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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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7+x

크라츠네야루츠크-17
제2장

1981년 12월 3일
폴란드 그단스크시 레닌조선소 파업 이후 475일
동맹 80 작전 개시 약 48시간 전
동독 국가보위부 제25분견국 안전가옥, 오데르-나이세선 어딘가

내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귀한 후 정보총국은 나를 동독으로 보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정보가 들어오기는 했기에 나는 딱히 그 명령에 의구심을 품지는 않았다. 물론 동맹 80 작전을 알게 되었을 때는 조금 놀라기는 했다.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폴란드라고? 1968년의 프라하를 재현하고자 하는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결정과 그의 건강에 걱정이 안 됐다고 한다면—서기장의 건강이 심히 우려스럽다는 것은 이제 인민도 널리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뭐 어떻게 하겠나. 가는 수밖에 없었다. 1979년에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야 했던 수 만 명의 군인들에게 선택권이 없었듯이 나 또한 선택권이 없었다.

날씨는 꽤 괜찮았다. 조금 쌀쌀한 수준이었지만 아프간에 그 저주받을 산맥의 들쭉날쭉한 일교차에 비하면 독일의 날씨는 정말 평온한 수준이었다. 시차가 조금 걱정되었었는데 모스크바에선 겨우 이틀 정도만 머물렀었는데도 몸이 받아들이지를 못했었다. 그러나 의외로 독일에서는 시차가 그리 느껴지지 않았다.

공항에서 나를 맞이한 건 자신을 마쿠스라고 소개한 동독 슈타지 요원이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제25분견국 요원이었다. 그는 어두운 갈색 머리카락에 장신이었고 이목구비가 깊었다. 그는 나이에 비해 여전히 강건해 보였다. 마쿠스 요원은 과묵한 편이었는데 그래도 내가 독일어로 어색하게 말을 거는 것에 친절히 대답해 주곤 했다.

안전가옥에 도착한 건 3일 자정쯤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막심을 만났다. 막심 부르크스키 요원.

"그레고리 알렉세이노프입니다. 볼코프 요원이라 불러주세요."

간단하게 소개를 끝낸 후 나는 가옥을 조금 둘러보았다. 동독 요원들은 총 4명에 소련 요원은 나와 막심, 이렇게 둘이었다. 작전까지 할 일이 없어서 서로 눈치 보며 빈둥거리는 분위기였다. 가옥은 2층짜리 별장으로 위장하고 있었는데 1층은 부엌과 거실이 있고 2층에 각 숙소가 있는 형태였다.

나도 딱히 그들과 별로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난 그냥 침대로 향했다. 잠이 홍수같이 밀려왔다. 시차가 안 느껴지기는 개뿔, 진정한 시차는 침대에서 느껴지는 법이다.

꿈을 꾼 건 분명했는데 무슨 꿈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기조각과 불타는 전차 따위의 성가신 꿈이었다. 시끄럽게 덜덜거리며 공회전을 하는 무한궤도와 암굴 속에서 끈질기게 빗발치는 총알들도 등장했다. 그리고 구덩이 속에, 그 끝이 보이지 않던 구덩이 속에 그것들이 나타났다. 입에서 쓴맛이 느껴졌다. 무슨 꿈을 꾼 건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화창한 아침이었다. 빌어먹을. 내가 방 문을 열었을 때 막심 부르크스키 요원이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일어나셨군요?" 그가 재밌다는 듯이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는 약간 민망해져서 그에게 물었다.

"다 일어났죠. 아침도 각자 먹었고요. 지금은 제 할 일을 할 겁니다."

"제가 좀 늦게 일어났나 보군요."

"아침 먹기는 아직 안 늦었습니다. 부엌에 아직 찬거리가 남아있을 거에요. 커피포트가 좀 녹슨 거 같은데 그래도 아직은 제구실을 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방문을 닫고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혹시 안 불편하시다면 같이 커피나 마시죠." 부르크스키 요원이 같이 계단을 내려가면서 말했다.

"아, 물론이죠. 저도 늦은 아침 혼자 먹기는 조금 눈치 보이던 차였습니다."

그렇게 부엌에 들어갔을 때 커피포트는 마쿠스 요원의 손에 들려 있었다.

"볼코프 요원?" 그렇게 내 늦은 아침 식사는 세 남자의 담소로 바뀌게 되었다. 아마 이 둘은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하던 차에 날 발견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프간 이야기도 해주실 수 있습니까?" 막심이 물었다.

