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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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3년 2월 3일에 〈마포대교를 주기적으로 걷는 사람들에게〉라는 제목으로 투고된 글.

밤에 마포대교를 걷게 되면 다리가 빛난다. 모 회사가 설치한 생명의 메세지는, 그들의 원래 의도인 자살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보다는 보행자들에게 편의성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자살자가 많은 다리라지만 마포대교를 걷는 대부분의 사람은 일반인들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고 매일같이 강 건너에서 퇴근해 돌아올때 마포대교를 애용했다.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 다리의 분위기를 좋아했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심야에 내 앞길을 밝혀주는 따뜻한 메세지라는건 보기에 참 좋은 것들이었다. 문체가 과거형인데서 이미 짐작했겠지만 나는 더 이상 마포대교를 걸어다니지 않는다. 정확히 10월 23일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마포대교를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다시 그 길을 걸을 용기가 나지 않으니까.

심야의 마포대교에서 보행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보행자를 식별하기란 매우 편한 일이다. 밤에 걷고 있다 보면 저 멀리에서 불빛이 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밤하늘을 밝히는 두 개의 빛이 만나면 곧 우리는 짧은 인사를 나누고, 이내 다시 헤어진다. 비록 자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그렇게 우연히 이루어지는 만남에서 나는 온기를 느꼈다. 어두운 밤에 다리를 걷는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것에서 느낀 짧은 안도감일수도, 혹은 삶을 짊어지고 퇴근하는 사람에게서 느꼈던 동질감일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저 멀리서 불빛이 다가오면 혼자서 기대를 하곤 했었다. 아, 저 사람은 무엇을 하러 여기 왔을까. 잘 지내고 있을까. 어떤 인사를 건네볼까. 같은 작은 질문이었다.

그 날도 그랬다. 날씨는 점점 쌀쌀해지고 있었고 걸친 코트 하나로는 추위를 막기 힘들었다. 달은 꽤나 밝게 떴고, 메세지는 여느때와 같이 내 앞을 밝혔지만 어딘가 알 수 없는 한기는 내 머리를 한시도 쉬지 않고 침범했다. 심지어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꼈던 것 같다. 이미 수십번 걸었던 길인데 그런 기분을 느꼈던 건 어쩌면 미래에 대한 암시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 분 가량 걸었을 때 나는 반대쪽에서 오는 어둠을 발견했다.

아직도 그 남자가 뭐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보행자임이 분명한데도 난간에 박힌 메세지는 빛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내게 어둠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시야 바깥에서부터 서서히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는 내 머릿속의 모든 걸 지워버렸고, 나는 허공에 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창백한 얼굴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사람이 아닌, 무언가 어두운 것. 이 이상 그 자가 내게 주던 느낌을 표현할 수는 없다. 확실한 건 그 남자는 내게 사람이라는 인상을 전혀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서서히 겁에 질리기 시작했고 주머니에 넣어놓은 십자가를 손에 꼭 쥔 채 주기도문을 외웠다. 눈을 감고 필사적으로 외우던 게 효과가 있던 모양인지 조금 후 공포감은 가셨다. 아직 손에 십자가를 쥔 채로 나는 눈을 살며시 열었다.

그 남자는 내 바로 앞에 있었다. 검은색 셔츠에 대비되는 하얀 살갗 위로 입꼬리가 부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젖은 머리는 가로등 불빛을 받아 곧 물을 줄줄 흘릴듯 번들거렸다. 그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아쉽네." 하고 지나갔다. 그가 내 옆을 지나갔을 때, 내 움직임에 반응해 켜져있던 난간의 불빛이 완전히 꺼졌다.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남자를 지나쳐 앞으로 달려갔다.

그 이후로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마포대교의 끝자락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단지 그 끝에서 공기를 들이쉬고 내쉴 뿐, 등 뒤로 돌아보려는 생각 같은건 하지 않았다. 한 발자국도 멈추지 않고 집에 들어와 문을 잠근 채 벌벌 떨며 그 날 밤을 샜다.
그게 내가 마포대교에 더 이상 가지 않는 이유다.

2.

2010년 5월 27일에 〈마포대교의 유령〉 이라는 제목으로 투고된 글.

내가 유학을 가기 이년 전, 교실에서는 괴담이 크게 유행했다. 그때 반짝 인기를 얻었던 괴담 중 하나가, '마포대교의 원귀'. 지금은 그렇게 많이 유명하진 않아도 그때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야기였다. 괴담은 이렇게 흘러간다.

