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을 자체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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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초학부 공지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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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451 프로토콜에 따라 본 문서의 접속을 제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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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문서는 메타픽션성 여부를 평가 중이므로 서사 잠금 처리되었습니다. 모드-윌드보(Maude-Huldevault) 계수기가 이 페이지 맨 위에 설치되어 자체 분석 결과와 밈 흔적을 바탕으로 SMI (Standard Memetic Index, 표준 밈 지수) 를 측정 중입니다. 이 페이지의 SMI 값이 지나치게 높아진다면 페이지를 삭제해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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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지에 접속하려면 접속 인가 FH-451을 취득해야 하며, 미취득 시 극형에 처하거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이 페이지에 접속하는 인원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당신도 포함합니다). 현재 예측되는 변칙성을 감안하여, 서사 잠금 상태의 문서는 읽지 않기를 권고합니다. 분석 이후 이 페이지에 대한 접속 권한을 반납하고 곧바로 가장 가까운 약국실에서 A급 기억소거제를 받아 투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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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중인 문서에서 서사 잠금이 실행 중인지 항상 확인하십시오. 잠금 실행 상태가 아니라면 절대로 이 문서를 읽지 말고, 특히 행간은 더더욱 읽지 마십시오. 열람을 고집하지도 말고 더욱이 라틴어도 읽지 않기를 강력히 권고합니다.



– 피날리(Finalis)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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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카드 D2P-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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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um.jpg

제목: 《통을 자체 고통leur très douloureuse》, 부제목 lorem ipsum dolor[sic]

매체 유형: 작자미상 소설

주제: 9141 ~ 928 (뒷표지) 페이지 이외 불명. 조사 중.

위협도: 불명, 저도 추정

현 상태: 대부분 화재로 소실, 913 ~ 928페이지 및 표지만 남음. 조사 중.

내력: 이 책이 발견된 것은 2019년 11월 1일 10:27 알레프 기지 문서고 섹션 1813/17-A/C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을 때였다. 각 페이지는 읽는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자연발화했으며, 완전 연소할 때까지 주위 물체에게 물리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이 책은 1898년 6월 ~ 2019년 11월 사이 문서고에서 재단 인원 ███명이 실종된 것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추정된다.


1. 913페이지는 장(章)을 표시한다. 책은 여러 가지 길이의 "장"으로 나뉘고 각 장마다 로마 숫자가 붙어 있었으리라고 보인다.



서사 잠금 실행 상태

통을 자체 고통


끼익, 낡아빠진 철문이 열렸다. 굳어져 꿈쩍하지 않는 채로 고문서고로 가는 길을 막던 문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소리였다. 미궁 같은 알레프 기지 문서고에서도 지금 막 열린 이 출입구 안쪽은 벌써 그 자신이 통계학적 변칙개체가 되어버린 곳. 그 문으로 다소 가냘픈 남자가 들어왔다. 그 뒤로 여자의 힘있는 목소리가 퍼져나오며 잠자는 책장들 사이로 마구 울려퍼졌다.

"이 수많은 섹션 하나하나 뒤져봐야 된다니 정말 귀찮아 죽겠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력 넘치는 젊은 여자 2명이 들어왔다. 이제야 갓 승진했다 싶은 모양새의 두 여자와 견주어서 남자는 한 10살쯤은 더 먹은 듯했다. 그러나 신경질이 나는 것은 여자들보다도 문서고 직원인 남자가 훨씬 더했다. 더 짜증을 내는 줄 눈치채는 사람은 없었다. 무슨 임무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10시간 이상은 이어졌던 듯한, 그런 기색이었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의미는 있었을까 싶도록.

"장부를 찾아보고 확인하고 바로 나가겠습니다. 이 섹션에서는 일만 더 복잡해질 겁니다."

"아니 뭐 왜요!?"

한 여자가 세차게 툭 내뱉었다. 도와달라는 듯이 다른 여자 쪽을 쳐다봤지만, 다른 여자는 덤덤한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둘은 직원을 따라갔다. 의지라기보단 발에 몸을 맡기듯이.

다른 곳과 확실히 차이 나는 장소였다. 유일한 외부 광원인 창살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이 육중한 책장들 위로 하얗게 후광을 드리웠다. 책장들은 서류가 넘쳐흐르는 칙칙한 난장판이라는 자신들의 겉면 너머에 숨은 비밀을 지키고자 이곳에 스스로 자리잡은 듯했다. 책장들은 매우 높았다. 그래도 꼭대기는 보일 정도였지만, 크기를 봐도 내용물을 봐도 그저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문서고 직원이 기계적으로 차단기를 딸깍 올렸다. 은은한 불빛이 뒤에서 새어나오며, 누군가 그곳의 주인을 깨운 듯이 문서고의 빛깔이 확연히 바뀌었다. 바깥으로 난 유일한 창문에서 들어온 차갑고 창백한 빛이 방 안의 오랜 먼지투성이 전등에서 나오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과 대비를 이루었다. 천장만은 여전히 어둠에 빠진 채로, 빛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놓기만 했다.

알레프 기지 문서고의 이 섹션은 그다지 큰 곳은 아니었다. 훨씬 오래된 그 모습이 문서고의 발길이 잦은 다른 지점들하고 대비되는 곳이었다. 물론 이 방문자들 세 명은 그날 밤 내내 온갖 복도를 돌아다니며 온갖 책장을 헤집으면서 점차 더 깊숙히 들어가는 중이었다. 조금씩 설비는 낡아져 가고 자료는 나이 먹어 가면서 더는 똑같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게 되었다. 의식을 따라서 시대를 거슬러오게 된 듯이.

섹션 한가운데 육중한 까만색 나무탁자 위에 무거운 방문자 장부가, 더 이상 방문자는 기다리지도 않았다는 듯이 놓여 있었다. 어지러이 놓인 책장들에 둘러싸인 채로 장부는 자신의 얼어붙은 운명을 체념하고 받아들인 듯했다. 문서고 직원은 장부로 다가가 힘겹게 움켜쥐고는 먼지 한 톨 쏟아트리지 않으며 열어젖혔다. 기다란 종잇장들이 넘어가며 손의 움직임에 맞추어 사각거리다가, 직원은 글이 있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멈추었다. 직원은 손가락을 행을 따라 긋고 열을 따라 내리며 낡고 마른 종이를 문질렀다. 그러다 멈칫, 위험을 느낀 듯 멈추었다.

"여기군요. 제길, 틀림없이… 정확한 자리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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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잠금 실행 상태

통을 자체 고통


"적당한 때 왔네요. 이제 뭘 하면 되나요?"

이번엔 가장 조용하던 여자가 말을 꺼냈다. 문서고 직원이 흠칫했다.

"아무… 아무 말씀도 들었던 적 없나요?"

"성함부터도 못 들었어서요."

