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간 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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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karoff 2021/7/24 (토) 20:02:20 #72416532


초르노빌, 그 사고가 일어난 땅은 지금은 도시전설과 괴기현상 목격담, 음모론에 범죄은폐 목적의 유언비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오컬틱한 소재가 대량으로 가득하다. 언제부터인가 이 땅에 온갖 도시전설들이 모이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그런 도시전설에 흥미가 동해서 이 땅을 찾았다. 몇 년 전, 취미와 실익을 겸해서 찾아온 거리에서 여러가지를 견문했다. 그 때 들었던 이야기도 말해볼까 한다. 며칠에 걸쳐 합법적인 현지 가이드, 치안기구 관계자, 스탈케르, 관광객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주워듣고 다녔는데, 그 중에서도 유난히 기묘한 이야기를 하는 가이드가 있었다.

그가 말하는 바, 초르노빌에는 무서운 소문이 여럿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밖에서 갖고 들어온 괴이”라고 한다. 이 땅에서 유래한 것도, 현지의 치안관계자가 안전을 위해 갖고 들어온 것도 아니고, “매너 나쁜 관광객”이 갖고 들어온, 분위기를 내기 위한 소도구, 그것들에 터무니없는 “아다리”가 섞여든다고.

karkaroff 2021/7/24 (토) 20:20:02 #72416532


Pripyat_2010

2010년대

초르노빌은 그 원전사고 이후 오랫동안 소련이나 우크라이나가 엄중하게 그 지역을 봉쇄했다. 그러다 2000년대를 조금 넘겼을 때 완만하게 일시적인 출입이 시작되면서, 이제 와서는 그냥 관광지다. 2019년 기준 공식 방문자나 허가를 얻은 스탈케르가 연간 7만 명에 이르고, 비합법 에어리어에 기어들어간 위법 스탈케르까지 포함하면 8만에서 9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 근처 에어리어에 스며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개의 인간들은 매너를 지키고 둘러보기만 하는 선량한 사람들이지만, 일부 모랄없는 사람들이 프리피야티, 레드존, 여기저기 폐허에서 인스타 촬영을 찍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에 그럴싸한 사진을 올리기 위해 어디선가 갖고 들어온 방독면이나 인형, 그럴싸한 낡은 신문 따위의 쓰레기를 폐허에 설치하고, 사진을 찍고, 그리고는 그대로 돌아간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환경보전의 관점에서 이것들을 관계기관의 스태프들이 회수하는데, 그러다 보면 언젠가 문제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저주받은” 물품이 섞여 있었다는 것이다.

karkaroff 2021/7/24 (토) 20:32:23 #72416532


가장 처음 그것이 일어난 것은 2011년의 일이었던 것 같다. 레드존이 아슬아슬한, 붉은 숲 인근에 있는 폐감시소에 그것은 남겨져 있었다.

곁에서 보면 그냥 인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것을, 발견한 순찰대 중 한 사람이 가이거 계수기로 안전을 확인한 뒤, 그것을 획수하고 회수품으로 보고했다. 인형은 증거사진을 촬영한 후 소각로행이 정해져 있었으나, 회수품 보관고에서 홀연히 모습이 사라졌다. 오염된 물품을 보관할 일도 있는 보관고다. 물건이 사라지는 일 자체가 평소에 자주 있을 리가 없을 터인데, 인형을 넣어두었던 보관박스가 꺠끗이 사라졌고, 그리고…… 사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karkaroff 2021/7/24 (토) 20:55:55 #72416532


처음 사라졌던 것은 순찰하러 나갔던 우크라이나 치안당국 사람 한 명이었다. 레드존의 “붉은 숲” 변두리를 순찰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막 정시연락에는 언제나와 변함없는 가벼운 잡담만 남아 있었고, 사라질 만한 정황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걱정이 되어 그를 수색하러 나간 동료는 인형이 발견되었던 곳과 같은 폐허에서 보관박스에 담긴 그의 장비들을 발견했다. 보관박스는…… 보관고에서 사라진 것과 넘버가 일치했다.

다음에는 인형을 처음 발견했던 인간이 사라졌다. 출근하지 않는 그를 걱정한 동료가 찾아갔다가 발견한 것은, 토스트와 잼, 싸늘하게 식은 홍차, 그리고 접시에 담긴 대량의 이빨이었다.

karkaroff 2021/7/24 (토) 21:11:01 #72416532


최종적으로 극한에 몰린 그들은 동방정교회에 매달렸다. 엑소시스트의 악마불제인지 클레릭의 기도인지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를 받고 나서 그 이래로 지금까지 사람이 사라지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지금도 인형 같은 것을 주웠다가 불행을 당하는 일이 정기적으로 발견된다고 한다. 인형, 완구, 때로는 봉인된 상자 같은 것까지. 물품은 다종다양해서 손을 쓸 수가 없다.

이야기를 이야기를 해준 몇몇 사람들은 모두 그러면서 웃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자기들은 아직 의지할 곳이 있고, 대처법도 확립했으므로, 그나마 “” 것 아니냐며, 모두들 성수가 들어 있는 힙플라스크를 내게 보여주었다. 이것을 걸고 옮기면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그 사이에 태워버리면 된다고.

허나, 지금 문제는 그 부분이 아닌 것 같다……

karkaroff 2021/7/24 (토) 21:21:21 #72416532


Chernobyl_and_Pripyat_3.jpg

버리고 간 악의란?

그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게 된 뒤로, 대신 혼쭐이 나기 시작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 같다. 붉은 숲을 출입하는 스탈케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물품의 피해를 받지 않게 된 것과 동시기에, 위험한 레드존에 들어가서 아슬아슬한 스릴을 즐기고 숲을 헤쳐대는 “위법한 관광객”의 검거건수가 급격히 줄었다는 것이다. SNS상에 투고되는 화상도 줄어들면서, 그들이 숲에 들어갔다는 흔적 그 자체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즉슨 버리고 간 “물품들”은 지금은 노리는 대상을 바꾸었다……는 것이 될 것이다. 그들이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널리 재배치하고 자신들의 추억거리나 전리품으로 삼으려 한 전리품들이, 그들에게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버리고 간 악의는, 지금도 그 숲 어디선가 그 몸을 의태하고 먹이를 기다리고 있다. 붉은 숲에 들어갈 때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숲에 숨어들어온 것은 방사능 뿐만도 아니고 야생동물 뿐만도 아님을.

초르노빌에서는 무기물마저도 사람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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