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아주 일상적인 회합
평가: +6+x
blank.png

카페는 한산했다.

카페 내부는 어둠이 옅게 깔려있었다. 밖에서 들어오는 햇살만이 그 어둠을 슬며시 밀어댈 뿐이었다. 어떤 느낌을 내포한다기보다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하는 듯한, 흐릿한 어둠이었다. 조금만 있으면 정오의 햇살에 밀려 사라질 것이었다. 그 사이로 사람들이 두런두런하는 소리와 물이 끓는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흘렀다.

한 남자가 그 카페 구석의 탁자 하나를 차지하고 아침을 먹고 있었다. 남자의 메뉴는 간소했다. 커피, 에그 토스트, 그리고 와플. 사치를 부리기보다는 그저 그날의 메뉴를 시켜놓은 듯한 구성이었다.

남자는 세련된 정장 차림을 하고, 그날의 신문을 오른손에 펴든 채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남자의 직종을 교사로 유추했을 것이다. 혹은 어딘가 냉철해 보이는 그의 분위기를 고려하여 변호사 등의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자의 직업은 그 두 가지와는 전혀 달랐다.

그는 O5 감독관이었다.

문이 열리면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들어왔다. 제일 선두에 선 남자는 마치 서부 개척 시대 사람처럼 차려입고 있었다. 붉은 재킷과 검은 카우보이모자가 인상적인 자였다. 눈가의 주름으로 미루어 보아 울적한 표정보다 웃는 표정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무슨 일인지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뒤를 푸른 정장을 입은 여자가 따랐고, 마지막으로 세 명의 경호원이 들어섰다. 늘 있는 일인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동거지였지만, 그들 역시 어딘가 어리둥절한 생각이 들고 있는 듯했다.

카우보이가 탁자로 걸어왔다. 그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나무 바닥이 삐걱거렸다. 탁자의 남자는 고개를 들어 누가 오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ー …나는 이따금 회탁의 거리를 내려다보곤 합니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사내가 입을 열었다.

ー 그곳에서는 피곤한 생활이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허비적대지. 어서 오게나, 6.

ー 11.

사내가 모자챙에 손을 올리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탁자의 남자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는 사무적인 표정으로 토스트를 먹고 있었다.

ー 커피 한 잔 어떤가?

O5-6은 얼굴을 찡그렸다.

ー 세상에, 커피라니. 됐습니다. 짐 빔 부커스 위스키라면 모를까.

ー 자세하군.

ー 습관이 돼서요.

ー 웨이터, 여기 이 친구에게 부커스 한 잔을 가져다주게. 그리고 사람들 좀 치워주지.

O5-11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카페 내부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6과 11, 그리고 6과 함께 온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손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홀로그램 기기의 전원이 꺼지는 소리가 잇따랐다. 6은 모자를 벗어 탁자 한구석에 걸어두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웨이터가 버번이 가득 담긴 잔을 들고 나왔다. 6은 잔을 받아들고는, 11의 커피잔에 잔을 부딪치고 한 모금을 마셨다.

ー 그래서, 날 무슨 일로 부른 겁니까?

ー 자네 바쁜가?

ー 물론. 아침부터 회합할 일이 많습니다. 게다가 밤에는 아주 멋진 저녁 식사를 할 예정이고.

ー 좋네. 결론만 말하지.

11은 커피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ー 그 저녁 식사는 포기해야할 걸세.

6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

ー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11은 읽고 있던 신문을 6에게 건넸다. 신문 앞면을 바라본 카우보이의 눈썹이 지켜 올라갔다. 헤드라인은 이러했다. "다국적 용병 기업 도산… 경제 타격인가."

ー 그 기업은 꽤 유망한 사업체였네. 업계 내에서 알아주는 축에 속했지. 그에 대해서는 자네가 더 잘 알 테지만.

11의 차가운 시선이 6의 눈동자에 꽂혔다.

