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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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천입니까?”

“전출일세.”

“좌천이겠죠. 좌천이자, 몸 불편한 두 놈 제거의 다른 말.”

방 안에는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제01K기지에서 제일 안락하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이곳, 직원 휴게실에는 세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차갑게 내려앉은 분위기가 그 넓은 간극을 차지했다. 하나와 둘의 시선이 마주치고 있었다.

“자네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아네.” 정 차장이 달래는 어조로 말했다. “줄곧 그렇게 취급을 받아왔으니까. 하지만 이 경우는 상황이 달라.”

“그대로 유지했으면 그 부대에 말뚝도 박을 수 있었습니다. 굳이 이렇게 인사 이동을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왼쪽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드러내놓고 기분이 상한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았으나, 풍기는 아우라는 분명히 분노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그 옆에 앉은 남자가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부러 다른 부대로 날려버리는 건 이미 많이 당해봤으니, 우리 좀 솔직해집시다, 거.

사람이 없는 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이 만남을 주도한 인사부 제2차장 정현미의 부탁이 있었던 탓이고, 둘째는 그녀를 따라온 두 인원의 모습이 퍽 괴이했던 탓이었다. 자리를 비워달라는 부탁이 떨어졌을 때,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인원들은 꽤 놀란 표정으로 둘을 곁눈질하며 지나갔다.

유정원과 유정헌에게 그런 눈길이란 공기처럼 당연한 존재였다. 옆구리가 붙어 태어난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덕분에 정말 실과 바늘처럼, 항상 거동을 함께 해야하는 것도 누구에게도 과실을 물을 수는 있는 일은 아니었다.

재단에서는 그것이 과실을 물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이 재단에 영입되고 난 뒤, 수많은 교전에서의 과실은 언제나 그들의 몫이었고 그 과정에 예외는 없었다. 일반적인 요원들보다 행동이 느리고 은신이 어려우며, 실적이 떨어진다는 것이 그들의 죄목이었다.

“글쎄, 아니래도.” 정 차장은 참을성 있게 말을 이었다. “이번 사건이 중대한 일이라 그래. 자네들이 맡을 임무는 바로 ‘명천구 사태 방지 업무’야.”

“명천구…라뇨?” 왼쪽에 앉은 남자, 정헌이 물었다.

정 차장은 대답 대신 그들에게 파일을 하나 건넸다. 둘은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고 파일을 펼쳤다. 검게 강조된 글씨가 보였다. ‘SCP-588-KO’.

“SCP-588-KO. 지난 20세기 동안 한국에서 벌어진 것 중에 가장 규모가 컸던 ‘예술 분쟁’. 바로 그 서울시 명천구에서 벌어진 일이야. 명천구는 한국 내 유일한 변칙예술특구로, 현재 주민의 약 70%가 변칙예술가로 구성되어 있지.”

“홀리 마카로니.”

오른쪽에 앉은 남자, 정원이 중얼거렸다. 정헌이 파일에서 고개를 들고 물었다.

“그렇다면 왜 명천구가 아직도 존속하는 겁니까? 여기 나오는 대로라면 피해가 막대했을 것 같은데요. 게다가, 왜 재단은 거기에 개입을 안 하는거고요?”

“정확히 말하자면 명천구의 내부가 아니라 그 외곽에서 벌어진 일이었네. 입구 쪽에서 여러 분파가 치고 받고 싸워댔지. 다행히 구에서는 자체적인 방어가 된 상태여서 중심지로 번지지 않았고, 죽은 예술가들조차도 서로에게만 퍼부어댔어. 우린 사후 처리 및 격리에만 신경쓰면 되었고.”

정 차장은 속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개입 건에 대해서는… 자네들이 발령에 동의하면 알게 될 걸세. 오직 명천구 관련 인원들만이 접근 인가를 부여받게 되니까.”

정원과 정헌은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동의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

“당분간은 기지 소속 요원으로 남아 있겠지.”

“잠시만요. 벌써 부대장이 전출에 동의한 겁니까?”

“자네들이 있던 팀이… 정호-7, 맞나?”

“예, 통칭 "땅꾼들"이요.”

