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고쳐줄게
평가: +10+x

19__sun.png

부우우웅

시아는 오늘도 나팔 소리를 들으며 일어났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우렁찬 트럼펫 소리는 가느다란 루카스의 하모니카 소리로 바뀌었다. 가끔씩은 마르셀의 기타 조율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아니면 샘이 짖는 소리라던가.

어떻게 하면 소리를 헷갈릴 수 있겠냐 싶지만, 시아의 마음에 가장 깊게 남은 소리가 그거였고, 이 네 일행이 찾으려는 사람들이 자주 내는 소리가 그거였다. 하얀 밴 안에서 울려퍼지던 나팔 소리.

10살에 들어간 한낮의 떡갈나무 유랑극단에서의 생활 5년, 사춘기의 혈기로 유랑극단에서 나와 AWCY에 뛰어든 지 7년.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집으로 다시 가고 싶었다.


세 사람은 고아원에서 처음 만났다. 솔직히 그 곳이 정말 고아원이었는지는 이젠 그들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한 번은 시아가 그때를 생각하며 자신들이 ‘올리버 트위스트’의 시대에서 자라난 줄 알았다 한 적이 있었다. 어쩌다 이런 곳에서 셋이 뭉쳤는지는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이제는 이유 따윈 상관없는 영혼을 나눈 관계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타락한 고아원이 으래 그렇듯이 그들도 거리로 나가 구걸을 해야 했다. 문제는 세 명이서는 돈이 잘 안 벌렸기 때문에, 그들은 남들보다 더 일찍 나서고, 더 멀리 나가고, 더 늦게 들어와야 했다.

어느 날과 같은 날이었을 것이다. 오늘도 멀리까지 나가 구걸하던 세 아이는 한 가게에서 들리던 음악에 걸음을 멈췄다. 세 사람은 홀린 듯이 그 가게만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러면서 슬슬 클라이맥스에 이를 때까지 가게로 다가갔다.

마침내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렀을 때, 세 아이는 가게 담벼락에 앉았다. 그 순간에 그들의 세상에는 그 노래만이 존재했었다.

가게 주인인 노인은 창 밖에서 이 세 아이를 지켜봤다가 노래가 끝날 때 쯤 나왔다. 세 아이는 순간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노래가 끝나지 않아 잠깐 망설였다. 그 틈에 노인이 말했다.

“노래가 괜찮나 보구나?”

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노인은 잠시만 기다리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 노래의 도입부가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다시 담벼락에 기대 노래를 들었다. 노인은 가게에서 나와 흐뭇한 표정으로 세 아이를 보았다. 노래가 끝나고, 노인은 아이들이 통을 내밀지도 않았는데도 그들에게 돈을 넣어주었다.

이후로 그들은 그 가게 앞을 자주 지나갔다. 노인은 아이들이 올 시간에 맞춰 그 노래를 틀어주었다. 그러면 그들은 잠시 거기에 멈췄다 갔다. 그것이 아이에게도, 노인에게도 그날의 쉼터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가게 앞을 지나갔고, 평소와 달리 가게 앞에 지팡이를 짚고 나온 노인을 보았다. 노인 옆에는 양복을 입은 사내가 차와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노인에게 달려갔다. 노인은 무슨 일이냐는 아이들에게 멀리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언젠가 돌아오는 질문에는 오기 힘들 거라는 남자의 대답이 돌아왔다.

세 아이는 멍해 있다가 찔끔거리며 눈물을 쏟았다. 노인은 조심히 다가가 아이들을 안았고, 아이들은 노인 품에서 울었다. 노인은 울고 있는 아이들의 귀에 속삭여 주었다.

“너희가 지금까지 겪었던 따스함과, 지금의 이 슬픔을 언제나 기억해주렴…”

그렇게 노인은 아이들을 남겨두고 떠났다.

노인이 떠나고 나서도 아이들은 그 가게를 계속 찾았다. 다행히 다음 주인도 노래 들으러 오는 세 아이를 잘 알던 터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는 그 노래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어떤 일이 벌어질 때마다 그랬듯이, 여느 날과 똑같은 때였다. 세 아이는 담벼락에 기대 구걸용 통을 하나 놓고 하늘만 바라봤다. 원래대로였으면 노래가 중반쯤은 가고 있었을 때였다.