ー 두 달 전 다국적 용병 기업 두 군데에서 경매가 진행된 것도 알겠지. 두 군데 다 다른 경매자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액수에 입찰되었고, 정확한 신원은 알 수 없으나 그 판의 거물이 그 입찰자라는 소문이 돈 것도, 알겠지.

11은 와플을 베어 물었다.

ー 도대체 4는 거기 왜 데리고 간 건가?

ー 늘 하는 일이죠. 대외 업무.

6이 빈정대듯 대꾸했다.

ー 고작 그런 일 가지고 제 저녁을 방해하실 심산이라면…

ー 물론 그 저녁이 자네의 그 아름다운 비서 베넷 양과 함께하는 저녁이라면 나 역시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마이켈, 솔직해지게. 내게 정말 그 저녁이 베넷 양과의 오붓한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나?

두 감독관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11의 검은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6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ー 경호팀.

6이 입을 열었다.

ー 비서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도록.

ー 잠시만요, 감독관님. 지금 무슨…

비서가 뭐라고 항의하려고 했지만, 6은 한 손을 들면서 그의 말을 막았다.

ー 이사벨 베넷, 질문은 나중에 하도록 하지. 경호팀, 세 블럭 아래에 있는 펍에서 기다려. 암호는 나-아미타-켄-로쿠. 금방 가겠네.

영문을 모르는 듯한 비서와 함께, 경호원들은 밖으로 나섰다. 이제 카페 내부에는 오로지 정적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6은 평온하게 아침을 마저 먹고 있는 11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ー …만약 아니라면, 어쩌실 겁니까?

ー 상응하는 조처를 해야지.

ー 무섭군요.

ー 이런 일로 무서워할 자네가 아니란 것도 알고 있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건 그런 게 아니지.

11은 커피를 홀짝였다.

ー 군사 기업까지 도산시켜가면서 만들어 내려는 그 병력의 실체가 두려운 게지.

ー 내 사병이 두려우시군요.

ー 자네는 예전부터 재단의 군사력을 담당해 왔지. 그런 자가 사병을 둔다면 당연히 경계해야 마땅하지 않겠나.

ー 무엇 때문에요?

6의 목소리가 나긋하게 카페 안을 울렸다.

ー 무엇 때문입니까, 11? 당신은, 이런 표현을 용서하세요, 사업가잖습니까. 재단의 모든 위장단체의 운영을 맡고, 그로 인하여 재단에 재원을 공급하는 일을 맡은 감독관. 사병을 모은 것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추진해 온 일입니다. 만약 당신의 사업에 그것이 거슬렸다면 이미 치워버렸겠죠.

11은 커피를 다시 홀짝였다. 커피잔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ー 6.

6이 11을 바라보았다. 11은 커피잔의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들지 않았다.

ー 아주 먼 옛날에 내 스승님이 말일세, 내게 해주셨던 말씀이 있었지. 군자는 그릇이 아니나, 나는 그릇이라고.

ー 그게 무슨 소립니까.

ー 스승님이 엄한 분이었거든. 특히 나에겐, 많이.

11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ー 한때는 스승님을 못내 원망하기도 했고, 나보다 뛰어난 제자를 부러워하기도 했어. 시기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글쎄, 나 역시 사람인지라 마음 속 깊이는 시기하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말일세, 스승님이 그렇게 나를 제련한 연후로 무언가가 달라진 건 알겠더군.

11은 6을 응시했다.

ー 이상이 생겼지.

ー 이상은 저도 있습니다.

ー 자네는 그걸 이상이라고 부르나? 나는 그걸 신념이라고 부르네.

ー 이상이든, 신념이든 말입니다.

6의 눈썹이 치켜세워졌다.

ー 적어도 내 사람들은 지킬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ー 군자의 잘못은 일식이나 월식과 같아 잘못을 저지르면 모두가 보게 되지. 자네는 떳떳한가?