"화창한 아침에 할만한 이야기는 못됩니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어쨌든 지금 작전과 비슷한 목적으로 파병된 거였죠?" 막심이 강하게 호기심을 드러냈다.

나는 잠시 말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이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 싶었다.

"네, 사실 그렇죠. 무자헤딘이 소지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상 존재들을 파악하고 가능하면 그것들을 탈취하는 게 제 임무였습니다."

"어땠나요?"

"처참했죠. 아프간 정부는 무능했습니다. 그들은 도움이 안 됐고 저나 동료들은 맨땅에서 시작해야 했습니다. 총탄 세례를 뚫고 그들의 아지트로 들어가서 뒤지고 도망치고. 그걸 반복했습니다."

"성과는 있었나요?"

그의 질문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질문의 대답은 여기까지만 해야 한다.

"흠, 어쨌든 폴란드에서는 그런 곤란은 아마 겪지 않으실 겁니다."

마쿠스 요원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폴란드 군부가 능동적이면서 효율적으로 이상 존재들을 활용할 가능성은 적으니까요. 만일의 충돌은 군이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 우리는 당국 협조만 잘 받으면 됩니다."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지금껏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던 마쿠스 요원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나와 막심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와 내가 보내는 의아한 시선에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다시 폴란드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제 아버지는 1939년까지 군인이었습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전사하셨고요. 이제 아들인 저는 동독군과 함께 다시 폴란드로 들어가는군요."

"소련군도 함께죠." 나는 조용히 덧붙였다. 이제 보니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1968년 프라하를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1939년의 2차 세계 대전을 재현하려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다는 건 펠릭스 제르진스키가 폴란드계라는 것만 봐도 더하죠. 그 사람 덕분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생겨난 거 아닙니까."

마쿠스 요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고개짓 이후로 때늦은 아침 식사는 침묵 속에 잠겨 들었고 조용히 끝났다.

소식이 들려온 건 자정 때였다. 나는 지하실에 작은 사격장 시설과 당구대들이 있는 걸 발견하고 막심과 내기를 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물론 다른 요원들도 합세하고 있었다.

막심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그도 동맹 80 작전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우려와는 별개로 그는 작전이 승인된 이상 그대로 진행되기를 원했다. 이런 중대한 결정을 내린 이상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 옳다고, 무르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이미 눈치를 채고도 남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갑자기 꽁무니를 빼면 얕잡아 보여지는 거 이외의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더군다나 폴란드 당 지도부가 진압에 실패한 이상 더 놔두었다간 곪아드는 것 외에는 수가 없습니다. 그쪽 군부에도 작전이 전달된 이상 끝까지 밀고 나갈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중앙 정부의 권위를 생각해서라도 이건 끝까지 밀어붙여야 합니다."

막심이 열변을 토하고 있던 와중 마쿠스 요원이 지하실로 뛰어 내려왔다. "취소됐답니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작전 말입니다, 작전!" 그가 독일어로 외쳤다.

폴란드로 소련군 15개 사단, 체코군 2개 사단, 동독군 1개 사단이 진주해서 폴란드 전역에 퍼진 불법 노조들을 강제 해산하고 레흐 바웬사를 비롯한 반체제 인사들을 체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동맹 80 작전은 실행일 자정에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명령으로 취소되었다.

1939년의 2차 세계 대전과 1968년의 프라하는 재현되지 못했다. 막심은 부루퉁한 표정으로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서기장의 결정과 막심의 반응에 딱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다시 든 생각은 이번엔 정보총국이 나를 어디로 보낼까 하는 의문이었다.

당연히 정보총국은 계획이 다 있었다. 1982년 3월, 나는 리무진 ZIL을 타는 영예를 누리며 크렘린에 입성했다. 어둡고 깊은 크렘린 속 미로에서 나는 참고인 자격으로 한 회의실에 들어갔다.

몇 분 뒤의 회의실 모습은 가관이었다. 별이 가득했다. 중령, 대령, 준장 그리고 그 이상의 장성들이 있었고 KGB 국장들이 있었다. 또 내가 감히 고개를 들어 바라볼 수조차 없는 높으신 분들이 회의실의 긴 테이블에 늘어져 있었다. 우스티노프 국방부 장관이 악수를 끝내고 자리에 착석했다.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실 조명이 꺼지고 프로젝터가 켜졌다. 담배 끝에 걸린 불이 어두운 회의실을 부유했다. 두껍고, 주름 잡히고, 단 한 번의 서명으로 수 만 명을 사지로 내몰아버린 손가락들 사이로 담배가 낀 채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담뱃재가 떨어졌고 연기가 프로젝터의 빛을 흐렸다.

