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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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는 기분좋은 입 안의 향기를 만끽하며 화장실을 나섰다. 바로 옆 책상에서 스킨을 꺼내 손바닥 가득 덜어내며 흥얼거렸다.

"으흠, 으흠, 으흠, 오늘도, 좋은 아침, 으흠."

맨질맨질한 민머리까지 흘러내릴 정도로 스킨을 꼼꼼히 바른 포드는 공구 상자를 집어들고 숙소 문을 나섰다. 창백한 형광등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 포드 씨! 포드 씨!"

맞은편에서 새로 들어온 더벅머리 연구원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포드는 뺨을 슬슬 긁었다.

'에……그러니까 이름이……'

"포드 씨, 지금 큰일 났어요. 빨리 중앙 로비로 와주세요. 빨리요!"

연구원은 온갖 호들갑을 떨며 앞서 달려나갔다.

치이익

자동문이 열리며 포드는 기지의 중앙 로비로 들어섰다. 평소 텅 비다시피 하던 로비는 어째 거의 꽉 차다시피 했다. 기지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떠드는 소리는 굉장했다. 갑작스런 소음에 포드는 어리둥절하며 자리에 멈춰섰다.

"아, 포드 씨. 아침이에요."

피곤한 얼굴로 서류철을 넘기던 가넷 박사가 다가오며 말했다. 다른 날보다 훨씬 더 헝클어진 단발 머리 너머로 퀭한 눈이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좋은' 아침은 아닌가 보네요.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요? 데반 요원 님 생일 사고 보상 문제는 끝난 줄 알았는데."

"앞에 봐요, 앞에."

포드는 고개를 돌렸다. 거구의 그에겐 앞의 사태가 막힘없이 잘 보였다.

"허. 뭔 일인데 저 꼴인가요."

무리들의 맨 앞은 주로 흰 가운의 연구원들이 몰려 있었다. 그 뒤로 무장해제 상태인 요원들이, 마지막으로 작업복 차림인 기술직원들이 에워 싸고 있었다. 그 중 독보적으로 로드 박사의 휠체어 위에 올라탄 스트링 박사가 제일 잘 보였다. 그는 팔을 휘둘러가며 투명 가림창 너머로 소리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선 로드 박사가 구겨진 채 신음하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악! 거, 응?"

원숭이처럼 소리지르던 스트링을 뒤에서 누군가 잡아당기자, 스트링은 휙 돌아서서 외쳤다.

"포드 씨이이이이이이!!! 빨리 이리 와요오오오오오!!!"

포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사람들을 헤쳐나가기 시작했다.같은 팀 소속이라고 저리 반가워하는 데 어찌 고개를 돌리랴.

"자, 잠깐만 지나갈게요. 저기요. 실례합니다."

사람의 물결을 뚫고 앞에 도달하자, 새파랗게 눈을 치켜뜬 콜린이 가림막 너머에 앉아있었다. 포드를 본 콜린은 눈에 드리운 독기를 더욱 강하게 내뿜었다.

"포드 씨, 긴말 않겠습니다. 아무 말 안 들을거에요. 아무 요청도."

"콜린 씨,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안은 반대할 겁니다. 반대할거라구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스트링 박사님. 부장님 오시지 않을 거니까, 다들 그만 돌아가세요."

콜린은 단호하게 입을 다물고 정면을 쳐다봤다. 연구원들을 필두로 요원들과 직원들은 다시금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포드 씨가 왔으니까 그 빌어먹을 법안을 철회해야 할걸!"

"누가 포드 씨한테 뭐라고 할 수 있겠어, 앙!"

"어이, 포드! 본 때를 보여주라고!"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 아닌 환호는 대단했다. 엄청난 괴성에 두통을 느끼기 시작한 포드는 귀를 막아버렸다.

툭 투둑

갑자기 뭔가 날아오는 소리에 포드는 위를 올려다봤다. 사람들이 가림막으로 던지는 종이 뭉치들이 날아오는 소리였다. 그 중 하나에 머리를 맞은 포드는 갸우뚱하며 종이를 펴보았다.

재단의 모든 직원 여러분께 알립니다. 기지 지휘부는 현재 다량의 격리와 유지, 보수, 그리고 실험의 지원에 따른 전력, 식수, 자재의 충당으로 인해 지난해에 비해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초 계획했던 신형 장비들의 도입이 재정난에 따른 예산 부족으로 인해 늦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단은 2014년 1월 20일 오전 12시를 기하여 모든 문의 통과에 200원의 통행료를 부과하는 정책을 입안, 통과시켰음을 알립니다. 직원 여러분의 교통카드 기능이 탑재된 보안 승인 카드로 모든 문 우측에 설치되어있는 수동 제어기에 결제하심을 통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새로운 카드 발급을 원하시는 직원 분들은 중앙 로비의 행정 안내처에서 신청, 발급 받으실 수 있습니다.

2013년 1월 15일

재단 행정부장 게일 팰리스

"이건 뭐……"

포드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종이로부터 눈을 뗐다. 콜린은 부동의 자세를 유지하더니 잠시 후 다가온 직원 한명이 귓속말을 하고 가버리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어? 잠깐만요, 콜린. 콜린! 이봐요! 야!"

