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오치의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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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P-001-JP

일련번호: SCP-001-JP

등급: 변칙(Anomalous) 케테르(Keter) 아폴리온(Apollyon)

특수 격리 절차: SCP-001-JP는 제8181기지 이사관실 벽에 존재한다.

SCP-001-JP는 현재 기저현실에 일어나고 있는 K급 시나리오의 주 원인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격리는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며, SCP-001-JP의 영향 밖에 있는 히라바야시 이사관에게는 현 상황의 해결이 요구된다.

SCP-001-JP의 격리는 불가능하다.

설명: SCP-001-JP는 █████사에서 만든 아날로그식 벽시계로 추측된다. 숫자나 눈금은 표기되어 있지 않다. 분해 시도는 개체의 파괴 내성으로 인해 실패했다.

SCP-001-JP의 초침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심박수와 동기화해 움직인다. 1바퀴를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시각 차이는 발생하지 않으며, 분침과 시침에 주는 영향은 없다. 이 움직임은 전지를 빼낸 상태에서도 일어난다.

실험을 통해 다른 변칙성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1 당초 SCP-001-JP는 변칙 개체로 분류되어 기지 이사관의 희망에 따라 제8181기지 이사관실에 설치하게 되었다.2 하지만 2019년 3월 31일 23시 50분에 발생한 사안으로 인해 새로운 변칙성이 발견되어 긴급성이 높은 사안으로서 SCP-001-JP의 번호가 할당되었다. 이 번호 할당은 히라바야시 이사관에 의한 독단이며 비정식적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2019년 3월 31일 23시 50분, 심박이 SCP-001-JP와 연동되어있던 사람 및 그 주변3을 제외한 일정 범위 지구상 관측 가능한 전역의 존재 및 비존재가 모두 정지했다4. 정황상 SCP-001-JP의 새로운 변칙성이 원인으로 생각되지만 자세한 내용은 조사 중이다. 불명이다.

비고 1: 영향 범위 바깥에 있는 인간(이하, "동체")은 정지해 있는 물질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영향 범위 안의 물질이라도 동체가 섭취 등을 통해 영양분을 체내에 흡수시키는 것으로 영향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

비고 2: 정지되어 있는 물체는 동체의 동작을 통해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지만, 동작에는 직접 힘을 가할 필요가 있어 가전제품이나 생명체 등 동체가 직접 공급할 수 없는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작동시킬 수 없다.

부록: 일지

일지 엔트리-1

일단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보고서의 형식을 최소한으로 맞추어 두었다. 이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는 기록도 필요할 것이고 하니, 여기서부터 추가로 기록해 나가려고 한다.

우선은 지금까지의 일을 정리하겠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5일 전(이건 컴퓨터의 시간 표시가 근거다, 벽시계는 움직이지 않는다) 사무 작업 도중, 초침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시계를 확인해 봤지만, 이 변칙 개체는 전지 없이도 움직인다. 초침이 멈춘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위화감에 앞서 나는 이 변칙 개체의 재실험 신청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사무 작업을 중단하고 주위를 살펴봤더니 위화감이 커졌다. 초침뿐만이 아니라 밖의 소리도 사라졌고, 이 방 밖의 조명도 모두 꺼졌다. 뭐, 시간이 멈췄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완전히 정지한 부하를 봤을 때지만.

방 안에서 움직임이 멈춘 것은 시계뿐이다. 소거법으로 원인을 이 녀석이라 단정하고 보고서를 쓰고 있다. 초침을 억지로 움직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현 상황의 해결책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창밖으로 별이 1개도 보이지 않는다. 달도 마찬가지다. 빛도 멈춰버린 건지, 별이 모두 사라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구 밖도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생각된다.

다행히 기지 이사관실에는 비상전원이 있다. 이것만으로 10일은 유지되고, 절전해 쓰면 그 배 이상은 가능하다. 시간 파악과 일지 기입을 위한 컴퓨터 한 대와 밖의 탐사를 위한 휴대용 라이트의 충전 이외에는 전력을 쓰지 않기로 했다.