프로젝터는 여러 번 장면을 전환했다. 오염되고 낙후된 광산 도시들과 석유 채굴장, 그리고 역시나 낙후된 공업 도시들, 동시베리아의 늪지대와 유대인 자치구 등 연방의 곳곳을, 또 이 회의실에 앉아 있는 높은신 분들이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리고 가볼 생각조차 없는—곳이 사진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기이하게 변형돼버린 그 사람들을 보여주었다.

개중엔 내가 아는 곳도 사진으로 나왔다. 아프가니스탄이었다. 회의 진행자가 설명했다. "이곳은 아프가니스탄 바다흐샨주 노샤크산입니다. 여기 볼코프 요원이 촬영한 곳이지요." 저 망할 놈이 나를 가리키며 손짓했다. 안 봐도 뻔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높으신 분들이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콜라 반도부터 캄차카 반도까지 연방 전역에 적이 퍼져있었다. "암덩이 같군요." 한 KGB 국장이 지도를 보며 평했다.

지역 범죄 조직과 결탁, 공권력 약화, 각종 범법 행위, 지정학적인 허점을 노린 심각한 위협, 외부 조직들—그 중에서도 자루SCP 재단칼데라세계 오컬트 연합—의 개입 우려 등등

"—이러한 안보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여기 나와 계신 콘스탄틴 사르코프 박사가 설명할 겁니다."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나는 콘스탄틴 사르코프 박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키가 작고 등과 목이 약간 굽어 있었는데 하반신이 길어 묘하게 기형적인 느낌을 풍겼다. 머리가 좀 벗겨져 이마가 프로젝터의 빛을 받아 빛났고 얼굴에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박사는 긴장했는지 손을 좀 떨었고 입가에서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는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그는 나와 같은 P 부서 소속의 연구원으로 콜라 반도의 사르킥 부족들을 연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이 '육공예' 혹은 '혈술'이라 부르는 이상 생체 공학은 잠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다고 말했다.

그는 꽤 긴장한 것과는 별개로 차트와 수치들, 심지어 표본과 그 해부 과정까지도 보여주며 자신의 주장을 신빙성 있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인위적으로 노화를 늦추고 자신의 신체를 변형시키는 이런 기예들은 지금까지 탄압받고 불태워졌습니다. 이것들의 잠재적인 가치에도 불구하고요. 이제는 이들을 연구해서 군사적, 의학적, 경제적 이익을 이끌어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서도 콜라 반도와 시베리아에서 보이는 양상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들어 이러한 차이들을 국외 사례들과도 대조 분석하면서 어떠한 교리적, 이상적 차이가 있는지 체계적으로 알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KGB 국장도 이에 거들었다. "로마, 파리, 뉴욕 등지에서도 비슷한 신앙 체계를 공유하고 있는 소집단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타 조직과 서방 정부들도 저들을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잠자코 있던 우스티노프 국방부 장관이 물었다. "어떤 지원을 바라나, 박사?"

"체계성을 원합니다." 박사가 흥분해서 말했다. "이상 현상이 발생하면 연구원과 군인을 몇 주씩 파견해 조사시키고 복귀하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산발적으로 퍼진 소규모 연구소들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저는 이런 암덩이와 같이 연방 곳곳에 퍼진 것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중앙 연구소를 원합니다."

박사의 발언 시간은 끝났다. 프로젝터는 아직도 사진들이 남았는지 경찰과 군인들을 공격하는 각종 괴물들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내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견한 것들도 있었다. 저런 것들에게 찢겨 죽은 경찰과 군인들과는 별개로, 고위 관료들은 꽤 저것들을 흥미롭게 여기는 눈치였다. 몇몇 장성들은 내게도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나는 최대한 성심성의껏 그들에게 대답했다.

회의가 끝났다. 꽤 긴 시간을 들인 것과는 별개로 회의는 별다른 결론을 도출시키지 못했다. 근시일 안에 2차 회의를 재개하리라는 것만이 유일하게 확정적인 결론이었다. 물론 나는 그 회의에 초대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 회의의 결말을 안다. 1982년 4월, 나는 케메로보주에 소재한 비밀 군사도시 크라츠네야루츠크-17에 배치되었다. 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내가 모조리 쏴죽여야 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만들게 되었다.

« 제1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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