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소식: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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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헤더 by crushedbanana98

새로운 한 해를 알차게 시작한 1월의 SCP 재단 한국어 위키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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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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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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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yroyPayroy님이 주최하신 2022년 잠들 수 없는 밤 경연이 종료되었습니다! 공포를 주제로 하는 작품을 모집했으며, 총 일곱 작품이 출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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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전남 경연이 1월 15일 시작되었습니다! 2월 15일까지 대한민국 전라남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을 모집하며, 3월 1일 그 결과가 발표될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허브를 참고하세요. 소정의 우승 상품을 거머쥐고 싶으신 분들은 한 번 참여해보세요!

사설

  • "아슬아슬한 형이초학의 줄타기", 투고자 NavlaNavla

알림: 이 사설은 재단에서 제4의 벽을 허무는, 이른바 '형이초학'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작품들에 대한 스포일러성 언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 방지와 원활한 이해를 위하여 관련된 작품들을 찾아 읽어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서론

4시리즈 이후로 형이초학부 설정이 상당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아마 메타픽션1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잘 활용하고 연구하는 최근의 대중예술 플랫폼은 재단 말고는 딱히 찾아보기 힘들 정도에요. 형이초학부 작품은 최근에도 조금씩 나와주고 있고 그 특유의 인터랙티브한 느낌은 정말 짜릿한 느낌을 주죠. 전 메타픽션 장르를 사랑하는 한 독자로써 이런 작품군들이 많이 나와주는게 정말 좋고, 언제나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사실 형이초학부 작품들 정말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말 아쉬웠던 작품들도 많았고, 현재는 후자의 경우가 더 많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일단 제가 재미있게 보았던 작품은 SCP-3309, SCP-4028, SCP-2747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아쉬웠던 작품은 SCP-3812, SCP-5309가 있었네요.

이 작품들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보니 각 작품의 특징이 보여지는 거 같습니다. 이 사설은 이것에 대한 이야기 이면서 또한 메타픽션을 주제로 글을 쓸 때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본론

제 4의 벽을 깬다는 것은 현실과 작품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뜻합니다. 즉, 현실은 작품의 일부가 되고, 작품은 현실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이는 독자에게 있어 두가지 현상을 야기합니다.

  1. 제 4의 벽을 허뭄으로써 작품 내적인 규칙이 통하지 않게 됨.
  2. 제 4의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 독자는 현실의 요소를 신경 쓰게 될 수 밖에 없게 됨.

이 둘은 별개의 것이 아닌 상호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요소입니다. 제 4의 벽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현실의 요소를 작품 내로 끌고 온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게 되면 독자들은 이것이 픽션이라는 사실을 강제로 인지당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즉, 현실 요소가 작중에 침입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작품에서 통하던 여러 요소들이 사용될 수 없게 되죠.

현실 요소의 침입

예를 들어 어떤 강력한 현실조정적 신이 있다고 칩시다. 재단이나 연합이 그 신을 죽일 수 있을까요? 뭐 잘만 하면 죽일 수 있을겁니다. 격리를 하거나요. 아니면 어떠한 딜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 이 이야기를 이렇게 바꾸어 보죠. 재단은 swn-001 개체, 그러니까 '작가'를 죽일 수 있을까요? 격리하거나 딜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죠. 재단은 소설에 불과하니까요.

아니면, 작가가 그냥 '작중의 작가는 재단의 딜에 대해 "오케이" 한다'고 글을 쓰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뭐 가능은 하겠네요. 하지만 그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까요? 어차피 그렇게 글을 쓴건 작가 본인인데. 독자가 이것을 깨닫는 순간 이 이야기는 곧바로 유치한 일인극 소꿉놀이가 되어버립니다. 어찌 되었든 작가가 원하는 대로 스토리는 흘러갔을것 이잖아요. 지극히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존재로 보이게 되죠.

위 이야기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먼저 4의 벽을 부수었으니, 당연히 부순 벽 너머가 훤히 보이는것."

