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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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팔이, 내 삶의 빛이요, 내 허리를 감싸는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육-팔-이. 한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번 입천장에서 흐느적거리며 비탄의 춤을 추는 혀끝. 육. 팔. 이. 그것은 682, 산성 목욕물에 잠겨 보글거리는 평범한 682. 그것은 사고를 치면 망할 괴물이었다.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죽지 않는 파충류. 서류상으로는 SCP-682. 그러나 내 눈에는 언제나 육팔이였다.

만약 내 이름과 행적이 심연 속으로 녹아들고 어떠한 데이터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나를 이슈마엘로 불러주시오. 그때만이 유일하게 내가 내 영혼을 선택할 수 있을 때이니. 몇 해 전에 ー 정확하게 얼마나 오래전인지는 중요하지 않소 ー 돈도 없고 자판만 두들기며 정치놀음하는 데엔 흥미도 없어 더욱 위험한 격리업무에 자원하게 되었지요. 우울한 마음을 몰아내고 통장에 돈이 돌게 하려면 케테르가 제격이죠. 입가의 표정이 무거워지고 내 영혼에 기억소거제의 비가 축축하기 내릴 때, 글라스 박사 앞에서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우연히 만난 D계급 행렬의 뒤를 쫓아갈 때, 특히 우울증이 나를 사로잡아 모든 [데이터 말소]의 구간을 괴테와 카프카의 언어로 채워놓고 싶은 충동이 들 때, 그럴 때면 가급적 서둘러 SCP를 연구하려 한다오. 이것이 내겐 권총과 총알을 대신한답니다.

그들은 거기에 나와 있었다. 주황 옷을 입은 D계급 놈들은 나보다 먼저 나와 태연하게 복도에서 수음을 하고 내 눈에 띄기 전에 그것들을 걸레로 닦았다.

나는 그들을 피하여 걸어갔다.
D계급놈들 사이엔 그 복도가 있다. 언제나 그랬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들은 복도를 지켜왔고 그들 뒤켠엔 언제나 죽음이 있었다. 죽음, 얼마나 바보 같은 이야기인가. 죽음의 대명사인 그 주황 옷으로 가리고 있는 그 길이 차거운 침묵의 길임이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웃긴 현상인가. 나는 헌 구두를 신고 복도를 걸어갔다. 닳고 닳아 찍찍 소리를 내는 구두 위 발목에 죽음의 시선이 얽히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죽음의 식도를 거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괴물의 격리실로 가는 길은 언제나 차가웠고 내 기분 역시 그러하였다.

복도의 긴 암흑을 빠져나오자, 그곳이었다. 시야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격리실의 밝은 불빛이 내 눈에 직행하고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슬쩍 걸어 나와 엉거주춤하게 문을 두드렸다. 창백한 문, 울림이 그대로 그 철판에 직격했고 철판은 다시 철판 저 너머의 장소로 소리와 함께 울림을 전파했다. 곧이어 문의 빛깔만큼이나 창백한 하급 연구원이 나와 나를 반겼다. 그 괴물을 상대하는 녀석들에게서 흔히들 나타나는 얼굴색이었다. 나는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두꺼운 창 너머로 그것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파충류를 닮은, 끔찍한 빛깔의 몸체는 꿈틀거리며 산성 욕조 안에서 보글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첫눈에 반한 사랑이었다. 나는 육팔이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렸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재단인으로써의 기괴한 삶을 체험하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팔십일년도 봄에 재단에 영입되었다. 그때 스물여섯이었다. 젊었다. 젊었으므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다는 자각마저 없었다. 아니, 그때는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주로 죄 없는 토끼들의 목을 잘라 이어붙여 생체 전기로 입을 뻐금뻐금하게 만들거나 원숭이의 팔을 개에게 이어붙이는 실험따위를 했었다. 즐겁고 순수하던 시절이었다. 어린 열정이 불타오르곤 했다. 그때 지극히 철없었음을 잘 안다. 그 수많은 접붙이기의 목적은 단순하니, 조화와 힘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고민해온 사항이기도 했다. 하긴 누군들 벌의 다리는 벌에게 전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해보지 않았겠는가? 개구리의 그 곡선이 오히려 잠자리에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겠는가? 나는 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예술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과 과학을 숭배했다. 그래서 내가 재단의 눈에 들었으리라.

