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 향기를 넘어 체취로 베어버린 담배연기의 냄새. 무고한 생명을 향해 발사한 한 발의 탄환.
문세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반추하는 행위를 포기했다. 사랑을, 사냥을, 살인을 모르던 어린 소녀는 없다.
어느 한 행위를 알게 될 때마다, 문세희는 그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음을 느꼈다.
그런 그녀에게도 사람의 피 냄새는 도저히 무뎌지지 않았다. 원래도 민감한 후각의 보유자였지만, 비릿한 피 냄새는 맡지 않아도 언제나 그녀의 코를 간질였다.
그걸 덮기 위해서 그녀는 담배를 더욱 많이 피웠다.
그 댓가로 민감한 후각이라는 사냥꾼으로서 아주 큰 장점을 하나 잃었지만, 적어도 사람을 죽여놓고도 잠을 잘 수 있는 정신상태를 만들어 주었으니 담배는 그녀에게 은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세희는 담배를 책상에 비벼서 껐다. 그녀의 앞에는 삼대천 생활건강에서 온 문서더미가 쌓여 있었다.
문서의 내용은 달콤했다.
[사냥 1팀 재창설]
서지후의 실종 이후, 사냥 1팀은 해체되었다.
사냥 1팀은 해체된 이후 단 한번도 재창설되지 않았다. 일종의 영구결번이었다.
그 사이 사냥팀은 9팀까지 늘었고, 각 팀은 수십, 수백명의 사냥꾼을 보유하고 있거나 혹은 아주 특이한 능력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와서 문세희에게 사냥 1팀의 재창설을 권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병춘을 구한 뒤로는, 삼대천 생활건강과는 완전히 척을 졌던 그녀였다.
정철민의 개가 되어 인간 사냥만을 할 뿐, 실질적으로 영물 사냥은 더이상 하지 않는 반쪽짜리 사냥꾼 그녀였단 말이다.
"알력다툼인가."
삼대천의 내부 사정에 썩 밝지 않은 그녀였지만, 최근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멍청이인줄로만 알았던 백태양이라는 인물이 외부인을 끌어들여 삼대천의 통합을 시도하고, 정철민은 30년간의 인내심이 바닥난 듯 눈이 돌아가 오로지 복수만을 바라보고 있다.
이 상황에서 마스터는 각 계열사의 힘을 빼며 어부지리를 노리는 것일 터였다.
현재 정철민의 수하로 일하고 있는 문세희를 사냥팀으로 복귀시킴으로서, 삼대천 스포츠를 약화시키려는 수작일 터였다.
"어울려 줘야지."
사랑하는 사람도 없는 지금. 그녀는 본인이 가장 잘하는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 호텔의 라운지에서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허리에 도끼를 찬 중년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사냥팀장 정기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손을 들었다.
"3팀장 발언하겠습니당~그 해녀 할머니랑 로봇 아줌마는 그렇다치고, 4팀장님이 안왔는데용?"
"네, 4팀장은…"
가죽옷을 입은 청년이 말을 가로챘다.
"그 늑대새끼는 발바른가? 그쪽이랑 협업하느라 유럽에 있다."
"발라븐이야 병신아."
그 말에 청년은 고개를 갸웃했다.
"흠. 엄밀히 따지면 병신은 3팀장 자네 아닌가? 의수를 차고 있는데."
"응~넌 정신이 병신이야~"
중년의 남자가 머리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그만. 새로운 팀장도 왔는데 이럴 겁니까?"
"힝. 2팀장니임. 그치만 저 쓰레기가 2팀장님 말을 끊었잖아요."
"모든 팀장은 동등하다. 내가 발언할 권리도 있어."
"에베베~꼬우면 2팀장님처럼 실적 1위 하시던가~실적 처지는 6팀장님은 가만히 계세요~"
"…둘 다 그만하세요."
"…Hmm, did someone call me?"
