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트 키넛 박사는 성큼성큼 복도를 걸어갔다. 자리에서 잡담하며 모여있던 직원들이 그를 곁눈질하며 수군거렸다. 제기랄, 마음대로 떠들어대라지. 그는 앞만 똑바로 쳐다보며 통로 끝까지 걸어가 문을 열었다. 간부 회의실을 둘러싼 테이블 정면에 자신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박사는 두말없이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의장이 지껄였다.
"키넛 박사, 이번 합동 작전의 보고는 듣고 왔겠지?"
"물론입니다. 전례 없이 성공적인 작전 아니었던가요?"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하지만 그게 이번 회의의 주안이 아니라는 건 알지 않나."
빌어먹을. 테이트 박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그로부터 이십분간 쓸데없는 논쟁에 휘말렸다.
"우리들이 연방수사국 요원들에게 밀린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요!"
가장 시끄럽게 주절거리는 늙은이 한 명이 소리쳤다. 테이트 박사가 반론했다.
"엘리트 요원의 양성에 심각한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은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세계 인구가 2/3로 줄었습니다."
"그건 비교 대상이 존재하는 시점에서 통하지 않는 변명이네, 박사. UIU는 고작 3년 만에 말도 안되는 수준의 성취를 보였어."
"그야 거기 간부로 보내버린 제 동생이 그만큼 능력 있다는 뜻이겠지요." 테이트 박사는 불쾌하게 대답했다. "그게 당신들이 원하던 바 아닙니까?"
"우리가 원하는 건 엘리트들이었소! 재단의 요원들이 역으로 소모적인 인력으로 간주되다니 완전히 상황이 뒤바뀐 게 아니오?"
늙은이가 삿대질을 하며 열을 올렸다. 테이트 박사는 그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패닝 박사는 스스로 떠나기를 자청했네. 논의와 상관 없는 얘기는 삼가지." 의장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꼭두각시 역할을 바랬다면 완전히 망한 겁니다, 박사님들. UIU는 이제 충분히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자리 잡았소."
"자네가 지금 할 소리인가?" 다시 늙은이였다.
"죄송합니다."
"연방수사국에게 견제 받는 꼴이라니. 큰일을 이뤘군, 박사!" 그리고 또 다른 늙은이.
"죄송합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지, 머저리 자식들아.'
"됐네. 오늘 회의는 이만 하지. 키넛 박사 자네는 자네 휘하 요원의 실수와 더불어 인원 교육·관리 부실에 대한 시말서를 작성하게."
"다음 회의의 안건으로 요원 양성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을 추천하겠소."
"동의합니다."
"당연한 수순이지요. 키넛 박사, 현장 요원 책임자로서 다음 회의에도 참석하도록."
재단의 간부들이 들여다본 적도 없는 종이를 들고 책상에 두드리며 가다듬은 뒤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테이트 박사는 아무것도 들지 않고 나갔다. 박사, 박사, 박사. 가짜 박사들. 개중에 반은 실제 학위라곤 테이트 박사와 마찬가지로 중졸이 전부일 게 분명했다. 그가 복도를 지나가자 하는 일도 없는 병신자식들이 다시 테이트 박사를 가리키며 쥐뿔도 없는 이야기로 쑥덕거렸다.
그는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발로 차 닫으며 소리쳤다.
"빌어먹을! 이럴 수는 없어!"
테이트 박사가 자신의 책상 위에 쌓여있던 서류 더미를 쳐서 흩뿌리려다 멈칫했다. 그는 대신 왼손 주먹으로 책상을 한 번 치고, 의자를 발로 찼다. 바퀴 달린 의자가 벽으로 굴러가 부딪혔다.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또 시말서입니까? 바깥에 박사님 이야기로 난리던데요."
"그래, 월급만 축내는 천애 고아 자식들. 어중간하게 진입하다가 총 맞고 뒈진 놈이 어떻게 내 책임이라는 거야?"
"아, 그런 일이군요." 레이번은 커피 한 캔을 테이트 박사의 책상에 내려놓고 의자를 다시 가져왔다.
"그건 엄연히 그 새끼 잘못이었다고."
"박사님 휘하의 요원이 죽으면 이제 다 박사님 잘못으로 보입니다. 잘못이라기보단, 어쨌든 박사님 작전 탓이요."
"입 닥쳐, 레이번."
테이트 박사가 커피를 집어들며 자리에 앉았다. 레이번은 종이 한 장을 책상에 더 올렸다.
"GOC 스파이의 개인 계좌 추적 결과가 이렇습니다."
박사는 종이를 집어들었다.
"혼자 기지 예산의 반을 벌어들였군."