"아. 죄… 죄송합니다, 저는 문서고 직원 모랭… 나탕 모랭Nathan Morin이라 합니다."

다시 침묵. 말을 꺼낸 여자가 목청을 가다듬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 다음에는? 저희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아! 미안합니다, 뭐랄까… 상황에 대한 이야기 한 번 저희가 못 드리고 있었으니까 제가 조금 당황해서, 네… 송구스럽습니다."

"뭔가 출동 시작하고 제일 생산성이 덜한 첫 번째 대화인 것 같은데요."

"죄송합니다, 정말, 음… 빨리 귀신들을 잡으셔야 하는데."

"되도 않는 농담 치고 계시는 건가요, 당신 시간도 낭비하고 저희 시간도 날려먹게."

"아니 아니, 저는 그냥 긴장감 풀어보려고! 자, 여기 장부 좀 보세요."

나탕은 두 사람을 방문자 장부 앞으로 이끌었다. 두 여자 앞에 놓인 장부는 육중하게 그러나 무력하게 열린 채로 자신의 비밀을 전등 불빛 아래에 내놓았다. 두 경비원은 장부를 나름대로 살펴봤다. 이름이 여러 개, 가위표가 여러 개 보였다. 대출 기록은 없었다.

"어떤 점이 문제라고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저희가 문서고 직원도 아니고."

"문서고는 섹션마다 장부를 하나씩 둡니다. 업무에 도움도 안되고 구성도 그닥이지만, 문서고가 광대하다는 명목으로 아직도 이렇게 사용 중이죠. 다만 여기 이 이름들은 문서고에서 나오지 않은 상태로 처리된 사람들 겁니다. 장부상의 출입기록에 의한다면요."

"네, 뭐 그래서요? 기재를 잊어버렸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그렇기도 하죠, 그럴 때도 있어요, 드물게나마. 하지만… 파고들어 보니 이 사람들 대다수는 문서고를 방문했다는 기록 이후로 종적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깔깔깔, 경박한 쪽의 여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탕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쪽은, 여자보다는 오히려 움직이지도 못하는 이 방인 듯했다.

"문서고에서 사라지는 사람 가지고 거기 가면 길 잃는다 하는 농담은 있었어요. 지금 그런 소리가 진짜라고 믿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모두 사라졌습니다. 1898년 6월 13일부터 2018년 5월 11일까지. 이 장부에 표시된 모든 사람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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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잠금 실행 상태

통을 자체 고통


"그러시겠죠."

"진짜라니까요! 자… 어… 여기요."

나탕은 주머니에서 뭔가 어설픈 몸짓으로 두 번 접어놓은 종이를 꺼내 미심쩍어하는 경비원에게 건넸다. 여자가 눈살을 찌푸린 채로 종이를 받아 읽더니, 이내 중요한 부분을 옮겨적어 다른 여자에게 넘겼다.

"헛소리가 아니었어. 진짜로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우리를 요청했네. 자, 이렇게 왔어요."

"와. 진짜 귀신이라고? 뭐 몇 마리 정도 격리했던 적은 있었지만."

"두 분 성함이 이쪽은 알리스 베롱Alice Veron… 그리고 이쪽이 미셸 블루앵Michèle Blouin이시죠?"

"그렇습니다. 그러면 모랭 씨… 모랭 씨라 부르죠."

"나탕이라 불러주셔도 됩니다."

"그래요, 모랭 씨… 자기소개 시간은 이쯤이면 됐고요. 저희도 다정한 편이 아니고, 모랭 씨도 말 많은 편이 아니시죠. 이제 저희가 도착했으니까, 체크할 거 빨리 살펴보고 얼른 모두들 편안히 돌아가서 푹 쉬자고요."

미셸이 가지고 온 장비들을 풀어놓았다. 알리스는 방 안을 수색하며 책장 사이사이를 돌아다녔다. 몇 세기를 층층이 쌓인 문서들 너머를 거쳐 일그러지고 미약해진 채로, 보이는 모습을 꼬박꼬박 냉소적으로 외치는 알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체 없음! 시체 없음! 아직도 시체 없음!"

"조용히 하지 참나."

나탕이 뒤돌아봤다. 미셸이 장비에서 손길을 거두지 않는 채로, 눈길 돌리지 않고 나탕의 몸짓에 반응했다.

"왜요? 문제 있어요?"

"아뇨아뇨! 그냥… 두 분 서로 별로 안 닮았네 해서요, 성격 쪽으로."

"그게 뭐 신기하다고요."

"그러니깐은, 서로 닮은 사람끼리 모인다 그러는데, 그 닮은 게 감정 표현은 딱히 아니신 거잖아요, 그쵸?"

"맞습니다, 모랭 씨. 조만간 고문서에다 박은 코 빼낼 생각이나 하고 계세요."

"아… 저도 문서고에서만 쭉 사는 건 피했으면 좋겠어요. 요즘 무서운 게 딱 하나 있다면 이 서류들 속에서 생을 마치는 거거든요. 여기 있으면 기분이… 지식의 홍수에 짓눌린 채로 아무 소리 못 내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마치 누가 저 책장 위에서 나를 심판하는 것처럼…"

"뭐야 모랭 씨, 갑자기 왜 그러세요? 커피 한 잔 가져와서 밤새 이야기라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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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하하, 죄송합니다, 저도 괜히 말했나 싶고 그렇네요, 각자의 문제란 게 있—"

"아니아니 됐습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정상이니까. 저희 모두 지금 피곤하고 또 어젯밤을 힘들게 보냈다 보니, 어떤 느낌이신지 이해는 가네요."

"아, 그래요?"

"네, 하룻밤 꼬박 새고 저희도 슬슬 부담이 오는 건 사실이니까요, 알리스랑 저랑. 건강한 업무 환경이 아니긴 하죠, 이렇게 고립돼서 계시면. 힘내시라구요."

"아, 네, 그건… 그렇죠. 고마워요."

미셸이 갖가지 측정 장치들의 준비를 끝마치는 사이, 앨리스가 두 사람에게 돌아와 불쌍한 시체 수색의 성과를 알렸다.

"시체는 쥐새끼나 개미 한 마리도 안 보여. 오히려 책들이 더 살아 움직일 지경이네."

"좋아. 그럼 우리 직원님께 귀신이란 걸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를 설명할 시간이군요."

미셸이 기적학 스펙트럼 분석기를 켰다. 분포도는 평탄했다. 칸트 계수기도 켜졌다. 흄값은 2에서 약간 들썩이는 정도였다. 아키바 방사선 계수기도 켜졌다. 곡선은 평평했다. 밈/정보/감각재해 상자의 경고등도 잠잠했다. 미셸이 에테르 공명 화상 안경을 착용했다. 신호원(-原)이라고는 자기까지 세 사람 것밖에 없었다.

