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를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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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로드. 잠깐 이리 와봐.”

로드 박사는 스트링 박사의 말에 몸을 돌렸다. 바퀴가 돌아가는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최근 재단 재정으로 구입한 전자동 휠체어가 스트링 박사 쪽으로 돌아섰다.

“뭐야. 피곤하게.”

“그게 말이다, 이제 좀 있으면 그레이스 씨 생일이잖아.”

“어쩌라고.”

“선물이라도 드릴까하고.”

“선물?”

로드는 기묘한 표정을 짓는 스트링을 멍하니 쳐다봤다.

“뇌물이냐?”

“정답. 저번에 우리가 재단에 입사하기 전에 사령부 소속인 데반 씨의 생일 파티가 있었나봐. 그때 파티를 열었는데, 조각상까지 동원해서 놀래켰다고 하더라고. 몇 명은 그걸로 징계까지 먹었는데, 아무튼 그 때 잘 보여서 이득 챙긴 사람이 꽤 많았나봐. 우리도 그렇게 줄서자고.”

“시끄러워. 선물주려는 사람들의 진심을 뇌물로 왜곡하는 정신 나간 놈이랑 말을 섞는 내가 바보지. 나 먼저 간다.”

“아, 왜 이러냐아-.”

레버를 당겨 기숙사로 이동하려는 로드의 휠체어를 잡아당기며 스트링이 매달렸다.

“나도 순수한 마음이라니까. 다만 선물에 약간의 정성을 넣는 것뿐이라고.”

“왜 하필 그레이스 씬데? 그 오블리비언한테 줄서서 뭐 얻어먹는 거라도 있냐?”

반항하기도 귀찮아진 로드에게 스트링은 씩 웃었다.

“요즘 직원실에서 얘길 들어보니까 SCP 문헌 정보 열람권의 등급 부여를 그레이스 씨가 전담하는 모양이야. 원래는 그럼 직무태만이지만, 사령부는 아무래도 바쁘다는 핑계로 그레이스 씨한테 위임한 모양이더라고.”

“또 쓸데없는 광고 때려서 본부 사람들이랑 작정하고 돈 벌 생각이나 하면 죽-.”

“자자, 그런 얘긴 집어치우고, 우린 일단 선물 준비하러 갑시다-.”

강제로 휠체어를 밀어서 어디론가 달려가는 스트링 앞에서 로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

“근데 말이야.”

“뭐?”

“꼭 선물을 먹을 걸로 줘야하냐?”

로드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에 놓인 식기 재료들을 쳐다봤다. 핸드믹서, 체, 냄비, 각종 조미료 통, 밀가루 통, 나이프 등이 기지의 식당 조리대 위에 즐비하게 늘어서있었다.

“당연하지. 넌 여자를 모르니까하는 소리지만, 원래 여성들은 정성이 담긴 작은 선물을 가장 좋아하는 법이야. 게다가 먹는 거라면 환장하지.”

스트링은 케이크의 시트 재료를 그릇에 모두 넣고 휘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레이스 씨는 케이크를 무진장 좋아하다던데.”

‘어디까지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만들어줘야 맛있는 거지, 멍청아.’

로드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생크림이 담긴 그릇을 노려보았다.

“어, 그거. 네가 지금 보고 있는 거. 그거 좀 저어줘.”

“내가? 이걸 하라고? 가장 중노동을?”

“시트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아냐? 재료의 비율을 생각하며 올바르게 섞은 뒤 반죽을 완성시켜 밥통에 넣고 알맞은 온도에 구워야-.”

“아, 알았어. 시끄러워.”

로드는 한숨을 내쉬고 핸드믹서를 들어 올려 천천히 그릇 안에 담긴 생크림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동안 스트링은 휘파람을 불며 떡이 된 반죽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음- 음음-. 블루베리 케이크-. 케이크-.”

한동안은 말없이 둘 다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나갔다. 하지만 로드는 앉은 상태에서 일을 하자니 허리와 팔이 여간 아픈 게 아니었다. 뻐근한 팔의 근육을 손으로 주무르며 잠시 쉬던 로드는 문득 스트링이 반죽을 완성해놓기만 하고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은 채 책을 읽고 있는 걸 알아챘다.

“야. 넌 나한테 다시키려고 책이나 보고 있냐? 빨리 반죽 안 만들어!”

“아, 기다려봐. 지금 조리법 보고 있잖아.”

“엉?”

로드는 스트링이 집중해서 중얼거리며 읽고 있는 책의 표지를 보았다.

그리고 하얗게 질렸다.

“야…… 너 설마…… 그거 그 할머니표…….”

“…… 해서 스테로이드로 색감을 준 반죽에 15ml의 시안화칼륨을 첨가한다……”

스트링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어디에서 난건지 모를 병 하나를 가운의 앞주머니에서 꺼내들었다. 그런 뒤 안에 든 내용물을 반죽에 모두 부은 뒤 밥통에 반죽을 집어넣으려 하자,

“이 미친놈아!!!”

