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는 슬픈 일, 화나는 일, 아주 실망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아버지 주위를 뱅글뱅글 돌았습니다.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곤란스러운 표정으로 아이를 멈추려고 하였으나, 아이는 미꾸라지처럼 그의 손을 빠져나가 계속하여 주위를 돌았죠. 다른 아이들처럼 부모님에게 안기거나,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회전목마가 돌듯이 정면을 쳐다보면서 아버지의 주위를 돌았을 뿐이었죠.
그 아이는 아버지 주위를 빙글 돌 때마다 놀이공원을 떠올렸습니다. 모두가 아무런 근심과 걱정 없이 해맑은 표정으로 길을 거닐며 놀이기구를 타는 공간 말입니다. 아이는 그날 길을 잃었습니다. 웃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울상을 지은 채로 자신의 부모님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밝고 활기찬 공간이었지만, 너무나도 작았던 아이는 거인들보다 키가 작았기 때문에 햇빛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두운 다리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죠.
그 아이는 어느 다리를 지나친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온몸을 들썩이는 축제의 소리가 자신의 귀를 간지럽히며, 하늘을 나는 말들을 따라 위아래로 고개가 흔들리던 그 순간을요. 하늘을 나는 동물과 마차, 그리고 자신을 반기는 아주 파릇파릇한 나무들이 있는, 웃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동화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아이를 발견한 것은 해가 지고, 달이 지평선에 걸쳐 떠오르려 할 무렵이었습니다. 시간이 그리 지나도록 아무도 혼자서 멍하니 서 있던 아이를 미아보호소에 데려다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냐구요? 글쎄요… 모든 사람의 도덕성이 그리 결여된 것은 아닐 텐데 말이에요. 아직 부모님은 그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저 아이를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버지 주위를 돌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필요한 게 있니?'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도는 것을 멈추고는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죠. 그는 자신의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공허하고도 불안한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조금 자란 나이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목제 테이블의 양쪽에 두 사람이 앉았습니다. 시끄러운 매미 소리가 들리는 한 방에서 늙은 여자는 아이의 시선을 맞추고 있었으며, 아이는 코코아가 담긴 자신의 컵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멜."
"…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면 네게 도움을 줄 수 없단다."
"저는 도와달라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그래, 하지만 도와달라고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잖니."
"제가요?"
아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습니다.
"응. 원래는 아버지 주위를 계속해서 돌았다면서? 이제 아버지와 떨어지게 되어서는 나무처럼 큰 기둥의 주위를 돌게 되었고 말이야."
"… 그게 도와달라고 느껴진 거라면, 괜한 오지랖이라고 말씀드리-"
"멜."
"아무튼, 괜한 오지랖이에요. 더 이상 그거랑 관련된 말은 꺼내지 말아 주세요."
"하지만 그 습관은 고쳐야 해. 힘든 일을 겪은 건 알아. 하지만 적어도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니?"
"정상적? 저는 전에 비할 바 없을 정도로 정상적이에요."
"멜."
"듣고 싶지 않아요."
"멜!"
여자는 큰 소리로 아이의 별명1을 불렀습니다. 아이는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그리고는 화가 난 듯 인상을 크게 찌푸리고 있는 여자의 모습에 약간이나마 위축된 듯 한 모습으로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여자 또한 상담 대상에게 화를 낸 자신에게 당황했는지 그 이후로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침묵이 계속되고, 코코아가 완전히 식을 무렵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일어나볼게요."
"…그러렴."
아이는 상담실이라 적힌 패널이 붙어있는 문을 작은 소리를 내며 닫고 방을 나섰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왼발을 축으로 시계방향으로 빙글 돌았습니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났다는 뜻이었죠. 아이는 그렇게 한동안 제자리에서 몸을 돌리다가 발을 옮겨 건물을 떠났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여자는 다시 한번 아이를 불러왔습니다. 아이는 불만에 찬 얼굴로 자신의 손가락을 탁자에 툭툭 쳐댔습니다.
"그래서… 왜 부르셨어요?"
"그냥 이야기나 해 보려고."
"또 그 이야기인가요?"
"아니, 네 습관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도록 할게."
"감사하네요."
"그러니 조금 다른 것에 대해 말해보자."
여자는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녹음기 하나도 같이요. 뭔가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이는 여자가 특이한 취향을 가졌다 생각하며 기억에서 지워냈습니다.
"크래글우드 유원지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니?"
"…"
"말했듯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면 네게 도움을 줄 수 없단다."
"있어요. 그냥 악몽일 뿐이에요."
"악몽은 트라우마가 발현되는 가장 대표적인 예시야. 네가 같은 것에 대한 악몽을 지속적으로 꾼다면 내가 도와줘야 할 부분이 맞고 말이야."
아이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좋아요. 딱 한 번만 말씀드릴게요. 거기에선 나무가 존나 많이 나 있었어요."
"멜-"
"왜요. 아니다, 말 끊지 말아주세요. 그 생각을 해내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로도, 머리가… 깨질 것 같으니까."
아이는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여자가 슬쩍 보았던 아이의 얼굴은 슬픔과 그리움이 뒤섞인 묘한 표정으로 눈물을 간신히 삼키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양손을 포개어 자신의 무릎 위에 놓고선 아이를 바라봤습니다.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었죠.
"기본적으로는 유원지 모습이었어요… 아니, 사실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 왜곡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른들의 다리가 나무와도 같다고, 그 큰 나무들이 햇빛을 가리는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그 사람들은 나무가 되었어요. 그리고 그 나무들 사이사이를 지나가다, 회전목마를 봤죠."
"회전목마?"
"네, 회전목마요. 거기엔 우는 아이들, 웃는 아이들이 정확히 반반씩 나누어져 있었어요. 구석에 숨은 애들도 있었고,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그리고… 아무튼 되게 다양한 애들이 있었어요. '조용히 하고, 그냥 웃고만 있어. 그러면 다 잘 될 거야.', '울지 마, 울면 나쁜 사람이 잡아갈 테니.' 웃는 아이들은 입꼬리를 파르르 떨며 우는 아이들에게 속삭였어요. 그리고는 회전목마에 탔죠. 저는… 저는 타지 않았어요. 놀이기구라는 게 무엇을 하는 건지도 몰랐고,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거든요."
"…"
여자는 할 말이 있는 듯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말았습니다.
"되게 신기한 게 뭔지 알아요? 회전목마가 중앙의 기둥을 타고 회전을 하면, 목마에 탄 아이들은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데, 다시 돌아온 목마는 혼자였어요. 아이가 타고 있지 않았다고요. 저는 한동안 그 장면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숲속을 달려 나왔어요. 갑작스레 도망쳐야 한다고 느낀 순간에요. 그리고 저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어요. 이미 밤이 되어있었고, 아빠랑 엄마가 저를 끌어안았어요. 그게 끝이에요. 아무것도 없다고요."
"…"
"이제 말씀하셔도 돼요."
"유독 한 명과 같이 지내지 않았니? 그… 회전목마 옆에서 말이야."
"… 일어날게요."
아이는 몸을 일으켰습니다. 여자 또한 더 물어볼 생각은 없었는지 자리를 뜨는 아이를 그저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아이는 소리 나지 않게 문을 살짝 닫고는 방의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떠올렸습니다. 회전목마를 바라보며 숲속에서 숨죽이고 있을 무렵, 누군가 귓가에 대고 '메리야, 동그랗게 돌아Merry go round.'라고 어린 소년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던 순간을요.
메리는 익숙한 목소리로 시끄러운 매미 소리를 내는 나무 주위를 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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