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 아쿠아리움 공격 사태 비망록: 제삼

평가: +6+x

새벽 5시 02분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

덜컹거리는 소리. 강렬한 파열음.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놓아버리는 즉시 모든 걸 그르치고 말 테니까. 갈리는 소리가 귓전을 뚫는다. 몸으로는 진동이 전달되어 온다. 모든 것은 한 가지를 나타내고 있다. 아직 살아있다는 것.

마리나의 이는 악물린 채 떨어지지 않는다. 속을 들쑤시는 낭패의 감정만이 뇌리를 스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이다. 무력감과 조바심이 이루는 향연이 가슴을 차갑게 만든다.

마다라자 마리나는 양옆에서 조여드는 금속성의 압력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허탈한 웃음이 입안에서 배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 돌파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문이 우그러지면서 섬뜩한 서리를 냈다. 결코 평범한 트럭이라면 낼 수 없는 힘이었지만, 엔더슨 로보틱스의 기술력이라면 가능했다. 그것이 얼마나 현실성에 위배되던지 간에.

고무 타는 냄새가 사방에서 풍겨왔다. 에어컨과 깨진 창문 너머로 풍겨오는 그 냄새는 차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임을 알리고 있었다. 엔진이 과열되었다. 타이어 역시 수명을 다해가고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마다라자 요원은 이를 악물고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무언가 생각을 해야만 했다. 돌파구를 찾자. 진정하고.

트럭 두 대 역시 상황이 아주 좋은 것은 아니었다. 쌍둥이의 공격으로 조수석이 떨어져 나간 좌측의 트럭, 그리고 그 트럭을 경호하는 듯한 우측의 트럭은 지금까지의 전투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초상기업의 기술이 있었다. 이들은 적어도 목표한 곳까지는 갈 수 있을 것이었다. 마다라자 팀과는 달리.

「괜찮아요?」

마다라자 요원은 기울어진 백미러로 뒤를 흘끗 바라보았다. 숨을 거칠게 내뱉고 있는 정원의 일그러진 얼굴은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아직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기도 했다. 정헌은 왼팔에서 손을 거둔 뒤긴 했지만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그러니까 최고조의 상태는 아니라는 말이지.

「아파 죽겠어요」

정원이 툴툴거리자 정헌이 낮게 중얼거렸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정원에게 욕을 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몸이 붙어있는데도 저렇게 투닥대는 건지. 딱히 그럴 상황도 아니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마다라자 요원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제 어떡하죠?」

정헌이 호흡을 가다듬고 물었다.

「그대로 끌려가야지 뭐」 정원이 지친 표정으로 씩 미소를 지었다.

「너 입 안 닥치면 저자들이 우릴 죽이기 전에 내가 널 죽일 거야」

「우우, 무서워라」

「포위에서 벗어나죠. 타이어가 더는 못 버텨요. 그대로 끌려가다가 압사되거나 끌려나와 죽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어느 쪽이든 곱게 죽진 않을 걸요」

「맞는 말씀이십니다」 정헌이 한숨을 쉬었다. 「아까 반동으로 팔이 부상을 입었어요. 하지만 술식을 전개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해요」

「정원군은, 괜찮아요?」

「대충 그래요」

정원이 창백한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의 장난스러운 얼굴에 깃든 고통의 흔적은 누가 보아도 완연했다. 정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긴 한데. 물론 심한 건 아니고」

「…총은 쏠 수 있어요?」

「아마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마세요」

마다라자 요원은 심호흡을 하며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끌려가는 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상황에서 당장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렇다면…

같은 방향으로 내달려야 한다.

그녀가 페달을 밟자, 세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졌다. 첫째, 타이어의 비명이 멈추고 앞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둘째, 느린 속도로 나아가던 세 차량이 바람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셋째, 마다라자 요원의 총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이윽고 좌측 차량의 운전수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팔에서 피가 솟구치더니 경련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년 간 연습한 사격 실력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그와 동시에 그녀는 핸들을 돌려 패닉에 빠진 좌측 차량을 들이받았다. 내부에 타고 있는 자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들려왔다. 마다라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약점을 공격한다. 팔에 부상을 입은 운전자가 이윽고 정신을 차려 다시 부딪혀 오지만, 이미 싸움의 승패는 났다. 좌측 차량은 급격한 공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그리고 그때, 여태 신경을 쓰고 있지 않던 우측 차량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좌측 차량이 수세에 몰린 것을 알자마자 차량은 궁지에 몰린 프로메테우스 Q17을 철저히 난타한다. 크나큰 충격에 마다라자 요원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며 스티어링 휠을 움켜쥐었다. 뒷좌석의 쿠당탕하는 소리가 신경이 쓰였지만 차마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이 모든 분위기가 그녀의 목을 단단히 긴장시키게 했다. 손끝이 차가워졌지만 오히려 피는 뜨거워졌다.