이러한 점 때문에 꽤 많은 작품에선 작가, 혹은 독자를 대변하는 캐릭터는 실제로 서사에 크게 관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형이초학부에선 작가와 독자라는 요소는 서사에 꽤 주요하게 관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문제를 비켜갈 수 있을까요?

해결 방법

우리는 작중 인물들과 사건들이 세계관 내적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것이 현실이 아니지만 우리는 잠시 그것을 잊고 즐깁니다. 마치 마술쇼를 볼 때 마술사가 어떤 트릭과 손기술을 쓰는지 신경쓰지 않고 감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여기서 제 4의 벽을 허무는 것이란, 마술사의 트릭이 모두 보여지는 상태에서 마술쇼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손목에서 숨겨진 여벌의 카드가 빠져나오는게 보이는 이상 그 카드 마술이 이전처럼 재미있진 않을 거에요.
마술쇼를 볼 때 우리는 '에이, 이게 뭐가 말이 돼?'는 잠시 접어두고 일단 즐기는겁니다. 근데 그 트릭이 다 드러난 상태, (즉, 작가라는 존재가 드러난 상태)에선 그게 너무 뻔하고 이상하고 심심하고 작위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거죠.

그렇다면 이 훤히 드러난 마술 쇼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음, 공연장의 천장이 갑자기 무너지는 것이 어떨까요? 물론 관중이 아니라 마술사가 있는 쪽의 천장이요. 마술사는 깜짝놀라 이리저리 도망치고 하면 훤히 드러난 마술쇼를 하는것보다 더 흥미진진 할 겁니다.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마술사가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인 즉, 작가의 능동성을 없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가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요소, 그러니까, 최근에 일어난 창작 관련 사건, 시스템, 문학 법칙, 기타 여러 이슈 등을 중심 소재로 두는 것 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작가라는 존재는 잠시 뒤로 밀려나게 되고, 독자는 작가의 존재를 잠시 잊거나 '작가라면 다 해결할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잠시 접게 되는거죠.

'작전명 오버메타'는 '작가 페이지의 평점이 마이너스가 되었는데 삭제해야 하지 않냐'는 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창작 관련 사건을 기반으로 한거죠.

SCP-3309는 재단의 평점시스템 자체입니다.

아니면 위키닷이 불안정한 이유를 '형이초학부가 상위서사를 향해 공격하는 것의 발현이다'라고 쳐도 상관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위 예시 모두 작가가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현실과 합치하죠.

그래서 왜 별로였나

그래서 왜 저는 SCP-3812SCP-5309가 아쉬웠는지 드디어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SCP-3812는 작품 내적으로 작가를 뛰어넘은 창작적 존재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로 현실적으로 생각 해 봤을 때, SCP-3812는 우리 위에 존재해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을까요? 3812가 마음을 먹으면 우리 현실을 진짜로 뒤흔들 수 있을까요? 물론 아니죠. 그건 과몰입의 영역입니다. 위키닷 서버가 뻑나서 작품이 소실되거나, - 평점이 더 많다면 SCP-3812도 어쩔 수 없이 삭제되고 잊혀졌을 겁니다.

SCP-5309는 근본적으로 작가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작중에서 주인공 시지프스.sic는 토미와 엔키두의 도움으로 작가 및 서사의 바깥에 존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음, 그렇다면 진짜로 그런가요? 작가가 과연 이 서사를 의도하지 않고 썼을까요? 물론 아니죠. 이들이 작가의 서사 밖으로 나왔다는 것도 결국 작가의 서사 내부에 속한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두 작품 모두 현실의 요소와 상충하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그냥 소설이었다면 우리는 쿨하게 넘어갔을법한 소재일테지만, 메타픽션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이들의 설정은 우리의 현실과 부조화를 일으키고 그 사실은 계속해서 작품의 감상을 방해합니다.

