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츠네야루츠크-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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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7+x

크라츠네야루츠크-17
제1장

나는 강간 당해 태어난 자식이다. 내 아버지, 엄밀히 따지자면 피는 이어지지 않은 내 어머니의 남편은 백군 대위였다. 그는 부하의 밀고로 살해당했고 내 어머니는 남편의 시체 앞에서 강간당했다. 대위를 죽인 자들은 총 4명이었다. 적군 소속의 이등병 2명, 상병 하나, 병장 하나. 내가 아까 강간이라고 했었나? 틀렸다. 내 어머니는 윤간당했고 난 그렇게 태어났다.

아마 당신은 내가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뭐, 물론 나로선 그 반문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내 삼촌이 또 그리 믿을만한 양반은 아니다 보니.

어쨌든 그분의 말을 빌리자면 내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러니까 백색의 차르군이 결국 붉은 피에 굴복해 붕괴되던 중 삼촌은 친구와 함께 바르나울에서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었다—왜 바르나올로 갔는지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삼촌도 매부가 백군 대위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맘이 급했었다. 어느덧 산을 넘어서 마을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이르렀을 때 삼촌과 친구는 안심할 수 있었다. 마을 주변에서 야영지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고 마을도 겉보기에 평온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발걸음을 늦췄고 설렁설렁 마을 입구로 향했다. 하지만 발걸음이 가까워질수록 그들이 잘 못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들의 발걸음도 점점 빨라졌다.

마을 입구에는 한 남자가 배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다. 가슴에 총을 맞았고 피가 녹은 진흙 벌판 위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땅이 그의 피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 자가 바로 매부를 밀고한 그 부하였다. 멍청하게도 상관을 팔면 자기는 살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었나 보다.

마을의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누이의 집 문이 열려 있었다. 그 순간 삼촌은 누이와 매부를 덮친 자들이 적군 탈영병들이거나 적군 행세를 하는 깡패들일 거라고 확신했다. 대위 정도 되는 군인을 집안에서 처형할 리가 없다. 정규군이 쳐들어온 것이라면 온 마을 사람들을 다 불러내 거리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 그를 죽여 본이 되게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게 붉은 군대의 방식이니까. 하지만 마을은 텅 비었었고 누이의 집에서 흘러나온 비명만이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삼촌과 친구는 곧바로 집 안으로 쳐들어갔다. 대위는 이미 죽어 있었다. 부엌에 대위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고 온 사방에 피가 가득했다. 시체 위로 상병이 오줌을 갈기고 있었다. 거실에는 누이가 두 이등병에게 붙잡혀 있었다. 웃옷이 마구 찢어지고 얼굴에는 남편의 피가 튄 채 두 이등병에게 능욕을 당하고 있었다. 삼촌은 거리에서 집 안으로 뛰어 들어올 때는 누이의 비명을 들을 수 있었지만, 막상 집으로 들어가 그 광경을 볼 때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명과 그의 가쁜 숨소리가 누이의 비명을 듣지 못하게 막았다. 붉은 피만이 가득했다. 피비린내와 오줌 냄새가 역겹게 섞였고 눈앞의 불한당들은 아직 삼촌과 친구를 보지 못했다.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그리고 현실은 이등병 하나가 누이의 머리채를 잡은 다음에 뺨을 내리치면서 강렬하게 그에게 복귀했다. 삼촌은 총을 들어 그 이등병을 쐈다. 누이의 얼굴에 다시 한번 피가 튀었고 다른 이등병이 총성에 놀라 뒤로 넘어지면서 누이도 함께 쓰러졌다. 하지만 삼촌은 그걸 신경 쓸 새가 없었다.

부엌에서 상병이 튀어나왔다. 곧바로 총이 발포되었다. 총알은 삼촌의 귀밑을 스쳐 현관에 서 있던 친구의 턱을 관통했다. 삼촌이 집에 들어갔을 때 머뭇거렸기 때문에 친구는 현관에 약간 어정쩡한 위치에 서 있었다. 친구는 총알을 피할 공간이 부족했다. 귓가에 피가 흘러내렸고 자세가 흔들렸지만 삼촌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곧바로 총을 겨누었다. 총알은 상병의 오른 어깨를 맞췄고 상병은 총을 놓치면서 뒤로 넘어졌다.

아까 넘어졌던 이등병이 칼을 빼 들어서 달려들었다. 멍청한 놈이 총을 벽에다가 세워다 두고는 총 대신 칼을 든 것이었다. 삼촌은 권총을 꺼냈지만 아까 자세가 흔들리고 총의 반동까지 더해지면서 정확한 조준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이등병과 그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었다. 독일제 권총이 이등병의 팔에 부딪히면서 바닥을 향해 발사되었고 칼은 삼촌의 가죽 재킷을 뚫고 들어갔다. 이등병의 팔과 다리가 삼촌의 것과 얽혔다. 삼촌은 현관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뒤로 쓰러졌다.