방 안은 당황스러우리만치 완전하게 평범했다. 스톤헨지의 바위보다도 더욱 평범할는지도. 아주 완벽한 정상이었다. 나탕 모랭은 식은땀을 비질비질 흘렸다.

"좋아요, 이 친구들 다른 데로 이사라도 갔나 보네요! 장부는 체크도 안 하고 여기를 나간 사람 이름 목록, 그 이상은 아닌 거죠."

"그… 그렇겠네요, 제가 괜히 이상한 소리나 해 가지고… 그럼 이제 가요, 뭐 별로 중요한 곳도 없는 곳이니까."

나탕이 두 경비원 보고 나오라는 듯 출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너무 급한데, 라고 알리스는 생각했다. 장비를 재빨리 정리하고 곧장 나탕을 따라나가려는 미셸의 팔을, 알리스가 붙잡았다.

"잠깐, 아직 이상하지 않아? 생각하는 게 있어서 저런 장부 이야기를 했을 텐데, 이렇게 그냥 돌아간다고?"

나탕이 멈칫하며 뒤를 돌아봤다.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변명해 보려고 입을 열었지만, 말 한 자 내뱉지 못하고 애처롭게 다시 닫고 말았다. 미셸이 나탕에게 걸어왔다.

"틀린 말은 아니예요, 모랭 씨. 이렇게 그냥 포기하신다고요? 이상하잖아요."

"…"

"그러고 보니까 지금, 여기 오시고 나서 점점 더 뭔가 불안한 기색이 심해지셨잖아요."

"뭐… 뭐, 압박감 같은 거 있잖아요? 이 문서고 분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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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을 자체 고통


"아뇨. 헛소리 작작 하세요 모랭 씨, 씨알도 안 먹힐 거. 이 방에 들어올 때부터 정확히 어떤 걸 찾아봐야 하는지 알듯이 움직였고, 또 차단기가 어딨는지도 다 아셨죠. 이 방이 문서고에서 이렇게 깊은 데 있는데. 제가 편집증 좀 섞어서 말하면, 어떤 데를 찾아봐야 할지 다 알면서도 저희를 밤새 오만 데 쏘다니게 시키신 것 같은데요."

"그, 그건… 방이 하나같이 똑같이 생겨서, 그것 때문-"

"방금 그거 느꼈어, 미셸?"

미셸이 알리스를 돌아봤다. 딱 멈춰서서 어디엔가 집중하고 있었다. 미셸은 주변 소리를 듣고, 슬쩍 경계하고, 냄새를 맡아봤다.

"…아니."

"아닌 게 아니야. 이때까지 문서고에 있으면서 압도되는 느낌 받았던 적 없어?"

"그래, 그런 이야기 했었잖아, 전에-"

미셸이 말을 멈췄다. 이제야 느껴졌다. 뭔가 이상했다. 사소할지언정 혼란스러운 이상함. 그러나 무엇인지 짚을 수가 없었다. 미셸은 자신이 가져온 장비들을 천천히 돌아봤다. 변칙성의 흔적은 분명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미셸은 다시 나탕 쪽을 돌아보고 유심히 살펴보고는, 자신의 느낌을 알리스에게 밝혔다.

"하긴 그래, 모랭 씨가 엄청 당황하는 것만 집중하느라 주의깊게 살펴보진 않았지,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이 방에 대해서는 정말 사소한 낌새 하나도. 그런 느낌이 들어… 이곳이 정말 편안하게 느껴져, 벌써 여러 번 온 적 있었다는 듯이."

그 말이 나오자, 나탕이 시퍼렇게 질리며 잠시 주춤거렸다. 쏠려오는 욕지기를 참는 듯이. 미셸이 재빨리 나탕에게 다가가 그 몸을 책장에다 사정없이 떠밀었다. 책장은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종이와 시간이 켜켜이 쌓인 무게로 땅바닥에 붙어 있는 양. 원래 자리로 돌아갈 새도 없이 미셸은 기절 직전인 나탕을 다그쳤다.

"적어도 옛날 유적 찾아온 느낌은 들어야 하는 데 그런 것도 전혀. 대체 여긴 어떤 곳이에요, 모랭 씨? 이상하리만치 정상적인 이곳에서 어째서 이런 느낌이 저한테 들어오냐고요? 우리가 여기 발 들이길 늦출 이유가 있다면 당신한테밖에 없으니까, 말 돌릴 생각은 마요."

"그-그… 아아…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좋아요, 움직여 봐요, 이제라도 사실을 말해준다면 용서는 해드리죠."

"아… 알았어요, 알았어. 이 문서고… 이곳은… 재단에서 제일 오래된 곳이에요. 여기 있는 문서들… 이것들의 날짜는 적… 적어도 19세기 초까지는 거슬러올라가는 놈들이죠."

"우와 씨! 알레프 기지가 그때부터 있었다고요?!

"아-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재단만 아니라 그 전에 있었던 수많은 조직, 가장 오래된 조직들의 자료죠. 다만… 제일 경험 많은 직원들조차도 이곳으로 가려는 사람은 뜯어말리는데…"

"어째서요? 그분들도 귀신이 무서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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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잠금 실행 상태

통을 자체 고통


나탕에게서 또 그놈의 긴장한 웃음이 실실 새어나왔다. 그리고 후우, 한숨이 뒤따랐다.

"…아, 음, 이렇게 말할까요… 어떻게 말할까… 문서고로 들어오는 문서들은 항상 기록정보보안행정처가 처리합니다. 모든 임무 보고서, 실험 기록, 면담 기록, 변칙개체 연구 노트, 심지어 어떤 스킵의 원본까지… RAISA가 그런 문서들을 처리할 땐 꼭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야 하죠."

"무슨 뜻이에요?"

"초상연구 중에는 어떤 문서가… 모종의 성질을 띠는 상황이 드물지 않습니다. 정보재해, 감각재해, 밈, 항밈, 메타서사… 그런 놈들은 시험을 통과해야 보관 가능해요. 문서고를 변칙개체 번식장으로 만들어버릴 순 없으니까. 다만… 어떤 문서들은 기술이 아직 초기 단계였던 시절에 시험을 거쳤고… 그 후로 아무도 다시 만지지 않았죠."

"하지만 측정값이 모두 정상으로 뜨는걸요. 걱정하실 필요가 있는 거예요?

"얼마나 득시글거릴지 모릅니다. 가장 조그만 정보재해마저도 다른 정보들을 먹고 방 도처에 증식할 수 있죠, 거의 두 세기에 걸쳐. 그런 파일은 하나라도 열어볼 생각 따위 없지만… 모두가 사라져 버리고만 있어요. 처음에는 여기서 사라진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없지만, 진실을 말한다고 믿어줄 사람이 있었을까요? 저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됐습니다."

"지금 부패한 정보며 자기도 모를 위험이 도사릴지도 모르는 곳으로 우리를 끌고 왔다는 소리예요? 경고 한 마디 없이?"

