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방, 이름 없는 시체

위협평가 3033

공식 부대명: "마이크" 분대

소속: 혼돈의 반란

유형: 타격형 보병

위협 등급: 주황색

구성: 조종자 1인당 개체 ~30인, 중대급 화력

무기: 가변적. 설명 참조.

설명: 해당 개체들은 CI의 실험체로서, 머릿속에 침습성 두개 이식체를 삽입했다. 이 이식체는 제한적인 초보 수준으로나마 정신조작 기능이 있다. 해당 개체들은 대개 소형 화기나 백병전용 무기로 무장했는데, 필요하다면 무기를 급조해낼 수도 있다. 해당 개체들을 무효화시키는 확실한 방법은 이식체 일습 절제, 질식, 과다출혈 정도이다.

전술: 해당 개체들은 무차별적 폭력성을 띠는 관계로, 인구 고밀도 집단과 대규모 전투를 벌일 때만 파견된다. 전장 배치 시 해당 개체들은 인해전술로 방어자를 압도한다. 이식체가 화기를 능률 충분하게 다룰 만큼 미세운동능력을 조절하기는 어려운 관계로, 대개 운용자는 개체들을 백병전 현장에 투입하는 편이다.

취약점: 해당 개체들은 소형 화기에 다량 피격되어도 견딜 수 있으나 그 이상으로 내구력을 띠지는 않는다. 근접 전투가 불가피하다면 대구경 화기, 폭발물, 기타 신체 손상/절단 무기를 권장한다. 또한 해당 개체들은 위험을 분별하거나 회피하려 하지 않는다. 해당 개체들이 개입한 상황으로 추정된다면 선제조치 차원에서 지뢰밭을 매설하는 방법이 전반적 위협을 경감할 만하다.

처음으로 제79기지 홀에 피가 이렇게나 수두룩이 튀었다.

처음으로 엘리자베스 캠벨Elizabeth Campbell은 비상용 유리를 진짜로 깨야만 했다.

처음으로 엘리자베스는 "구역내 침범"이나 "프로토콜 매크론Makron 발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엘리자베스는 이토록 외로웠다.


"새로운 직장, 제79기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누가 뭘 왜 어쩌고 하는 말은 벌써 주절주절 다 들으셨을 테니 짧게 갈게요. 여러분은 벌써 훌륭한 매니저, 점원, 회계원, 기타등등 화이트칼라 비격리 직원이시니까요."

"한 가지 다시 말씀드려야 하는 점은 비상시 절차입니다. 안전한 재단 기지로서 특히 중요한 이야기예요. 심리평가는 다들 받아보셨을 겁니다. 다른 데 말고 이곳으로들 오신 이유이기도 하죠. 위험 수당이 붙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모두들 아실 겁니다, 재단이 얼마나 위험하며 우리가 겪는 '비상사태'가 어느 정도인지. 그런 순간이 닥쳐온다면 재단은 여러분이 필요한 일을 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아, 혹시나 해서 말인데 걱정 마세요. 유치한 기지 핵폭발 같은 건 없습니다. 〈안드로메다 스트레인〉은 그냥 소설이에요. 핵폭발은 끼치는 부수적 피해가 너무 큽니다. 지정학적 문제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재단은 그보다는 훨씬 신중합니다."

"시설 전체에 걸쳐서 공기 밀폐 방폭문과 VX 다량이 널려 있습니다. VX는 쉽게 말하면 신경가스예요. 화학무기가 다 그렇습니다만, 너무 그리 강력하진 않아도 효과만은 빠릅니다. 기지는 봉쇄되고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VX의 농도가 치명적 수준까지 오르게 되겠죠. 그리고 스킵들, 우리의 궁극적 목표들은 확보되는 겁니다."