마포대교에서 왜 죽는 사람이 많은지 알아? 단순히 자살 명소로 유명해서? 진짜 그럴까? 틀렸어. 그곳에서 자살한 사람들의 원한이 원귀가 되어 방황하기 때문이야. 그러다 아무런 생각 없이 걷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덜컥 끌어안고 물에 빠지는거지. 피해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불행한 청년'이 되고, 원귀는 다음 희생자를 찾아 마포대교 위를 방황해…

늘 그렇지만 다음 차례는 괴담의 주창자가 '왁!'같은 소리를 내며 청중을 놀래키는 것이었다. 인기야 굉장했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자면 개연성에 구멍이 숭숭 뚫린 형편없는 플롯에 다름 없었다. 자살한 사람의 원귀는 왜 마포대교에만 쌓였으며, 괴담의 유포자는 어떻게 그 원귀를 보고도 살아있는 것이며, 전국 케이블TV의 모래알같은 퇴마사들은 어디서 뭘 하길래 원귀를 퇴치 안 하는 것이며. 개연성도 근거도 다 물에 빠트린 채 쾌락에만 집중한 그런 이야기들은 떠오를때와 같은 속도로 사라졌고 이내 아무도 기억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이 뻔한 괴담 하나를 기억하는건 내가 경험한 하나의 사건 때문이다.

그 남자를 본 건 작년이었다. 나는 대학교에 합격한 상태였다. 한국에 한동안 오지 못하게 될 것이 뻔했기 떄문에,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나는 '인생의 방황'을 즐긴다는 명목으로 마포대교 근처를 돌아다녔다. 아마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내 알량한 정의감이라도 채우는게 목적이었을것이다. 그렇게 매일 오후 마포대교로 출근하던게 일주일가량 되었을 때, 나는 '그 일'을 보았다.
남자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검은 셔츠에 회색 바지를 입었고, 머리는 방금 샤워하고 나온 것 같이 물기를 잔뜩 머금은 상태였다. 그 남자는 바로 옆에 서 있던 중년을 바라보며 말을 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사람은 남자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반대로 걷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스쳐지나갔다. 그 덕에, 나는 남자의 말 중 몇개를 들을 수 있었다.

"… 감아요. 편안하게. 걱정 말고 용기를 내세요. 제가 아래에 있을 테니까. 자, 다시 한 발.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바깥이에요. 좋아요.."

나는 순간적으로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남자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이해한 건 몇십 초 후였다. 마포대교에서 그런 말을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사이코패스인지 범죄자인지 모르겠지만, 그 남자는 분명 자살을 권유하고 있었다! 내 눈 앞에서! 나는 얼굴색이 변한 채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제발 늦지 않았기를 빌며 몸을 난간에 반쯤 내밀고 있는 그 중년 남자에게 달려갔지만, 내가 현장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그의 몸이 한강의 조용한 수면을 찢어발긴 뒤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는 구급대를 호출한 후 중년 남성이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듣는 것이었다. 자살을 종용했던 남자는 어느새인가 사라지고 없었기에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경찰에게 그 남자의 인상착의를 말했다. 그 날 이후 나는 한동안 마포대교에 나가지 않았다.

한 달정도 지났을까. 나는 다시 마포대교에 나갔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앞으로 이 주일 가량 남아있었기에 나는 그 남자가 다시 보이면 잡으리라 생각하고 마포대교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때웠다. 그렇게 하기를 사흘. 밤 열한시를 막 넘었을 때 나는 건너편에서 깜박이는 불빛을 보았다. 일반적인 보행자가 내게 보여주던 안정적이고 차분한 불빛이 아닌, 불안정하게 깜박이는 불빛이었다. 그 깜박임은 저 멀리서 내게 천천히 다가왔고, 이내 나는 그 남자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남자는 교복을 입은 학생 옆에서 끊임없이 무언가 속삭이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저번 일과 다른 점이라면 마포대교 난간의 적힌 메세지가,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불규칙하게 켜지면서 부정적인 문장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많이 힘들고 아프시죠? 하하하하하..' '힘들었구나. 어때, 좋지?' '하늘을 봐봐. 정말 당기지 않아요?'. 나는 한동안 학생과 남자를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문장이 만들어내는 느낌의 기괴함이 나를 내 자리에서 속박했기에 나는 내 원래 목적을 잊어버린 채 그 남자의 행동을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학생이 난간 바깥으로 몸을 내민 순간 난 다시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가까스로 학생의 몸을 뒤로 잡아끄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 감사의 인사도 듣지 못하고 뒤로 돌아 미친듯이 달려 집에 왔다. 등 뒤에 솟구치는 소름을 억누르면서.