말이 끝나자마자 나탕이 따귀를 맞았다. 바로 코에서 코피가 흘러나왔다. 미셸이 나탕을 놓아주자, 나탕은 가련하게 악귀공학 개론 섹션을 따라 스르륵 미끄러져 들어간다. 미셸이 욕설을 내빝고는 다시 장비를 꾸리기 시작했다. 주머니를 쓸어 봤으나 담배가 남아 있지 않았다. 전날에 담배를 끊기로 결심했던 것이 미셸은 갑자기 후회되었다. 그때 이 공연한 긴장을, 알리스가 깨트렸다.

"하지만 그래서, 이 사람들은 전부 어디로 갔지?"

미셸이 뒤를 돌아봤다. 필시 추측을 하나 내놓으려 했을 나탕의 말을 미셸이 가로막은 상황이었다.

"신경 쓸 것 없으니까 빨리 가기나 하자."

"이렇게 도둑처럼 그냥 가버릴 수는 없어, 여기 위험이 도사린다는 증거도 없이는."

실제적인 소리다, 늘 그랬듯. 미셸은 눈에 띄리만치 주저했다. 나탕은 신경질을 팍팍 돋웠고, 하지만 알리스의 의견도 영향력이 막대했고. 미셸은 결정할 시간을 잠시 두며, 끄응 소리를 내뱉으면서 알리스의 눈과 나탕의 상처 입은 얼굴을 번갈아 돌아봤다. 그러다 미셸은 결국, 다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문서고 직원에게 경멸을 담아 삿대질하면서.

"이상한 소리 한 쪽은 저 사람이지."

줄줄 흘러나오는 핏줄기와 창백한 나탕의 낯빛이 더할 나위 없이 뚜렷하게 대비를 이루었다. 죽었다 해도 믿을 정도로.

"뭐… 뭐라고요? 지… 진심으로 하신 말씀… 아니죠?"


919



서사 잠금 실행 상태

통을 자체 고통


"무지 진심이거든요. 말도 제대로 안 해주고 저희를 여기로 끌고 오셨으니까, 저희가 헛짓거리로 시간 날리지 않은 줄은 당신이 증명해봐요. 일어나서 찾아보시라구요. 어쨌거나 장비가 거짓말하진 않으니까 겁낼 것도 없네요."

집요한 두 경비원의 시선, 부릅뜬 사람과 살기등등한 사람, 그 앞에서 덫에 빠져 버린 문서고 직원은 천천히 두 다리를 일으켰다. 자신의 기분을 강조하려는 듯 미셸은 벌떡 일어나 책장 뒤로 향했다. 책장 저편 뒤쪽에서 빛이 어두워지고,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이러면 도망치실 일은 없다고 안심할 수 있겠죠. 아니 참나, 뭣도 아니고 그냥 책이잖아요. 조심해서 움직이기만 하면 무서울 건 없겠죠?"

결국 문서고 직원은 다시 탐색에 나섰다. 공포와 맞먹는 자리에 마음속의 생각과 호기심이 올라왔다. 모든 페이지, 모든 보고서, 모든 파일 속에 똑같은 질문이 있었다. 이 문서들에서 말하는 위험은 어디로 사라졌지? 이 지식들의 본질은 뭐지? 이곳의 영혼은 누구에게 도둑맞은 거지?

그 말들은 공허하게 울려퍼질 뿐이었다. 이상함 하나만이 사라지지 않고 남았다. 의미 없는 것이란 그 모든 단락들뿐이었다. 이 방, 이 문서고. 글이 죽을 수 있다면, 죽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여기였다. 언어들의 해골이 이 선반에 쌓여갔고, 아무도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여기는 그 누구에게도 텅 빈 곳일 뿐.

"정말 빡치게 하는 거 알아?"

알리스가 돌아보며 쯧쯧 혀를 차자, 미셸은 기계적으로 아키바 방사선 계수기를 톡톡 두드렸다. 구시렁구시렁 불평이 새어나왔다.

"그냥 빨리 나가잘 걸 그랬네, 에이."

"원래 미스터리란 건 참을 수가 없다니까…"

"착각하지 마, 그런 거 아니야. 무엇보다도 몇 시간 오만 데를 쏘다닌 게 헛수고가 되는 게 싫다고. 분명히 이 책들 사이에 뭔가 비밀이 있을 거야."

"그래, 뭐, 못 참는 건 네가 나를 못 참는 거였구만."

미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콧방귀를 뀌면서 싱긋 웃었다. 그리고는 알리스의 복부를 가리켰다.

"떠맡겨진 사람이 왜 너였는지 알아? 우리 둘 중에 네가 덜 믿음직해서 그래."

"웃기시네! 그나저나 얘, 수정하고 아홉 달 지나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좀 진지하게 말하자면, 정말 그래야지. 아무리 MTF에서 잠시 자리를 뺐다곤 그래도, 잠재적 위험 요소 보고 자극받는 그 습성이 어디 가는 건 아니잖아."

"…잠깐, 그건 그런데… 그 직원 걷는 소리 꽤 안 들리고 있지 않아?"

"…모랭 씨? 뭐 찾은 거 있어요?"

갑자기 갖가지 장비들이 모두 일제히 울렸다. 그리고는 벽이 움직이듯, 찢어지듯 하는 소리. 고통과 공포에 차 뒤흔들리는 비명 소리가, 구겨지는 듯한 세기 죽은 소리 속에 묻혔다.


920



서사 잠금 재조정 중 ⦿

통을 자체 고통


별안간 장비들이 모두 나가 버리고,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두 경비원은 곧바로 직원이 비명을 지른 그곳으로 뛰어갔다.

그 자리에 서가 열을 따라 온갖 문서들이 널려 있었다. 땅바닥에 이 시대 저 시대에 만들어진 서류들이 주루룩 퍼친 채로 있었다. 나탕은 숨을 헐떡이며 최대한 일찍 전근이나 요청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당황했지만 나탕은 찾아온 두 여자에게 별 문제 아니라고, 잠시 어지러워져서 그랬다고 더듬더듬 설명했다.

"젠장, 모랭 씨,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나탕이 사과하는 와중에, 갑자기 알리스가 끼어들었다.

"나탕? 저기요, 직원님, 어디로 가셨어요?"

나탕은 또 이상한 장난이라 생각했다. 참고 참았던 마음이 갑자기 끓어올랐다. 자기 신경 좀 갖고 놀지 말라고 따졌다. 두 사람, 현장에서 잔뼈 굵은 사람이 되어가지고 어떻게 문서고 사람 위신을 깎아먹냐며.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이 터져나왔다. 두 사람은 나탕에게 관심을 전혀 주지 않았다. 바로 앞을 지키고 서 있는데.

"말도 안돼… 어디로 간 거야, 대체?"

"여기 종이더미 밑에 파묻혀 있을 리도 없는데?"