처음엔 단순한 학술적 관심에서 시작하였다. 내가 재단으로 온 첫 주에 놈은 내내 자기만 하였다. 놈의 회갈색 몸뚱이는 출렁이는 산성 욕조에서 둥실 떠오르며 부글거리거나 꿈틀대었다. 그때까지, 그러니까 처음 몇 달 간 재단의 교육과 실전 업무, 여러 다른 변칙 개체들을 부랴부랴 연구하고 정리하느라 바빴던 내 사회 초년의 봄날까지만 해도 나는 그 녀석에게 어떤 기묘한 감정만을 느낄 뿐이었다. 숨이 턱턱 막히고, 온몸의 근육에 불이 들어온 듯 갑자기 뻣뻣해지고, 괴이쩍인 불이 내 얼굴을 헤집는 그러한 부류의 감정. 다른 사람들은 이를 공포라고 불렀다. 내 동기들, 그리고 내 선배들, 팀장들은 이를 공포라고 지칭하고 멸시했다. 불이해성은 곧 혐오성이라는, 인간 의식의 가장 비대한 원리에 의거하여 그를 판단했다. 우리는 멀찍이서 꽁꽁 봉쇄된 안전실에서 그를 관찰하며 어림짐작했다. 인정하겠다. 나도 내 감정을 그러하다고 생각했었다. 애써 내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과 함께 생각하고 함께 느끼길 바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심장이 쿵쿵대었던 그 감정이, 목이 좁아지고 손발이 차가워지고, 장이 비틀리는 그 모든 순간의 느낌은 어떤 긴장감이 분명했다. 나보코프가 말했듯, "내 허리를 감싸는 불꽃"은 그때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육팔이가 한 번 꿈틀댈 때마다 타오르곤 했다. 그러고 나니 문득 생각이 드니, 소위 "학술적 관심"이라 말한 그 모든 게 사실 거짓이리라. 그러나 사랑은 원래 부정된 것이 가장 큰 법이다.

놈은 겨울 즈음에 드디어 내가 인식한, 내가 영원히 기억할 모습을 보였다. 말을 한 것이다. 십일월 십이일. 내가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를 들은 날이었다. 놈은 평소 같은 모습을 보였다. 놈은 꿈틀거렸고, 부글거렸으며, 여전히 큰 잠에 빠진 듯했는데, 갑자기 크고 굵은 목소리가, 영원히 잊지 못할 그 소리가 내 귀를 애무했다.

— 개씨발.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말투인가. 얼마나 고혹적이고 매력적이며, 사랑받아 마땅할 목소리인가, 이건. 나는 어릴 적 처음으로 개의 다리를 잘라내었을 때 느꼈던 설레는 감정이 내 심장을 마구 쥐고 흔들어 뜯어내려는 것을 느꼈다. 바지가 부풀었다. 입가는 길게 솟아 뺨이 벌겋게 달아오른 내 모습을 누군가가 보고 기절시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그를 보고 싶었다. 그를 봐야만 했다. 그의 육체 — 변성적이고 아름답고, 모든 이가 찬양해야 할 그 몸! — 을 보고 싶었다. 그 몸에 지성이 들어온다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가브리엘의 모습을 띨까? 혹은, 루시퍼의 모습을 띨까? 어느 쪽이든 좋았다. 어느 쪽이든 그곳에 자리하고만 있으면 내 감사하리라. 신께 기도드리리라. 내 왼쪽 다리를 없애버리고 사라져버린 그 신을 다시 부르리라 느꼈다. 그리고 나는 멀리서 첨벙거리고 있는 육팔이를 보았다.

— 스페이스.