로드는 전자동 휠체어를 손으로 밀어 날아가 반죽을 집어던져버렸다.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반죽 그릇은 창문을 깨고 날아가 버렸다. 로드는 스트링의 손에서 책을 빼앗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사람 하나 죽일 셈이냐!”

“뭐야, 왜 그래? 허가도 받았고, 보통 할머니표 조리법에 나오는 조리법은 대충 안전하다고.”

“대충이잖아, 대충! 시안화칼륨이 들어가는데 그딴 걸 먹으라고 주는 게 제정신이야? 이번 기회에 암살이라도 해서 공석을 만들려는 속셈이라도 있냐고!!!”

씩씩거리며 금방이라도 휠체어에서 튀어나와 멱살을 그러쥘 듯한 로드를 보며 스트링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다구. 이 조리법대로 만들지 않으면 될 거 아냐. 젠장, 반죽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네.”

♬♬♬

조리법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식당으로 돌아온 스트링은 한동안 조용히 반죽을 하기 시작했다. 수상쩍다는 눈빛으로 스트링을 쳐다보며 생크림을 젓던 로드는 스트링이 반죽을 끝마치고 밥통에 반죽을 넣은 뒤, 자기 쪽으로 다가와 생크림을 물끄러미 쳐다보자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 또 뭐.”

“아니, 생크림은 원래 조금 차갑게 유지되어야 맛이 있지 않나하고 생각되어서.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 뭐, 그렇겠지 아마도.”

로드의 말에 스트링은 심각한 표정으로 식당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차갑게 유지해야 해. 그럼 냉동실에 넣어둘까? 아냐, 확 얼어버리면 그것도 곤란하잖아. 아이스박스에 넣어야하나? 그럼 중간 중간에 자꾸 확인하다보면 녹아버릴지도 모르지. 드라이아이스? 그걸 지금 당장 구하려면 귀찮은 절차를 거쳐야하는데……”

넓디넓은 식당을 스무 바퀴쯤 돌며 스트링의 걸음걸이가 빨라지자 로드의 생크림 휘젓는 속도도 덩달아 빨라졌다.

“아 진짜, 어지러워. 가만히 앉아서 좀 생각하면 안 돼?”

로드의 말을 들은 스트링은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앗 하고 외치며 밖으로 튀어나가 버렸다. 말도 없이 나가버린 스트링의 뒤로 로드의 외침이 공허하게 울렸다.

“어디 가, 임마!”

대답이 없자, 로드는 ‘저 빌어먹을 놈을 따라온 내가 말아먹을 놈이지’ 식의 라임을 구사하며 스트링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썩어먹을, 말아먹을, 갈아먹을, 태워먹을, 뽑아먹을……”

저주가 마침내 하늘에 닿아 스트링에게 벼락이라도 내려질 무렵, 스트링은 식당의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큼지막한 스티로폼 박스를 든 채 서있었다.

“방법을 알아냈어! 얘네를 쓰면 되더라고.”

“뭔데 그래.”

로드는 생크림의 끝이 붓처럼 휘는 것을 확인한 뒤 휠체어를 이동시켜 스트링이 바닥에 내려놓은 박스 가까이 다가갔다. 막 로드의 손이 닿으려하자, 박스의 뚜껑이 자기 혼자 살짝 들썩였다.

“……여기에 뭐 들어있지.”

“응.”

스트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안에서 작은 얼음덩어리 하나가 뚜껑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한 뼘밖에 되지 않는 인간형의 얼음덩어리가 자신을 올려다보며 손을 흔드는 걸 보고 질려버린 로드가 스트링에게 물었다.

“이거 얼음 인간 아니야? 어디서 났어? 아니 그보다, 왜 이렇게 작아?”

“다- 방법이 있지. 이거 구하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대상 자체는 아니고, 그냥 어둠의 경로를 통해 만들어낸 미니어쳐야, 미니어쳐.”

“젠장, 그래도 이건 SCP잖아! 들키면 징계 먹는다고!”

날뛰기 시작하는 로드를 진정시키려 스트링이 한마디 내뱉은 게 화근이었다.

“하하, 괜찮아. 증거를 없애면 되지. 이따 오븐에 그냥 넣어버리려고.”

그러자 작달만한 얼음 인간이 흠칫하는 게 로드의 눈에 들어왔다. 부들부들 떨며 박스를 흔들던 얼음 인간은 주변에 하얀 김을 내뿜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몸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으와, 커진다, 커져!”

“미친놈아, 이딴 걸 왜 가져왔는데!”

서서히 커지기 시작하던 얼음 인간은 어느덧 3 m 가까이 커져버렸다. 식당 안이 울릴 정도로 굉음을 질러대는 얼음인간은 거대한 주먹을 들어 로드와 스트링을 뭉개버리려 했다.

“으악! 죽어버려!”

로드는 그 때 눈에 들어온 소화기를 냅다 얼음 인간에게 뿌렸다. 회색의 소화 분말은 얼음 인간을 하얗게 덮어버렸고, 얼음 인간은 굉음을 지르며 천천히 녹아버렸다.

