는 자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자가 여기에 살고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그게 뭐가 되었든 간에. 그 때, 갑작스레 열쇠를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났다.

빌어먹을! 이렇게 빨리?

시간이 없었다. 나는 허겁지겁 다시 난로 구멍으로 기어들어가, 몸을 구겨넣었다. 그러나 소리가 나거나 할까봐, 몸을 더 이상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 때, 낮은 기침 소리가 났다. 스티네가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딸깍거리는 소리가 한참 이어진 후, 갑작스레 전화벨 소리가 났다.

여보세요. 스티네가 건조하게 말했다.

네.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을 처리하는 건 무난히 끝날 겁니다. ‘비누’들을 이송하셔도 괜찮을 것 같군요.

예상한 것보다는 훨씬 더 안전합니다. 8번 부터 시작하시죠.

전화는 짧게 끊겼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주민들을 처리한다는 것은 분명히 반대하는 주민들을 처리하는 것이겠지만, 비누들을 이송한다는 것은 상당히 이상한 말이었다. 8번은 뭘 가리키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이 있었다. 시체 비누 주식회사가 무엇이고, 그 회사의 정체가 진짜로 무엇이든 간에, 스티네는 그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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