어떤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녀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차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곧이어 차창 사이 바로 앞을 지나가는 총알의 흔적이 시야에 들어왔다. 운전석에 앉은 이가 창문을 내리고 권총을 치켜들고 있었다. 마다라자 요원은 그 상황에서도 글록 19의 총구가 번뜩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에…

운전자의 머리가 터졌다.

「아, 씨이발 반동」

정원이 연기가 나는 총구를 내렸다.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입가는 승리의 미소가 번져 있었다.

우측 차량이 급속도로 비틀거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가로등에 부딪혀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남은 트럭과 마다라자 팀이 탄 프로메테우스 Q17은 처참한 광경을 뒤로하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새벽 5시 06분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탄천

마치 그때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수면에서 침략자들이 내려와 처음 사미오말리에를 짓밟았을 때, 이런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코우가 마나는 밀려오는 적의 물결을 바라보며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무력감이라는 감정을 자세히 알 수 없었는데, 지금 알았다. 모든 존재하는 것이 자신에게로 덤벼드는 것과 같은 감각.

마나는 이를 악물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보자. 성유다라는 저 요원은 지금 다운이다. 지원은… 스스로 거부했지. 그래, 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지금 진격해오는 저 무리는 원수가 아니던가. 그러나 순식간에 묘한 압박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마나의 모든 다짐과 증오와는 별개로 저기 저 적들의 군세는 너무나 거대하다. 그때와는 다른 종류의 공포였다. 지금 이 순간 벌어지는 일을 모두 자각하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생생한 공포였다.

어린 요원은 침을 꿀꺽 삼키고 아래로 잠수했다.

수면 아래의 파동이 거칠게 전달되어 왔다.

우선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러나 선뜻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마나는 우선 강바닥에 떨어진 무기를 줍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다. 잠수하기 전에도 몸을 숨기고 있던 선박이 있었지만, 거긴 아무런 무기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물 아래로 자빠뜨린 선박도 몇 개나 되었으니, 분명 쓸 만한 게 있으리란 판단이었다.

마나는 SPC의 군세의 아래로 깊게 잠수했다. 주먹과 불꽃이 다시 수면을 때렸다. 그러나 마나를 맞추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제아무리 저들이 날고 긴다 한들 어떻게 뭍에 사는 것들이 물에 사는 것의 속도를 따라가겠는가. 어린 요원은 공격을 피하면서 물살을 헤치고 나섰다. 빨리 여기서 저지하지 못한다면 큰일이다. 어느새 아침이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저 멀리에 무너진 선박이 하나 보였다. 아까 자기들끼리 마구 쏴대다가 서로를 맞추고 좌초해버린 선박 중 하나였다. 생각보다 외양은 괜찮아 보였다. 내부로 들어가서 찾아보면 된다. 어쩌면 시체가 들고 있는 걸 가져와도 될 것이고.

그리고 그 순간 마나는 무엇인가에 묶인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용을 써볼 새도 없이, 마나는 수면 밖으로 순식간에 솟구쳐 올라갔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살을 파고들어 아팠다. 마나는 바람을 가르며 허공 위로 날아올랐다가, 이내 떨어졌다.

떨어진 곳은 물이 아니었다. 강한 통증이 일었다. 마나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마나는 어딘가 딱딱한 곳 위로 떨어져 있었다. 시야가 흔들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을 잡고 몸을 밀착시켰다.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의 목소리였다.

「상어가 줄에 걸렸다!」

「데리고 와! 지옥을 보여주마!」

「낚시하듯이 잡는 것도 꽤 손맛이 좋은데요, 형님?」

시끄러운 웅성거림이 머리를 울렸다. 마나는 기침을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머리에 충격이 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의 외침이 허공을 갈랐다.

