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디트
케け치ち엔えん
원작: http://scp-jp.wikidot.com/miyageubusuna-kechien
저자: ©︎miyageubusuna
역자: Salamander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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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명천황의 장례를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오니鬼의 모습이 『일본서기』에 그려져 있다.
기록상, 일본 최고의 오니는 도롱이와 삿갓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고.
오니의 어원을 「숨을 은(온:[隠]おん)」자에서 찾는 것은, 언뜻 보면 해학인 것 같으나, 확실히 정곡을 찌르는 데가 있다.
오니란 도대체 모습을 알 수가 없는 정체불명의 괴이라고들 말한다.
천황의 장례식이라 하니, 팔八뢰瀬동童자子 하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대大상喪의 례에서 관棺을 얹은 여輿를 메는 가마꾼들을 더러 「오니의 자손」이라고 말한 것이 야나기타柳田 쿠니오國男였던가. 물론 그것은 풍설에 불과하지만, 세상에는 지금도 분명히 오니의 말예가 숨을 죽이며 살고 있다.
대륙에서는 “망자의 영혼”을 의미했을 뿐인 한자 「鬼귀」가 일본에서는 어째서 도化깨け비物로서 묘사되는가. 그것은 음양사상에 강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흉방위 “축丑인寅”을 「귀鬼문門」이라 일컫게 되면서, 오니는 소 뿔이 났고 호랑이무늬 요포를 두른 모습이 되었다.
오니 퇴치 모험에 모모타로가 데려간 세 마리 동무는 말할 것도 없이, 축인과 대각을 이룬 「이裏귀鬼문門」의 짐승들이었다.
이렇게 무섭도록 합리화된 괴이에 대한 대처가 도깨비 퇴치의 역사이며, 역사의 뒷면에서 이 나라를 지탱한 이외의 술사들의 족적이다.
”모른다” 함은 고래로부터 공포의 근원이었다.
너희들도 그럴 것이다. 모르는 것에 기호 같은 이름을 달고 그 정체를 밝히고자 기록을 남긴다.
너희들은 누구보다도 담이 작은 것이다.
당연히 알 수밖에 없는 것이, 너희들이 토오노의 땅을 찾아올 때는, 뭔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뿐이지 않으냐.
과연 그러한가. 너희들은 왜 그렇게 금기에 닿고 싶어하는 거냐.
수집가들이 놓고 간 토산은 역시 보통 사람 손에는 과분한가.
상관 없지. 어차피 나도 곧 사라진다.
「케치엔」이라는 것은 너희들이 말하는 음양사라고 생각한다. 허나 그것은 뒤에 붙은 이름이고, 우리는 놈들을 「경계사」라고 불렀다.
세계는 경계로 넘치고 있다. 신사의 토리이를 앞두었을 때, 인계와 신역을 나누는 “경계”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어린아이는 횡단보도에서 손을 들고 건너면서, 도로에 칠해진 흰 선에서 물리적 제약을 넘어선 장벽을 보지 않나.
실제로 거기에 무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곳이 경계에 의해 수호되고 있음을 안다. 그런 불가시한 세계원리를 풀어서, 선을 긋는 것이 경계사다.
너희들도 어릴 때 놀이를 하겠다고 땅에 발로 금을 그었을 것이다. 경계를 깐다 함은, 본래 그 정도의 주술이다.
허나 놈들은 다르다.
리理라는 경계를, 그彼(카) 술사들은 쉽게 넘나든다.
「케치엔」이란 「결연(結縁)けちえん」에서 온 말이라 생각된다.
결연이란 일반적으로 「불仏법法과 연을 맺는다」는 뜻이라고 설명된다. 하지만 일설에는 성聖전典을 편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석가가 뿌린 가르침을 결結집集해서 하나로 묶어 올리는 것이다.
그런 느낌으로, 세상에 떠도는 애매한 선들을 연결시켜, 하나의 리로서 깐다. 그런 이름을 스스로 붙인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그것은 「계掲언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냐 말하는 자가 있다. 분명히 두드러진 대로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막연한 것에 명확한 상을 준다는 점에서, 크게 벗어나는 설명은 아닌 것 같다.
야나기타의 『요妖명名명名휘彙』는 알고 있었다. 그래, 이 얇은 부록 같은 읽을것이다. 여기에 이런 괴이가 수록되어 있다.
高坊主タカバウズ、次第高シダイダカ、乗越ノリコシ、覆掛オヒガカリ、伸上ノビアガリ、見上入道ミアゲニウダウ、入道坊主ニフダウバウズ。
「사람이 그 모습을 올려다볼 정도로 키가 커지더니, 마침내 허리가 끊어져 버린다」. 그런 성질을 가진 괴이들.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은 전부 「미코시 뉴도」의 류類화話로서 수집된 것이다.
그러나 이 비슷한 괴이들은 그야말로 비슷한 이야기(類話)일 뿐 같은 이야기(同話)는 아니다. 언뜻 보기엔 비슷해 보이는 이 구비전승들은, 과거 그들 대부분이 서로간의 상관관계를 가지지 않은 채 각자의 민속사회에서 역할을 해 왔다.
