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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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는 달렸다.

 거리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가고 있었다. 온몸에서 땀이 났고 숨은 거칠었다. 폐로 돌진하는 공기는 아팠다. 뜀박질을 멈출 수는 없었다. 심장에 불이 나는 것이 몸에 총구멍이 나는 것보다야 나았다. 놈들은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고작 변칙예술가 하나에 무슨 이런 관심인지.

 광대는 얼굴을 찌푸리며 가판대 하나를 타 넘고 좁은 골목 안으로 달려갔다. 뒤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재빨리 품속에서 풍선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는 골목 벽면에 몸을 기대 입구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짜증 나게도 녀석들은 잘 훈련된 진법으로 전진하며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못 배워먹은 예술 테러리스트들과 싸울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광대는 코트 속주머니에서 매직 펜을 꺼내, 풍선 위에 멀미El Mareo라고 적었다. 놈들은 점점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번뜩이는 재단 로고가 보였다. 양복쟁이들의 적개심은 무한한 것 같았다. 그 적개심을 좀 완화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그는 무리를 향해 던졌고, 곧 풍선이 그들의 머리께로 추락하면서 폭발하는 장면을 보았다. 놈들은 풍선이 터지는 소리에 놀라더니, 이내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며 균형을 잡으려다, 곧 쓰러졌다. 광대는 숨을 몰아쉬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다시 몸을 일으켜 달렸다. 이권동의 뒷골목은 길고 좁았으며, 이따금 사람을 삼키기도 하는 벽화들로 가득해 있었다. 추격자들을 막기엔 천혜의 요새다.

 광대는 날렵하게 몸을 틀어 스스로 다리를 부러뜨리게 하는 축구공 그림에서 시야를 떼어냈다. 그리고는 바로 몇 미터 뒤에 그려진 얼굴 그래피티로 달려갔다. 일을 치르기 바로 몇 시간 전에 그려놓은 것이었다. 얼굴은 입을 다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다급하게 얼굴 아래 써 놓은 ‘키스 연습’El Beso Ejercicio이라는 문구를 세 번 두들기고, 곧 얼굴의 입술을 툭툭 쳤다. 얼굴은 곧 눈을 뜨고 입술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는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발걸음이 요란하더니 곧 벽을 세차게 걷어차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울렸다. 곧이어 벽에 얼굴을 박아대는 소리도 들려왔다. 놈들은 안면이 완전히 부서질 때까지 벽에 머리를 박을 것이었다. 단순한 키스 한 번을 위해. 광대는 한 쪽 입꼬리를 올린 채로 골목 벽면을 타고 올라갔다. 놈들의 진입로가 막힌바, 쫓아오는 속도 역시 늦어지리라.

그런 판단이 무색하게 벽돌담 위를 달려나가자마자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광대는 이를 악물고 미끄러지듯 뜀박질했다. 총알은 그를 맞추지 못하고 담에 박혔다. 뒤에서 날아온 총알이 아니라 옆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흘끗 옆으로 돌리고 금세 몰려든 추격자들을 인지했다. 충원된 모양인지 아까하고는 좀 다른 전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마치 게릴라전을 하는 듯한 모양이었다.

“이 동네 인사법이 원래 이딴 식이었나…”

광대는 재빨리 속주머니에서 길다란 풍선도(風船刀)를 꺼내 들고 날아오는 총알을 퉁겨내며 달려갔다. 대략 일곱 명 정도의 적들이 주위 건물에 몸을 숨긴 채 사격 하고 있었다. 그의 칼 놀림이 잠시 느려지자 즉시 총알 하나가 코트 자락을 꿰뚫었다. 다리는 무거웠고 팔 역시 힘이 약해지고 있었다. 직접 싸울 때가 아니었다. 달리면서 흔들리는 속주머니 안에서 온갖 물건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광대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주머니를 톡톡 두들겼다. 이내 강아지 모양으로 꼰 풍선 하나가 주둥아리를 밖으로 디밀었다.

“나와서 맘대로 물어라!”

주둥아리는 알아들었다는 듯 한 번 짖고, 쑥 하니 주머니 밖으로 튀어나왔다. 곧 소형차 한 대 크기의 풍선 개 한 마리가 광대 앞에 착지했다. 보통 주머니 안에 들어가기엔 힘든 크기임이 분명했다. 광대는 날아오는 총알 하나를 베어버리고는 적들에게로 고갯짓했다.