알리스가 직원을 찾는답시고 서류 더미를 파고들기 시작한 사이, 미셸은 서류들을 큼지막히 넘어가며 나탕의 오른편을 지났다. 이 잔인한 장난질에 넌더리가 난 나탕은 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욕지거리를 마구잡이로 퍼부었다. 미셸은 여전히 앞쪽만을 빤히 내다보며 뜬금없는 곳만을 이리저리 훑어봤다.

"모랭 씨? 지금이 괜히 숨어 계실 때가 아니잖아요?"

나탕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미셸의 목소리에 정말로 걱정하는 마음이 어려 있었다. 나탕은 아직도 자기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알리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나탕의 몸이 뻣뻣이 얼어붙으고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시야가 흐려지고 숨쉬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생각해. 도망쳐? 여기서 떠날 수가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 장서들, 책들, 이 책. 그래, 이 책들 사이에 여기 있어서는 안될 어떤 것이 하나 있었어. 알려야만 해.

그러나 바닥에 널브러진 온갖 이상한 종잇장들 사이에서 정확히 그 책 하나만 찾아낼 방법은 없었다. 성난 책장들이 이미 담은 책들을 무차별로 쏟아낸 뒤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도 그 일 때문에 죽어 있던 말들이 잠시 되살아난 것은 분명했다.

"도망쳤나 보네. 완전 쫄보구만. 뭐 일단은 책 속에 안 숨어 있는 건 확정이야."

"안 웃겨 알리스."

나탕의 숨이 막히고 앞이 깜깜해졌다. 으스러지는, 굳어지는 이 느낌. 생각이 자꾸만 자꾸만 사라져갔다. 오직 느낄 뿐. 공기를 줘. 빛을 줘. 뭐라도. 서류 속에서는 안돼, 영원히는 안돼. 이렇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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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을 자체 고통


"젠장. 젠장 젠장 젠장. 돌아갈 걸 그랬어, 그럴 줄 알았다니까."

"나탕도 다른 사람들처럼 사라진 걸까?

"확실해. 여긴 정말 위험한 곳이었어. 당장 떠나야 해."

"목표가 바로 앞인데?"

"너도 모랭 씨 꼴 나고 싶어?!"

미셸의 언성이 높아졌다. 감정이 치솟으며 거센 어조가 터져나왔다. 알리스가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

"그럴 리가. 하지만 나탕 말이 맞아, 여기서 벌어진 일은 아무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 이런 위험이 있었다면 왜 문서고 전체로 안 퍼졌겠어? 애초에 없었으니까. 할로윈 다음날 아침에 문서고 깊은 곳에서 실종 사건? 농담도 정도껏이지. 확고부동한 증거 없이는 나탕을 집어삼킨 놈은 여기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뭐? 그놈이 여기서만 위험한 걸지도 모르잖아!"

"우리가 아는 건 아무것도 없어!"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잖아!"

미셸은 책장을 따라 스르륵 바닥에 쓰러졌다. 부딪히면서 수많은 종잇장들이 가련하게 바닥을 쓸며 날아갔다. 눈물이 쏟아지기 직전이었다. 알리스는 난장판이 된 땅바닥을 다시 헤집으며 나탕이 무엇 때문에 비명을 질렀는지 찾아봤다. 미셸이 이럴 때 진정하지 못하는 성격인 줄은 아주 잘 알았으니까.

"…미셸. 나 주의를 늦추지 않을게. 그리고 네가 여기 있으니까 나를 지켜봐 주면 돼. 그렇게 우리 떨어지지 않고, 위험한 짓은 안 벌어지도록 주의하면 되는 거야."

정신을 집중한, 나탕의 실종에 대해 어떠한 단서라도 잡아내고 말겠다는 결의가 담긴 말이었다. 미셸은 좌절하는 와중에도 불안한 마음으로 곁눈으로 계속 알리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알리스의 손가락과 두 눈이 페이지들을 바삐 뒤지며 작게라도 남았을지 모를 흔적을 찾아다녔다. 이 몸에게서 벗어날 순 없지, 눈밖으로도 몸으로도.

"조금만 더 있으면–"

알리스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미셸이 걱정하는 마음에 벌떡 다시 일어섰다. 지식으로 된 무더기 속에서 알리스는 책 하나를 꺼내들었다. 위엄 있는 가죽 장정 책이 모든 빛의 광채를 받아 유난히도 빛났다. 미셸이 책에서 눈을 떼어놓지 않는 채로, 알리스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이 책은 갑자기 왜?"

"작가도 출판일자도 없어. 뒤표지는 비었고. 무슨 조약문이나 보고서 묶음도 아냐, 제목이 이렇게 학술적인 모습이 아닌 걸 보면."

"제목이 어떻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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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을 자체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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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을 자체 고통


"무슨 제목이 이래?"

"라틴어처럼 생긴 듯하긴 한데. 뜻은 있는 거야? lorem ipsum dolor?"

"음… 의미야 있지만, 가짜 텍스트야. 레이아웃 예시에서 쓰는 가짜 라틴어지. 암만 봐도 최근 자료인데, 왜 이런 데 있지?"

"전혀 모르겠는데… 아마… 안 열어보는 게 좋을지도."

"잠깐, 영국 지부에서 논란의 자료를 입하했다던 적 있었어. 공식 문서를 위한 새로운 서식을 담고 있었다지. 행정부에서는 서식을 적용할지는 각 지부의 결정에 맡겼다는데, 그 서식안이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와서 처박혔을지도 몰라."

"들어올 때 입구 쪽에 더 최신 문서를 담은 책장도 있었던데."

두 경비원은 얼른 입구 쪽에 자리잡은 책장으로 달려갔다. 책장을 따라 주루룩, 비교적 최신 서류들이 널려 있었다. 미셸이 책 하나를 꺼내 표지를 살폈다. 《분류위원회 신규 서식》. 여기 있다. 미셸이 바로 책을 열었다가, 내용을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 알리스가 어깨 너머로 책을 살폈다.

"아… 아니, 완전히 비어 있어! 백지밖에 없잖아!"

미셸이 텅 빈 파일을 휙휙 넘겨대고, 다음 서류로 넘어갔다. 또 다음 서류. 또또 다음 서류. 하얀 종이 위에 한 마디도 쓰여 있지 않았다. 가짜 라틴어마저 어디 가버린 채로. 미셸은 두꺼운 가죽 책을 다시 한번 지켜봤다. 적어도 900페이지는 되어 보이던데. 대체 이 책은 목적이 뭐지?

"책을 열어보자."

알리스의 말이었다. 미셸이 고개를 휙 쳐들고 벙쪄 있는 사이, 알리스가 방 중앙으로 똑똑히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미셸이 바삐 쫓아가 따라잡은 사이, 알리스는 벌써 책상에 서서 장부를 옆으로 치우고 책을 더 밝은 빛 아래에 둔 참이었다.