번개를 맨눈으로 본 것 같은 섬광이 스쳤고 뒤통수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뒤통수가 찢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삼촌은 자신이 턱이 박살 난 친구의 하반신 위에 자신이 누운 것을 알아차렸다. 그 위로 이등병이 그의 가죽 벨트에 걸린 칼을 다시 그의 배에 쑤셔 넣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같이 넘어지면서 이등병의 바지가 다시 흘러내렸다. 이등병의 양 무릎이 그의 허벅지를 짓누르면서 다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삼촌은 왼팔로 이등병의 팔을 붙잡은 채 삼촌의 오른팔은 친구의 가슴을 더듬었다. 이등병은 왼팔로 그의 목을 졸랐다. 목울대에 손톱이 파고 들어갔다. 숨이 졸렸고 칼이 벨트를 서서히 찢으면서 내장에 닿으려고 하고 있었다.

배에 달군 쇠를 갖다 대는 듯한 끔찍한 통증이 뇌리를 치는 순간 삼촌은 마침내 친구의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낼 수 있었다. 칼집에서 뽑혀 나온 단도는 새 집으로 들어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옆구리에서 피가 분출했다. 목에도 피가 터져 나왔다. 삼촌은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이등병의 비명도, 살이 찢어지고 벌어지는 소리와 칼이 뽑히는 소리, 그리고 그 빈자리를 피가 채우는 섬뜩한 소리와 삼촌의 얼굴에 튀는 이등병의 그 더러운 피까지. 이등병은 옆으로 쓰러졌다.

상병이 현관에서 삼촌의 권총을 성한 팔로 들어 올렸을 때 삼촌은 그 보답으로 상병의 날갯죽지에 칼을 박아 넣었다. 아까 총을 맞은 바로 그 부분에. 상병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 때 어디로 갔었는지 탈영병들을 이끌던 병장이 뒷문으로 뛰어 들어왔다. 적군 병장은 착검한 채 총을 쐈고 삼촌은 상병을 방패막이로 세웠다.

첫발, 빗나갔다.

두 번째, 죽은 상병의 다리를 스쳐 삼촌의 왼쪽 종아리를 맞췄다.

세 번째, 상병을 관통한 총알은 왼쪽 갈비뼈 바로 옆을 스쳤다. 삼촌이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가는 바람에 총알이 폐를 맞추지 못했다.

삼촌은 죽은 상병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고 그대로 병장에게 쐈다. 그러나 총까지 맞고 쓰러지던 와중이라 대부분이 빗나갔다. 하지만 딱 한 발은 기적적으로 병장의 복부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병장은 앞으로 넘어졌다.

삼촌은 상병의 어깨에서 다시 칼을 뽑아 들기 위해 손잡이를 잡았다. 근육에 힘이 들어가자 종아리와 복부에서 고통이 몰려왔다. 귓가와 뒤통수에서 피가 흘러내리면서 땀 대신 몸을 적셨다. 총성과 비명이 귀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하지만 삼촌은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칼이 상병의 몸뚱이에서 느릿느릿 뽑혀 나왔다. 죽은 육신에서 영혼이 떠나가기라도 하는지 시체가 경련했고 아직 뜨거운 피가 칼을 따라 몸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병장은 맨 처음 죽은 이등병의 머릿가에 쓰러져 기고 있었다. 삼촌은 마침내 상병에게서 칼을 뽑아 병장에게 절뚝거리며 다가갔다. 누이는 알몸으로 아까 뺨을 맞은 곳에서 그대로 울고 있었다. 뺨에 흐르는 눈물이 피와 섞인 채 바닥을 적셨다. 병장은 삼촌에게 무어라 말했다. 아마 자비를 구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까 말했듯이 삼촌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누이의 울음소리도, 병장의 구걸도.

이게 내 어머니와 삼촌의 이야기다. 내 출생의 비밀이기도 하고. 지금의 날 보면 당연한 설명이겠지만 어머니는 임신했고 낙태를 하지 못했다. 나중에 삼촌이 내 어머니가 임신한 것을 알았을 때 처음엔 낙태를 고려하셨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정신 건강과 몸 상태를 우려한 삼촌은 낙태를 포기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우려다. 날 낳고 어머니는 3일 만에 고열로 죽었으니까.

아무튼 삼촌은 꽤 재산도 많았던지라 날 그대로 거두어 주었다. 가끔 술에 취하면 날 아버지가 넷인 놈이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그 말을 들은 것이 아마 8살 때 무렵이었을 것이다.

