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어느 날부터인가, 한창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화가와 문학가들이 활동을 중단하거나 자살하는 사건이 부쩍 늘었다. 대부분 이제는 영감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지는 못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화가나 문학가들의 소식보다, 세계 각지의 수많은 인기 가수들이 비슷한 시기에 우르르 활동 중단을 선언하거나 자살했다는 연예계 소식이 더욱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또 어느 날, 한 미술관 CCTV에는 변칙적인 미술품을 설치하러 침입했던 AWCY 회원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찍혔다. 그들의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CCTV에 모습이 찍히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재단은 곧 AWCY를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일반적인 대규모 기억 소거 절차만이 이루어졌으며, AWCY 회원에 대해서도 그저 평범한 민간인 목격자와 같은 절차만이 시행됐을 뿐이었다. 그들은 다시는 자신들이 얼마나 쿨한지를 표현하지 못했고, 곧 모두 와해되어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어느 날, 재단의 광역 정보국 제1차장 카에스틴 브롬은 뭔가 허전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과 친분이 있던 한 음악가가 마약 중독 치료를 시작했다는 소식에 자신의 그런 사소한 느낌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훌륭한 재능뿐만 아니라 건강한 정신을 가진 자신의 친구가 약물에 손을 뻗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자신도 더 이상 새로운 곡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었다. 카에스틴 차장을 시작으로, 재단의 음악가들이 하나 둘 활동을 접기 시작했다.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던 클레프 박사의 우쿨렐레 연주마저도, 이제는 그저 경험과 기억에 의존한 기계적인 소리의 조합일 뿐이었다. 물론 활동을 그만두는 것은 음악가뿐만이 아니었다. 캐리언 트루퍼 요원의 책상에서는 더 이상 낙서를 찾아볼 수 없었고, 켄스 박사에게서는 더 이상 예술적 측면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많은 관리자는 매번 "이런 개인적인 취미 활동을 재단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지 말라"는 주의를 하라고 하곤 했지만, 막상 현실화되자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각 기지는 사기 진작을 위해 자체적으로 공모전까지 열었지만 더 이상 '재단의 서버를 좀먹는' 각종 낙서나 허위 보고서, 종잡을 수 없는 내용의 가짜 사건 기록 같은 게 다시 등장하지는 않았다.

모든 예술가의 대답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허전해.', '할 기분이 아니야.', '영감이 없어.'


어떤 사람들은 소재가 다 떨어졌으니 당연하다고 말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이 생길 만큼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소재 고갈은 언젠가는 찾아올 당연한 결말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저 배부른 자들의 사치일 뿐 살아가는 데에 하등 쓸모없는 무언가. 그런 허깨비를 좇는 자들에게 찾아온 비참한 결말이라는 것이었다.

표현할 무언가는 아직 많았다. 기억과 경험으로 얻은 기술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기술을 활용하여 여전히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는 있었다. 그저 기계적인 색의 조합과 소리의 조합, 현장을 기록한 것일 뿐인 사진, 과거나 현재를 기록하거나 미래를 예측한 것일 뿐인 글자였지만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었다. 하지만 과거에는 마치 숨을 쉬듯 당연히 채워지던 무언가가, 도저히 채워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그것은, 배부른 자들의 사치도 아니었고, 살아가는 데에 쓸모없는 것도 아니었다. 사회적 약자들은 살아갈 의지를 잃어 갔고, 부유한 자들은 극심한 회의주의에 빠졌다. 세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깡통이 찌그러진다고 해서 그 깡통을 세울 수 없는 것은 아니듯이, 사람들은 어떻게든 사회를 유지해 나갔다. 하지만 우리의 세상은 조금씩, 그리고 확실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나있었다. 인류는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이 땅에서 예술이 사라진 것이다.

새로운 변칙 개체가 출현한 것으로 판단한 재단에서는 즉시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새로운 이상 징후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새로운 의문이 제기되었다. '어째서 C모 요원은 계속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거지?' C에게는 이내 '마지막 예술가'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이런 별명이 붙자, 사람들은 한 SCP 보고서에 붙은 사견을 떠올렸다. 곧, 사람들은 새로운 변칙 개체가 출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제가 미친거라 믿고싶지만, 가끔씩은 이 빌어먹을 곰팡이들이 진짜 예술을 없애려 한다는 생각이 든단 말입니다. C 요원은 우리가 아는 한 마지막 남은 진짜 예술가이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예술은 이미 멸종했습니다. - SCP-095-KO 담당 연구원