문세희는 당황스러웠다. 오년 전만 해도 사냥팀 팀장 회의는 엄격한 분위기였다. 서지후는 1팀장이자 모든 팀장들의 위의 있는 존재로서, 각 팀에게 알맞은 사냥감을 제대로 분배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의 2팀장은 회의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원래부터 알고 있던 얼굴인 8팀장과 9팀장은 이 자리에 없었다. 현재 이 자리에 있는 건 회의를 중재하는 2팀장, 서로 떽떽거리는 3팀장과 6팀장,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5팀장과 회의장에서 잠을 자다 막 깬 7팀장 뿐이었다.
2팀장은 문세희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추한 꼴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2팀장님, 정식 1팀장도 아닌데 왜 고개를 숙여요? 아무리 전설의 제자라 해도 그렇지, 우리가 실력을 모르잖아요!"
3팀장은 볼에 바람을 넣어 크게 부풀렸다. 문세희는 그 모습이 귀여워 실소를 흘렸다. 그걸 본 3팀장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비, 비웃은 거에요? 이래봬도 동식물상수렵동호회 우승자 출신이거든요? 지금 외국인이라고 무시해요? 7팀장이랑 다르게 한국말도 잘해요!"
"3팀장님. 그만하시죠?"
"하지만 저 여자가…"
"앨리스!"
2팀장이 처음으로 큰 소리를 내자, 3팀장은 입을 다물었다.
"죄송해요."
2팀장은 3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과는 1팀장님께 해야죠."
그 말에 3팀장은 얼굴색이 더 빨개졌다. 그녀는 문세희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미안…"
문세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2팀장은 옅은 한숨을 쉬고는 발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3팀장님의 발언도 일리가 있습니다. 1팀장님의 주요 실적은 정말 대단하지만, 전문적인 변칙개체 사냥을 그만둔지 6년이 넘었습니다. 게다가 현재 팀원도 한명도 없습니다. 마스터의 판단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나머지 팀장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실적이 필요합니다. 동의하시는지요?"
문세희는 2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2팀장은 미소를 보였다.
"좋습니다. 그럼, 1팀장님께서 사냥하실 목표물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5팀장님?"
그 말에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5팀장이 입을 열었다.
"별건 아니고, 대구에 귀여운 수달들이 몇 마리 있다. 근데 물 속에 들어가면 투명해지는 놈이지. 이 아이들의 모피에 변칙성이 있는건데, 연구해 보니 이 모피에 수분만 충분히 머금으면 육지에서도 투명해지더라고. 본래 나랑 8팀장이 해야 할 몫이었는데, 그 할망구가 용인지 뭔지를 잡는다고 하는 바람에 수급에 차질이 생겼다. 같이 하겠나?"
"알겠습니다."
당연히 거절의 선택지는 없었다.
"Is the meeting over?"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동구.
"뭐, 사실 투명 수달 정도는 나 혼자서도 잡을 수 있어. 2팀장의 말은 그냥 확인차 정도지. 누가 문세희를 모르겠나? 전설의 인간사냥꾼인데."
"…"
5팀장은 웃었다.
"애들이 투명하지만, 냄새나 질량은 그대로거든. 사는 습성도 그냥 판박이고. 아직 한반도에 이런 변칙개체가 남아있던게 기적일 정도지.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하찮은, 생존에 특화된 변칙이어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기는 하지만 말야."
문세희는 잠자코 5팀장의 말을 들었다.
"과묵하네. 내 별명은 아나?"
"네, 독왕이라고."
그 말에 5팀장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젊을 때는 무협지에서 본 그 별명이 되게 멋있었거든. …서지후 일은 유감이다."
"……"
"음. 미안해 괜한말을 했네. 그, 후각을 타고났다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쩝. 뭐, 나야 저 수달들처럼 가늘고 길게 살아가는게 목표고 한데, 세희씨는 재능이 뛰어나잖아? 목표 같은게 있나?"
5팀장의 말에 문세희는 유병춘의 얼굴이 잠깐 떠올랐다.
"글쎄요. 일단은 잘하는 거에만 집중하려고요."
"그래. 그것도 좋지."
5팀장과 문세희는 금호강의 하류로 걸어갔다.
"수달은 서식지가 육상이랑 수중 두 곳에서 모두 살 수 있어 까다롭지만, 서식지를 찾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 굳이 수중까지 갈 필요도 없이, 숨구멍은 언재나 육지 바깥으로 나 있으니까 거기 독 한방울만 떨어뜨려 놓으면 된다."