"헛짓거리 하지 마! 이 책 위험해! 모랭 씨만 다시 찾아내면 됐지, 그걸로도 짊어질 위험은 벌써 충분하다고!"

"…미안. 그 말이 맞아, 탐색에 집중하다 보니… 이 책이 나탕을 죽였다고 생각해?"

"내 손모가지를 걸고 말하는데 모랭 씨는 이 책 때문에 사라진 거야. 다른 사람이 사라진 것과 똑같이, 그리고 저 확인 기록들처럼."

알리스가 《통을 자체 고통》에게서 거리를 띄웠다. 그리고 갑자기, 불안의 기색은 있으면서도, 웃음을 한바탕 터뜨렸다. 미셸이 당황했다.

"상상이 가? 무슨 멍청한 이야기로 끝날 뻔했잖아! 내가 나쁜 결정이라도 내릴 것처럼!"

우지끈, 책상이 냅다 부서지고, 충격파가 모든 책장을 뒤흔들었다. 종이들이 온 방향으로 흩어지고, 측정 장치들의 경고음이 어수선한 불협화음으로 동시에 울렸다. 알리스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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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을 자체 고통


방금 쾅 하고 열렸던 책을, 미셸은 황급히 들여다보았다. 결과 따위 상관없었다. 알리스를 아직 구할 수 있을지도. 이 책은 괜찮다고 말했던 당사자로서 미안하다는 마음도 밀려왔고.

"젠장 알리스, 안돼 안돼 안돼 안-"

미셸이 책 위에 멈춰섰다. 충격받아 당황한 채로. 알리스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미셸의 불안한 기색이 이루 말 못할 만큼 커졌다. 움직임으로 따지면 책장이 더 활발할 정도로.

"아-알리스… 너… 너 책 속에 있는 거 같아…"

알리스가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사람이 어떻게 책 속에 있냐고, 자기 생각엔 어떤 상황이냐고 말하려던 중에 말이 끊겼다.

"알리스… 너… 지금 이 방에서 사라졌어. 그런데 네 행동이 모두 다 읽혀. 이 책이 말해줘… 이거 무슨 장난 아니지? 상상인 거 아니지?!"

미셸이 퍼뜩 뒤로 물러섰다. 알리스가 영문을 모르겠다며 자기가 진짜 알리스라고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일, 처음 만났을 때 생긴 일, 그 밖에 자기만이 알 수 있는 일들을 말했다. 그러나 미셸은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어, 너 지금 내레이션 속에 갇혀서– 아, 세상에. 그래그래, 내가… 이 책이 미래를 서술한다면, 내가 직접–

미셸의 기대가, 페이지 마지막 내용이 언뜻 보이면서 방바닥의 다른 종잇장들처럼 허공으로 날아가 구겨져 버렸다. 미셸은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알리스가 미셸을 도와주려고 할 때, 갑자기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앞도 더는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알리스가 고통을 참고 미셸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픽 쓰러져 기침이 나오고 말았다. 고통. 그리고 공포.

"안돼! 안돼,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 이럴 순 없어!"

미셸이 페이지를 홱홱 넘겼다. 자신의 이야기가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나탕이 사라진 부분도 보였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더 앞으로 가고 싶지가 않았다. 알리스와 함께할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마저 사라질까봐. 알리스의 허파에서 공기가 빠져나가고, 팔다리가 뻣뻣이 굳어갔다.

"안돼, 안돼 안돼! 맞서 싸워, 자기야! 나… 나 아무것도 안 할게, 안 읽을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안타깝지만 내레이션을 그런 식으로 멈출 수는 없었다. 말해야 할 것은 항상 있었으니까. 특히 미셸의 흥분하는 모습과 죽어가는 알리스가.

"아으으윽!!! 책 좀 처읽지 마, 미셸 나놈아! 그치만 어떡해, 더 읽을수록, 더 말할수록 시간만 줄어드는데! 그리고 내가 하는 말 좀 띄우지 마, 이 좋같은 책아!!!"