"반은 좀 과장이죠."
"입 닥치래도."
"수신자는 과거 혼돈의 반란 중요 인사로 확인됐습니다."
"GOC가 혼돈의 반란하고 손을 잡았다는 소리는 하지 마."
"개인적으로 벌인 짓 같습니다."
"개자식이었군. 잘 죽었어. 팔아넘긴 건 뭐였지?" 캔 따는 소리가 났다.
"SCP 연구 자료입니다만, 중요하게 생각한 정보는 SCP-222에 대한 것인 모양입니다."
"복제인간 관이라고. 수족이 싸그리 다 죽더니 클론 군대라도 만들 생각인가 보군."
"거기에 대해서 말인데 단독으로 추적해보겠다는 직원이 있습니다."
"이만한 일을 단독 추적시키는 건 암만 생각해봐도 규율 위반이야. 뭐하는 놈인데?"
"W. 베이커. 전직 형사였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패닝 박사님이 떠나기 전에 밑에서 일한 경력이 있고요."
"뭐? 패닝이?" 테이트 박사는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좋아, 그놈한테 맡겨."
레이번이 입맛을 다셨다.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패닝이 뽑았던 놈인데 어지간히 알아서 하겠지."
"이거 연줄로 낙하산 탄 거나 마찬가지군요. 그리고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가 종이 한 장을 다시 올려놓았다.
"이게 뭔데?"
"스파이 사살 건에 대한 GOC 측 반응입니다."
테이트 박사는 문서를 읽다가 커피 캔을 내려놓고 레이번을 빤히 쳐다보았다.
"뭐…… 이게 무슨 적반하장이야?"
레이번은 눈썹을 들고 입꼬리를 한쪽으로 비죽 내밀었다.
"규약 위반이라는 주장이죠."
"이 놈이 먼저 잘못을 했잖아?"
"물론 연구 자료를 팔아치운 부분은 입 싹 닫고 있습니다."
"규약 따위는 엄마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해."
"그렇군요. 연합 본부에 찾아가서 그렇게 말해주시면 간부들도 기뻐할 겁니다."
테이트 박사는 이를 깨물고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또 뭐야?"
"좀 심각한 건데,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대니, 세상이 대체 왜 이렇게 돌아가는 거야? 제발."
"박사님이 들고 있는 GOC 측의 연락은 방금 막 들어온 최신 정보입니다."
"뭐라고?"
"간부들보다 박사님이 먼저 알았다는 뜻이죠."
"그게 왜?"
테이트 박사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책상 위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박사는 종이를 집어던졌다.
"이런 빌어먹을!"
"전달할 사항은 일단 끝났습니다만, 여기 좀 더 있어봐도 상관없겠죠."
"제길, 제길, 제기랄!"
레이번은 사무실 한 쪽에 놓여있는 소파로 갔다. 테이트 박사는 그를 노려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키넛 박사입니다."
"네."
"방금 보고 받았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 개자식이……"
"죄송합니다. 그가 우리 측 연구 자료를 빼돌리고 있던 정황이 명백합니다."
"아니요, 박사님, 충분히 발포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네."
"네."
"아니라니까요, 박사님. 충분히 발포할 근거가 있었습니다."
"조만간 보고서가 올라갈 겁니다."
"그렇겠죠. 그렇죠."
"네."
"뭐라고요?"
"네."
"회담이라고요."
"예, 물론이죠. 물론 저도 가야할 테죠."
"누구요?"
"연방수사국이 중재를 맡는다는 뜻입니까?"
"그렇군요."
"연방수사국의 위상이 그렇게 높아진 게 제 탓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동안 가만있던 우리 모두의 잘못이겠죠, 박사님."
"알겠습니다. 유념하도록 하죠."
"다시 회의 안건입니까? 맙소사. 물론 제 책임이 되겠죠?"
"고맙군요. 알겠습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레이번이 일어났다.
"반쪽짜리였지만 재밌는 녹취록이었습니다."
"패닝이 중재원으로 온다는군." 박사가 커피를 들이켰다.
"패닝 박사님이요?"
"망할 자식. 따지고 보면 요원들 비교당하는 걸로 내가 혼나고 있는 것도 이놈 때문이잖아."
"UIU가 대단히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려오던데요."
"패닝이 뭘 어떻게 한 건지 도저히 짐작도 안 가."
"재단의 골칫덩어리보다 원만한 운영 능력이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입 닥쳐, 레이번."
"적어도 패닝 박사님은 버리는 카드가 된 적은 없잖습니까."
"골칫덩어리의 비서로 낙점된 대니 G. 레이번이 할 소리는 아니야."
실실거리던 레이번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박사는 곧 사과했다.
