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쿨한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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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같은 미적지근한 오후였다. 에드윈은 곧 열릴 모임의 준비작업에서 잠시 풀려나 있었다. 그가 거의 주최하다시피 한 이번 모임에서는 그가 기필코 중요한 위치에 올라야만 했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외팔이였다고 업신여긴 그 모두를 위해서라도…. 그러나 그와는 달리 현재 그는 텅 빈 욕실 안에 들어가 욕조에서 몸을 좀 담그고 싶은 마음밖엔 없었다. 소냐가 차를 가져다주면 좋을 텐데.

모임. 사람들. 그리고 더 중요한 사람들.

이번에는 크로이 씨가 직접 오실지도 몰라. 그는 그 생각만으로도 소녀가 된 듯이 기뻐졌다. 그는 핏빛 경전의 기묘하고 싱그러운 사취를 맡았다. 이번엔 내가 엄청난 일을 해낼 거야.
에드윈 브란트 4세Edwin Brandt IV는 오래된 경전을 덮었다. 그 기이한 책에선 언제나 희미한 악취가 났다. 그는 그것에 감사하며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는 시계를 보았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점심이 지났다.

"점심이 지났군."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한 번 더 말하려다가 고개를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방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에드윈은 얼굴에 의아한 빛을 내었다. 무슨 일이 있기에 소냐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걸까? 그는 자그마한 유리 탁자에 경전을 내던졌다.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어느새 목구멍의 살점이 하나하나 도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소냐?"

에드윈은 자신이 젤의 검투 경기장에 내몰린 오로크가 된 것만 같았다. 이온Ion이시여, 내게 그의 힘의 반의반만이라도 주소서. 이런 정적은 의식을 거행하기 직전에만 느껴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서둘러 서랍에서 의수를 찾아 끼우고는 조심스레 서재를 거닐었다. 에드윈은 이 침묵의 성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만가지 흉악한 미래를 떨쳐내려 애를 쓰며 서재를 나섰다. 그가 내딛는 그 모든 발걸음 앞에 무한한 압정이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울듯이 소냐의 이름을 외쳤다.

거실엔 경전의 표지와도 같은 붉은 핏빛이 물들어있었다. 제기랄, 이온이시여! 의수가 덜덜 떨려 떨어지려는 것을 붙잡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제발, 제발. 에드윈은 울상이 된 얼굴로 달려나갔다. 대체 무엇때문에? 무엇때문에?
어째서?
고작 오린Orin따위에게 무슨 원한이 있다고?


그는 마침내 그의 딸을 찾았다.
소냐는 그녀의 침대 위에 단정하게 누워있었다.

에드윈은 조심스레 소냐에게로 다가갔다. 순식간에 나이를 먹어버린 그는 덜덜 떠는 성한 손과 의수 손으로 딸의 손을 부여잡았다. 그녀는 살아있었다.

"오, 소냐, 이 늙은 아비를 놀래키다니."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벌루타르라면 몰라도 오린이 습격당하다니. 그가 생각해도 참 바보 같은 발상이었다. 각성회에 농담조로 말할 일이 생겼군. 적어도 루티나는 웃어주겠지. 그녀는 상냥하니까.

그의 딸은 곤히 잠들어있었다. 그의 들뜬 두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자, 그는 이런 장난을 딸이 벌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떠올렸다.

그는 천천히 이불을 젖혔다.

천천히….
천천히….

그리고 마침내.

그는 비명을 질렀다.

"안뇽! 이거 좀 쿨한가?"

에드윈은 알 수 없었다. 그가 경악해야 할 부분이 딸이 두 동강나 죽어있던 것인지, 아니면 딸의 잘려나간 단면 안에서 기어나온 삐에로가 자신에게 총구를 겨눴을 때인지를.


몇 시간이 지났을까.

에드윈은 죽은 소냐의 상반신과 함께 묶여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 그에게 슬픔보단 공포가 더 많았기 때문에, 그는 애써 딸의 시체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딸의 몸은 차가웠다.

"이보쇼, 집주인 나리."