미셸이 눈을 질끈 감았다. 손에 들린 종잇장이 분노로, 떨리는 좌절로, 무력감으로 꾸깃 구겨졌다. 벗어날 수가 없어. 죽고 말 거야. 눈물이 종잇장에 뚝뚝 떨어져 두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입술이 깨물렸다. 아주 약간의 공간이라도, 세 줄 정도 버티게 해 줄 한 마디라도 알리스에게 주고 싶었다. 그러나 알리스는 친구가 무슨 노력을 다하는지조차 볼 수 없었다. 사과를 전해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그들의 삶. 일. 아이. 그것만은 원치 않았다. 너무 잔인해. 사랑해. 그렇게 알리스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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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안돼! 아직 공간 있잖아, 적어도 한 문장은, 왜 다음 페이지로 못 넘어가는데?! 왜…" sit amet, consectetur adipisici elit, sed eiusmod tempor incidunt ut labore et dolore magna aliqua. Ut
미셸이 나무 책상 발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알리스가 이 종잇장 속에서 죽었어… 상상이 전혀 아니야. 미셸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울음을 눌러 참으며 가시 돋친 말들을 내뱉었다. ex ea commodi consequat. Quis aute iure reprehenderit in voluptate velit esse cillum dolore eu fugiat
"누가… 얘가 죽었대? 이 책이 날 갖고 노네. 아직 페이지 속에 있어… 페이지를 다시 읽으면… 아직 살아 있는 거야…" proident, sunt in culpa qui officia deserunt mollit anim id est laborum. Duis autem vel eum iriure dolor in hendrerit in vulputate velit esse molestie non
미셸이 책상 가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이 붙잡고 다시 우뚝 일어섰다. 위험 따위 모르겠고, 잃을 것도 없으니까, 미셸은 책을 다시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뒤져 봐도 특이한 점은 없었다. 메타서사 능력을 빼고는 영락없이 평범한 책일 뿐이었다. 하릴없이 미셸은 책장 속 내용만을 쭉 들여다봤다. 항상 똑같은 문제, 똑같은 실종, 똑같은 문– consequat, vel illum dolore eu feugiat nulla facilisis at vero eros et accumsan et iusto odio dignissim qui blandit praesent luptatum zzril
똑같은 문서고. 왜 계속 똑같은 문서고지? 그 너머는 보지 못하는 건가? 자기 주변의 환경만 인식할 수가 있나? 방 안에 있는 지식을 흡수할 수 있었다면, 이 문서고 안에 갇힐 이유는 없는데… 왜? delenit augue duis dolore te feugait nulla facilisi. Lorem ipsum dolor sit amet, consectetuer adipiscing elit, sed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했다. 귀를 열어야 했다. 사소한 점 하나하나를 되돌아봐야 했다. 문서고 직원이 말했던 것처럼. 아직도 죽어라고 비명을 질러대던 온갖 계수기들을 미셸은 껐다. 방 안이 사방에서 부들부들 떨리고, 벽이 그놈의 불협화음을 이루며 우지직 갈라졌다. 종잇장들은 땅바닥에 그대로 있었지만,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간다는 듯이 꼼짝 않는 채 떨리기만 했다. diam nonummy nibh euismod tincidunt ut laoreet dolore magna aliquam erat volutpat. Ut wisi enim ad minim veniam, quis nostrud exerci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방 안에, 우글거리는 모순들이 굉음과 뒤섞여, 또 지식을 정돈해 담은 수많은 징후들의 난해함과 뒤섞여 소용돌이치며 혼란을 이루었다. 변칙성의 자취들이 두 세기 동안 종이에다 켜켜이 쌓이며 종잇장 위에서 썩어갔다. 그 속에서 자율과 혼돈을 품은 괴수가 비집고 나와 정보를 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가장 약소한 정보재해들이 가장 강한 밈 효과를 둘러싸 엉겨 있었다. 이 모든 별개의 현상들에 하나같이 정보가 깃들어 있었고, 이 오래된 문서고 속에서 진화의 길이 이미 닦인 채였다. tation ullamcorper suscipit lobortis nisl ut aliquip ex ea commodo consequat. Duis autem vel eum iriure dolor in hendrerit
《통을 자체 고통》은 분명 이 문서고의 의식이 주로 취하는 형체겠지. 미셸이 곰곰이 생각했다. 작품은 읽을 때마다 현실됨을 되찾는 법. 페이지에 눈길을 줄 때마다 미셸의 마음이 동요했다. 저 이야기에 몰입함으로써 자신의 무결성이 침해받았다는 그 분노로… 본격적으로 몰입하려는 그 문턱에서. consequat, vel illum dolore eu feugiat nulla facilisis at vero eros et accumsan et iusto odio dignissim qui blandit praesent
《통을 자체 고통》이 범인이었다. 이 책이 바로 이 혼란의 무리를 통제했고, 심원한 의식의 짐승에게 두뇌가 되었다. 이 책이 모든 위험들을 낳았고, 방 안의 모든 타락한 정보와 변칙현상을 단 수천 페이지로 농축해 두었다. 이 작품의 영혼을, 그리고 이 작품을 읽었다는 불행을 맞은 사람들의 영혼을 이 책은 빨아들였다. delenit augue duis dolore te feugait nulla facilisi. Nam liber tempor cum soluta nobis eleifend option
종이에게서 태어났다. 말들을 먹고 자란다. 본질을 약탈해 살아간다. 이 개같은 작품, 프랑켄슈타인 소설. quod mazim placerat facer possim assum. Lorem ipsum dolor sit amet, consectetuer adipiscing
그러나 책에는 먼저 써놓을 매만지기 좋은 내용이 필요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딱히 아무 뜻도 없는. 분명한 더미 텍스트. 그러나 가짜 텍스트는 최근에야 이 문서고로 들어왔다. 이 이야기의 사고방식은 부조리했고, 그래서 시간순으로 서술되었는데도 책은 이야기에게서 미래의 lorem ipsum을 뽑아내 썼다.


