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사냥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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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국제공항은 어제 하루 종일 비가 내린 탓인지 공기가 끈적했다.

"그래. 푹 쉬다 오게나. 임자 곁에는 언제나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얼핏 듣기에는 따뜻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사람을 살덩이로 만들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않는 끔찍한 집단의 대표가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중년의 사냥꾼에게 하는 말이라면, 그 의미는 크게 달라졌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렇기에 지쳐버린 사냥꾼, 서지후는 태연함을 가장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눈 앞의 괴물은 자신의 원래 계획을 알아 채자마자 자신을 죽여버린 뒤 실험체로 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서지후 자신이 괴물을 사냥하는 사람이었다면, 마스터는 사람을 사냥하는 괴물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마스터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것이었다.

비행기에 탑승한 후 그는 비행기의 창문을 통해 하늘의 풍경을 바라봤다. 마닐라의 모습이 매우 작게 느껴졌다. 퍼스트 클래스의 편안한 좌석에 앉아서 감에도 불구하고 서지후는 온 몸의 긴장을 풀지 못했다. 지난 10년간 동남아시아에서 몸에 박혀버린 버릇이었다.

"기내식은 어떤 걸로 드릴까요?"

"소고기로 주십시오."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마찬가지로, 상냥한 웃음을 짓는 승무원의 모습도 서지후에게는 생소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친절하게 접객을 하는 승무원의 모습이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순진한 초식동물 같다고 느꼈다. 그의 세상과 다르게 사람들은 너무도 연약했다. 그는 12시간에 가까운 비행 시간 동안 단 한숨도 자지 않았다.

"한국이라."

서지후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신의 고향이자 꼭 성공해서 돌아오겠다고 다짐한 곳. 그러나 그는 푹 고개를 숙인 채 인천공항을 빠져나갔다. 아무리 봐도 금의환향이라고는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이고, 얼굴이 반쪽이 되어버린것 좀 보게.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으면…"

"오랜만입니다."

"한국엔 언제 들어왔는가? 사냥꾼 짓은 이제 완전히 그만둔겨?"

"네."

"아이고, 한국에 들어왔으면 연락을 하고 그래야지. 삼촌한테 아무 말도 없이 들어오다니 섭섭혀. 그래도 피붙인디."

"죄송합니다. 처리해야할 일이 좀 있어서 경황이 없었습니다."

"그래. 이제라도 연락했으니 다행이지. 잘 다니던 회사는 왜 그만둔겨?"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겨. 무뚝뚝하게 굴 것 없어. 편하게 애기 해."

서지후는 얼굴을 찌푸렸다. 20년전, 아직 눈가에 주름이 없던 삼촌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언제나 술에 취해 아내를 때리던 삼촌이 살가운 웃음을 지을 때는 뭔가 바라는게 있을 때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삼촌은 서지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흉한 앞니를 보였다. 삼촌은 이제 노인이 다 되었다.

"부탁할게 하나 있다."

"뭡니까."

"그, 뭐시냐. 사냥을 좀 해 줘야것다. 마을에 가축들이 웬 괴물한테 피를 빨아먹혀서 씨가 마를 지경이야."

"삼촌. 사냥이 싫어서 도망쳐나온 사람한테 사냥을 시키는 건 대체 무슨 경우입니까."

"허.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고 그런디야?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고, 겸사겸사 지후 너가 사냥꾼이기도 하겄다 그런거지."

"안됩니다."

사냥꾼은 절대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왜 삼대천이 한국을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렸겠나. 이제 한반도에 이로운 영물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대부분이 이번 사례처럼 기껏해야 농촌에서 소 피나 빨아먹는 미물들 정도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잡아도 돈이 안된다.

"그런 건 정부에게 맡기는 게 편할 겁니다. 연락처를 드릴 테니 여기다 연락하세요. 나랏돈으로 하는 거라 돈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서지후의 거부에 역정을 내던 노인의 표정도 그제야 풀어졌다.

"고맙네."

"그나저나 은혜는 잘 지냅니까? 연락을 안 받던데."

이게 본론이었다. 다시 보기 싫었던 노인네의 낮짝을 굳이 보러 간 이유는 그의 여동생 때문이었다. 해외로 떠날 때도 가장 마음에 걸렸었고, 처음에는 편지도 주고받았으나 10년 전 즈음 언젠가부터 연락이 끊겼었다.

그러자 노인의 눈이 흔들렸다.

"은혜 그 가시나는 우리한테 폐 끼치기 싫다고 나가브렀다. 벌써 10년 전이여."

"그걸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었습니까?"

"나가겠다는데 내가 뭘 어쪄. 가끔 연락은 하는데 연락처라도 줄게. 내가 줬다는 말은 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서지후는 연락처를 받자마자 자리를 떳다. 하나뿐인 여동생을 빨리 만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다행이도 서지후는 동생과 연락이 닿았다. 그녀는 구룡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은혜야."

"…응. 오빠도 오랜만이네."

20년만에 보는 여동생은 눈빛이 표독스러워졌다. 서지후가 기억하던 동생은 순수한 강아지 같은 모습이었는데, 지금의 그녀는 굶주린 살쾡이 같았다.

통통하고 귀여웠던 볼살은 하나도 없고, 눈 밑의 다크서클은 고된 삶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삶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앗아간 듯 했다.

"여기는 애 교육 때문에 온 건가?"

"그런 셈이지. 한국에 집은 구했어? 오늘은 자고 가."

서지후는 남편의 행방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좁디 좁은 집에 가장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사냥꾼으로서 주변의 상황만으로 정황을 추측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오빠를 봤다며 웃는 여동생을 보며 서지후는 이를 갈았다. 죄책감 때문이었다.

여동생은 특별했다. 정확히 무슨 힘인지는 모르겠으나 유난히 동물들이 그녀를 따랐고, 영물들이 그녀를 보호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의 능력을 이용하려고만 했고, 그게 아마도 그녀가 도시로 온 이유였을 것이다. 도시에서는 아무도 그녀를 모르니까.

"오빠가 보내줬던 돈으로 서울에 올라왔었어. 그리고 그이를 만났지."

"…그 사람은 어디 있어?"

"모르겠어. 그리고 사람도 아니야."

"뭐?"

"처음 본 사이였는데 정말 이상하게 끌리더라고. 그땐 이게 사랑인가보다 싶었어. 내가 볼 땐 여러가지로 멋있는 남자였거든. 나중에서야 자기가 호랑이임을 밝히더라고. 그런 그릇을 가진 사람은 처음이었다나? 그리고 그냥 사라졌어. 내가 임신했다고 말한 그날."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는 호랑이라면, 수백년을 살아온 산군이거나 인간을 엄청나게 잡아먹은 악귀 붙은 범일 것이었다. 서지후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평범한 삶을 포기한 자신과 달리, 동생은 평범한 삶을 살아갈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영물을 끌어들이는 그 능력이 또 그녀의 삶을 망친 것이었다.

"찾아 볼 생각은 했어?"

서지후의 목소리는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서은혜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묘한 변화였으나, 그의 목소리에는 분명한 살기가 느껴졌다.

"글쎄. 노력은 해봤는데 못 찾겠더라고. 지금은 포기했어."

"……알았다."

그는 사냥을 할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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