 개가 다시 짖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덤벼들었다. 적들이 당황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동네를 울렸다. 개는 총탄에도 개의치 않고 마구잡이로 달려들었고, 곧 주택가에 숨어 있던 적 한 놈을 물어 허공으로 내던졌다. 광대는 미소를 지으며 칼을 꼬나들고 개의 뒤를 따라갔다. 날아오는 총알은 어느새 개를 상대하느라 줄어 있었다. 그는 달려드는 요원 하나의 턱을 가격하고는 칼로 정수리를 내리쳤다. 날 없는 칼은 진퉁처럼 살상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평범한 풍선의 경도보다 수천 배는 강한 풍선도는 적어도 적에게 강한 충격은 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지금, 적이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것처럼 말이다.

 광대는 재빨리 자세를 가다듬고 개를 쫓아갔다. 어느새 바닥에 신음하며 나뒹굴고 있는 요원은 넷으로 늘어있었다. 둘밖에 남지 않은 적들은 반파된 차량에 몸을 숨기고 장전하고 있었다. 그는 개의 엉덩이를 때려 그들 쪽으로 달려가게 했다. 곧 다급한 외침과 차 부서지는 소리, 총소리가 뒤따랐다. 광대는 여유롭게 그 난장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 요원이 후퇴하며 개에게 총을 갈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공격으로 개가 쉬이 터질 리가 없었다. 몇 날 며칠을 고생하며 탄생시킨 풍선견(風船犬)은 그의 자랑거리였다. 광대는 씨익 웃으며 개의 다리를 토닥이며 그만하라는 표시를 보냈다. 개는 꼬리를 말며 끼잉거렸지만, 광대가 조금 더 엄한 표정을 짓자 하는 수 없다는 듯 끄응 소리를 내며 속주머니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갔다.

 남은 건 적 둘과 광대뿐이었다. 요원들은 광대의 급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듯 주춤거리다 이내 그를 조준하고 나섰다. 그들 중 직급이 높아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당장 무기 버리고 항복해.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광대가 물었다. 요원들의 얼굴이 굳어지며 총을 바투 잡았다. 광대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누군가에게는 공포를 유발하기 딱 좋은 차림새긴 했다. 얇은 코트 안에 입은 단색의 후드티, 머리에 쓴 비니 정도는 평범했다. 그러나 허옇게 분칠한 얼굴, 과도한 붉은색으로 칠한 입술, 가짜 눈썹과 눈두덩이에 그린 문양, 눈물 자국은 흡사 어릿광대의 분장을 닮아 있었다. 광대 공포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흠칫할 얼굴이었다. 광대는 흰 장갑을 낀 손을 부비적거리며 대답을 기다렸다.

“즉결처분될 거야. 당신은 대한민국 사회의 안녕을 어지럽혔으며—”

“이제 보니 당신들 방자들이었구만.” 광대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끊었다. “초상방재원. 한국 변칙방위군… 뭐 그런 류인 단체. 맞지? 재단이 인원이 참 부족한가 보군. 당신들한테 무기를 쥐여주면서 나가서 싸우라고 할 정도니.”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광대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민간인을 포함한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그건 틀렸어.”

“뭐?”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최대한 싸움이 번지지 않게끔 했어.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면…” 광대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우리보단 당신네가 더 유력한 용의자일 텐데.”

“네놈들의 분쟁 때문에 명천 아트홀이 파손됐어!”

“그래?” 광대는 팔짱을 끼며 짝다리를 짚었다. 흐르던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하나만 묻지. 그 아트홀, 다시 말해 폐단의 소굴이 이 분쟁에 아무런 책임이 없을 것 같나?”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광대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칼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다른 주머니에서 비눗방울 총을 꺼내 들었다. 두 인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게 마음에 안 드나?”

광대는 씨익 웃으면서 비눗방울 액을 갈아 끼웠다. 시중에서 파는 액체였다. 별 다를 건 없었다.

“굉장히 이 총을 우습게 보는군. 감히 말하건데, 이게 당신들이 얻어 온 그 우스꽝스러운 장난감보다 더 강할걸.”

 요원들의 얼굴에 경계감이 흘렀다.

“내가 말했듯 예술은 놀라움이지. 많이 변질되긴 했지만 본래 변칙예술이란 당신네가 철석같이 믿고 있던 현실이란 고정관념을 걷어차서 예술적 쾌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야. 이것도 그 맥락에 일조하는 거지.”

 광대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둘을 향해 비눗방울을 발사했다. 미처 둘이 사격하기도 전에 방울은 순식간에 소총에 달라붙었고, 곧 스며들었다. 동시에 요원들의 손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은 발사하기 위한 일련의 프로세스를 거치려고 했지만, 이내 계속하지 못하고 점액질로 녹아내렸다.