그의 걱정대로, C는 유일하게 소위 '뮤즈'라 불리는 SCP-095-KO와 무관한 예술가였다. 그가 우려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졌지만, 어쨌든 '뮤즈'가 이 세상에서 예술을 지워버릴지도 모른다는 담당 연구원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재단은 자신들이 어째서 '파괴'가 아닌 '확보, 격리, 보호'를 표방하는지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재단이 가장 먼저 떠올린 방법은 물론 '뮤즈'를 배양하여 다시 퍼뜨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뮤즈'가 어떻게 멸종한 것인지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아무리 많이 배양하고 살포해도 대상은 체내에서 생존하지 못했다. 재단은 실패했고, 사회는 더욱 피폐해져갔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 낸 방법은 일명 비탄 프로토콜(Ennui Protocol)이었다. 인류는 이미 몇 번이고 자신들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 채 일상으로 돌아갔고, 모든 것을 처음처럼 되돌린 이력이 있었다. 복잡하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O5 평의회가 생각하기에 예술이라고 해서 그 결과가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이미 많은 전적이 있었던 일 답게 한 번 계획이 수립되자 실행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기에는 강력한 기억소거제가 살포되었고, 많은 인간의 기억이 조작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재단이라 해도, 세상에 남아있는 모든 예술 작품을 수거하여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예술을 향한 인간의 무언가는, 기억을 초월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비탄 프로토콜은 대 실패였고, 오히려 혼란은 더 가중되었다. O5 평의회는 인류는 어떻게 해서든 예술을 되찾아야 한다는 결론만을 얻을 수 있었다.

면담 기록 O5XL-01 중
C: 의외네요. 나이 지긋한 중년의 남성을 상상했는데, 이렇게 젊은 아가씨라니.
O5-██: (웃음) 전 그냥 비서인걸요. 설마 비밀많은 그 아저씨들이 직접 찾아오겠어요?
C: (웃음) 거 말 되네요.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O5-██: 아, 고마워요. 그나저나, 본인이 '마지막 예술가'로 불리는건 아시죠?
C: 부담스럽게도 다들 그렇게 불러 주시더군요.
O5-██: 재단은 당신이 이 시대 최후의 예술가이자, 다음 시대 최초의 예술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C: 대충 감이 잡히네요. 095-KO가 사라졌으니, 저더러 그 곰팡이의 역할을 해 달라는 부탁을 전하러 오신 겁니까?
O5-██: 아니요. 명령입니다.

2시간에 걸친 긴 설득과 위협 끝에, RH-A 계획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새벽, 얼마 전 선임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한 기지 최고참 연구원이 된 카잔 연구원이 기억나지 않는 기묘한 꿈 때문에 잠에서 깼다. 그는 다시 자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라 곧바로 이불을 걷고 일어나려 했으나 심한 두통과 빈혈에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두통과 빈혈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웬지 모를 허전한 기분에 그는 알람 소리를 듣고 놀랄 때 까지 멍하니 주저앉은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갑자기 울리는 알람 소리에 정신을 차린 카잔 연구원은 허전한 기분의 정체를 깨달았다. 항상 자신을 따라다니던 "빛"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렇겠지―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오늘은 바이올린 고급반 첫 수업이 있는 날이기도 했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즐거울 것이 분명했다. 그는 출근 준비를 하며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그 날 우연히 만난 거리의 악사가 공연을 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눈을 뗄 수가 없었고, 그녀 역시 바이올린 케이스에 지폐를 넣어주고 인사하면서 쭈뼛거리는 그의 모습을 귀여워했다 ― 그녀와 처음으로 키스한 이후 줄곧 그를 따라다니던 이상한 "빛"은 뭐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따스한 느낌을 선사했다. 카잔 연구원은 더욱 그녀에게 빠져들게 되었다 ― 하지만 영원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한번 빠져들면 한없이 몰두하는 성격을 가진 카잔 연구원에게 실연은 너무나 큰 상처를 남겼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우연히 들은 다른 바이올린 연주는 헤어진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이겨낼 힘을 주었고, 마침 그가 근무하던 기지의 직원 복지 센터에서는 바이올린 교습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렇게 카잔 연구원은 조금씩이나마 아픔을 극복해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첫 수업부터 놀랄 만큼 굉장한 재능을 보여줬던 그는 강사가 기대했던 대로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고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교습은 그저 체계적인 정리와 학문적인 이해를 위한 것일 뿐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빛은 그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소리를 들려주었고, 들은 것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도 아주 뚜렷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 그는 빛의 정체가 '뮤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처를 극복하고 아픈 과거를 좋은 추억으로 바꾸어 준 이 곰팡이는 카잔 연구원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었고 이내 그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하루가 지나도 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도 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수시로 찾아오는 두통과 빈혈에 시달리느라 아주 피곤하고 기분 나쁜 날을 보냈다.