식량은 식량고에서 꺼내가면 된다. 정지해 있어도 먹을 수 있는 것은 확인해 뒀다. 그게 내 몸이 되었을 경우 나까지도 멈춘다던가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여기까지 파악하는 데 5일이 걸렸다. 밖의 탐색은 라이트 불빛에 의지해야 해 시간이 걸린다. 그렇더라도, 머리를 굴리기 위한 일정량의 수면은 필요하다. 일단 오늘은 자기로 해야겠다.

안녕히.

일지 엔트리-2

7일째.

제8181기지는 꽤 규모가 큰 기지다. 격리되어있는 개체 대부분이 변칙과 안전 등급 개체긴 하지만 수는 많다. 이번에는 그 개체들의 힘을 빌려보려고 생각한다.

물론 변칙 존재에 변칙 존재로 대항하는 건 재단의 기본 이념을 거스르는 짓이다. 예외인 타우미엘 등급 개체는 이 기지에 없다.

하지만, 이런 긴급사태에 이념 따위는 신경 쓸 수 없다. 격리실을 닥치는 대로 뒤지고 다녀 움직이는 게 있는지 확인한다. 현 상황의 해결에 특히 도움이 될 것 같은 건 다른 세계로 가는 포털이라고 생각한다.

비상전원은 70% 하고도 조금 남았다. 잔량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관리가 쉬운 반면, 명줄이 조금씩 줄어드는 듯한 끝이 가시화되는 공포도 느껴진다.

일지 엔트리-3

11일째. 결과는 싱거웠다.

기계류의 개체에는 기대를 걸진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전부 변칙성을 발휘하지 않았다. CC레몬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냥 CC레몬이었고, 모눈종이 노트에도 평범하게 수식을 쓸 수 있었다. 다른 세계로 가는 포털도 당연히 움직이는 게 없었다. 즉,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비상전원은 50% 남았다. 4일이나 헛수고에 써 버리는 바람에 벌써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전원을 스스로 조달할 필요가 있다. 관리실 밖의 콘센트에서 라이트를 충전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확인되었다. 만약 비상전원을 다 쓰고 나면 내가 보내는 세계는 완전한 어둠이 된다.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

참 나, 소리내서 울다니 몇 년 만이지? 눈물이 키보드에 떨어지는 바람에 황급히 닦았다. 목소리를 낸 것도 11일 만이다. 내 목소리에 그리움을 느껴서 또 울 뻔했다.

일지 엔트리-4

13일째, 전원은 40% 남았다.

몇 가지 실험을 했다. 나는 정지해 있는 물건을 움직이게 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정지해 있는 기계나 생명체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험해본 결과 태엽장치로 된 오르골(부하의 방에 있었다)은 동작시킬 수 있었다. 즉 에너지를 내부에서 발생시키는 것을 필요로 하는 물체는 움직일 수 없지만, 그 이외의 장치들은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발견은 중요하다. 설명에 추가해 두겠다.

대가는 적지 않았다. 직접 심장을 만져보기 위해 근처 격리실에 있던 D계급의 흉부를 칼로 잘라 절개했다. 자른다기보다는 밀어낸다는 쪽에 가까운 감촉이었다. 피도 흐르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머물렀기 때문에 손이 피로 더러워지지는 않았다. 결국 심장을 만져도 뇌를 만져도 D계급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방이 내 토사물로 더러워졌다.

아ー, 그래서. 발견으로부터 생각해낸 타개책은 전원 조달을 위해 발전기를 만드는 것이다. 가설이 맞다면 내가 발전기를 돌리는 것으로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내일 시도해 보려고 한다.

정지해 있는 식량은 맛이 나지 않는다. 식사시간이 작업인 건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건빵을 그냥 갉아먹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럽기는 처음이다. 씹기만 하는 재미없는 작업. 그게 이번 저녁 식사였다.

뭐, 재미있는 작업 같은 건 지금 여기에는 1개도 없긴 하지만.

일지 엔트리-5

14일째.

기지 이사관인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기지에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발전기 같은 건 없다.

제일 가까운 발전소까지는 30km. 지도는 있지만 불빛 없이 도착할 수 있을리가 없다. 어제의 나는 도대체 왜 시험해보자고 쓴거지?

일단 다른 일들을 해보려 한다. 전력은 나중에 생각하겠다.

일지 엔트리-6

15일째.