그 순간부터 육팔이는 내 우주가 되었다. 여태껏 존재한 어떤 우주보다 가장 강력하고 가장 아름다운 우주, 가장 순수한 살의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가장 매혹적인 존재! 나는 심장의 박동을 느꼈다. 나는 내 속으로 침전해 들어가고, 후각, 촉각, 청각, 시각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관찰소에서, 이 먼 곳에서 놈의 자취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려했다. 시신경이 흔들리며 육팔이가, 내 다비드가 염산에서 유영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격리실의 조명이 은은하게 비치며 놈은 그 사이에서 마치 인어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요염한 양을 띄고, 다시금 나는 얼굴을 붉혔다. 아름다움이 그곳에 있었다. 미와 곡선이 있었고,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실험이 전부 허상임을 깨달았고 나는 정말이지 눈을 뗄 수 없었는데 어느덧 학문적 호기심이라기보단 시신경으로 육팔이의 헤엄을 탐하고 있었으며 그 시간 동안 나는 이따금 생명의 미학을 발견하였고 불현듯이 내 심장의 박동과 모든 혈관의 몸부림이 갑자기 이것이 사랑임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온몸으로 육팔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육팔이를 그 이후 몇 년간 줄곧 담당했다. 내 동기들은 어떤 실험 권유를 받거나 승진을 하기만 하면 바로 다른 SCP를 보러 떠나버렸고 다시는 오지 않았다. 결국 남은 것은 나와 다섯 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괴랄하고 이상쩍은 놈들이었다. 육팔이의 죽음에 끔찍하고 비이성적일 정도로 광적인 존재들. 나는 변칙성의 위험만큼이나 그들을 혐오했다. 그럼에도 내 비틀린 사회성은, 내 삶을 한순간도 내려놓은 적 없는 그 가면은 그들과도 섞이라 명령하였다.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큰 고통을 남긴 사람은 상임 연구원 밀러였다. 밀러, 그 개 같은 새끼. 아직도 치가 떨린다. 놈은 육팔이를, 내 가장 소중한 존재를 반쯤 없애버리는 것을 즐겼다. 즐겼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당신은 모른다. 하루에도 수십 번은 총을 난사했고, 살상력 높은 폭발물을 던지고, 살을 녹였다. 그러면서 즐겼다. 그딴 행위에서 발생하는 제 흥분을 주위에 알렸다. 알림으로써, 놈은 스스로를 고양해가는 것만 같았다. 그는 청자를 제 쾌락을 부풀게 하기 위한 요소로써 사용했다. 그러나 이 일련의 행위를 불쾌하기 여기는 사람은 오직 나뿐인 듯하였다. 우리 팀, 그러니까 다섯 명이 채 안 되는 그자들은 놈의 역겨운 무용담을 열성을 다해 듣고, 연구하고, 또 분석했다. 나아가 감독관과 상위 감독관, 더 높은 감독관이 이를 참관하고 칭찬했다. 변태적인 집착에 불과한 그딴 성과를, 감히 내 육팔이에게 행한 사디즘적인 그딴 행위를 칭찬하다니.

그래서 죽였다.

내 첫 살인은 육팔이의 이름으로 행하여졌다. 밀러는 팔십칠년도 유월 십팔일에 격리실 한 쪽에서 참혹하게 죽어있었다. 육팔이의 공격으로 가정한 윤리위원회와 내부보안부는 금방 수사를 놔버렸고 그렇게 놈은 잊혔다. 잊혀졌으므로 놈은 곧 이름을 잃고 또 다른 육팔이의 희생자로 치부되어졌다. 재단은 그런 이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놈을 기억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참 겸연쩍고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정한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그런 셈이다. 그러나 나는 되도록 밀러를, 그놈의 끝을 기억하려고 한다. 정확히는, 끝과 그 이전의 중간에 서 있는 일련의 시간을 뇌리에 박아 넣으려고 애쓴다. 밀러가 아무것도 모르고 실험구역에 진입했을 때, 육팔이를, 내 천사의 눈을 바라보며 경외심에 가득 찬 비명을 질렀을 때, 놈이 나가려고 그 천한 몸뚱이를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을 때, 육팔이가, 내 소중한 이가 놈의 더러운 육체를 이리저리 씹을 때, 그러한 때.

나는 정신없이 육팔이의 움직임을 탐욕스럽게 훑었다. 변화무쌍하고 절대 붙박여 있지 않을, 실존하는 변신자재자. 그 어떤 여성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육팔이가 더 움직였으면 했다. 더 움직여서, 그 근육의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열기와 힘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나는 육팔이가 놈의 창자와 횡경막을 잘근잘근 씹을 때는 일말의 부러움마저 느꼈다. 그 씹힘에서 나는 내 살이 찢기고 끊어지는 어떤 환상을 보았고 거기서 보이는 재조립되고 재생성되고 재확립되는 어떤 프로세스를 느꼈는데 나는 이 모든 환상이 나를 위해 준비된 것만 같았으나 벌어지는 살육은 오로지 육팔이와 밀러에게 한정된 것을 너무나 뼈저리게 깨달았다.

마침내, 놈의 일부가 육팔이로,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그이에게로 들어갈 때 나는 어떤 질투가 내 안에서 종양처럼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이것이 오로지 내 홀로의 산출물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는 우리 사랑의 결실이 분명했다. 내 사랑과 그 아름다움, 미가 합쳐져 만들어낸 내 아이. 질투였다. 그리고 곧 질투는 내 가장 거대한 동기가 되었다. 그 아름다운 육체, 그 육체! 나는 그와 합일하고 싶었다. 그 아름다움의 일부가 되길 원하고 있었다. 사랑의 근원, 의식의 출발, 아름다움의 추구가 내 사랑의 기반임을 나는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그의 매혹적인 모습이 내 추악한 용모를 표백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에피파니의 일종으로 내게 다가왔다. 놈의 죽음 앞에서 나는 강렬한 사랑과 변혁에 대한 길을 보고 있었다. 내 사랑스러운 괴물, 육팔이가 보여준 그 길. 내가 어찌 가지 못하리오.