일주일이 지나도 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극심한 허전함에 시달렸고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도 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눈빛에서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해가 바뀌어도 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임시라 해도 기지 관리자를 맡을 만큼 유능한 인원의 방황은 지도부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과학자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이성만을 겨우 붙잡고 있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카잔 연구원은 충분히 유능했으며, 그 능력을 십분 활용하게 만들어 줄 훌륭한 동기까지 있었다. RH-A 계획에 배치하기에 더 없이 훌륭한 조건이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비탄 프로토콜로 잃었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 세상에 페테르 브릴러 박사보다 많은 것을 잃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이 힘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한 순간에 자신이 존재하던 우주 자체가 사라져버렸는데, 어느 누가 그보다 많은 것을 잃었다 할 수 있을까? 페테르 브릴러 박사보다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역시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였지만 그저 조용히 애도하며 살아갈 뿐, 새로운 세상에도 잘 적응하며 꿋꿋이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이겨냈다고 할 수는 없었다. 평소 끊임없이 자신이 본 장면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고 느끼던 그는 자신의 우주가 허망하게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알 수 없는 어떤 답답함과 간지러움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저 큰 충격 때문에 생긴 PTSD의 증상 중 하나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어느 정도 정신을 가다듬은 그는 곧 그동안 느껴왔던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 그 자체임을 깨달았다. 재단에는 PTSD를 겪는 인원을 위한 복지를 제공했고, 그 중 유독 브릴러 박사의 눈에 띈 프로그램은 다름 아닌 미술 치료였다. 그의 마음에 생긴 거대한 구멍을 채워주었고, 처음 느꼈던 그 답답함과 가려움은 곳 통쾌하고 시원한 향기가 되어 그를 찾아왔다. 그는 곧 미술 치료를 끝마치고 직접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이내 프로그램을 바꿔 교습을 받기로 했다. 답답함과 가려움, 통쾌함과 시원함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고 그러한 향기는 그의 실력을 하루가 다르게 키워주었다.

소실사태가 재단의 큰 이슈로 대두된 것은 브릴러 박사가 이제 막 미술에 눈을 뜨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시작할 무렵이었지만, 그가 그림을 배우면서 얻게 된 향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미술 교실 수강 신청을 취소하는 와중에도 그 혼자만큼은 꾸준히 교습을 받았고, 결국 프로그램 자체가 폐기된 이후에도 그는 비탄 프로토콜로 기억을 잃게 되는 그 순간까지 혼자서 공부를 계속했다. 소실 사태로 예민해진 재단에서 이런 튀는 행동은 지도부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브릴러 박사 역시 C 요원과 마찬가지로 '뮤즈'로부터 자유로운 예술가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그 역시 RH-A 계획에 꼭 필요한 인원일 터, 얼마 지나지 않아 비탄 프로토콜로 잃었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친구의 면회를 다녀온 광역 정보국 제1차장 카에스틴 브롬은 습관적으로 책상에 앉아 작성중인 악보를 꺼내들었다. 그 순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경험을 훌륭하게 표현할 방법이 떠오를 것이라 믿었던 그는 친구의 소식에 잊고 있었던 기분 나쁜 느낌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무리 기술이 있다한들 인생이 담긴 영감 없이 만들어진 소리의 조합이 얼마나 기계적이고 무의미한지는 이미 숱하게 겪어서 알고 있었고, 이 상태로 곡을 쓸 수는 없었다. 짜증이 확 밀려왔지만, 그는 너무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물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악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더 이상 영감이 떠오르지 않게 된지 2주 째. 짜증이 확 밀려왔다. 친구가 왜 약물에 손을 뻗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음악은 빠듯한 생활 속에서 유일하게 활력을 넣어주는 것이었고, 재단이 주는 압박을 해소할 수단이 없어진 그는 날이 갈수록 예민해지고 삐뚤어져갔다.

그러던 와중에 재단이 '뮤즈'의 멸종을 눈치 챘고, 카에스틴 차장 역시 뮤즈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모든 정보력을 동원하여 뮤즈 보균자를 찾아 나섰고, 자신의 능력과 권력에 대한 규정이란 규정은 다 어기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분별력을 잃은 훌륭한 두뇌는 '어떻게 하면 지금의 재능과 권력을 유지한 채 영감을 되찾을 것인가?'에 대한 사고만 하게 되었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의 업무 성과는 오히려 더욱 높아지며 교묘하게 제재를 피해 달아났다. 물론 재단은 바보가 아니었고 카에스틴 차장의 행적을 모조리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활동은 예술을 되찾으려는 재단의 노력에도 부합했으며 정보국의 실적이 오르는 등 오히려 재단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능력과 공로 아닌 공로를 인정받은 카에스틴 차장은 RH-A 계획에 더없이 적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탄 프로토콜로 잃었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었다.


클레프 박사의 즉흥적인 우쿨렐레 연주의 인기 비결은 듣는 이의 감정을 조절하는 미약한 정신자적 효과였다. 하지만 단순히 기술만으로는 감정을 뛰어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자극할 수 없었고, 스스로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었다. '뮤즈'의 부재로 영감을 잃은 클레프 박사는 심한 답답함을 느꼈고, 오랜 세월동안 쌓은 경험으로 얻은 연주 기술로 자신의 감정을 극한까지 몰아세워 영감을 되찾으려 시도했다.

그는 2명의 사망자와 11명의 부상자, 그리고 무성한 소문을 남긴 채 사라졌다.

4개월 후, 비탄 프로토콜의 실패로 RH-A 계획이 수립되었고, 스스로의 연주로 차분하고 뚜렷하고 정신을 되찾은 클레프가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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