그때, 시아가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루카스와 마르셀도 더듬더듬 입을 열었으며, 곧 노래는 합창이 되었다.

사람들은 서서히 세 아이에게 관심을 가졌고, 그날 벌은 돈은 평소 수입보다 훨씬 많게 되었다.

세 아이는 이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어쨌든 돈은 잘 벌렸으니, 이후로도 그들은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녔고, 그러다 옆에 선 하얀 밴에 문이 열리는 걸 보았다.

그렇게 세 아이는 가족이 생겼다.


사람들이 세 아이에게 배우고 싶은 악기를 고르라 했을 때, 루카스는 하모니카를, 마르셀은 기타를 골랐다. 시아는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그냥 노래를 부르고 싶다 했다. 단원들은 그런 세 아이를 보며 버스킹에 특화된 아이들이라며 웃었다.

세 아이는 이렇게 공연을 했다. 미숙하긴 했지만 순수한 노래의 향연은 단원들을 매료시켰다. 그 매료에 휩쓸려 세 아이는 연주에 더욱 빠져들었다. 그건 12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마르셀이 기타로 바닥을 잡으면 루카스가 하모니카로 멜로디를 잡아나갔다. 그 위에서 시아는 목소리로 뛰어다녔다. 세 개의 소리는 한 데 어울려서 연주를 하고 있는 그 공간을 감쌓다. 세 사람의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샘 앞에 놓인 작은 야구 모자에 돈을 넣었다. 샘은 감사의 표시로 꼬리를 흔들었다.

공연을 마치고, 루카스는 야구 모자에 놓인 돈을 살펴봤다. 오늘 점심도 샌드위치다.

시아는 말없이 입맛만 다셨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게 아니라 한 끼 벌어 한 끼 먹는 삶의 연속이었다. 유랑극단을 나올 때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짓이었고, AWCY을 나올 때는 속죄의 의미로 받아들인 행동이었다.


세 사람의 공연은 흠 잡을 곳은 없었지만, 다른 공연자들에 비해 내세울만한 화려함이 없었다. 곳곳에 물감이 튀거나 피리에서 나무가 자라나는, 그런 퍼포먼스가 없는 담백한 공연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공연은 리허설에서는 박수를 받았지만 본 공연에서는 시큰둥한 반응을 받았다.

그날도 언제나처럼 연주를 마치고 조용한 관객석을 향해 인사를 하던 때였다. 서러움을 삼키며 고개를 숙이던 그들에게 한 소리가 들렸다.

짝….짝….짝…짝…

세 아이는 모두 깜짝 놀랐다. 마르셀은 거의 고개를 들 뻔했다. 그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을 때, 그들의 눈에는 저 멀리서 웃으며 손뼉을 치는 여자가 보였다. 거기가 세 아이의 변환점이었다.

그 날 저녁, 여자는 단장을 만났고, 아이들은 단장이 있는 천막 밖에서 얘기를 엿들었다.

“아직은 너무 어리… 가능성… 희박…”

“그런 재능이 아니… 연주 자체… 기술… 훌륭한 변칙예술가…”

“결국… 아이들의 선택…”

천막의 천이 왜이리 두꺼운지 띄엄띄엄 들리는 대사를 세 아이는 어떻게든 끼워맞추려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안에서 큰 외침이 들렸다.

“이만 들어오렴!”

세 아이는 놀라 자빠질 뻔했다. 루카스는 실제로 자빠졌지만. 그러면서 세 아이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가만히 있자 여자는 다시 소리쳤다.

“빨리 와. 엿들은 걸 혼내려는 게 아니니까.”

세 아이는 마르셀을 선두로 해서 쭈뼛거리며 들어섰다.

“뭔, 어떻게 안 거야?”

“어머, 이런 일 하는데 좋은 청력은 필수에요.”