"수달의 후각은 굉장히 뛰어난데다, 위험에 처한 순간 곧바로 물 속으로 들어갈 텐데요?"
"내 독은 무색무취야. 수달은 인지하기도 전에 온 몸이 마비될 거다."
5팀장은 자신만만했다. 실제로 민감한 그녀의 후각으로도 5팀장이 들고 있는 독에서는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끼이잉!"
5팀장이 독을 구멍에 흘려 보낸지 얼마 되지 않아, 허공에서 물이 첨벙이며 괴로워 하는 소리가 들렸다.
"됐어!"
그 순간, 문세희는 강렬한 위화감을 느끼고 총에 손을 올렸다.
"제보가 맞았습니다. 삼대천으로 판단됩니다. 독왕과 신원 미상의 여성 총 2인입니다. 교전세포 CC-319, 파괴 시도하겠습니다."
5팀장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젠장! 시베리아호랑이다!"
그와 달리 문세희는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고통에 신음하는 투명한 수달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마음을 둘 때가 아니었다.
"뭐해! 도망가야 해!"
"지금은 도망 못 쳐. 사방이 포위되었어."
"아, 아. 동작을 멈춰라. 당신들은 1급 천연기념물을 불법 밀렵하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한다. 동작을 멈춰라."
문세희는 한숨을 쉬었다. 저렇게 많은 이들이 모였다는 건, 이 작전 자체가 유출되었다는 말과 같았다.
그러나 그런 배신감은 나중에 곱씹으면 될 일이었다. 사냥꾼에서 사냥감이 된 지금,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만 했다.
"독왕 아저씨. 방법이 딱 하나 있어."
"뭔데?"
"물 속에서 수달을 죽이고 그 가죽을 뒤집어쓴 채로 빠져 나간다."
"그, 그게 가능하겠어? 수달은 기껏해야 1미턴데, 우리 둘이 다 완전히 투명해지지도 않아!"
"피랑 내장은 하천을 통해 내려갈 거고. 우리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돼."
"불가능해! 피는 보일꺼고, 그러면 우리가 강을 올라가는게 무조건 들켜!"
"…안하는 것보단 낫겠지."
"으아악!"
그 말과 동시에, 문세희는 5팀장을 껴안고 물 속으로 입수했다.
그와 동시에 총알이 빗발쳤다.
2팀장은 마스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 왜 굳이 B.E에게 사냥 사실을 알리신 겁니까?"
"투명 망토 따위 없어도 좋지. 문제는 문세희의 실력이었다. 교전세포에게 죽는다면, 그걸로 정철민에게 타격이 가는 거고, 살아남는다면 큰 지원을 해서 포섭해야지."
"독왕은 대인 교전 능력이 전무했으니…교전세포 전체와 맡붙어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로 그 무력을 입증한 셈이 되는 것이로군요."
마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2팀장은 침을 꿀꺽 삼킨 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독왕은…아까운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마스터는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2팀장을 바라보았다.
"임자. 임자 말대로 사냥 5팀장은 좋은 인재지. 그런데 좋은 인재는 이 세상에 너무나 많아.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체 불가능한 인재야."
그때 다급한 목소리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문세희와 독왕 모두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목표였던 투명 가죽도 확보했습니다."
마스터의 얼굴에 미소가 아로새겨졌다.
"휴. 숨 참느라 죽을 뻔 했네. 다 자네 덕…"
5팀장은 웃으며 문세희를 바라보다가, 젖은 옷을 벗고 있는 걸 확인하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흠. 어쨌든 고맙네. 이걸로 자네는 정식으로 1팀장이 될 거 같군."
문세희는 옷의 물기를 쭉 짜내며 답했다.
"목표가 생겼어요."
"응?"
"이왕 지후 선배의 길을 걸은 이상. 제멋대로인 팀장들의 위에 설 거에요. 독왕 당신을 포함해서."
"어…"
5팀장은 그 목소리에 기백에 놀라 무심코 문세희를 바라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문세희는 5팀장을 제대로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 제대로 된 사냥 한번 해 보지 않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