이윽고 주방 안에는 하얀 분말과 녹아버린 물이 흥건히 남아있을 뿐이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로드는 스트링에게 씹어뱉듯이 말했다.

“이제 SCP 하나라도 가져오면 죽여 버리겠어.”

“……네.”

♬♬♬

한참을 걸려 주방 안을 닦아낸 로드와 스트링은 시간이 어느덧 새벽 네 시가 다 된 것을 보았다. 소화제 투성이로 뭉개진 걸레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로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냥 내가 반죽 만들게. 넌 생크림이랑 데코레이션에나 신경 써라.”

“네, 네, 알겠습니다요.”

왠지 깐족거리는 듯한 스트링의 말에 울컥한 로드가 뭐라고 한마디 하려고하자, 스트링은 재빨리 크림을 그릇에 붓고 핸드믹서로 휘젓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혀를 찬 로드는 양손을 비비며 속으로 기합을 넣은 뒤 밀가루를 그릇에 붓기 시작했다.

스트링은 한동안 생크림을 얌전히 젓고만 있었다. 그러나 10분도 안되어 그 단조로움에 질려버린 건지, 믹서를 내던지고 크림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었다.

“또 무슨 상상을 하는 거냐.”

“아니, 크림을 어떻게 하면 믹서를 쓰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휘저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어.”

답답해진 로드가 다시 핀잔을 던지려 하자, 스트링은 벌떡 일어나 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보통 우리가 믹서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생크림의 점성이 증가해서 어느 정도 먹기 편하면서 그 신선도도 유지되고 또 케이크에 부었을 때 모양이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크림을 젓는 건데, 일반적으로 크림처럼 휘젓는 행위를 통해 점성이 생성되는 거라면 크림을 서로 충돌시키면서 서로간의 점성이 원활하게 생성되도록 하도록 하는 충격량이 세면 셀수록 생크림의 점성은 점점 더 효율적으로 증가할 수 있을 테고, 그렇다면 내가 그 방법을 사용해서 생크림의 점성을 보다 효율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면 시간도 아끼고, 체력도 아끼고, 비용도 아끼고, 맛도 내어서 그레이스 씨의 마음에 부합되어서 줄도 잘 설 테고, 결과적으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래잡고 로드 좋고 스트링 좋고. 그렇지?”

“……뭔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그래서 아까 박스를 가져올 때 이것도 가져왔지.”

그러더니 스트링은 등 뒤에서 나무 야구 방망이를 꺼내들었다. 뭔가 하고 유심히 쳐다보던 로드의 얼굴이 노래졌다.

“너 그거-.”

“이건 변칙 항목이잖아. 그렇지? SCP를 쓰지 말라고 했지, 재단 보관 물품을 다 쓰지 말라곤 안했으니까.”

그러더니 스트링은 냅다 허공에 아직 덜 저은 생크림을 날려 보냈다. 물컹, 하고 솟아오른 생크림 덩어리를 향해 방망이를 휘두르는 스트링을 보며 로드는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다.

“안돼애애애애애애애-!”

처덕, 하는 소리와 함께 방망이에 달라붙은 생크림은 곧 하나의 덩어리로 뭉치는가 싶더니, 사방으로 흩뿌려짐과 동시에 굉장한 탄성으로 부엌 이곳저곳으로 튀어 올랐다. 마치 격전이 벌어지는 전장과도 같은 소음이 식당 안에서 울려 퍼지며 사방을 흰색 생크림으로 물들여갔다. 머리를 감싸 쥔 채 고개를 수그린 로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너 죽여버리겠-.”

말을 끝맺기도 전에 단단한 철구 같으면서도 물컹물컹한 생크림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로드는 서서히 짙어져가는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은회색의 반짝거리는 표면으로 청결함을 자랑하던 기지 내 식당은 마치 코팅한 것처럼 하얀 생크림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멍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로드를 향해 기어간 스트링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생크림을 때려 맞추는 건 좀 과한 일이었지?”

“……”

“……생크림은 포기하고 그냥 케이크나 열심히 만들까?”

“……”

“……그냥 케이크는 사다 드리자…….”

“……청소는 너 혼자 하고 와.”

♬♬♬

며칠 뒤, 그레이스 ███████ 요원의 사무실로 블루베리 맛 케이크가 배달되었다. 파████란 상표도 그대로 붙어있고 가격표도 떼지 않은 섬세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레이스 요원은 그냥 피식 하고 웃어넘겼다는 풍문이다.

다만 ‘올리버 로드 드림’ 이란 이름으로 동봉된 선물 상자 안에 들어있던 플라스틱제 케이크 칼이 이상 특성을 보여 그레이스 요원을 한동안 당황시키며 일거리를 하나 늘려버렸다는 소문이 있다.

여담으로, 어찌된 일인지 기지 내 식당에서 발생한 수차례의 폭파 사건의 용의자로 로드 박사가 단독으로 지명되어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현장에 없었던 것도 아닌지라 상부에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없었던 로드 박사는 징계 후 농간을 부린 스트링 박사를 찾아가 [데이터 편집됨] 해버렸다는 소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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