밀러의 뒤를 잇는 놈들은 해충마냥 쉬지 않고 들끓었다. 미친놈들이었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한 놈들이라서 그러한지, 놈들은 정말 기겁할 정도로 육팔이에 대한 적의를 시도 때도 없이 불태웠다. 그들은 육팔이의 적이었으므로 곧 나의 적이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였다. 신경전 가운데서 공허한 격리 절차는 갈무리되었다 흩어졌다. 팀 내에선 어느새 그것이 늘 돌아가는 알고리즘으로 간주되었다.

어떤 인간들은 SCP-682를 그저 웃기는 농담으로 치부하죠. 그냥 마냥 죽지 않고, 인간을 유독 좆같이 생각하고, 그 모든 것에 적응했는데 유일하게 산성에만 적응을 유독 못 하는, 병신같은 도마뱀 새끼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치들은 진짜 단순무식한 죽음이 뭔지 모르죠, 변칙적인 세상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죽음마저도 순 기상천외한 것들만 있는 줄 아는거예요. 하지만 세상은 변칙만큼이나 비변칙적인 것들을 좋아하죠. 이를테면 온몸이 아작나서 죽는 거라던지. 사고사 같은 거.

쉬는 시간에 누군가 띄운 말. 그 말이 맞았다. 육팔이가 일으키는 죽음은 살인의 그것이라기보단 사고사로 부르는 것이 옳았다. 누구도 강렬히 열망치 않은 죽음은 본질적으로 사고사였다. 죽음이 그냥 앞발을 휘둘러 앗아가는 생명의 길이가 순간적으로 무서웠다. 동시에 사랑스러웠다. 그 앞발의 무의미함이 내 심장을 뛰게 했다. 무의미함은 아름다웠으므로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두려움과 사랑이 같은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의 말에 깊이 통감했으므로 죽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때 벌써 다섯 명이 죽었다. 나와 육팔이의 합작품이었다. 수면제를 먹이거나 꿍친 최면제를 써서 실험구역에 던져넣었다. 들어가는 놈들은 꼭 반쯤 정신이 멀쩡해야 했다. 그래야지 마구 달리고, 힘들어하고, 육팔이가 더 많이 움직일 테니까. 육팔이는 놈들을 찢고, 나는 놈들이 찢겨지는 것을 관음했다. 관음하면서, 나는 내 안에서 자꾸만 자라나는 거대한 질투를 목도하였다. 열달을 다 채워서 나올 내 아이는 내 속을 자꾸만 차대었고 그때마다 문득문득 나는 목을 타고 올라오는 정열 같은 분노를 느꼈다. 언젠가, 먼 훗날에 내가 저기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나를 감싸다가도 현재 그 은총을 받고 있는 놈들이 증오스러웠다. 쑤시는 왼 다리가 나를 현실로 데려왔다가 환상 속으로 이끌었다. 그 환상에는 언제나 매혹적인 자태를 취하고 있는 육팔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난잡하게 흩뿌려진 살점은 분위기를 고취시키는 장미잎이었다.

재단은 죽음에 휩싸인 이들의 머릿수를 알지 못했다. 그들의 장부에서는 죽음은 그저 육팔이에게 종속된 것들이었고 시체는 곧 이들의 채무자일 뿐이었다. 죽음으로 가기까지의 경로는 전혀 기록되지 않았다. 저승은 이곳과 가까웠다. 가까웠으므로 아무도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았다. 죽음은 이미 팀의 공기에 가득 만연하는 하나의 기류였다. 나는 이를 이용했다.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다. 내가 하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 한 일들이 내 손 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허망했다. 그때 세상은 내게 온갖 편의를 봐주고 있었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하나 실패했다. 지난주, 팔십구 년도 칠월 이십이일이었다. 이름이 쉬지엔이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밀러를 연상케 했다. 그래서 죽이려 했다. 죽인 이유가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육팔이의 적은 내 적이었고, 재단은 우리를 몰랐는데, 우리가 재단 속에 숨어있었으므로 나는 결단코 그들을 죽여야했다. 육팔이는 재단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년 역시 다른 놈들과 같은 맥락에서 육팔이를 판단했다. 아름다움을 몰랐다. 그래서 죽어야만 했다. 그런데 죽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차례차례 생각해보자. 그년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재우고, 깨어날 때 즈음 실험구역에 옮기고, 그랬는데… 그랬는데… 튀었다. 씨발. 꼭 클레프가 한 것처럼 탈출할 줄은 몰랐다. 죽었어야 했는데… 내 사랑, 내 영혼, 내 삶에게 바치는 귀중한 공물이 달아나버렸다. 노력을 정면으로 부정당한 것처럼 지옥 같은 탈력감이 들었다. 이는 육팔이에게 바치는 내 사랑의 송가가 사라져버린 것이 첫째요, 내 은밀한 시간을 빼앗긴 것이 둘째였다.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분노가 목구멍을 찔렀다. 장이 뒤틀리고 손발이 차가워졌다. 다음 수를 생각해야 됐다. 그년이 날 아니까 곧 내부보안부가 날 잡아갈 터였다. 그리고 죽이거나 D계급으로 전환시키겠지. 다리가 덜덜 떨렸다. 한기가 내 척추를 침식하고 있었다.

