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들과 사과나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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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쯤 전…. 그때 대학교 1학년쯤 되었지 싶다.

가까운 데 있던 사과 농장이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학에서 원예 동아리를 다니던 참이라 사과를 어떤 식으로 재배하는지 궁금해졌다. 그걸 이유로 구경삼아 그 농장에 한 번 가 보았다. 도로의 막바지가 닿은 산기슭, 주위에 숲이 우거지고 사람 흔적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땅 살 사람을 아직 정하지 못했을까. 울타리는 없었다. 들어가 보니 신선해 보이는 사과들이 나무들에 주렁주렁 맺혀 있었다. 왜 그대로 달려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과에서 향기로운 내음이 퍼져나왔다.

그때 내가 워낙 분별없어서였을까.

"조금쯤은…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곤 사과를 하나 땄다. 아무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그 사과를 베어물었다. …맛있었다. 먹고 나니 과즙이 한순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사과를 다 먹으니 왠지는 몰라도 기운이 쑥쑥 솟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사과를 하나 더 따서 웨이스트백에 집어넣었다. 길을 돌아가려는데 농장 한구석에 심긴 묘목이 눈에 띄었다. 그 묘목을 근처에 떨어진 채로 있던 오래되고 큰 화분에다 정성스레 옮겨심어서 팔로 안고 돌아왔다.

다음날 동아리에 그 사과와 묘목을 가지고 갔다. 사과를 깎아서 모두에게 나눠줬더니 모두들 하나같이 "맛있다", "과즙이 입안을 살살 구른다" 하고 말했다. 그 중에 여자 한 명이 "이 사과 묘목에서 한 번 키워볼까?"라고 말했다. 나야 원래 그럴 생각으로 들고 왔으니 찬성했고, 나머지도 다들 찬성했다. 사과 재배는 처음이었는데 다들 열심히도 공부하면서 길렀던 것 같다. 식물 하나 기르는 데 이만큼이나 진심들을 다했던 건 처음이었지 싶다.

그때부터 3년. 작은 사과 몇 개가 햇빛을 받아 빨간빛을 자랑했다. 모두들 사과를 따서 입에 물었다. …맛있었다. 아직 기른 지 3년뿐이 안 됐는데 접때 가져왔던 사과와 똑같은 맛이었다. 이 사과는 동아리의 상징처럼 되어서, 손님이 찾아왔을 때 공짜로 내 왔던 일도 있었다. 동아리를 "사과학과"라고 부르는 사람도 나오고 그랬다.

그리고 졸업할 때쯤. 그때 "이 사과 한번 키워볼까?"라고 제안했던 여자와 사귀기 시작했다. 고백은 저쪽에서 먼저 했지만, 성격도 좋았고 좀 귀엽기도 하고 해서 서로 진작 사이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머지않아서 우리는 결혼했다.

집에서는 동아리에서 받은 그 사과를 두 그루 키웠다. 아내의 임신을 알았을 때쯤 사과가 영글어서, 함께 사과를 먹었다. 충실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은 그 사과를 즐겨 먹어줬다. 특히 아내가 만든 사과 파이에는 각별해서, 아들은 파이가 나올 때마다 매우 기뻐서 펄쩍 뛰었다. 그 사과를 처음 가져왔던 농장은 통째로 헐려버린 탓에 조금 아쉬워졌다. 하지만 아들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데 좀 서툴러 보였지만, 조금씩 나아지면서 활기차게 노는 아이로 자라났다.

어느 날 아들이 "온몸이 아파"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걱정되어서 병원에 데려갔지만 치료가 효과를 보지 못했고, 아들은 매일 "아파, 아파"라고만 말했다. 우리는 불안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대로 두면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 뒤에, 아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나가 버렸다. 물론 휴대폰 같은 건 준 적 없었기 때문에 행방을 알 방법이 없었는지라, 우리는 당황했다.

몇 시간 뒤 아들은 돌아왔다.

이를 시뻘건 피로 물들여서….

"왠지 안 아파졌어"라고 기운차게 말하며.

TV에는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물린 작업자가 사망"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 농장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우리는 그저 울었다.

아들이 잡혀가는 일은 없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악몽 같은 뉴스를 내보낸 방송국은 다행히도 곧 사라져 버렸다. "분명 신께서 도와주었겠지" 하고 생각했다. 아내는 "그애 교육을 잘못했다"라면서 한숨을 내쉬었지만, 서로를 떠받쳐 주면서 어떻게든 옛날의 생활을 지켜내고자 했다. 그래도 내게는 아들이 원래의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져만 간다는 착각이 자꾸만 튀어나왔는지라,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몇 년 뒤, 아들은 또다시 집을 나갔다.

아내는 계속 집 마당의 사과나무 옆에서 울었다. "괜찮아, 꼭 찾을 거야"라고 말해주고 나는 그 농장이 있던 곳으로 아들을 찾으러 갔다. 아마 그곳이 지금 무슨 공장이 되었을 텐데… 공장치고는 매우 큰 하얀색 건물이 거기 있었다.

그 주위에 역시, 여러 아이들이 있었다. 모두들 이를 드러내고 무장한 남성들을 물어뜯었다. 남성들은 죽을힘으로 저항하면서 총을 난사했다. 비명과 성난 소리가 난무했다. 아이들은 마치 고양이 같은 괴상한 소리들을 내질렀다.

그 안에서, 마치 미치광이 같은 아들의 모습이 보이고 말았다.

…그리고 거기부터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정신없이 산 속으로 도망치다가 어딘가 비탈길에서 굴러떨어졌던 것 같다. 깨어났을 때 나는 산비탈의 나무에 걸려서, 옷은 흙투성이에 몸은 만신창이가 다 돼 있었다. 하얀 건물까지 다시 가 봤더니 아이들도 무장 남성들도 사라지고 없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역시 아들은 없었다. 아내에게 내가 겪은 일을 들려줬다.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에? 우리한테 아이는 아직 없잖아?"

그리고 정원에는 그 사과나무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내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아들도 그 사과나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옛날 동아리 친구들도 그 사과를 모른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 중에도 동아리의 상징인 그 사과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무슨 꿈이라도 꾸었던 걸까?

그 뒤로도 아내하고는 잘 지내고, 매일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그렇지만 아내는 아들이 없어진 걸 슬퍼하지 않고, 친구들도 그 사과를 먹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역시 그런 게 조금… 허전하다.

지금도 아들과 함께 또 그 사과를 먹을 날이 올 거라고 계속… 혼자서 믿는다.


본 면담 대상인 이 SCP-044-JP-3은 제2사안 발생 당시 ██ 요원이 확보하였다. 해당 SCP-044-JP-3은 본명 ██ ██로서 제8147기지가 소재하는 ██ 현의 ███ 시에 거주하던 7세 소년이다. 현재 해당 SCP-044-JP-3은 연구 대상으로서 격리 중이다. 해당 SCP-044-JP-3과 관계있는 일반인은 모두 [편집됨]을 따라 E등급 기억소거 처리되었다.

SCP-044-JP-3을 이 이상의 방법으로 완전 격리하기는 몹시 어려울 테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대책이라고는 SCP-044-JP-3이 수명을 다해서 조용히 죽어가는 날만을 기다리는 정도뿐… 정말이지 그런 꼴로 태어나 버리고 만 그들 자신을 생각해서라도… — ██ 선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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