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딜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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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의 해안 도시, 토브루크의 도로를 따라 검은 세단은 미끄러지듯이 달려갔다. 시가지를 벗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커다란 건물은 고대의 사원을 연상시키는 그 외관을 드러낸 채 스산한 적막을 자아내고 있었다. 유리 요원은 그녀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그 건물을 쳐다보았다. 운전사가 살갑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멋진 건물이죠? 13년 쯤 전에 지어진 별장입니다. 리슐리외 씨가 우리 전통 건축 양식을 연구하고 지역 주민들을 고용해 지어서 다들 좋아한답니다."

 "멋지네요."

유리는 계속 그 건물을 주시하며 가볍게 대답했다. 송 요원도 설명을 들으며 잠시 건물을 쳐다보았지만, 이내 슈트케이스에 손을 얹고는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단이 방향을 틀자, 아침 태양은 건물 뒤로 숨어 건물을 하나의 그림자로 만들어 보였다.

 


 

건물에 들어선 유리와 송은 수행원의 안내를 따라 가장 안쪽에 있는 방까지 이동했다. 철저하게 북아프리카 전통 양식을 따라 지어진 다른 곳들과는 달리 그 방에는 철제 문이 설치되어 위화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문이 천천히 열리자, 유리는 은은한 홍차 향기를 느낌과 동시에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원탁 앞에 앉아있는 남성을 볼 수 있었다.

 "아, 왔는가. 방문을 환영하네, 유리 요원. 기지 책임자 리슐리외일세."

원탁의 오른편에 앉아 찻잔을 기울이던 그 사내는 고개만 돌려 방문자들에게 인사했다. 유리는 그 방의 서구적인 구조와 인테리어를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운전수가 당신 칭찬을 많이 하더군요. 현지 문화를 좋아하고, 주민들과 화합하고자 노력하는 좋은 사람이라고…"

유리가 슬쩍 말끝을 흐렸다. 상대의 대화 스타일을 살펴보기 위한 가벼운 도발을 던진 것이다. 정곡을 찔린 리슐리외는 무안한 듯 약간 자세를 바꾸며 대답했다.

 "글쎄, 인자한 프랑스 부호의 속사정까지 주민들이 알 필요는 없지. 이 정도 정보 통제는 업계에서 흔한 일 아니겠나."
 "아… 물론 그렇지요."

유리는 그 고충을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말대로, 대중에게 그 존재를 감추기 위한 거짓말은 그녀 역시 현장 요원으로서 수도 없이 해온 일이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녀는 리슐리외가 그리 적대적이지 않다는 심증을 확실히 했다. 리슐리외 역시 미소를 지어보이곤 말을 이었다.

 "이렇게 직접 방문해주어서 정말 고맙네. 재단의 감시망을 피해 찾아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테지."
 "직접 협의를 갖지도 않고 성사시킬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거래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요."
 "잘 알고 있군."

리슐리외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는 짐짓 여유롭게 웃어보이며 찻잔을 들었다. 상대를 파악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홍차에 약을 탄다는 얕은 술수를 썼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어차피 그 정도로 상대가 이 거래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달리 없었으므로 그녀는 태연하게 홍차를 한 모금 음미하며 리슐리외를 살펴 보았다.

전반적으로, 그는 평범한 프랑스인이었다. 잘 차려입은 정장과 손에 든 실론 홍차, 철저한 매너와 입가의 미소가 그러한 감상에 일조했다. 주름과 백발이 그의 연륜을 드러내주었지만 힘없는 늙은이라는 인상은 전혀 아니었다. 그렇다기보단―

 '노회한 여우같다…고 해야겠지.'

유리는 그렇게 판단했다. 아까부터 전혀 웃음기를 띠지 않고 있는 냉정한 눈매와, 손쉽게 주민들을 포섭하고 리비아 기지의 안전을 확보한 솜씨를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삼총사》의 늙은 책략가 리슐리외를 떠올리며, 이렇게 어울리는 암호명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유리가 찻잔을 가볍게 내려놓자 리슐리외가 말문을 열었다.

 "거래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네."

유리가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재단은 강력한 단체라네. 우리가 적대하는 그 어떤 단체보다도 위험하지. 자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터… 이 거래에서 얻을 이익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이렇게 위험부담이 큰 거래를 제안할 수는 없었을 듯 하네만."
 "요컨대, 위험을 무릅쓰고 거래를 하려는 이유를 알고 싶다는 거로군요."

리슐리외는 뒤로 몸을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도 자세를 편하게 하고 대답했다.

 "지쳤으니까요. 온갖 더러운 일을 뒤로 숨겨가면서 일하는데도, 저란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는. 저에 대한 뒷조사는 하셨을테니 무슨 말인지는 이해하실 거라 생각해요."
 "그래. 거래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응할 수는 없으니. …러시아 지부에서 전출당했다고 들었네. 그것이 이유인가?"
 "동기 중 하나죠. 하지만…"

유리는 적절히 뜸을 들이고는 말을 이었다.