에드윈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허옇게 분칠을 하고 입술에 빨간 칠을 한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광대의 모습이었다. 광대는 그에게 다가와 중얼거렸다.

"집이 참 예쁘군. 하지만 쿨하진 않아. 쿨하진 않지. 암 그렇고말고. 자, 주인 양반. 내가 여기 온 이유를 맞춰봐."

"나는 대체… 아니, 우리 집에 무슨 볼일이 있다는거요?"

"아하, 당신 정말 지능이 좀 떨어지는군. 나 같으면 말야, 자신의 특이한 점을 생각해보겠어."

특이한 점? 결코 없다. 에드윈은 손발이 긴장으로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그저 평범한 낼캐의 신도일 뿐이다. 그것도 오린밖에 안되는. 분명 평범한 사회에서는 강한 영향력이 있을 것이다. 그는 유망한 사업체 몇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쓰레기들이다. 그 황홀한 아디툼에서는 전부 다 부질없다. 그가 높고 휘황찬란한 저택을 버리고 이 작은 집에서 딸과 함께 살게 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광대가 히죽대었다.

"아직 생각이 안 나나? 하하, 하힛! 당신이 그 별난 사르킥교도란 것을 우연히 들었어. 하지만 그뿐일 뿐이지 당신은 전혀 쿨하지 않단 말야. 그렇지만 몇 주 전에 당신이 산 그 사르킥 성경이 이야기에 들어간다면 또 달라지지."

"사르킥? 이봐!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

에드윈은 흥분한 나머지 영어를 쓰는 것을 잊고 우랄조어로 소리쳤다. 광대는 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그 성경 말이지. 그건 당신의 물건이 아니야. 너희들이 니네 소설에 미쳐돌아가는 건 내가 알지만 그건 안 되지. 그건 내가 줄곧 찾고 있던 물건이야. 더군다나 그건 당신네들 성경도 아닌걸?"

에드윈은 그 말을 이해하는 데 몇 분이 소요됐다.

"무슨 말이오? 그것은 소네 고임Sone Goim이오! 내가 본 낼캐 경전 중 가장 희귀하지. 아마 이건 카르시스트 중 누구도 보지 못했을 것이오."

광대는 신음인지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것을 흘리고는 말했다.

"오, 제발. 그건 사르킥이 아냐-"

"내가 말했-"

"그건 다에바와 알라가다의 역사서 비스무리한 것이지."

"뭐, 뭐?"

"글쎄, 나도 잘은 모르겠군. 당신네 성인인 오로크와 나독스, 로바타아르, 사아른이 나오긴 할 거야. 그리고 이온도. 그러니 당신이 착각한 거겠지. 하지만 잘만 생각해봐… 그 책이 이온에 대해 항상 우호적이었나?"

에드윈은 떠올렸다. 그 책의 어조, 문장, 단어. 어떤 기이한 위화감. 그는 그의 온 기억을 더듬었고, 대답하려는 순간-

탕.

에드윈 브란트 4세의 하찮은 뇌와 뇌수, 피가 소냐의 침대를 물들였고, 그의 육신은 이내 그의 딸과 같아졌다.

광대는 그의 서재로 걸어가 문제의 그 경전을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소중하게 집어 들고는 주방에 놓여있는 그의 서류가방에 집어넣었다. 일이 모두 잘 끝났다. 그는 다시 소냐의 침실로 들어가 사이좋게 죽어있는 두 부녀를 보았다. 겁나 쿨하지 않군. 기분이 드러워. 그는 에드윈의 시체로 다가가 그의 머리에 난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휘저었다. 오 씨발, 너 뭐하는 짓거리야? 네가 무슨 그 개병신 루이즈 뒤샹이라도 돼? 그는 황급히 손가락을 빼고 바지에 손을 문질렀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군. 그는 주머니에서 빨간 풍선을 꺼냈다.

빨간 풍선은 광대가 집을 빠져나간 뒤 21분 동안 떠오르다 집과 소냐의 침대와 소냐의 상반신과 소냐의 하반신과 딸의 아버지의 시신과 모임과 모임에서 만나려고 한 계획과 신앙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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