다시 아무튼, 삼촌이 재산을 꽤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삼촌과 그 친구가 벌이던 사업 덕분이다. 그것이 무엇이고 하니 무기 노획과 불법 판매였다. 꽤 잘나갔던 모양이었다. 오스만, 키예프, 비엔나. 뭐 안 가보신 데가 없었고 잔뼈도 굵을 만큼 굵었다.

군대가 있고 전투가 있는 곳에는 삼촌과 그 친구가 있었다. 어떤 땐 군대에 다시 팔기도 하고,—적에게 넘어가는 거보다야 돈 주고 다시 흘린 무기를 돌려받는 게 더 낫긴 하다—어떨 땐 적에게 팔고,—삼촌과 친구에게는 아군과 적의 개념이 많이 가변적이었다— 뭐 그런 식이었다. 독일 제국과 강화 협상이 맺어진 후에는? 알다시피 그 뒤에도 전쟁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삼촌과 친구는 종목을 좀 바꿨다. 무기가 아니라 사람을 날랐다. 차르가 처형되고 아직 제국을 빠져나가지 못한 귀족들은 차고 넘쳤다. 백작님, 후작님, 장관님. 뭐 가릴 게 없었다. 국경 바깥으로 사람을 도망치게 해주면 러시아 내에서 남겨진 재산의 처분권은 삼촌과 친구의 것이었다. 친구가 죽어서 삼촌이 전부 다 가지게 되었지만. 그래서 삼촌과 친구가 바르나올까지 갔다가 고향으로 급히 돌아온 것이었다.

삼촌은 백군 대위였던 매부를 욕하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를 욕했다. 그가 결혼을 반대했었고, 내전이 터지자 잘 숨어있으라고 했던 경고조차 잘 이행하지 못한 그 어리석은 누이를 탓했다. 너무나 어리석었던 나머지 그가 반드시 지키고자 했던 누이를.

삼촌이 소유한 재산과 별개로 그는 꽤 검소하게 살았다. 물론 역설적이게도, 삼촌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들이는 돈은 낭비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만큼 풍족하게 소비되었다. 정치장교들과 당 관료들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고 그들의 식사값을 대신 지불하고, 인민에게 재산을 재분배하는 수고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지지 자금을 보내는 등 삼촌은 그의 경멸과는 별개로 이런 수고들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가 이렇게 재산을 지키고자 한 것과는 상반되게도 삼촌은 그의 자산을 즐기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배를 곯지 않는 수준에서만 선을 지켰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재산이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었을 수도 있고.

삼촌은 좋은 보호자는 아니었다. 삼촌은 날 미워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이성과 감성과 타협한 끝에 나를 무관심하게 대하기로 했다. 얼마나 무관심한가 하니 내가 입대하겠다고 하자 알아서 하라고 할 정도였다.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내가 입대하고 3개월 후, 삼촌은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리고 9개월 후, 나치가 러시아를 침공했다. 대조국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끔찍했다. 그리고 나는 주코프 장군을 따라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를 같이 방어한 운이 없는 놈 중 하나였다. 운도 지지리 없어서 살아 남아버렸다.

나에게 어떤 대령이 찾아온 건 1949년이었다. 대위 진급을 며칠 앞두고 있었던 때였다. 그는 자신의 소속을 그냥 인사과라고 둘러댔다. 그는 자신을 더 소개하는 대신 나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군에 입대했는가에 관한.

그는 가죽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체격이 다부졌고 소매에 가려져 거의 보이지는 않았지만, 손등에서부터 안쪽으로 어떤 흉터가 길게 나 있었다. 코뼈가 부러진 적이 있는지 코가 약간 뒤틀린 듯한 모양새였고 오른쪽 귓불이 사라져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인사과에서 나온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는 나에게 긴장을 풀라는 듯이 웃으며 매우 고압적인 자세로 질문을 날렸다.

"자네 아버지가 대위였더군? 자네도 대위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고."

그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는 내 침묵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씩 웃으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는 담뱃갑을 내 쪽으로 내밀었지만 난 사양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만족스러운 콧소리와 함께 담배 연기를 내보내며 그는 질문을 이었다.

"군인의 아들이 다시 군인이라, 당이 원하는 현상이지. 자네가 바로 그 표상이야. 또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공훈도 있고 말이야. 어떤가, 중위? 조국을 위한 전쟁에 나가 싸운 일이 자랑스럽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살아남은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지. 하지만, 자네는 조금 특별하네. 자네 아버지도 대위지. 그런데 아버지의 군은 아들의 군과는 조금 다른 것 같더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변명할까? 해명할까? 구걸할까? 나에게 어떤 걸 원할까?