「다들 안 닥치냐, 이 새끼들아!」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더니, 이내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마나의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반갑다, 꼬마야」

여자의 목소리였다. 꽤나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마나는 머리를 흔들어 시야에 일렁이는 흐릿한 감각을 몰아내고 눈을 찌푸렸다. 서서히 돌아온 시야에 비추어지는 것은 어떤 인간이었다. 머리를 묶은 헤어스타일. 오른눈 위를 덮은 안대. 흉터로 가득한 얼굴. 손에 들린 저격소총. 조금 전 마나에게 불덩이를 날린 SPC 조직원이었다.

마나는 그제야 자신이 SPC 소속 선박 위에 떨어졌단 사실을 깨달았다.

「이… 나쁜!」

마나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공격 태세를 취하려고 했다. 그러나 팔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무언가에 묶이기라도 한 듯한 감각이었다. 마나는 앞으로 튀어나가려다가 중심을 잃고 앞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버둥거리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여자가 피식 웃으며 마나에게로 걸어왔다.

「그렇게 내가 원망스럽냐?」

소리를 지르던 마나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버둥거리는 것도 멈추었다. 여자는 방금 사미오말리에어로 말했다.

사미오말리에어를 할 줄 안다고?

「…어, 어떻게…」

「나는 머리가 비상하거든. 내가 부순 곳의 언어는 모든 알고 있지」

여자가 차분하게 말했다. 걸걸한 목소리가 아닌, 의외로 청아한 목소리였다. 여자가 싱긋 웃더니 자기소개를 했다.

「내 이름은 진Jyn이다」

「…부쉈다꼬?」

진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감돌았다.

「거기 나도 있었거든… 사미오말리에는 흥미로웠지. 그건 인정해. 하지만 퍽 실망스러운 곳이었다… 너무…」 여자가 비웃음을 흘렸다. 「전부 부수는데 몸을 움직이는 느낌도 안 났다면… 그건 실망할만하지 않나? 너무 약해 빠진 것들이라 그런지 몰라도」

「너, 너!」

마나가 이를 악물고 고함을 질렀다. 전신에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머리를 강한 진동이 메웠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여자를 쳐죽이고 싶은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마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었다. 이 결박을 풀어야, 그래야 저 여자를 처리할 수 있는데.

소리를 듣고 몰려온 건지, 진의 뒤에 무기를 든 상어죽빵센터의 조직원들이 둘러섰다. 모두 마나를 보며 입맛을 다시면서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의 권력이 상당히 강한 모양인지 감히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진의 행동은 명명백백한 소유권 주장에 가까웠다. 저 상어 꼬맹이는 내 것이다. 처리한다고 해도 내가 처리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따지자면 진이 지금 마나를 보호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거 안 풀어?!」

「쉬, 쉬. 꼬마야, 조용히 해라. 그래도 넌 오늘 안 죽을 거거든… 한 번에 죽이면 재미 없다는 길 장군 이야기에 동의하는 편이란다, 나는」 진이 눈웃음을 지었다. 「나랑 같이 가자!」

마나가 여자를 노려보았다. 여자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물들었다. 가늘게 뜬 진의 눈이 마나를 향했다. 진의 얼굴에는 큰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내 샌드백이 되어 줄래?」


그리고 그때 또다시 폭발이 일어났다.

멀리서 유정헌이 빙긋 웃었다.

정헌이 그려낸 방진은 원하던 장소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푸른 빛으로 빛나는 마법진이 목표한 선박 바로 옆에 내려앉자, 순식간에 공기가 사방으로 밀려났다. 산산조각까지는 아니더라도 선박이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강하게 붕괴한 것은 맞았다.

「성공! 적도 당황했습니다」

「다행이네. 이제 저 애도 꺼내와야지」

성유다는 마다라자 요원의 부축을 받고 차에 기대어 서 있었다. 간이로 옷을 찢어 지혈하고 있었던 유다의 부상은 쌍둥이와 마다라자 마리나 요원이 타고 온 차에 비치되어 있던 약으로 어찌저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마리나 요원이 다급하게 물었다.

