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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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아침은 여느 직원과 다르지 않다. 직원 숙소에서 일어나, 씻고, 먹고, 준비하고, 사무실로 출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항상 직원 매점에 들러 조각 케이크 하나를 사서 출근한다는 점이다.

사무실로 가면 비서가 반겨준다. 비서와의 담소와 함께 응접실에서 조각 케이크를 먹고 들어가면, 책상 위에 쌓인 서류의 탑이 그 단 맛을 말끔히 씻겨준다.

유난히 짜증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치즈 케이크

분명히 중간 관리자를 거쳐서 올 텐데, 왜 이리 많은지는 모를 일이다.

그녀 자신도 중간관리자이기는 마찬가지인지라, 일을 제대로 하는 건 자신 밖에 없다고 혼자서 위로해본다. 쉬울 리 없겠지만.

사실 양만 이렇게 많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은 아니다. 서류의 내용이 매일 같은 말만 적혀있기 때문이다. 실험 허가해 주세요. 이건 SCP인가요, 변칙 개체인가요? 보고서 결제해주세요. 그 외 시설에 대한 건의사항 등등. 가끔 길 잃은 서류들도 날아오는 데, 그건 파쇄기로 사뿐히 넣어 주면 된다. 파쇄기에서 내리는 종이의 목록을 미숙한 연구원의 눈물이라 생각하니 괜스레 즐거워진다.

음? 이건 뭐지? '저희 결혼합니…..'

버려.

이런 건 직접 가지고 올 것이지, 버릇없는 자식.

그렇게 신나게 분류와 분쇄를 반복하다 보면 서류의 탑 하나를 무너진다. 그리고 노래마인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채 솟아오른 또 다른 탑이 자신을 기다리는 걸 목도한다.

당이 떨어진 그녀는 종이 탑 사이에 묻힌 비상용 냉장고에서 치즈 케이크를 꺼냈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

사람 세 명이 모이면 그 중 반드시 한 명의 스승이 있다지. 하지만 나머지 두 명이 배울 의지가 없다면 어떨까.

형식이 맞지 않는 보고서를 대거 수정하며 노래마인은 생각했다.

마치 출판사 신입 사원이 된 기분이군.

신입이 대거 들어오는 날은 상관들에겐 고행의 길이다. 아직 재단의 환경에 익숙해지지 못한 신입들은 어리바리해져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망쳐버리기 일쑤이다. 그걸 바로잡는 건 곧 상관들의 임무이고, 그 말은 곧 업무 추가를 의미했다. 늘 교육하긴 하지만, 배울 의지가 없는 몇 명 때문에 언제나 틀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걸 떠넘기다 보면 결국엔 내가 독박이지. 노래마인이 따로 분류한 보고서 탑에서 또 다른 서류를 빼오면서 생각했다.

일련번호: SPC-….

아.

343 맙소사.

노래마인은 보고서를 구겨 던져버리고 비상용 냉장고에서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꺼냈다.


초콜릿 케이크

사람 세 명이 모이면 그 중에 스승이 있다는 말과 함께, 사람이 모이면 그 중 한 명은 반드시 미친놈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 비정상적인 곳이라면 그러한 사실은 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한창 업무를 하던 중에 사무실 문이 열리고 노래마인의 비서가 숨을 몰아쉬며 달려 들어왔다. 그리 호들갑 떠는 인간이 아니라서 노래마인은 괜스레 긴장 되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일이에요? 요주의 단체에서 쳐들어 왔나요?”

“ㅋ….. 클레프 박사님이……”

“뭐 죽기라도 했어요? 그 인간 쉽게 안 죽던데?”

“박사님이… 세미나에서 또.....

노래마인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왜 이리 호들갑이에요. 그냥 빨리 가서 상담가나 준비시켜요.“

“아니 그게, 브라이트 박사님이 환각제를 더 센 걸로 바꿔치기해서 아직 다 못 깨어났답니다.”

왜 미친놈이 한 명 이상이란 생각을 못했을까.

노래마인은 비서에게 브라이트 박사를 족치는 메일을 본사로 보내라고 했고, 세미나에 참석한 인원들은 심리 치료와 함께 중독 치료를 병행하라고 지시했다.

그 말을 하면서 노래마인은 비상용 냉장고에서 초콜릿 케이크를 꺼냈다.


고구마 케이크

이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걸 노래마인은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많은 곳이 지어졌고, 많은 곳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파괴의 원인이 SCP가 아니라 인간의 실수였다면, 그만큼 짜증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노래마인이 막 티스푼을 내려놓았을 때,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노래마인은 침착하게 비서를 불러 상황을 물었다.

SCP-062-KO 실험 도중에 불 조절에 실패한 모양입니다.”

노래마인은 한숨을 쉬었다. 할머니표 요리책의 무궁무진함이 드러나면서 도마뱀을 괴롭히는 데 지친 인원들이 그곳으로 몰려든 게 화근이었다. 물론 요리책에 나오는 대로 적당히 따라가며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사람도 있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신을 놓아버리면 이런 일이 터지게 되는 것이다.

노래마인의 그런 생각을 했을 때, 그녀의 왼쪽 얼굴에 빛이 드리우더니 저 멀리 보이는 실험실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음 소리에도 불구하고 비서가 겁에 질려 하는 말이 어렴풋이 들렸다.

“후추 대신 화약을 쓰라고 했는데, 실험하시는 두 분이 신이 나서 준비하다가 계량도 잘못한 거 같습니다.”

노래마인은 실험에 참여한 두 박사가 살아있을 지 생각했다. 그리고 살아있다면 그들에게 무슨 징계를 내릴지 생각했다.

창문 반대편에 불길이 잡히는 것을 보며, 노래마인은 비상용 냉장고에서 고구마 케이크를 꺼냈다.


녹차 케이크

저녁이 되어도 별로 배고프지 않다는 것은 오늘 일과가 매우 짜증나고 힘들었다는 말이 된다. 점심 케이크를 포함해서 총 다섯 조각의 케이크가 들어간 그녀는 더 이상 입맛이 없었다.

이런 힘들 날일수록 더욱 당을 보충해줘야 하는 법. 냉장고를 아예 새 케이크로 꽉 채우기 위해 노래마인은 비상용 냉장고 속 마지막으로 남은 녹차 케이크에 손을 뻗었다.

툭. 툭.

그녀의 손이 냉장고 바닥을 더듬었다.

없다. 케이크가.

노래마인은 고개를 숙여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텅 빈 접시 위에 케이크 부스러기와 포크만이 있었다.

노래마인은 조심스레 접시를 꺼내 부스러기와 포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이제껏 본 적이 없는 분노가 새겨졌다.

노래마인이 포크를 벽에 던졌다. 강한 금속음이 방 안에서 울렸다. 비서가 새하얘진 얼굴로 사무실로 들어왔고, 책상 위에 놓인 접시와 부스러기를 보고 사태를 파악했다. 누군가 좆되리란 것도.

“어제 저녁 CCTV자료를 가져올까요…..?”

노래마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비서에게 강렬한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다.

비서는 조심스레 빠져나와 CCTV 관리실에 연락했다. 누가 노래마인의 케이크를 훔쳤다는 비공식 경보와 함께.

그날 밤, 모든 직원들 사이에서 비공식 경보가 발령되었다.

다음날 아침, 한 직원이 머리에 피를 흘린 채 복도에서 발견되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기지의 모든 사람이 패기넘쳤던 그를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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