세 아이가 여자 앞에 서자, 여자는 아이들을 삐딱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기타 치는 애, 하모니카 부는 애, 노래하는 애. 이름이 어떻게 돼요?”

“순서대로 마르셀, 루카스, 시아.”

여자는 의자를 돌려 아이들을 똑바로 쳐다봤다. 두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했고, 세 아이도 들어올 때의 긴장감에서 벗어나 어떤 벅차오름을 느끼기 시작했다.

“너희들, 나와 함께 가지 않을래?”

그 다음 일은 그들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너무 꿈만 같던 일이었다. 정신을 차린 다음날 아침, 세 아이는 그녀의 스포츠카를 타고 떠났다. 두 번째 만남이자, 첫 번째 이별이었다.


“아직도 못 찾았어?”

공중전화 너머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7년 전보다는 늙어 보이는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활기찼다.

“네. 저희들 뒤처리까지 하느라 바쁘실 텐데, 죄송해요.” 마르셀이 샘의 목 뒤를 긁어주며 대답했다.

“괜찮아. 이것보다 더한 일도 처리해봤는데 뭘,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거 같아서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하다 야.” 여자는 유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참, 샘은 잘 있지?”

“네. 근데 세월은 별 수 없나 봐요.”

“그러니.” 여자는 긴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준비를 해야 될지도 모르겠구나.”


“…이게 다 뭐야?”

마르셀이 나무로 가득 찬 작업실에 들어오며 말했다. 그의 옆에는 한 리트리버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놀라고 있었다.

“시아가 음표 그리다가 실수했어. 생각보다 규모가 크네.” 루카스가 오선지에서 자라난 나무를 톱질하며 말했다.

“엘레다 씨는?”

“여기! 근데 그 개는 뭐야?” 여자가 나무에 가려 안 보이는 소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버려진 개 같은데, 심부름 오는 길에 자꾸 따라오길래 데려왔어요. 귀엽죠?”

마르셀은 말을 하면서도 긴장된 눈으로 엘레다를 쳐다봤다. 계속 톱질하던 루카스도 개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엘레다를 쳐다봤다. 부끄러움에 구석에 박혀있던 시아도 개를 엘레다를 쳐다봤고, 그땐 이름이 없던 샘도 엘레다를 쳐다봤다.

잠깐 시선이 집중된 거에 당황한 엘레다는 곧 이게 무슨 의민지 알아챘다.

“그래에, 개란 말이지.” 엘레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어디보자아, 너희가 나한테서 변칙 음악을 배운지 얼마나 됐지?”

“3년이요.” 마르셀이 바로 대답했다.

“꽤 오래 배웠네. 그런데.” 엘레다는 주변을 둘러봤다. 나무가 천장에 걸려 구부러지면서 난장판이 된 집이었다. 시아는 고개를 숙였고, 마르셀과 루카스, 이름없는 개의 눈에 실망감이 어렸다. “이런 규모 큰 실수도 할 줄 알고, 대단한데! 괜찮은 보상을 줘야겠지?”

시아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루카스의 입에 미소가 생겼고, 마르셀은 개를 안아줬다.

“이름은 정했지?”

“제 이름이 마르셀이니까… 얜 ‘샘’이라 부를래요.”


4년 동안 꽃길만 걸었다고 한다면, 세 사람은 그렇다 말할 것이다.

막 기타와 하모니카에 익숙해진 마르셀과 루카스는 변칙 기술을 빠르게 배워나갔다. 시아도 엘레다 밑에서 변칙적 작곡 기술을 배워나갔다. 마치 재능이 있는 것처럼 시아는 엘레다의 지식을 빨아들였다.

샘이 들어온 이후, 세 사람은 점점 두각을 드러냈다. 그들도 그 때의 단원들처럼 자신들의 예술에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첫 공연에서 마르셀과 루카스의 불꽃놀이 쇼는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 냈고, 세 남매와 한 마리의 개는 그 세계에서 곧 유명해졌다.

