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 기록 AO-2234-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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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난 뇌수종 교수이고, 지금부터 변칙 개체 2234-KO에 대한 부검을 시작하겠습니다. 대상, 변칙 개체 2234-KO는 인간형으로 성별은 남성, 나이는 46세이며 변칙 개체로 분류되기 이전의 명칭은 강하늘 박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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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은 2017년 7월 13일, 혼돈의 반란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외부 조직에 의한 제13K기지 습격 사건 당시 하복부에 5발의 총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그리고 확인사살이 목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두부를 관통한 총상도 1개 있습니다. 왼쪽 관자놀이부터 오른…. 하아,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도데체 뭐가 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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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자네는 살아있다고 보기 어려워. 총알을 6발이나 맞았지, 심장은 멈췄지, 피는 3리터 넘게 흘렸지, 체온은 주변 환경과 별반 차이가 없지, 심지어 곳곳에서 부패까지 진행되고 있어. 그래서 모두가 자네를 그냥 시체라고 생각해. 나만 빼고. 오로지 나만이 자네가 하는 말을 듣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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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맞아, 아마 밈이나 인식재해 뭐 그런 거겠지. 의사가 비변칙적인 환각은 아니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다들 자네와는 반대로 생각하고있어. 나 혼자 그런 거에 영향을 받아 나 혼자 자네가 살아있다 생각하는 거라고. 솔직히 나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봐. 요리 봐도 저리 봐도 자네는 살아있기가 거의 불가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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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쩌면, 자네 의견이 옳을 수도 있어. 정말로 자네가 살아있다면? 나만 유일하게 밈이나 인식재해같은 것의 영향에서 벗어나 진실을 보고 있는 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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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부검은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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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아니야, 솔직히 말하자면 이 부검은 내가 요청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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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야, 이게 도데체 무슨 일인지가 정말 궁금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생각대로 나 혼자 밈이나 인식재해같은 것에 영향을 받아서 변칙적인 환각을 느끼는 것이라면 이 부검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겠지만, 만약 자네의 의견이 옳다면, 우린, 우린 아주 많은 것을 알아낼 수가 있어. 어떻게 총상을 6개나 입고도, 피를 3리터가 넘게 흘리고도, 부패가 진행중인 와중에도 어떻게 살아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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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알아낸다면 있다면, 우린 생명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써내려가야 할 거야. 어쩌면, 불멸로 향하는 방법 또한 알아낼 수가 있을지도 몰라!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수명 연장이나 희생이 불가피한 의식 옮기기같은 것이 아니라 진정한 불멸의 방법을! 물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자네는 이걸 참을 수 있겠나? 이 넘처 흐르는 지적 호기심을 참을 수 있겠냐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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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참아! 자네는, 아니, 어느 누구라도 절대 못참아! 이 오싹하고도 발칙한 지혜가 어렴풋이 비치는 구멍이 바로 눈 앞에 있는데 누가 감히 인내심을 가지고 손가락을 쑤셔넣지 않을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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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 맞아, 자네는 내 훌륭한 동료였어. 또…좋은 친구였고. 자네는 똑똑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나랑 죽도 잘 맞았지. 그렇지가 않고서야 어떻게 10년이 넘도록 나와 함께 일할 수가 있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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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이거 잡담이 길어졌군요. 미안합니다. 뭐 어짜피 기록행정처 사람들이 잘 알아서 잘라주겠죠. 아무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부검을 진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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