"혈통이라는 건 많이 구시대적이면서 골치가 아픈 문제야. 보통 당과 붉은 군대는 이런 골치 아픈 문제들은 그냥 치워버리는 걸 선호하지. 저 멀리 차가운 지옥으로 보내거나, 아니면 땅속 깊은 곳의 뜨거운 지옥으로 보내버리거나."

난 무어라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손을 흔들어 날 제지했다.

"어떻게 알았냐는 식의 질문은 거절하지. 그리고 아직 내 말도 끝나지 않았네, 중위."

그는 잠시 담배에 심취한 듯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었다.

"자네를 치워버리는 건 너무 쉽네. 자네도 잘 알다시피 이런 식으로 처리되는 게 자네가 처음도 아니고. 사실 내가 이렇게 찾아올 이유도 없어. 서류 한 장, 담당자 서명 두세 명 분만 확보하면 자넨 사라지니까."

대령은 웃으면서 말을 하다가 갑자기 몸을 숙였다. 그리고 날 노려보며 경고했다.

"내가 이렇게 지금 장광설을 푸는 것은 자네한테 경고하기 위함이야. 지금부터 내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라는 경고. 지금 자네의 대답에 따라 자네의 처분이 결정될 테니까."

총살일까? 교수형일까? 노역형일까?

"이고르 타르바초프 중위, 자네는 사란스크에서 물자 수송을 맡았었고, 나중엔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에 참전했지. 그 후 민스크까지 갔다가 독일군 보병에게 부상을 당했고. 참 이상해. 왜 충성스럽지? 자네는 왜 참전했나? 자네 아버지는 백군이었어! 자네 아버지를 죽인 게 바로 붉은 군대였는데, 왜 조국과 군대에 충성했지?"

대답해야만 했다. 단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던 내 입대 이유를 처음으로 밝혀야 했다.

"..제 어머니는 강간당하셨고 전 그 덕에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죽은 백군 대위는 제 아버지가 아닙니다. 적군 탈영병 4명이 제 아버지죠. 전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억이 없습니다. 조국과 군에 대한 원한도 없고요. 저 또한 그런 혼란 속에서 생겨난 평범한 아이 중 하나였으니까요. 전.. 전, 전 그저 막고 싶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요. 조국을 안정되게 지켜 혼란이 생기지 않게 막고, 똑같은 일이 양쪽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못하게 막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입대했고 참전했습니다. 정작 독일군이 몰려올 때는 후방에 있었고 베를린엔 가보지도 못했지만요."

대령은 고개를 기울였다. "도덕적인 이유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충성심은 내 해명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도덕적인 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영웅주의거나 아니면 강박증일 수도. 이제 주도권은 다시 대령에게 넘어갔다.

"나라를 지킨 다라, 흠."

대령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더니 대뜸 다시 말을 걸었다.

"내 말 잘 듣게. 내가 알아냈다는 것은 다른 자들도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다는 거야. 자네의 목숨을 구제하려면 자네가 사라지는 게 최선이겠지."

나는 대령의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살려주겠다는 건가?

"제대하고 민간으로 물러나라는 말씀입니까?"

"아니," 난 더 크게 당황했다.

"조금 더 엄중한 기밀이 엄수되는 곳으로 사라지라는 거지. 나라를 안정되게 지키고 싶다고 했나? 지금 우린 전쟁 중이야. 알고 있나, 중위?"

"전쟁 중이라는 말은-"

"철의 장막 바깥과 그 안에 말이지. 이 전쟁의 전선은 철의 장막과 국경을 가리지 않고 전세계를 가로질러. 이념과 인종, 국가를 구분하지 않는 공통의 적이 우리 연방에도 존재하네. 하지만 대다수 인민은 그 사실을 모르지. 우린 언제나 이 전쟁에서 열세에 놓여있네. 적은 언제나 인민을 수탈하고 공포에 질리게 해 문명 사회를 파괴하려고 하고 있지. 우린 이 전쟁에서 국가를 수호하고 인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네."

대령은 다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난 그의 말을 거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떤가, 중위. 보이지 않는 전쟁에 다시 참전하고 싶은가? 조국을 수호하고 인민을 보호하고 이념을 지키는 전쟁이네."

그때의 난 분명 내 눈앞의 대령을 미친놈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백군 대위의 아들에게 그런 기밀을 풀면서 새로운 전쟁에 참전하라고 권유하는 걸 보면 분명 미친놈일 것이다. 그리고 나도 미친놈일 것이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환영하네, 대위." 대령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며칠 후 나는 대위 진급과 더불어 총참모부 정보총국 정신전자공학 부서Psychotronics로 전근됐다.

그 뒤 시간이 흘러, 1980년, 정보총국 P 부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찾아냈다. 아니,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틀렸다. 1982년, 정보총국 P 부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크라츠네야루츠크-17의 이름으로 만들어 냈다. 그리고 난 그곳의 수비 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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