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기적사의 학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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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이후 한반도 술법 약사

한반도 술법사 총서 제1권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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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

서양에서 기적사(Thaumaturgist)라고 불리며, 옥리들과 분서꾼들에게 타입 블루(Type Blue)라고 분류되는 존재들은 동양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해 왔다. 서양에서 기적사를 흔히 마법사(Wizard) 또는 마술사(Magician)이라고 부르듯, 동양, 특히 그 중에서도 중국과 한국에서는 이들을 도사(Taoist)라고 불렀다. 구체적인 술법 양태에 따라 세부 분류가 나뉘었는데, 예언술사(Seer), 양생술사(Life-extender), 환술사(Illusionist), 둔갑술사(Shapeshifter), 그리고 각 술법의 숙달 정도는 제각각이지만 복수의 술법을 이것저것 하는 그냥 도사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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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이전의 한반도의 기적술에 대해서는 문헌자료가 일천하여 상세한 그림을 그리기가 매우 힘들다. 현재까지 확정된 바로, 신라 시대의 최치원과 고려 시대의 강감찬이 상당한 기적학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밝혀져 있다. 고려 이후 한반도의 근세 국가는 조선왕조였다. 조선 전기의 도사들은 대개 각지의 산 속에 은거하며, 자신들의 기예를 닦는 데 열중했다. 속세의 권력쟁투에서 밀려난 유학자가 도사로 전향하여 은둔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시기의 기적학은 매우 개인주의적이고 현실도피적인 성격을 띤다.

제도권 편입기:

1568년, 당대 제일의 도사로 평가받던 전우치가 사망했는데, 전우치는 죽으면서 이지함, 양사언 등에게 거대한 초상적 위협의 존재를 알리고, 그 위협으로부터 제세안민키 위하여 도사들의 단결이 필요하다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도사들 특유의 개인주의적 성향과, 얼마 뒤 일어난 일본과의 대전쟁 때문에 전우치의 유언은 빠른 시일 안에 구체화되지 못했다.

1600년, 당시 영의정이었던 이지함의 조카 이산해는 선조와 여러 차례 독대하여 초상적 위협으로부터 사직과 백성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불어도감(不語都監)을 비밀 직제로서 설치했다. 하지만 도사들을 불어도감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에 귀속시켜 제도적으로 동원하는 것은 평생 무법자였던 전우치의 바램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었다. 어쨌든 불어도감은 선조 말기와 광해군 치세 때 주로 북방의 대(對) 만주 첩보전에서 활약했다.

인조반정 이후, 북인의 영수 이산해에 의해 설치되어 광해군 시기 북인정권 때 활동했던 불어도감은 첫 번째 존폐의 기로에 섰다. 불어도감은 김상헌을 비롯한 청서파에게는 그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고, 공서파 내부에서만 그 처우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나 공서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양차 호란 이후 최명길의 강력한 옹호 하에 불어도감은 서인정권 하에서도 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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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항쟁기:

17세기 말은 불어도감 내부의 분열의 시기였다. 여기에는 효종 때 표착해 온 네덜란드인들을 통한 외부 세계의 존재에 대한 인지가 큰 영향을 미쳤다. 불어도감은 기적학적 방식의 사용과 연구를 고수하는 파벌(주술파 — 구분을 위한 후대의 명칭임)과, 서양인들을 통해 얻은 신무기와 같은 가시적 군사발전을 우선시하는 파벌(기술파 — 마찬가지)로 양분되었다. 이는 현종-숙종 대에 이르러 피의 숙청이 일어나던 붕당정치와 맞물려 내부 항쟁으로 비화했다. 1701년, 희빈 장씨가 무당을 동원해 중전을 저주한 사실이 발각되어 사형당하는 신사환국이 일어났다. 불어도감 기술파는 주술파가 희빈 장씨와 관련이 있다는 거짓 증거를 조작하여 뒤집어 씌었고, 주술파는 축출되어 임진왜란 이전의 도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하로 잠적했다.

신사환국 이후 불어도감은 혁파, 이금위가 신설되었다. 이금위는 그보다 앞서 불어도감에서 분리되어 나왔던 전문기구인 보전원과 더불어 조선의 새로운 국책초상기관으로 이원체제를 형성했다. 하지만 안정기는 1백 년을 채 넘기지 못했고, 1795년 천년구미호가 봉인에서 풀려나는 을묘화변이 일어나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이금위와 보전원은 책임 면피를 위해 불어도감에서 축출된 과거의 주술파 잔당들을 사건에 결부시켰다. 천주교에 대한 인식이 악화되던 상황에서 충성심을 증명하고자 한 남인 일부, 그리고 왕의 뜻에 영합한 노론 및 소론 세력까지 모든 진영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탈주(rouge) 도사들에 대한 대대적 추적과 탄압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불어도감 잔당(이하 지하도사)들을 음지와 양지 양면에서 지원하던 ▓▓▓가 정조에게 친국을 받아 죽기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을묘화변으로 인해 지하도사들과 보전원-이금위는 완전히 철천지원수가 되었고, 지하도사들은 철저하게 비밀결사화되어 조선이 망할 때까지 역사에서 그 흔적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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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상략]

1910년 일본제국에 병합됨으로써 대한제국(조선의 후신)이 멸망하고 한반도는 일제의 식민지로 편입되었다. 이 때 계파를 막론하고 많은 한국 술법사들이 일본의 초상기관(이자메아, 수집원 등)에 흡수되어 부역했다. 물론 저항운동에 투신한 이들도 있었고, 이는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었던 지하도사들 위주로 더욱 활발했다. 지하도사들은 1920-30년대 만주와 중국 일대에서 의열단과 자주 공조했다. 지하도사들과 의열단은 특유의 무정부주의적 성향과 비밀결사적 특징이 어울려 상당히 손발이 잘 맞았다.

의열단의 활동이 와해된 뒤 지하도사들은 1945년 일본제국의 패망 때까지 다시 잠적했다. 일제가 패망하면서 한반도는 마침내 외부 초상세계에 완전히 개방되었다. 분서꾼들과 옥리들, 그리고 뱀의 손까지 다양한 초상기관들이 한반도에 진출한 것도 이 시기 이후다. 지하도사들은 이 중 뱀의 손과 합작하기로 했고, 1955년 이후로는 아예 한반도의 뱀의 손 섹트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들은 현재까지 비밀결사적 형식을 유지하면서 때때로 분서꾼들이나 옥리들과 항쟁하는 의로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권말부록: 계보도

이하 도표는 현재까지 밝혀진 불어도감 이전의 한반도 술법사의 대략적인 학맥 계보도이다. 편의상 분서꾼들이 사용하는 색깔 범례와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으니 그 점 참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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