"어떤 내우외환 때문에 기지 보안이 붕괴되어서 상부에서 이 상황을 통제할 수도 없고 다시 통제하지도 못하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때는 '프로토콜 매크론'이 발동됩니다. 이 단어를 실전에서 들었다면 그냥 선 채로 죽었다고 생각하세요. 그 이하는 절대 아닙니다. 그때부터 여러분의 유일한 의무는, 상황에 바깥의 사람들한테까지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시설 곳곳에 비상대피소가 있습니다. 상당히 많이 배치해 놓았죠. 프로토콜 매크론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빨리 대피소를 찾아가세요. 자기 ID 번호는 모두들 외우고 계시죠? 마지막 다섯 자리를 입력하고, 들어가서 명상의 시간을 즐기세요."


엘리자베스는 벌써 부상을 입었다. 찰과상인지 총상인지 그 중간의 뭔지 확실치 않았다. 나아가려 했지만 절뚝임만 나올 뿐이었다.

얼마나 피를 많이 흘렸는지, 얼마나 시간이 많이 남았는지 엘리자베스는 몰랐다. 사실 시간이 대수일까 싶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종교는 안 믿었으니, 자신을 기다려줄 저세상은 없었다. 결혼도 못 했고, 아이도 못 가져봤고, 부모님께 작별인사도 못 드렸고, 오빠랑 화해도 못 했고, 강아지 맡아줄 사람도 못 구했는데. 살아야 할 이유는 이루 다 말 못했다. 앞길 창창했던 좋은 직장과 편안한 여생만 따지더라도 26개. 동료들을 빼면 아무도, 엘리자베스가 어디서 어떻게 일하는지는 몰랐다. 브룩Brooke한테도 말한 적 없었다.

브룩이 제일 그리울 텐데.

비상대피소. 유리가 깨져 있었다. 어떤 불쌍한 인간인지 몰라도 깨먹은 사람은 벌써 온데간데없었다.

바닥에서 쉰소리가 새어나왔다. "네 생각은 알겠어. 들어가지 마." 어떤 사람이 밑으로 떨어져서 저렇게 말하는지 엘리자베스는 알아보지 못했다. 정말 사람인지도.

"이게 우리의 의무야."

"CI가 벌써 이곳을 점거했어. 목적을 모두 이뤘지. 이제 와서 이곳에 가스를 뿌려 봐야 소용없어."

"이게 우리의 의무일 뿐이야. 우리한텐 격리해야 할-"

모퉁이 뒤로 웅성이는 소리. 바로 앞은 아니지만 그리 멀지도 않다.

"봐봐, 기다리니까 해결사가 오잖아."

멀리서 들려오는 으르렁임에, 그 추측은 의심으로 바뀌었다.

"O5가, 아님 기지 이사관이 너 따위를 신경 쓰리라고 생각해? 아무래도 너는 비서인가 보-"

"난 조달 쪽이야, 주요 품목은-"

"봐봐, 하나도 가치 없는 사람이잖아. 네가 비밀 지식이 있나, 재주가 있나. 그 사람들한테 너는 D계급이나 똑같아. 기계 속 톱니바퀴 하나, 고기방패."

"아니, 그럴 리-"

"아, 나도 마찬가지야. 윤리위? 그 자식들도 신경써주지 않지. 그놈들 목표는 저 바깥의 사람들이 안전한지야. 모르겠어? 우리는 희생양일 뿐이라고. 젊은 아가씨, 당신 혹시 죽고 싶어?"

"정말, 정말 죽기 싫어. 하지만 뭘 어떻게 해봤자 우리 앞엔 죽음뿐이잖아."

"우리 둘을 생각한다면, 당신이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으르렁임이 커져갔다. 더는 멀지 않았다.

"아무도 널 기억하지 못해. 넌 잊혀진 방의 이름 없는 시체일 뿐이야."

엘리자베스가 깨진 유리조각들을 내려다봤다. '확보'는 산산이 부서지고, '격리'는 조각나고, '보호'만이 홀로 멀쩡했다.

"침착해. 죽은 척하면 공격하지 않을 거야. 아직 빠져나갈 구멍은 있어."

단말기를 떠받치는 채로, 엘리자베스는 숨을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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