CMXX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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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점점 더 부조리해졌다. 미셸은 사방에서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이제 뭘 해야 하지? 한대도 어떻게 해? 적어도 자기 생각하는 바가 적히겠지, 내레이션이 방 안을 정밀 묘사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면. 페이지가 더 길어지는 기분이었다. volutpat. Ut wisi enim ad minim veniam, quis nostrud exerci tation ullamcorper suscipit lobortis nisl ut
문서고는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다. 이제 문서고는 영혼을 돌려받았고, 책장도 책도 문서도 행간도 단어도 모두 위치를 지키려 분투하고 있었다. 몇백 년을 말라 있던 냇물이 다시 새로 콸콸 흘렀고, 감각에 도취되어 협정들은 서로를 찢어발겼고 문단들은 검을 맞부딪쳤다. 새하얀, 서식의 진정한 무인지대에서 재단 변칙과학의 가장 탁월한 연구들이 서로 거세게 충돌했다. 의미가 다시 돌아왔다. 의미의 전쟁이 발발했다. hendrerit in vulputate velit esse molestie consequat, vel illum dolore eu feugiat nulla facilisis. vero eos et
지금 방으로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이 파도치는 의미의 혼돈 속에서 압도당해 꼼짝 못하겠지. 몰려오는 의미들이 머릿속을 꽉꽉 채운 끝에 굴복해버렸을 거야. 비상식적 질문이 솟아나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채로 또 다른 질문들을 불러오고, 곧 더 강력한 질문에게 쓸려가버렸다. 광기, 그리고 죽음, 마지막으로 흡수. 모든 것이 빨려들어가서는 열두 문서고에 자리잡은 치명적인 광기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갔다. At vero eos et accusam et justo duo dolores et ea rebum. Stet clita kasd gubergren, no sea takimata et ea rebum. Stet clita
파괴의 마당 앞 왕국의 입에 담지 못할 독재자, lorem ipsum dolor을 미셸은 맞아 싸우고 있었다. 아니면 이 심장과 같은 책, 이 모든 학살을 지휘한 장본인이 미셸을 맞아 싸운달까. 이놈만 없었다면 의식도 없고, 말의 행동을 명령할 지능도 없고, 방 도처에 굴러다니고 진동하는 이 기형 변칙정보 덩어리가 아무 반응도 대격변도 자아내지 않았을 테니까. est Lorem ipsum dolor sit amet. Lorem ipsum dolor sit amet, consetetur sadipscing elitr, sed diam nonumy eirmod tempor invidunt ut
새로운 형태의 지식들이 이 창조의 우물에서 솟아나왔다. 그러나 미셸이 lorem ipsum dolor를 간신히 버텨내는 것처럼, 이 책도 방 전체를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책은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했다.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존재였는데도. labore et dolore magna aliquyam erat. Consetetur sadipscing elitr, sed diam nonumy eirmod tempor invidunt ut labore et dolore magna
미셸은 정신을 집중했다. 왜 이 책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정말로 변칙효과가 한껏 뒤섞여서 이 책이 탄생했다면, 이런 행동은 정말이지 뜬금이 없었다. 이 모든 변칙성들을 방 하나에다 몰아서 넣어두면 뭐가 좋지? 왜 이 모든 지식들을 흡수하려 하지? 왜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죽이지? 아니, 죽은 건 아니지, 그 안에 가둬– aliquyam erat, sed diam voluptua. At vero eos et accusam et justo duo dolores et ea rebum. Stet
미셸의 머릿속으로 사건의 자초지종이 엄습했다. 이 녀석에게 정해진 목적이 없고 또 무엇보다 정보를 우선 집어삼키고 있다면, 그 의미는 단 한 가지였다. 재단의 문서고를 모두 삼켜버렸다는 것. 자신처럼 행동하려 한다는 것, 적어도 자신이 이해한 약간만큼이라도. 연구하고 관찰하고 묘사한다는 것. 자기 고유의 변칙성을 페이지 사이에 숨겨놓고자 스스로 결정했다는 것. 이와 같은 재앙을 페이지를 읽음으로써 꺼내게 된 이들에게도 분명 그랬겠지, 이놈이 이해하지 못한 인간들, 가두어 놓고 페이지 속에서 연구하겠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Lorem ipsum dolor sit amet, consetetur sadipscing elitr, sed diam nonumy eirmod tempor
이 책은 재단의 존재를 품은 혼돈스런 태아 덩어리로서, 자신의 환경에 따라 세계관을 적응시키고 있었다. 확보, 격리, 보호. 이 세 마디가 떠오르자, 방 안을 무지막지한 진동이 채웠고, 미셸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비명이 새어나왔다. 다시 일어서려 했다. 막아야 해. 이 공포는 존재하지 말아야 했다. 스스로의 진정한 성질을 혐오하는 놈은. diam voluptua. At vero eos et accusam et justo duo dolores et ea rebum. Stet clita kasd gubergren, no sea takimata sanctus est Lorem ipsum dolor
이 불길한 예감 한복판에서, 가능한 모든 말들과 모든 개념들과는 이름 다른 광기의 매개체 속에서, 미셸은 스스로 이 짐승을 무찌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CMXX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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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있다면 시도는 해야겠지. 미셸은 영혼 속으로 밀려오는 고통을 내버려뒀다. 페이지 속에 갇힌 모든 포로들을 생각했다. 책은 꿈쩍하지 않았다. 미셸은 알리스를 생각했다. 반응이랄 것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세상 모든 고통으로도 이 전쟁은 끝낼 수가 없었다. 그러면? sit amet. Lorem ipsum dolor sit amet, consetetur sadipscing elitr, sed diam nonumy eirmod tempor invidunt ut
미셸은 책에다 대고 엿이나 까잡수라고 소리를 질렀다. 타락한 신은 들은 기색도 없이 그 말을 옮겨적을 뿐이었다. 갑자기 미셸은 피할 수 없는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책은 미셸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있었다. 그럼 지금 자신은 어디 있지? labore et dolore magna aliquyam erat, sed diam voluptua. At vero eos et accusam et justo duo dolores et ea rebum. Stet clita kasd gubergren,
미셸은 자기 생각을 큰소리로 외쳤다. 자신이 아직도 현실 속에 있음을 증명하려고. 그러나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그래도 미셸은 앞선 두 사람보다는 오래 버텨내는 데 성공한 케이스였다. lorem ipsum dolor의 정체를 알아냈으니까. 나가야겠다고, 철문 밖으로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 아냐, 나갈 수 있– 없어. 미셸은 너무 많이 알았고, 이미 책은 약해졌다. 빨리 또 하나를 감금할 수밖에 없겠지. no sea takimata sanctus est Lorem ipsum dolor sit amet. Lorem ipsum dolor sit amet, consectetur
결국 미셸은 책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다. 불지르는 거야. 라이터, 뒷주머니에 있었지. 손을 뻗어 보니, 옷감만 꼭 닫혀 뜨거워진 채로 있었다. 젠장. 담배 끊자고 하루만 더 있다가 결심할걸. 분노가 차오르며 미셸은 칸트 계수기를 잡아들어 책에다 내리쳤다. 페이지 위에다. 빠드득. 갈비뼈 두 대가 부러졌다. 미셸이 피를 토했다. 아니, 피가 아니야… 잉크, 분명 잉크였다. labore et dolore magna aliqua. Ut enim ad minim veniam, quis nostrud exercitation ullamco laboris nisi ut aliquid ex ea commodi consequat. Quis aute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별들이 미셸의 눈앞을 스쳐갔다– 안돼!– 호흡이 점점 더 어려워졌– 안 돼! velit esse cillum dolore eu fugiat nulla pariatur. Excepteur sint obcaecat cupiditat non proident, sunt in culpa qui officia deserunt mollit
lorem ipsum dolor가 미셸을 가두려 했다. 가장 위험한 사람이니까, 책을 닫으려 하지 않았으니까, 문서고를 혼돈 속에 빠뜨리려 했으니까. 마땅히 스스로를 보호해야겠지. anim id est laborum. Duis autem vel eum iriure dolor in hendrerit in vulputate velit esse molestie consequat,
그래서 무슨 소용이지? 이 모든 게 미리 쓰여 있었다면, 이 lorem ipsum dolor가 나중에 생각을 바꿨다 하면 왜 학살은 계속되는 거지? 영국에서 서식들이 도착할 것을 책은 벌써 예견하고 있었다. 대체 이놈의 논리가 뭐지? 어떤 것이 내레이션으로 가며, 어떤 것이 서식이고 어떤 게 나머지 연구 대상이지? 분명 어떤 논리를 따른다는 건 맞았지만, 자신이 흡수해 인식 속으로 접붙인 서류를 바탕으로 스스로 이끌어낸 서사 규칙이 지시하는 대로일 뿐이었다. 무엇이 올바르건 무엇이 잘못 끌어낸 규칙이건, 아무도 그것을 교정할 수 없었다. 나머지는 오직 혼돈일 뿐. vel illum dolore eu feugiat nulla facilisis at vero eros et accumsan et iusto odio dignissim qui blandit
미셸은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납작해지는, 페이지에 낑겨 으스러지는 기분. 미셸에게 자신이 갈가리 찢기는, 말 하나하나도 생각 하나하나도 뽑혀나가 납작하게 되는 기분이 찾아왔다. 나비를 하나하나 핀으로 꽂으며 그 종의 씨가 마를 때까지 수천 마리를 계속 이어가듯 하는. 공기도 생각도 모두 비어버린, 변칙적 서사라는 해로운 포르말린 속에 잠겨서 절대 고통을 품고 목숨만 살아 있는 기분이었다. 움직일 수도 숨쉴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채로, 이내 미셸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오직 살아 있음을 깨우쳐줄 영원히 불쾌한 그 기분만이 남았다. amet, consectetuer adipiscing elit, sed diam nonummy nibh euismod tincidunt ut laoreet dolore magna aliquam erat volutpat. praesent luptatum zzril delenit augue
더 이상 미셸은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을 둘러싼 아마겟돈이 서서히 목을 조여왔다. lorem ipsum dolor가 독자를 가두었다. 아무도 이 책을 다시 읽을 수 없게 되고, 책은 스스로 닫히며 심연 속 말의 악마들을, 이 종말의 정보들을 데려가 치졸한 우물로 되돌려놓겠지. 미셸은 떠나갔다. 천천히, 고통스레. 공포, 내 사랑, 그 생각을 끝으로 이 피 묻은 페이지는 굳어갔다.

그리고 모든 것이 고요했다.


CMXXVII



서사 잠금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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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XXV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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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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