 "방법을 찾았다는 게 더 큰 이유겠죠. '잠자는 별'이 있으면, 재단의 추적을 벗어나 유유자적하고 부유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어요."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그래요. 자세한 방법까진 가르쳐줄 수 없지만. 이 거래는 나에게 있어… 인생을 건, 중요한 도박인 셈이에요."

유리는 장난스럽게 웃음을 지었다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결연히 말했다. 경청하던 리슐리외는 잘 알았다는 제스처로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그 이상은 묻지 않도록 하지. 자네도 나름의 생각이 있을 테고… 음. 너무 오래 잡아둘 수는 없을테니 본론으로 들어가겠네. 자네가 원하는 건 변칙 개체 '잠자는 별.' 내놓을 수 있는 건 SCP 데이터베이스 사본 일부와 100만 달러. 그중 5만 달러를 선금으로 지불. 맞나?"
 "정확해요. 나머지 95만 달러는 안전을 확보했다 파악되는 즉시 송금해드리죠."
 "가져온 것을 직접 확인해봐도 되겠는가?"
 "물론이죠. 하지만 한번에 다는 안되겠군요."

 "그렇다면 보고서 쪽으로 부탁하지."

리슐리외는 잠시 고민한 후 선택했다. 유리가 신호를 보내자 송은 슈트케이스 중 하나를 들어 원탁 위에 올려 놓았다.

 "보안 승인을 우회해가며 힘들게 구한 자료에요. 미안하지만, 거래가 성사되기 전까진 촬영이나 스캔은 삼가주시길."
 "물론이네."
 "송, 열어드려요."

유리의 지시에 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잠금장치의 다이얼을 돌렸다. 찰칵, 하는 소리가 방에 울렸다. 리슐리외는 침착하게 송이 꺼내 건넨 한 장의 서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주… 흥미롭군. 대략 얼마만큼의 자료가 있지?"
 "북미와 한국 사령부의 변칙 개체 보고서 도합 30개. 많이 구하진 못했지만, 전부 유용한 것 뿐이라 자부할 수 있어요."

유리는 리슐리외의 반응을 살폈다. 리슐리외도 낌새를 챘는지 감정을 숨기려 했지만, 상기된 피부까지 숨길 순 없었다.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요."
 "솔직하게 인정하지. 할 수만 있다면 자네를 이 자리에서 우리 요원으로 채용하고 싶을 정도야."
 "말씀만이라도 감사하네요."
 "좋아. 우선 이 문서는 돌려주겠네. 거래를 받아들이지."

리슐리외가 그렇게 말하며 종이를 원탁 가운데로 넘기자 소위가 문서를 받아 슈트케이스에 되돌려놓았다.

 "그럼 우리도 물건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유리의 요청에 리슐리외는 말없이 수행원에게 눈짓을 보냈다. 수행원은 금고실로 걸어가 자물쇠를 풀고, 미리 준비되어 있던 손수레를 밀고 나왔다. 유리와 일행들의 시선이 손수레에 실린 알루미늄 상자에 집중되었다. 상자의 뚜껑이 천천히 열리자, 미약한 보라색 광채를 발하는 광석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잠자는 별'이네. 1948년 이후 우리가 보관해오고 있지. 다시 꺼내보는 건 50년 만이군."

'잠자는 별'은 빨간 방석 위에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유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수레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리슐리외의 경호원들이 일제히 권총을 뽑아 그녀에게 겨눈 것은, 그녀가 앞섶에 손을 넣은 단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리슐리외는 일단 손을 들어 경호원들을 제지하면서 해명을 요구하듯이 유리를 바라봤다. 유리는 양 손을 들어올려 저항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안심해요. 진위 여부를 가리려는 것 뿐이니까."

그녀가 품에서 꺼낸 레이저 온도계와 가이거-뮐러 계수기를 쥔 오른손을 흔들어 보이자 리슐리외는 손을 저어 경호원들에게 총을 물리도록 했다.
 


 
 "표면온도 50℃. 방사선 반응 있음. 자료와 완벽히 일치하네요."

유리는 화면에 뜬 숫자를 확인하며 뒤로 묶어넘긴 머리를 가다듬곤, 장비를 도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삑! 물건의 진위를 확인.

 "진짜 '잠자는 별'이라는 걸 확인했어요."

리슐리외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거래에 나선 이상 거짓말을 하진 않네."
 "어머, 믿음직스럽군요."

유리가 약간 장난기를 담아 웃어 보였다.

 "좋아요… 전 물건을 확인했으니 슬슬 거래 성사를 확정짓고 싶은데요."
 "음. 그래. 방금 말했듯이, 혼돈의 반란은 이 거래를 받아들이겠네. '잠자는 별'의 소유자는 이제 자네일세. 문서는 따로 남기지 않아도 되겠지?"
 "그럼요. 그걸로 재단의 추적을 당하고 싶진 않으니까."

유리의 대답을 들은 리슐리외는 미소를 띄운 채 악수를 건넸다. 유리도 흔쾌하게 그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송, 이 사람들에게 슈트케이스를 넘기고 저 손수레를 가져오세요."