"미안하군. 재앙 때의 이야기는 안 하기로 했지."
"아뇨, 괜찮습니다. 4년쯤 됐나요."
"연도 같은 건 기억나지 않아. 그때 러시아부터…… 아니, 소련이던가? 어렸을 적처럼 흐릿하군."
"그때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셨었나 봅니다. 어쨌든, 그러면 패닝 박사님과 만날 기회가 생기는 겁니까?"
테이트 박사가 캔을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아마, 얼굴이야 보겠지만 만나서 얘기할 시간은 없겠지."
"그렇군요."
"담배는 끊었을지 모르겠군."
"누굴 걱정할 몸은 아닐 텐데요."
"어깨 치료는 끝났어."
"물론 그러시겠죠."
그는 소파를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눈을 깜빡거리며 말했다.
"그만 가보죠."
"수고하게."
레이번이 손가락으로 서류더미를 가리켰다. "결제 다 해놓으세요."
"빨리 꺼지란 말이야."
레이번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테이트 박사는 빈 커피 캔을 쥐고 일어나 잠시 섰다. 패닝 박사가 식혀가면서 마시라고 얘기하던 것이 떠올라서였다. 그는 패닝 박사가 떠나기로 한 날을 회상했다.
"패닝, 뭐하는 거냐?"
"뭐하는 거냐니, 형."
"담배 끊었다고 했잖아."
패닝 박사는 휠체어에 기대고 반쯤 웅크린 자세로 팔꿈치를 허리에 받친 채 손에 들린 담배를 물고 있었다. 그는 눈썹을 들며 쾌활하게 말했다.
"일하는 동안 골머리 좀 썩였거든. 아빠가 싫어하시겠네."
"아버지 얘기는 하지 마라." 테이트 박사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래도 10년 이상 매달리던 일이 끝났는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않아?"
"10년이라고."
테이트 박사는 동생의 휠체어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이해가 안 되는군, 패닝. 네가 첩자 하나를 잡는데 10년씩이나 시간을 쏟을 리가 없어."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냐? 상대는 기지관리자였다고, 형. 누가 그걸 예상이나 했겠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하지 마. 요즘 무슨 생각에 빠져 사는 거야?"
패닝은 입에서 담배를 떼고 다른 손으로 테이트 박사를 가리켰다.
"오, 역시 현장 출신. 낌새 하나는 귀신같군."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래도."
테이트가 눈을 작게 뜨고 말했다. 그는 패닝이 담배를 다시 드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전부터 이런 생각을 한 적 있어."
잠시 뒤 패닝이 말했다. 동생이 정말로 입을 열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테이트가 놀라며 그를 돌아봤다.
"이 세상은 뭔가 이상하다…… 그런 생각. 형은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어?"
패닝이 테이트를 쳐다봤고, 테이트는 움찔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냐?"
패닝은 다시 담배를 물었다. 테이트가 그를 쳐다보며 끈질기게 기다렸지만 패닝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난 뒤 다른 소리를 했다.
"난 이제 UIU로 갈 거야, 형."
"뭐라고?"
테이트는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로 내뱉었다.
"연방수사국?"
"맞아. 거기."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연방수사국은 늙은이들의 무덤이라고!"
"지금까지는 그랬지. 내가 바꾸면 돼."
패닝이 자리에서 일어난 테이트 박사를 올려다 보았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패닝. 내가 지금 상부에 연락을 해서……"
"상부 결정이 아니야, 형. 내가 요청했어."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위쪽에서도 내 설명을 받아들였지. 적당한 하청 업체가 하나 생겨도 좋을 거라고 했더니 말이야. 꽤 고민하다가 납득하던걸."
테이트 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패닝 박사를 노려보았다. 패닝 박사는 시선을 천장으로 처리하며 그것을 받았다.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 거냐?"
박사가 말했다. 박사는 대답했다.
"주인공."
캔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테이트 박사는 휴지통에서 물러났다.
자리로 돌아가 앉은 박사는 책상 서랍을 열더니 꽉 찬 담뱃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는 잠시 그것을 만지작거리며 빤히 들여다봤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패닝. 종이 케이스에 새겨진 금빛 무늬가 형광등 불빛에 반사되어 번쩍였다. 뚜껑을 조금씩 열었다 닫았다 하며 그 무늬를 넋 놓고 쳐다보던 박사는 다시 담뱃갑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서랍을 닫았다.
책상 위에는 종이가 가득했다. 콧잔등을 문지르고 첫 서류를 집어든 박사가 두 번째 장을 보고 있을 때, 그의 책상 위에 놓인 전화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테이트 박사는 눈을 찌푸리며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