스트링이 아무리 외쳐봤자 철판이 내려진 가림판 너머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몇몇이 가림판을 두들겨봐도, 펄쩍펄쩍 뛰며 소리질러도, 철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지의 사람들은 철판이 내려진지 세시간이 흘러서야 지쳐 이곳저곳으로 흩어져갔다.


며칠 후.

포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분좋게 문을 나서려다, 문에 부딪히고 말았다.

"아, 이런. 교통카드를……"

공구 상자를 내려 놓은 뒤, 주머니를 뒤적거려 거의 새 것인 직원 카드를 꺼냈다. 쓰지도 않던 수동 문 제어기에 갖다 대자,

삐빅

곧장 200원 표시가 표시판에 떴다.

포드는 한숨을 내쉬며 문을 나섰다. 오늘은 주말이라 자신의 작업장인 연구실 대신 휴게실로 향했다.

"아, 포드 씨."

전동음과 함께 로드가 다가왔다. 커피를 홀짝이는 박사의 미간에 주름이 잔뜩 잡혀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박사님. 휴게실로 가시나요?"

"아뇨, 교정 받고 다시 제 방으로 가는 길입니다. 빌어먹을 스캐너가 오타 하나하나 짚어주던데요."

"음? 주말인데 왜 아직까지 일하시나요? 일거리가 그렇게 많이 쌓인 겁니까?"

로드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아뇨. 본부 문서 번역 작업 중인데, 돈나갈까봐 평소처럼 왔다갔다하는게 무섭더라고요. 초고쓰랴, 검토하랴, 재작성하랴, 퇴고하랴, 교정하랴, 문서 하나 번역하는데 몇 천원이 확 깎여요. 그래서 한 번에 몰아서 하려니까, 이게 끝도 없이 몰려들어서……"

"저런."

"몰라요, 몰라. 이대로 그냥 제출할래요. 뭐 틀린 거 있음 보는 사람이 결제하면서 와서 따지던가."

로드는 궁시렁대며 휠체어 손잡이에서 사이다를 꺼냈다. 캔 하나를 포드에게 건넨 로드는 느릿느릿하게 자기 방으로 향했다.

"쯥.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군."

포드는 다시 휴게실을 향해 걸어갔다. 휴게실 앞 복도의 모퉁이를 도는데, 종종 걸음으로 앞서가는 스트링이 눈에 띄었다.

"어? 스트링 박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움찔 하며 뒤를 슬쩍 돌아본 스트링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무척이나 수척해보이는 그의 손엔 초록색의 얇은 직사각형 물체가 들려 있었다.

"아, 누구…… 좋은 하루 보내세요."

휙 몸을 돌린 스트링은 도망치듯 사라져버렸다. 당황한 포드는 뒤통수를 긁적이다 휴게실로 들어갔다.

"아, 포드 씨. 좋은 아침이에요."

따뜻한 휴게실의 공기 아래서 가넷이 노트북 컴퓨터를 들여다보다 고개를 들어 손을 흔들었다. 포드는 간단히 목례한 뒤 탁자에 공구상자를 올리며 넌지시 말했다.

"뭘 줬길래 스트링 박사님이 저렇게 기운이 다 빠졌답니까? 엄청 지쳐보이던데."

"본부 쪽 기지에서 보낸 택배가 온 모양이던데요. 평소같았으면 수시로 왔다갔다하면서 왔냐 안 왔냐하면서 소란피웠을텐데, 이젠 돈 아까워서 그런지 밤을 새면서 휴게실 앞에서 기다렸나봐요. 누가 와서 찍을 때까지. 그게 저였고요."

가넷은 어깨를 으쓱하곤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리려다, 포드를 향해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흠. 그나저나 생각보다 효과가 있나봐요. 주말인데도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거 보면."

"네. 업무효율이 거의 배로 뛰었어요. 직분 고하를 가리지 않고 연구실에 박혀서 나오질 않으니까요. 안에서 제대로 일을 하냐 안 하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포드는 껄껄 웃으며 공구상자에서 공구를 꺼내 하나씩 손질했다. 노트북에서 눈을 땐 가넷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그런 건 어떻게 생각하신 거에요? 굉장히 잔인한거라고 생각돼서 처음엔 포드 씨가 만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잔인하다뇨. 어차피 장비는 무상 제공으로 바뀌어서 비용도 들 일이 없으니, 이번 기회에 번 금액으로 다들 보험이나 들어주라고 건의했어요. 저번에 보니까 새로 들어온 신입 분들이 자기 다칠 걱정하면서 휴게실에 늘어져있는 걸 보면서, 그걸 좀 도와줘야겠단 생각이 든 거 뿐인 걸요."

"그래도 생각보다 과격한 걸요. 게다가 사람들 스트레스도 장난 아닐 텐데."

"에이, 이것도 좀 지나면 풀어줘야죠. 그리고 무엇보다, 휴게실에 그렇게 일 안하고 늘어져 있는 건 참 보기 좋지 않잖아요. 게다가,"

포드는 찬장에서 커피 믹스를 꺼내 뜯으며 덧붙였다.

"가끔 이렇게 조여줘야 일도 하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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