야산에는 미코시 뉴도가 나와서 내려다보니까 올라가면 안 돼, 그런 식으로. 당연히 그것은 본래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이나, 그것이야말로 우리들 요妖괴怪변変화化의 본질이기도 하다.
전승이란 대저 도시에 모이기 마련이라, 에도는 괴담의 도가니였다. 괴이담이 본래 회자되던 공동체 외부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그것들은 문자에 의한 설명을 얻고 그림이라는 비주얼 이미지가 주어진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럴싸한 모습”이 부여되는 과정에서, 비슷한 성질을 갖는 것들은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하나의 괴이로 수렴하게 된다.
그것이 에도 요괴문화에서 「도化깨け비物」라는 존재다.
고방주는 「미코시 뉴도」에게로 수렴하여 소멸하는 것이다.
비飛두頭만蛮ひとうばん이는 「로ろ쿠く로ろ쿠く비首」와 같은 것이 되었고, 고姑획獲조鳥こかくちょう는 「우う부ぶ메め」와 같은 것이 되었고, 궁窮기奇きゅうき는 「낫鎌족제비鼬」와 같은 것이 되고, 환喚자子새鳥よぶこどり는 「누에鵺」와 같은 것이 되었다.
그렇다. 놈들은 그것을 해냈다.
전국 방방곡곡, 무수하게 존재한 요괴변화를 「도깨비」로 수렴시키고, 비슷한 것을 같은 것으로 쳐서 봉인했다.
무릇 사람의 소행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도대체 어느 쪽이 도깨비란 말인가.
놈들의 술법은 경계를 까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술자는 경계를 애매하게 ”얼버무린다.”
봐라.
사람이 불사를 원하면 그 끝에 도달하는 것은 도깨비라는 말을 들으면, 너희는 웃기냐.
「도깨비」와 「사람」의 경계를.
「사람」과 「도깨비」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면, 너희는 웃기냐.
『도련초』에 이런 문장이 있다.
「환자새는 봄새라고만 할 뿐, 어찌해도 이 새를 기록한 것이 없다. 어떤 진언서에는 환자새가 울 때 ”초招혼魂의の 법法”을 행한다고도 한다. 이것은 누에다」라고.
서론이 길어져서 미안하다. 늙어버릇 하다 보니.
「누에」는 본디 초혼, 즉 ”영혼을 불러 돌아오게” 하는 주술을 집행하는 계기가 되는 괴조였다.
”초혼의 법”은 죽음이 임박한 생자에 대해서 행하는 제사이므로, 망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금기로 한다.
역사에 보면, 미치나가道長 섭정의 여섯째딸 요시코嬉子가 서거했을 때 음양사 나카하라中原 츠네모리恒盛가 ”초혼제”를 행했다가 죄를 받았음이 기록되어 있다.
누에를 「오니츠구미(鬼鶫)おにつぐみ」라고 일걷는 것은, ”망자의 영혼”을 돌아오라고 부르는 제사의 흔적이 이름에 남은 것일까.
예로부터, 명이란 유령의 소행이라 여겨져 왔다. 그런 세계관에서조차, 음양사가 망자에게 종사하는 것은 엄히 금지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과연 단순히 불결을 기피했기 때문이었을까.
현존 최고의 이야기物語조차 불사약을 영봉에 내다버리는 이 나라에서, 망자의 부활을 기원하는 죄를 어찌 짊어지고 갈 수 있겠나.
일설에는 환자새는 「두견(郭公)ほととぎす」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한다.
키비국에는 섣달 그믐날 밤 측간에서 「두견」ほととぎす하고 외치면 미코시 뉴도가 나타난다는 전승이 남아 있는데, 에도시대 후기에 쓰인『금今석昔화化물物친親옥玉』いまはむかしばけものおやだま에는, 미코시 뉴도와 그 아내인 로쿠로쿠비 사이에 “인간 아이”가 태어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람이 요(妖)あやかし의 아이를 낳듯이, 요 또한 사람의 아이를 낳은 것이다.
두견이 탁란의 습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너희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그런 괴이가 사람과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든다면, 요와 밤일을 한다거나, 불사의 법을 얻는다거나, 그런 것들도 쉬운 일이 아니겠나.
불사가 아니더라도, 혼을 갈아치우며 살아갈 수 있는 반反혼魂의 밀密법法이 그 몸에 오래 깃들었다면.
애초에, 누에라는 것이 이종혼성의 마물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겠지.
아니 뭐, 깊은 의미는 없거든. 전부 다 농담이다.
다만, 너희들이 너희네 두목의 정체를 밝히려 하는 것이라면, 이 이야기를 들어서 손해될 건 없겠다 싶었지.
그런데 말이지, 아까 이야기한, 도깨비들 사이에서 “사람”으로 태어난 아이는 결국 ”도깨비 두親목玉”이 되어 버리거든.
무슨 인과였으려나.
이상, 이야기는 끝이다.
그럼, 연이 닿으면 또 만나세. — 백白택澤ハクタ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