「마나쨩은? 마나는 무사한 건가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요?」 정원이 대신 대꾸했다. 「뭔가에 묶여 있는 것 같은데, 죽은 것 같지는 않아요. 웬 안대 쓴 이상한 여자한테 붙들려 있는데」

「무, 묶여 있는 마나요? 아앗, 저도 보고 싶-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다라자 요원이 황급히 말을 얼버무렸다. 유다가 고개를 들었다.

「안대라고?」

「알고 지내는 또라이에요?」

「그 여자가 날 맞췄어.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쏜 탄을 도리어 내가 맞게 했지. 조심해라, 정헌. 저 여자도 기적사 내지 현실조정자인 것 같으니」

조직원들이 당황하며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공격이 어디서 날아올지 몰랐다. 전투는 소강상태였으므로 SPC에 소속된 누군가가 벌인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마나가 낑낑대며 머리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일순간 다들 패닉에 빠진듯한 표정이었다. 진은 고개를 돌려 성유다가 서 있던 다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다가 없다.

「…이런 씨발」

마나는 진이 뭔가 강한 발음이 있는 낱말을 내뱉는 걸 보고 일이 잘 안 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마나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다만 무슨 일이 정확히 일어나고 있는지는 마나에게도 미지수였지만.

「주위 경계해. 아까 그 새끼가 사라졌다. 지원군을 부른 거겠지」 진이 주변에 서 있던 인물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충격.

진의 선박 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거대한 마방진이 생성되며 강물에서 용오름이 치솟았다. 몇 대의 선박이 회오리에 휘말려가다가 서로 부딪혔다. 조직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선박에서 튕겨 나갔다. 마나도 엎어진 채로 옆으로 굴러갔다가 선박의 벽면에 다다르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도 포박이 풀리지 않는다니, 알 수가 없었다.

「…기적사군」

진이 중얼거렸다. 그는 품에 들고 있던 저격소총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마나는 머리로 벽면을 짚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회선이 연결되는 소리가 들리면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나? 마나 양? 여기는 유정원, 팀 C 조장이야」

「조장은 나고— 됐다, 여기는 유정헌. 괜찮습니까, 마나 양? 몸 상태는 어떻죠?」

「조금 머리가 어질거리는 거 빼곤… 괜찮아예」 마나가 소곤거렸다. 「여그는 우예 오셨심꺼?」

「우리 쪽 적은 전부 처리하고 왔으니까, 마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다라자 마리나 요원의 목소리였다. 살짝 눈물이 나오려는 걸 막고, 마나가 간신히 대답했다.

「알았어요, 마리나!」

그들은 분명 가까운 다리에 몸을 숨기고 SPC 조직원들을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마나는 어질어질한 몸을 애써 진정시켰다. 조직원들은 우왕좌왕하며 방향을 돌린다 어쩐다로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기적술 공격이 거세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진이 어디론가로 총구를 돌렸다.

마나는 본능적으로 진에게 몸을 날렸다. 진이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그의 총구에서 발사된 총알이 저 멀리로 날아가 사라졌다.

정원은 무언가가 얼굴 가까이를 스쳐 지나가자 놀란 눈길로 옆을 바라보았다.

「저리 꺼져!」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마나가 나가떨어졌다. 진이 날카롭게 외치며 쓰러진 마나의 몸을 걷어찼다.

「아악!」

「샌드백 주제에 나서지 마!」

진의 성난 목소리가 웅웅대며 들려왔다. 강물이 일렁이며 얼굴을 때리자 마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배가 요동치고 있었다. 정헌의 기적술이 근방에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부서진 선박과 살아남은 조직원들을 뭍으로 던져버리고 있었다. 마법진이 몸에 닿는 순간, 그들의 몸이 은빛이 나는 무언가에 칭칭 묶여 움직임을 구속했다. 어느샌가 온전히 운항하고 있는 선박은 오로지 진의 것뿐이었다. 방어 결계가 쳐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마나는 최대한의 힘을 끌어모아 진의 발목에 정권을 내질렀다. 그가 짧은 고함을 지르자, 마나는 몸을 잽싸게 움직여 방금 때린 부위를 깨물었다.

사미오말리에인의 이빨은 꽤나 날카롭다.