그럴수록 그들의 음악은 점점 화려해졌다. 슬슬 어떤 곡조를 연주할까 보단 어떤 쇼를 보여줄까란 생각을 먼저 하게 됐다. 한 때는 마르셀의 손목에 피가 튀는 연출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다음 무대에선 피의 비를 내리게 한 적도 있었다. 그들의 음악은 점점 자극적이고 광란의 모습이 들어가게 되었다.

일은 그렇게 잘못 흘러갔다.


시아는 뭔가 잔실수가 많았다. 그니까 불꽃놀이에 초록 불꽃이 아니라 파란 불꽃이 나온다던가, 음량이 생각보다 크게 나타나거나. 사실 그들에게나 공연에서나 크게 문제될 실수는 아니었다. 광기에 빠지지 전까진 그랬다.

그날은 부족해진 음을 채우기 위해 피아니스트 한 명이 그들과 함께했다. 분명 리허설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공연이 시작하고, 피아노 솔로가 있는 구간이었다. 빠르게 이어지는 구간을 피아니스트는 아무 문제없이 해냈다. 루카스와 마르셀은 늘 그렇듯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순간 시아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생각보다 피아노 소리의 세기가 셌다. 시아는 뒤를 돌고 피아니스트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이미 까뒤집혀 있었다. 코피가 새어나왔다. 당황한 시아는 그를 피아노에서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의자에 딱 붙은 듯이 피아니스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태를 알아챈 루카스와 마르셀도 피아니스트에게 다가와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피아니스트의 강한 움직임에 두 사람이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의 손가락 관절이 뒤틀리고 그곳에서 피가 새어나왔다. 이젠 코 뿐만 아니라 그의 눈과 귀에도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세 사람은 그저 거기에 서서 그가 말라 죽어가는 걸 바라봐야 했다. 피아노 소리가 멈추고 공연장에 침묵이 깔렸을 때, 그들은 그 때처럼 작은 소리를 들었다.

짝…짝…짝…짝…

그리고 그때와 달리 소리는 관객의 손을 타고 크게 흘러갔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세 사람은 관객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관객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가끔씩 휘파람 소리도 들렸다. 세 사람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경례를 하고 시체를 그대로 둔 채 무대를 떠났다.

이후로 세 사람의 소식을 들은 이 바닥의 사람은 없었다.


“지금까지 어디어디 가봤지?” 엘레다가 물었다.

“어디보자, 런던,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중국. 대만은 특히 더 샅샅이 뒤졌죠.” 마르셀이 손가락을 꼽아가며 답했다.

“그럼에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네.”

“알았어, 더 조사해보고 알려줄게, 너희도 계속 찾아다녀 봐. 필요하면 재단 서버도 뒤져보지 뭐.”

“그게 돼요?”

“농담이야. 이만 끊을게.”

“네, 그럼…”

뚝.

마르셀은 한숨을 쉬며 공중전화 부스에 등을 기댔다. 상황이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집으로 가고 싶은데, 그 길을 잃어버렸다. 떠돌아다니면서 먹고 살 걱정은 생각보다 없었지만, 그래도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몇 개월 전에 떠돌아다니다가 일으킨 사고가 떠올랐다. 아직 광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빨리 가족들에게로 돌아가고 싶었다.

“마르셀! 마르셀!” 루카스가 뛰어왔다. 마르셀은 고민하던 표정을 풀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나왔다.

“무슨 일이야?”

“샘이… 샘이…”

루카스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하지만 마르셀은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샘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귀에 방금 나눴던 대화의 일부가 들렸다.

‘어쩌면 준비를 해야 될지도 모르겠구나.’

예전부터 생각하곤 있었다. 자신이 주워온 샘은 주워올 때부터 5살을 진작에 넘긴 노견이었다. 그런 아이가 길바닥에서 몇 개월을 버틴다는 게 기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의 구석에서도 ‘벌써’라는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마르셀이 도착했을 때, 시아는 샘의 목을 잡고 울고 있었다. 마르셀은 조심스레 다가가 샘의 맥박을 쟀다.

뒤이어 루카스가 도착했을 때, 마르셀은 샘의 몸통을 잡고 울고 있었다.


엘레다 지인의 도움으로 샘의 화장은 쉽게 마쳤다. 한 줌의 샘이 담긴 상자가 세 사람의 손에 들렸다.