예외들

그럼 우리의 현실마저 위협하는 SCP-2747의 경우는 어떨까요? 작가의 작품을 삭제하겠다고 으르렁대는 SCP-CN-1109의 경우는요? 이것들도 사실 위의 경우에 속하는 케이스이지만 두 작품 모두 이 사실을 극도로 숨기거나 다른 방향으로 독자의 관심을 돌리고 있습니다.

SCP-2747의 경우, 매우 치밀하게 당위성을 만들어 줌으로써 위의 인지부조화 문제를 해결합니다. SCP-2747이 미장아빔(극중극) 내에 있다는 설정이 바로 그것이지요. 이미 수차례 제 N의 벽을 허물고 재단 세계관 내의 작품들을 집어삼켰고, 재단마저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는 밑밥을 통해 우리에게 '과연 우리 현실이라고 안전할까?' 라는 물음을 자연스레 유도합니다. 이 물음은 재단 세계관의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했을 것이고요. 이것이 약간의 과몰입을 도와주는 장치이죠.

SCP-CN-1109의 경우는 그 자체로써 독자에게 인터랙티브한 체험을 주는게 목적이에요. 실제로 우리가 쓴 작품이 사라지는건 아니지만 HTML을 이용한 멋드러진 연출이 중심이 되는, 말하자면 '보고 즐기는' 그런 작품인거죠. 만일 SCP-CN-1109가 단순한 텍스트로 되어 있는 작품이었다면 이렇게 좋은 평가를 못받았을 것입니다.(그리고 이건 사실 SCP-3309의 마지막 연출도 같은 결에 해당됩니다.)
즉, 이런 부류의 메타적 작품들은 HTML을 극도로 이용해서 독자에게 인터랙티브한 감상, 그러니까 우리가 키보드를 누르는 행위를 통해 (작가의 의도 하의) 특정한 행위를 했다고 '치는' 게임과 비슷한 경험을 주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그리고 이런 HTML-아트적인 부분도 메타픽션을 쓰기 어렵게 하는 요소중 하나기도 하죠.)

그럼 작가가 직접적으로 나오는 SCP-3999는요? SCP-3999는 작가의 고통을 소재로 다루고 있고, 현실의 작가는 실제로 고통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저희 작가들은 모두가 공감하는 소재이죠. 즉, SCP-3999의 작가는 그 자체로써 현실과 완벽히 조화되고 있습니다.

결론

제 4의 벽을 허문다는 것은 결국 작품의 일부를 현실로,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현실의 일부를 작품으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품 외적 요소를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 자체로써 많은 위험을 수반하죠. 그래서 아무래도 메타픽션이라는 장르가 꽤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메타픽션을 소재로 한 작품들(언더테일, 두근두근 문예부 등등)이 대중적으로 많이 나오고 소비되고 있고, 또 그걸 정말 잘 활용한 형이초학부의 설정은 매우 매력적이기에,수많은 작가들을 홀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이 메타픽션을 주제로 한 작품을 쓰고자 한다면 바로 이러한 본질적인 한계점에 대해 명확히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조금 제 개인적인 바램을 적어 보자면, 저는 형이초학부라는 설정이 제 4의 벽을 허물고 서사를 우리 현실로 발산하는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재단 세계관 내적인 방향으로 수렴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SCP-4028의 경우처럼요. 굳이 제 4의 벽을 깨지 않아도 충분히 메타픽션적인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본래 세르반테스, 그리고 보르헤스가 접근했던 '소설에 관한 소설'이라는 메타픽션의 정의에 따라서요. 이 방향이 여러 문제점을 회피하면서도 형이초학부가 더 다양하고 깊게 사용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제 글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필을 바랄게요.



이달의 소식에 사설을 투고하고 싶으시다면, 재단 한국어 위키와 관련된 내용이 담긴 글을 써서 담당자 igangsuigangsu에게 PM, 또는 대화방을 통해 전달해주세요. 내용에 문제가 없다면, 저작자를 명시하여 투고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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