「이 씨발… 놔!」

고통에 얼룩진 진의 얼굴이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강에서부터 느껴지는 강렬한 파동이 느껴졌다. 마나는 잠시 그의 발목을 놨다가 팔꿈치로 오금을 찍었다. 적이 신음을 토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진의 손에서 총이 튕겨 나갔다. 마나의 심장은 엔도르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지금이다.

마나의 작은 손이 진의 뺨을 강타했다.

그리고는 마나의 몸이 회전했다. 빠르게 원투 잽을 날리고 나서는 진의 저격 소총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진이 몸을 일으키자 그곳에는 자기 무기가 아니요, 그 무기를 들고 있는 작은 상어 여자애가 한 명 있을 뿐이었다. 일출의 붉은 기운이 소녀의 등을 광배처럼 떠받치고 있었다. 마나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마나가 총을 장전했다.

「꼬마야, 그걸로 날 쏠 생각이냐?」

진이 희번덕한 눈빛으로 씨익 웃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정원이 상기된 투로 물었다. 대부분의 센터 조직원들이 나가떨어진 상황에서, 거의 유일하게 온전한 선박은 마나가 타고 있는 그것이었다. 분명 강력한 기적사였고, 자기가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방어 결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아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자였다. 이 자리에서 처리해야 할지도 몰랐다. 시간이 없었다.

쌍안경을 눈에 대고 있던 정헌이 소리쳤다.

「코우가 대원이 총을 가졌어! 저 기적사의 총을 빼앗은 것 같은데…」

「안 돼, 쏘지 못하게 해야 해!」

유다가 황급히 외쳤다.

소녀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닿았다. 그 서늘한 철의 감촉이 아이에게 정확히 어떤 인상을 불러일으켰는지는, 후광에 가리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진의 얼굴로 강물이 튀어 번들거렸다.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비릿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의중도 감정도 전부 명확히 알 수 없는 미소였다.

이윽고 마나가 사격 자세를 취했다.

「마나, 안 돼! 쏘면 안 돼!」

마리나가 다급히 교신기에 대고 외쳤다.

그리고 마나는 개머리판으로 진의 안면을 가격했다.

진의 다리가 풀리면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아주 정확히 들어간 공격이었다. 마나는 손목에 전달된 생생한 감각을 느낀 채 진을 노려보며 살짝살짝 힘이 빠지기 시작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전에 마나가 겪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 뇌진탕을 겪고 있기라도 한 듯, 그는 자신의 몸을 쉬이 놀리지 못했다. 마나는 총을 꼬나 들고, 한 번 더 내리쳤다. 진의 몸이 축 늘어졌다.

마나가 다리를 바라보며 총을 거꾸로 치켜들었다. 승리자의 포즈였다.


새벽 5시 15분

서울특별시 청담대교

그리고 차재연과 가딕하성은 엄폐물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적은 저 멀리에 있었고, 공간의 비틀림을 온몸으로 받아낸 외양으로 미친 듯이 허공에다 자신의 무기를 난사하고 있었다. 들키는 것도,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니, 그런 걸 신경이나 쓸 이성이 남아있을까.

여러 번의 무의미한 교전 끝에 둘은 사격이 빈번히 영향을 주지 못하는 걸 확인하고 대안을 짜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중이었다. 더군다나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면 좋지 않았다. 곧이어 차량 통제가 해지된다. 그렇게 된다면 기억소거제 폭격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어떻게든 여기서 끝장을 봐야 한다. 지원이 올 거라고 했는데—

멀리서 차량 소리가 들려왔다.

재연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하성의 눈도 커졌다. 설마 저 소리가 민간 차량 소리라면—

빠른 속도로 무언가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엄청난 속도의 차량이 대교 저편에서부터 날아오듯 질주하고 있었다.

유다는 차 안에서 마다라자에게 운전을 맡긴 걸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다라자는 액셀러레이터를 미친 듯이 밟았다. 사실인즉슨, 이들은 재연과 하성 팀이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변칙적인 방법과 비변칙적인 방법을 총동원하여 이들에게로 접근했다. 사령부의 지시로 이미 그들이 어떤 적을 상대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거리 상으로는 꽤 시간이 들었지만 별 수 없었다. 지금 가장 강한 무기가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뒷자석에서 정헌은 끊임없이 술식을 계산하고 있었다.