가벼웠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웠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한 행위 모든 게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세 사람은 잘못하면 날아갈 것 같은 걸음으로 화장터에서 나왔다.

“이제 가자.” 마르셀이 말했다.

“어디로?”

“어디긴, 늘 하던대로 가야지.”

“잠깐만, 마르셀 잠깐만.” 루카스가 말했다.

마르셀은 뒤를 돌아봤다. 루카스와 시아가 터질 것 같은 눈으로 마르셀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그렁그렁한 눈 안의 마르셀의 눈은 퀭하니 무언가 빠져 있었다. 마르셀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과 퀭한 눈이었다.

무언가 빠져있다. 무언가가.

마르셀은 귀에 무언가 간질이는 소리를 들었다. 마르셀은 다시 앞을 보자 저 멀리서 바다 너머로 지는 해가 보였다. 파도소리 하나하나가 기타 속의 현과 울리는 느낌이었다.

"며칠 정도는 괜찮을 거야." 루카스가 말했다.

마르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유랑극단을 찾으러 다닌 지 다섯 달 만에 쉬어가기로 했다.


바다는 조용했다. 이따금 파도 치는 소리만 울릴 뿐. 저 바다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는, 정말 완벽한 경치에서도

시아와 루카스와 마르셀은 샘의 유골함과 함께 그저 해변에 앉아있었다. 저 바다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는, 정말 완벽한 경치에서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오래, 오랫동안 거기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파도소리가 조용한 음악으로 밀려왔다.


마르셀은 갑자기 등에 지고 있던 기타를 꺼냈다. 루카스와 시아는 의아하게 그를 쳐다봤다.

“그 노래 기억해? 우리가 처음 알았던 거.”

“알긴 알지. 근데 그건 왜?”

“지금 부르자. 처음의 우리처럼. 지금은 기타도 있으니까 더 좋을 거야.”

“샘을 위해서?”

“샘을 위해서.”

마르셀은 코드를 짚었다. 기타를 배웠을 때 가장 처음 연습한 코드였다. 그리고 마르셀은 그때처럼, 입을 열고 노래를 시작했다.

When you try your best but you don't succeed
When you get what you want but not what you need
When you feel so tired but you can't sleep
Stuck in reverse

마르셀은 잠시 말을 멈추고 시아와 루카스를 쳐다보려 했다. 하지만 둘은 쳐다보기 전부터 이미 다음 구절을 시작하고 있었다.

And the tears come streaming down your face
When you lose something you can't replace
When you love someone but it goes to waste
Could it be worse?

세 사람은 웃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맞추어 노래했다.

Lights will guide you home
And ignite your bones
And I will try to fix you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엘레다 씨.”

“뭔데?”

“왜 저희를 데려왔어요? 굳이 가르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널려 있을 거 같은데.”

“너희가 눈에 들어왔으니까.”

“그니까 왜요.”

“너희는 음악에 인생을 바칠 줄 아는,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리고 잠깐 키득거리는 소리가 울렸으려나


Tears stream down your face
I promise you I will learn from my mistakes
Tears stream down your face
And I

Lights will guide you home
And ignite your bones
And I will try to fix you


노래를 마친 세 사람은 고개를 떨어트렸다. 석양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면서 어둠이 세 사람의 등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어둠은 밴의 헤드라이트에 막혔다. 차 경적소리가 울렸고 세 사람은 뒤를 돌아봤다.

하얀 밴이 해수욕장 주차장에 서있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여자가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손을 흔들었다. 멀찍이서 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세 사람은 일어나면서 다시 노을을 바라봤다. 태양은 아직 지지 않았다. 저 멀리로 달려가고 있었다. 세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웃었다. 셋은 어렸을 때처럼 손을 잡았다가 놓음과 동시에 경주하듯이 밴을 향해 뛰어갔다.

유골함에 담긴 샘도 그들의 팔에 끼인 채 새로운 가족을 향해 달려갔다.

밴의 문이 열리고 나팔 소리가 울렸다.

부우우웅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