 “으악!”

 “씨발 이게… 이게 뭐야!”

무기여, 잘 있거라.

 광대는 경악하는 둘을 조롱하듯 허리를 숙여 절을 하고는 반대 방향으로 질주했다.

 곧 약속된 장소가 나타날 것이었다. 그는 길거리를 거니는 몇 명의 행인을 지나쳐 명천문화광장으로 달려갔다. 아드레날린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광대는 차가 어지럽게 다니고 있는 큰길가를 위험하게 지나쳐 반대편 동네로 뛰었다. 놈들은 따라오는 기척이 없었다. 어느새 시야 한구석에 광장이 보였다. 그는 양옆을 살핀 뒤 광장 한쪽에 자리한 야외공연장으로 뛰어들었다.

 총성.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벼락처럼 그의 팔을 치고 지나갔다. 광대는 왼팔을 부여잡은 채로 좌석에 굴렀다. 심장이 뛰는 속도만큼 통증이 심해져 갔다. 그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몸을 일으켰다. 엎어지면서 부딪힌 옆구리가 결렸다. 광대는 팔을 압박하며 자세를 낮췄다. 총알의 궤적을 알 수 없었다.

 “아… 씨발 진짜.”

 광대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좌석 자리의 위쪽에는, 어느새 산개한 적의 부대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었다. 그들의 맨 앞에 어떤 존재가 있었다. 두 인영이었다. 둘은 어깨동무를 하고 재단 표준 교전복을 입고 있었다.

 광대는 그들을 본 순간부터 줄곧 떠올렸던 단어를 내뱉었다.

 “트위들디 트위들덤?”

  “뭐?”

 그들 기준으로, 오른쪽에 선 남자가 되물었다. 광대는 이제야 그들을 눈여겨볼 수 있었다.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키. 체격도 같았다. 단지 왼쪽 남자의 손에는 소형 기적술 화기가, 오른쪽 남자의 손에는 마취총과 한 손으로 사격하는 것을 보완해주는 거치대가 부착되었다는 것이 달랐다. 둘의 얼굴에는 똑같은 표정이 어려있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

“글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못 봤나? 거기 나오는 쌍둥이 형제가 있는데—”

“입 닥치고 순순히 투항해.”

 왼쪽에 선 남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광대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애써 감추고 능글맞게 미소를 지었다.

“스탠딩 코미디가 안 먹힐 때도 있군그래.”

“그거 하나도 재미없었거든.”

“넌 굳이 대꾸하지 말고…”

 오른쪽이 대꾸하자 왼쪽의 얼굴에 당혹이 서렸다. 애써 무게를 잡으려는 시도가 실패한 것 같았다. 광대는 팔에서 손을 떼고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겉옷 벗어.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좋아. 알았어, 알았다고…”

 위엄을 되찾은 왼쪽이 인상을 찌푸리며 지시했다. 광대는 입술을 비틀며 미소를 지었다. 하라는 대로 안 하면 마치 쏴버리기라도 할 듯한 분위기였다.

 모든 게 잘 되어가고 있었다.

 불현듯 광대의 뒤쪽, 공연장에서 퍼런 불빛이 번쩍하고 빛났다. 미묘하게 일그러진 공기가 사람들의 시선을 교란시켰다. 때는 지금이다. 광대는 재빨리 연갈색 트렌치코트를 벗어들고 빛이 나는 쪽으로 던졌다. 천천히, 코트는 마치 야구공이 투수의 손에서 떨어져 나아가듯 날아갔다.

 동시에 오른쪽에 선 남자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광대는 충격으로 고꾸라졌다. 마취총의 탄은 목덜미에 서슬 퍼렇게 박혀있었다. 광대는 의자를 잡고 일어났다. 재빨리 탄을 뽑으려고 했다. 그러나 마취약의 속도는 그의 손보다 빨랐다. 뒤로 뻗어 가던 손길이 그대로 아래를 향해 추락했다. 광대는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으려고 했지만, 온몸에 스며드는 약은 그의 의식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었다. 몸이 무거웠다.

“아… 이런 젠장. 이건 예상을 못 했네…”

 광대의 무릎이 꺾였다. 곧 그의 몸이 지면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멀어져만 가는 의식 저편에서 적들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쌍둥이가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광대는 이를 악물며 마지막 발버둥을 쳤지만, 행동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입술만이 바르르 떨렸을 뿐이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들이 말하고 있었다.

“…네. 요주의 인물 ‘광대’. 생포 후 인근 안전가옥으로 송치하여 구금하겠습니다…”

 광대는 한 줄기 한숨을 토해내고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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