「되겠어? 시간 맞출 수 있겠냐고」

긴장이 탁 풀린 턱에 슬슬 졸고 있는 마나를 건드려 깨우면서, 정원이 사뭇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정헌이 짜증을 내며 어깨로 정원을 툭 건드렸다. 방해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정원은 평소와 달리 받아치지 않았다. 정헌이 저렇게 구는 게 맞았다. 빠르게 진행해야 했다. 그것 때문에 현장에서 교전하고 있던 둘과 연락도 못 한 것이니까.

차가 성난 황소처럼 달리고 있었다. 이 속도라면 어디에 충돌하든 — 목표인 저 괴물에 충돌해도 모두가 작살이 날 게 분명했다.

재연과 하성은 헤드라이트 불빛이 눈을 공격하자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곧 빛이 물러가더니 날렵하게 생긴 차체가 보였다. 범퍼의 엠블럼 위치에 재단 로고가 박혀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재단에 협력하고 있는 프로메테우스 자회사가 만들어 낸 업무용 자동차였다. 로고가 밖에 튀어나와 있다는 것은 지원 병력으로 왔다는 이야기리라.

그 차가 둘을 지나쳤다.

「뭐야…?」

재연의 멍한 목소리도 잠시, 둘의 얼굴에 긴장이 깃들었다. 차는 곧바로 적에게로 돌진하고 있었다.

「저, 저거 막아야 해요. 선배, 저거 저러다가!」

하성이 다급하게 외쳤다.

「됐어!」

정헌이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이미 차는 재연과 하성의 위치를 넘어 적의 공격 범위 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유다가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확실해?」

「네, 형. 충분해요. 이 정도면 저거 뚫을 수 있어요」

「자칫하면 우리 다 죽어요!」 마다라자가 소리쳤다.

「여러 번 검산했어요! 탈출 경로도 계산해놨으니까, 그냥 제 지시대로만 잘 해주시면 됩니다!」

유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다라자도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확인했다는 뜻이었다. 정헌은 조용히 나이피를 들어 손을 찌르고 술식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정헌의 나직한 영창과 엔진의 비명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승용차는 방향을 틀어 난간을 들이받고 저편으로 날아갔다.

이윽고 승용차가 공중에서 나타나더니 곧바로 괴물의 머리에 직격했다. 괴물이 괴성을 발하며 뒤로 넘어졌다. 곧이어 쿵, 하는 굉음이 다리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재연은 당황한 얼굴로 엄폐물에서 나와 상황이 벌어진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엄청난 속도로 들이박았기에 차량 내에 있는 사람들도 피해가 컸으리라. 심각한 부상이라면 당장 병원으로 후송해야 했다. 하성도 엄폐물 뒤에서 나와 재연의 뒤를 쫓았다.

「어디 가!」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연은 뒤를 돌아보고 눈을 부릅떴다. 차에 타고 있었을 사람들 — 정원, 정헌, 유다, 마리나, 마나가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해 주고 있었다.

「이게…무슨」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선배. 저거 지금 무력화하지 않으면 영 안 되겠더라고요」

「어떻게 된 거에요?」 하성이 물었다.

「저놈이 공간 변이에 당했다면서. 그럼 저놈에게 닿을 수 있는 경로를 계산하면 되겠다 싶더라고」 유다가 대답했다.

「그래서 정헌군이 계산해줬어요. 뭐… 다 같이 죽을 뻔하긴 했지만」 마다라자 요원이 마나를 들춰 업으며 말을 이었다.

「밖으로 나온 건?」 재연이 얼떨떨하게 물었다.

「미리 술식을 전개해둬서 차 안에서 모두 밖으로 전이될 수 있었어요」

정헌이 설명했다.

「두 사람 몫 빼앗아서 미안하네그려」

정원이 농담을 던졌다. 정원은 갈비뼈의 통증이 재발한 모양인지 표정은 영 좋지 않았지만, 꽤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들의 뒤로 한 무리의 차량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제21K기지에서 파견된 지원 병력이었다. 저들과 함께 쓰러진 조직원의 몸을 수거해 가면 되리라.

이제 모두 끝난 것이다.

재연과 하성은 그들에게로 거닐어 갔다. 하늘을 잠식하는 태양의 빛이 점점 크고 높게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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