익숙해진 기지 이사관실을 다시 한번 확인을 위해 정리했다. 서류더미, 담배와 라이터, 컴퓨터 3대(2대는 정지시켜뒀다), 긴급용 권총, 담요, 비상전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이 정도다. 아, 그리고 물론 SCP-001-JP, 벽시계도 당연히 있다. 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아니지만.

담요나 서류를 태워 불을 밝힐 생각을 해 봤지만 어차피 금방 닳는다, 의미가 없다.

전원을 조달할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권총을 서류 밑에 깔아뒀다. 저걸 보면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고 싶어진다. 나는 아직 포기할 수 없다.

일지 엔트리-7

16일째.

최근 일지 작성의 빈도가 늘어났다. 절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것을 쓰고 있을 때만큼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누군가가 이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매달리고 있다.

1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전원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확보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애초에 근본적 해결이라는 게 뭐지? 뭘 해야 하지? 재단 직원이 되었을 때도, 기지 이사관으로 취임했을 때도, 시간이 멈췄을 때의 대처법 같은 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정답 같은게 있긴 한가?

일지 엔트리-8

20일째. 남은 전원, 20%.

요 며칠간은 자료 보관소를 뒤져봤다. 성과가 있었다. 발전기를 포함한 기계의 구조도가 그려진 책과 K급 시나리오에 대한 고찰을 정리한 서류더미다.

16일째부터 잠을 자질 못했다. 시간을 자는 데 쓰는 것이 무서워졌다. 1초라도 쓸데없는 데다 시간을 쓰는 것이 무서워졌다. 하지만, 4일이나 철야한 머리로 서류를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선잠을 자기로 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숨어있다가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는데, 변칙 존재도 비변칙 존재도 바보같이 움직임을 멈추고 있다. 그저 외로움만을 느끼고 있다. 나는 독신이고 친구도 적지만, 그 적은 수의 친구나 가족을 만나러 가는 것을 진심으로 원했었다. 라이트가 그렇게까지 유지될 리가 없는데.

이 일지를 쓰는 것도 사실은 시간낭비다.

일지 엔트리-9

21일째. K급 시나리오에 대한 고찰은 보안인가 4등급인 나에겐 이미 알고 있는 정보뿐이었다. 그 종이더미에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싫은 것만 떠올랐다.

아폴리온. 할당된 전례는 존재하지 않는, 형식상 존재할 뿐인 등급. 능동적으로 K급 시나리오를 일으키는 격리 불가능한 개체에게 할당되는 등급이다.

알게 됐을 때는 등급의 존재 의의를 의심했지만, 생각해보면 SCP-001-JP에 딱 들어맞을 것 같다.

발전기의 구조도 쪽은 사용할 수 있었다. 여기에 있는 3대의 컴퓨터 중 2대를 분해해서 그 부품으로 발전기를 조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포기하면 전세계가 정지한 채로 남게 되어버린다. 그것만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남은 비상전원은 10%, 가능한 한 빨리 조립해야 한다.

일지 엔트리-10

헛수고였다.

비전문가가 무에서부터 발전기를 만들 수 있을리가 없다. 나도 그건 알고 있었을 거다. 그저 금속 조각으로 바닥이 어질러졌을 뿐이다.

헛수고였던 것은 터빈의 조립뿐이었을까? 아니다. 난 세상이 멈춘 후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쓸데없이 사람을 죽이고 식량을 소비했을 뿐이었다.

SCP-001-JP는 격리 불가능하다. 특수 격리 절차가 다 무슨 소용인가? 21일 전의 자신이 재단의 이념에 따라서 보고서를 쓰던 것조차 짜증이 난다.

나는 이제 인류의 유서로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전원도 다 떨어져가니까, 이게 최후가 된다.

이 기록과 보고서의 편집을 저장하고 나면 손에 든 권총으로 자살하려고 한다. 어둠 속에서 수십년을 보내는 것은 견딜 수 없다.

나는 전력을 다했고, 홀로 싸웠고, 그리고 지고 말았다. 그거면 된 거다, 이젠 한계다. 내 잘못이 아니다, 저 시계 잘못이다. 포기한 내 잘못이 아니다. 난 잘못한 게 없다.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다. 인류를 멸망하게 한 건 내가 아니다. 안 그런가?

나는 지고 말았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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