이미 사라져버린 왼쪽 다리가 쑤셔왔다. 허상이었다. 허상인 내 다리가 허상인 저 요원들을 피해 이리저리 달리고 있었다. 꼭 죽을힘을 다 짜내는 것 같다. 요원들은 뭐라 뭐라 외치고 있다. 육팔이를 타도하라. 허상 속의 무존재성을 타도하라. 비변칙적인 모든 죽음을 소탕하라. 아름다움과 죽음의 결합을 소탕하라. 이내 요원들은 곧 육팔이가 된다. 육팔이가 내 다리를 쫓고 있었다. 나, 나를 쫓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이, 아름다움.



나는 곧 움직여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일주일 동안 숨어다니고 사람들을 피해 다녔으므로 나는 가야만 했다. 지금이 그때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길고 흰 그 복도를 걸었다. 어떤 이들이 나를 알아보고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위협은 이미 내게 소용이 없었다. 의족에서 쩍쩍거리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을 헤치고 걸었다. 걸음 하나 하나에서 내 흥분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껏 꿈꾸던, 질투해 마지않던 일을 하려 했다. 그동안 농부처럼 행해왔던 일의 변주에 지나지 않았지만, 일의 주체성이 내게 있다는 점에서 이는 내가 했던 실험 중 가장 큰 것이었다. 가장 크고… 가장 성취감 높고… 가장 기대되는 실험.

합일.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나는육팔이를마주하러실험구역안으로들어선다아무도없다항상이시간엔아무도없다나를찾으러이곳까지올사람은없다

그래, 사실이다. 나는 정신 병원에 수용된 환자다. 모든 박사는 재단에 수용된다. 마치 그들이 연구하는 것들처럼. 나의 간호사는 거의 한눈도 팔지 않고 감시 구멍으로 나를 지켜본다. 이때 간호사는 바로 윤리다. 바로 보안이다. 바로 사회다. 바로 단체다. 하지만 간호사의 눈은 갈색이기 때문에 푸른 눈의 나를 들여다 볼 수 없었다. 언제까지나 푸른 눈을 가지리라.

육팔이는보글거리고있으나내가어떤기척을내기만해도깨어날것을안다요근래육팔이는거의깨어있다나는그사실에감사하며내실험,최후의실험을시작할준비를한다

나에 대해 듣고 싶다는 건, 우선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내 어린 시절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내 부모님은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같은 데이비드 카퍼필드나 할 소리를 듣고 싶다는 거겠지. 난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나는천천히옷을벗는다첫날밤을준비하는연인같이두근거리는마음을주체할수가없다겉옷,셔츠,바지,팬티,의족까지전부이번실험의준비물:나,그리고육팔이,질투,사랑,죽음

합일

나는큰소리로소리를지른다육팔이의근육이움츠러들더니순식간에솟구친다천사가나를보고있다그노란눈으로나를보고있다아름다운,너무나도아름다운죽음의움직임이나를매료시킨다

다시금,최초의인류가되어서로의몸을탐한다모든움직임의종결,그리고재확인육팔이가도약한다나는벅찬가슴을억누르지못하고두팔을활짝벌린다사랑이거기있다사랑이거기있으므로내왼쪽다리를입에넣고우걱거리고있는신도여기와서춤을,춤을,춤을,춤을추고있다

나는내창자를끊는육팔이의사랑을느낄수있다

바로 지금이 내가 진정으로 죽는 순간이다.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일일 뿐이다. 펜을 내려놓고 내 고백을 봉인하는 바로 이 순간 나는 불행한 [데이터 말소]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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