ー 떳떳하지 못할 이유는 뭡니까? 내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이미 보고받으셨을 텐데요. 작년부터 계속, 그놈의 요주의 단체가 무언지, 주기적으로 나를 공격합니다. 그럼으로써 나만 피해를 입습니까? 아니요. 다 내 수족 같은 사람들이 죽어납니다. 그런데 그들을 지키지 못할 이유가 뭡니까?

ー 4도 동의했군?

ー 베트랑은 날 이해했습니다.

11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ー 그래서 4가 반대표를 던졌군.

6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ー 그게 무슨 말입니까?

ー 긴급 평의회 소집이 있었거든. 아, 자네는 몰랐나? 하긴, 당사자니 연락이 가지 않았겠군. O5의 사병 개혁안에 대한 회의였다네.

ー 이 늙은 여우 같으니.

6이 으르렁거렸다. 11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사무적으로 와플을 다 먹어치웠을 뿐이었다.

ー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그 무덤 앞에서 6년 동안 지내면서, 나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네. 스승님의 이상을 세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로.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이상이 되었네.

11은 한숨을 쉬었다.

ー 그러나 그런 세상은 참으로 오질 않더군. 이학회의 원류를 세우고, 이학회에 들어가고, 그리고 그 이학회가 무너져 가는 꼴을 보면서, 그리고 안연과 스승님과 다른 모두의 시신이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릴 때 홀로 살아있는 나를 생각하면서, 나는 그제야 깨달았네. 세상에는 위험 요소가 너무 많고 한 가지의 빈틈이 곧 죽임당할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걸.

ー 내 사병이, 당신을 죽일 원인이 되리라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저 겁 많은 머저리일 뿐이야.

6이 소리쳤다.

ー 열 내지 말게, 6. 나를 죽일 원인은 따로 있네. 그리고 그건 사병이 아냐… 사병은 재단이 죽을 원인이 되겠지. 혼돈의 반란이 그렇게 탄생했듯이.

11은 손을 털었다.

ー 총 9명의 감독관이 사병 해체안에 동의했어. 돌아오는 금요일까지 제01기지 인사이사관보에 자네의 군사 지휘권을 넘기게. 단, 나 역시 너무 험하게 굴 생각이 없네. 자네가 근래에 모은 병력만이야. 그 이전에 모은 것들은, 자네가 가져도 돼.

ー 선심을 쓰시는군요.

ー 기회를 주는 거지. 군자의 잘못은 모두가 보게 되지만… 그걸 고치면 모두가 우러러보게 된다네.

11은 접시를 옆으로 밀었다.

ー 나는 여전히 이상을 가지고 있네. 허나 이상 때문에 사람을 버리고 싶지는 않거든. 다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이 편하지 않겠나. 넘긴 병력 대신 특무 업무에 대한 윤리위의 영향력 감소는 어떤가.

6은 11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불쾌한 표정이었지만, 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얼굴이었다.

ー 자네가 뭘 지키고 싶은지는 나도 알아. 그게 무한정 부당한 것이 아닌 것도 안다네. 그러나 군자는 하류에 가서는 안 돼. 온갖 오물이 몸에 묻을 테니까.

ー 여전히 말은 잘하시는군요.

ー 이게 내 특기 아니던가.

6은 실소를 흘리고는, 모자를 집어들어 머리에 썼다.

ー 조건에 동의하죠. …다음 소집에 봅시다, 단목사端木賜.

ー 잘 가게, 마이켈 브라이트.

곧 6이 떠났고, 문이 닫혔다.


ー …내가 너무 심하게 했나?

ー 그 정도는 예삿일이죠. 당신이 1과 9사이에 벌어진 칼싸움을 봤어야 하는 건데.

ー 즐기는 말투일세, 관리자.

바텐더는 씨익 웃으며 주방에서 얼굴을 드러냈다.

ー 그런 걸 보려고 이곳에 붙어 있는 거랍니다, 자공 선생.

ー 그러시겠지.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