유리의 말에 송이 리슐리외에게 두 개의 슈트케이스를 건넸다. 암호는 맞춰둔 상태였으므로 리슐리외는 케이스를 열어, 각 가방에 가득 찬 서류와 5만 달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방을 건넨 송은 그대로 손수레를 향해 걸어가 손잡이를 잡았다.

 "고마웠어요, 무슈 리슐리외. 정말 유익한 만남이었어요."

유리는 작별을 고하기 위해 상투적인 대사를 입에 담은 참이었다. 그러나 리슐리외는 심각한 얼굴로 서류들을 계속 살펴볼 뿐, 답례를 할 기색이 전혀 없었다.

 "무슈?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유리가 목 뒤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삑! 문제가 생겼음.

 "문제? 오, 그래. 문제가 있지. 재단의 충성스러운 현장 요원 아가씨."

리슐리외의 말에 유리는 출구를 향해 뒷걸음치려 했으나 반란 측 경호원이 권총을 겨누자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송도 경호원 둘에게 수레를 빼앗긴 후 양 팔을 구속당하고 말았다. 리슐리외는 문서 한 장을 집어들어 냄새를 다시 맡아보곤 그것을 내밀며 비웃듯이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는 특수 잉크라, 꽤나 머리를 썼군 그래. 미안하지만 이건 내가 젊을 적 자주 썼던 수법이라서 말일세. 잉크 냄새까지 기억하고 있지."
 "마지막 순간에 연륜이 돋보이는군요. 완전히 속여넘긴 줄 알았는데."

유리는 경호원의 지시에 따라 양 손을 머리 뒤에 포개며 말했다. 삑! 교섭 실패!

 "뭐, 그 담대하기 짝이 없는 연기력은 인정해주지. 나머지 서류들을 확인하는 게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대로 속아 넘어갔을 지도 모르겠네. 처음에 건넸던 서류는 보통 잉크인 걸 보니 애초부터 이렇게 속일 작정이었나보군. 굳이 한 장을 골라서 넘길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말이야… 거래는 파기일세."

리슐리외는 그렇게 선언하고는, 종이들을 수행원에게 넘기며 당장 스캔할 것을 명령했다. 수행원이 집무용 탁상으로 걸어가 복합기를 작동시키는 것을 확인한 그는 경호원 하나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무전으로 전 인원에게 기지를 방기할 채비를 하도록 전달하게. 그리고 돈과 자료, 개체를 챙겨두도록."

그는 유리가 재단 스파이라는 것을 알아챈 시점에서 이미 이 기지가 더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기지의 소재를 들킨 이상, 인질과 변칙 개체를 노리고 재단이 공격해올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비아 권내에는 재단의 기지가 없으므로 당장 대응하진 못할테니 서둘러 기지를 떠나면 충분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 스파이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유리를 잡고 있던 경호원이 물었다. 그러자 리슐리외는 유리를 쳐다보고 잠깐 고민하더니 비꼬듯이 그녀에게 말했다.

 "재단의 순직자 훈장을 받게 된 걸 축하하네."

리슐리외는 화려하게 장식된 S&W M29 리볼버를 품에서 꺼내 약실을 한 바퀴 팽그르르 돌려보고는 유리에게 총구를 겨눴다. 그 순간, 요란한 총성과 비명소리가 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

리슐리외는 반사적으로 리볼버를 거두어 양손으로 감아쥐었다. 주변 지역의 치안 상태를 고려하면 단순한 외부 소음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 상황에서 가장 단순하게 떠올릴 수 있는 시나리오는 재단의 무장 병력이 쳐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추리를 하고 있을 틈도 주지 않고 빗발치기 시작한 내선 보고는 그 시나리오가 실제로 벌어졌음을 극명하게 알리고 있었다. 리슐리외는 사납게 유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애초부터 특무부대와 동행했군."
 "사기칠 요량으로 들어왔는데, 탈출할 준비를 해 두는 건 당연하지 않겠어요?"

유리가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 사이에도 산발적으로 들려오는 총성과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 어쩌실래요? 이대로 우릴 죽여봤자 당신도 살아나갈 길은 없을텐데."
 "뻔한 술수로군. 즉결 심판을 인질극으로 바꿔서 생존 확률을 높여볼 셈인가?"
 "흠, 물론 뻔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잖아요?"

리슐리외가 다시 유리에게 권총을 겨누고선 뭐라 대꾸하려는 찰나, 문 바로 너머에서 폭음과 총성이 울렸다. 경호원들은 곧 벌어질 교전에 대비해 일부는 인질을 확보하고 일부는 문을 향해 권총을 겨눴다. 리슐리외 자신도 리볼버를 고쳐 잡았다.

다음 순간, 폭발과 함께 철문이 벽에서 떨어져 나가고 새까만 전투복 차림의 병사들이 방에 들이닥쳤다.

 "확실히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군, 유리 요원. 지금으로썬 말이야."

방문자들에게 리볼버를 겨누며, 리슐리외가 뒤늦게 수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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