“동의했네. 사실 이 전출을 제안한 이가 바로 그야. 자네들이 추적 업무에는 두각을 드러냈으나 아무래도 대응이 늘 마음에 걸린다고 했더군.”

정헌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자, 어떻게 할텐가? 기지 소속으로 가도 괜찮을걸세. 괜찮은 부서가 있을테니…”

정원은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기지 소속, 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릴 기지에 그냥 처박아 두시겠다? 밖으로 싸돌아다니지 말고?”

“입조심해. 누구 앞이라고.”

말은 따끔한 경고를 담고 있었지만 정헌의 얼굴에도 스멀스멀 분노가 기어올라오고 있었다.

“지난번에도 그놈의 ‘당분간’이라는 말 믿고 내근직으로 전환했다가 거의 1년 동안 업무란 업무는 잡지도 못했어요. 이제 우리가 뭘 믿냐고요.”

“표현이 거친 점은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다만 정원이나 저나 이 전출이 달갑지 않은 점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자네들의 열정을 내가 모르는 게 아닐세.” 정 차장의 입에서 한 줄기 연기가 흘러나왔다. “실상 자네들만큼 외근직으로 가려는 사람들도 얼마 없어. 되려 내근직을 선호하지. 편하고, 소위 ‘정치질’에도 유리하니까.”

“저희가 내근직을 맡아봤자 잡일 밖에 안 떨어진다는 것도 아시잖아요.”

“그래, 그것도 알지. 그래서 내가 명천구로 가라는 거야. 더군다나 명천구 일은 내근직이 아니니까.”

“경비 일 아닙니까?” 정헌이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뒷문소호나 스리포틀랜즈 같은 구역이니, 거기서 떨어지는 변칙 물체나 현상 따위를 탐색하거나 격리하고, 그런 일을 할 것 같습니다만.”

“미안하지만 그것에 대한 상세도 동의를 해 줘야 알 수 있네.” 차장이 미안한 어투로 연기를 뿜어냈다. “다만 이번에 중점적으로 할 업무는 알려줄 수 있지. 애초에 명천 쪽 인원을 충원하는 이유는 보안 인가가 제한된 건 아니야.”

“그게… 뭡니까?”

“근시일 내에 명천구 이권동에 위치한 한 아트홀에서 주관하는 전시회가 열릴 걸세. 예술판에서는 꽤 유명한 전시회야. 등용문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차장은 또 다른 파일을 꺼내 탁자 위에다 놓고 펼쳤다. 파일 안에는 한 건물의 그림과 현수막이 보였고, 그 아래에 빨간 글씨로 일자가 쓰여 있었다.

“근래 변칙예술계가 움직이는 게 심상치 않아.” 차장의 목소리에 한숨이 배어들었다. “파벌 간의 싸움이 격해졌어. 재단으로 투항한 잔류 인원까지 죽이는 마당에, SCP-588-KO 사건이 재발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우리가 그걸 막는 겁니까?”

“그래. 이미 예술 분쟁의 발발은 거의 확실시되는 추세야. 이를 암시하는 현상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니… 그래서 자네들 둘이 그곳에서 일을 좀 도와줬으면 하네.”

정헌과 정원은 다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같은 표정이 둘의 얼굴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차장은 그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물론, 이번 일이 끝나면 다시 현장직으로 보내준다는 약속도 할 수 있네. 이번 일이 경력 쌓기에는 아주 좋거든.”

정헌은 차장을 바라보았다. 그 말이 옳을까? 상부는 언제나 교묘한 말로 빠져나가는 족속들임을 모르지 않았다. 경험은 그들에게 믿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뭐가 달라질까.

정원은 정헌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헌 역시 동감의 뜻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둘은 동시에 말했다.

“가겠습니다.”

“좋아.”

차장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탁자에 담배를 비벼껐다.

“유정원 요원, 유정헌 요원. 현 시간부로 기동특무부대 정호-7에서 명천구 직속 대응반으로의 전출을 명하네.”

정현미 차장이 먼저 일어났다. 그녀는 휴게실을 나서다 말고 아직도 파일을 쥔 채로 앉아있는 쌍둥이에게 툭 말을 던졌다.

“로비에 대응반장이 와 있으니 같이 올라가지. 가면서 그가 알아야 할 사항들을 일러줄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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