내가 학생을 붙잡기 위해 몸을 바깥으로 내밀었을 때, 나는 그 남자도 같이 보았었다. 그 남자는 다리 아래에서 이쪽을 올려다보며 환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웃음이었다. 내가 학생을 다시 다리 위쪽으로 되돌렸을 때 천천히 어둠 속에서 떠오르던 익사자 특유의 창백한 얼굴과, 검은색으로 물들어진 음울한 눈동자를 견딜 수 없게 된 나는 학생을 거의 내동댕이치다시피 한 채 도망갔다. 나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기까지 한 발자국도 마포대교에 디디지 못했다.

3.

2015년 1월 8일에 〈마포대교 근처 조깅하시는 분들께〉 이라는 제목으로 투고된 글.

강변 따라서 조깅하면 좋습니다. 근데 제가 굳이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마포대교 가시는 분들이 적어도 해 뜬 후에 나가셨으면 해서 그렇습니다. 이 카페의 많은 회원분들이 새벽 조깅을 정말 좋아하시는데 저는 이제 해 뜨기 전에 조깅을 도저히 못하겠거든요. 저번달에 제가 조깅하다 발견한 사람.. 아니, 사람은 확실히 아닙니다. 그 뭔가를 보고 나서는 마포대교 근처에 가기도 싫습니다.

저는 보통 합정동에서 출발했었습니다. 아침 5시에 밥 딱 챙겨먹고 바깥에 나가서, 합정동에서 마포대교까지 뛰고 오는 거죠. 그렇게 베스트셀러라고 할 만한 루트는 아닙니다만 전 집과 한강이 가깝기때문에 많이 걸어다녔습니다. 이 때쯤에는 해가 늦게 뜨기 때문에 저는 손전등도 하나 구비하고 다녔죠. 제거는 무슨 군용 손전등이랬나.. 친구한테 부탁받아서 산 거라 튼튼하고 멀리 나갑니다. 사람에게 쏘고 다니면 안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그거야 다른 분들 보면 꺼버리면 되는 일이죠.

그래서 저번 달도 항상 손전등을 들고 나갔습니다. 12시라서 옷 따뜻하게 입고 마포대교까지 달렸죠. 마포대교 밑에 도착해서 손전등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있었는데 제가 큰 실수를 하나 했습니다. 손전등 전원을 안 껐어요. 그래서 손전등은 다리 밑을 비춰버렸고 저는 그.. 괴물을 하나 봤습니다. 봉준호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그런 클래식한 괴물은 아닙니다. 좀 더 귀신같아 보였어요. 저는 맨 처음에 사람이 다리 아래에 어쩌다 들어간줄 알고 손전등을 확 비췄습니다만, 그건 절대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었습니다.

얼핏 봤을때 그는 아래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물 속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었습니다. 검은 셔츠를 입고 있었고,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기랑 창백한 피부가 굉장히 인상깊었죠.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저러고 다니면 감기 걸리겠다. 예, 그래서 전 진짜로 외치려고 했습니다. 괜찮냐고. 그러다 그만 둔 이유는 다른게 아니고 더 이상 남자가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물 속에서 사람 하나를 더 건져냈습니다.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 많잖아요. 보통 그런 분들은 경찰들이 건져냅니다만, 분명히 다리에서 유서까지 남기고 뛰어내린 사람들인데 실종자가 왜 나오는지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베이지색 코트를 입었다는거밖에 기억이 안납니다. 지금도. 그..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분이 입었던 옷이요. 그분에게는 소소한 조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 아까 말했던 검은 셔츠를 입은 남자는 이쪽을 한번 돌아보더니 건져올린 시체를 뜯어먹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남자가 저를 바라보자 위압감에 짓눌려 라이트를 꺼버렸지만 분명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합니다. 검은색 눈이었다는게 기억나거든요. 흰자가 하나도 없었어요. 창백한 얼굴에 검은 눈으로 저를 한번 바라보더니 사람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라이트를 꺼버려서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야했기에 얼굴밖에는 기억 안 납니다. 입이 위 아래로 찢어지고, 그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분 머리부터 서서히 삼켰어요. 어깨에 걸려 더이상 못 삼키게 되자 입을 닫았고.. 그 잘린 목을 입에 물고 저를 다시 돌아본 순간 저는 그냥 도망갔습니다. 경찰 부를 생각같은건 안 했어요. 차라리 무당을 부르면 불렀겠지. 지나가는 택시 붙잡고 집으로 도망쳐서 떨었습니다.

농담처럼 들리는거 압니다. 근데 이건 절대로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에요. 저는 분명히 그 사람 모양 무언가를 마포대교 아래에서 봤기에 이렇게 글을 쓰는 겁니다. 제발, 제발. 해 뜨기 전에 마포대교 아래에 조깅하러 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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