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라고 꼭 풀어지는 건 아니다

오래된 산림 깊은 곳,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무들의 숲이 있었다. 이 숲에 사는 아름다운 나무들은 자기에게 귀를 기울여주는 이들이 있다면 멋지게 일그러진 가지로 쉼터를 꾸려주었다. 나무들은 뿌리가 땅 속 깊은 곳까지 뻗어 있어서 대자연도 나무의 고요한 말소리를 들일 수 있었다. 서쪽에서 스쳐가는 바람에게도 땅바닥을 뒤덮은 풀들에게도, 나무들은 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팔이 만 개 달리고 가까이 가야만 보이는 짐승을 이야기했고, 날개를 펼치면 온 하늘을 덮어버리는 새를 이야기했다.

땅에 불기운이 나리고 껍질이 따사롭게 덥혀질 때면 나무들은 자기를 하늘과 저 멀리 있는 태양의 면전에 꽂아둔 운명을 노래했다. 여름에 폭풍이 몰아닥치면 피난처와 온기를 베풀면서 빗줄기가 거친 사랑을 내린다고 속삭여주었다. 손님이 경탄하는 한 마디를 기쁨으로 삼고 새들이 들려주는 노래를 답례로 삼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런 만남도 점차 줄어들고 따스한 온기도 점점 차가워졌다. 곧 나무들은 친구에게 일별의 인사를 건네고, 봄눈이 녹고 친구와 재회하기를 기다렸다.

날이 풀리자 새들도 나무들도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누며 서로 갓난이들을 소개했다. 그런데 그해는, 숲 한가운데 아무도 자신의 자손이라 주장하지 않는 앙상한 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는 땅에 싹을 틔울 때 울지 않았고,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목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불어오는 바람에게도 속삭임을 건네지 않았고, 저 아래의 대자연에게 말을 걸어주지도 않았다. 불기운이 숲 바닥을 뒤덮었을 때도 비명소리를 내지 않았고, 새들은 이 나무의 말라빠진 몸뚱이에도 혹은 그 근처에도 앉으려 들지 않았다. 다른 나무들이 선물받은 노래들도 그 나무 주위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까마귀가 시체를 뜯으며 내뱉는 거친 울음소리뿐. 땅에 사는 짐승들도 이 나무의 가냘픈 뿌리를 두려워하며 가까이 다가가 굴을 파지 않았다. 사악한 폭풍이 휘몰아칠 때도 그 나뭇가지 밑으로 숨으려 하지 않았다. 언제라도 나무가 꺾여 자신들을 산 채로 짓뭉갤 것이라며.

주변 나무들은 이 나무가 정말 소나무인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녀석은 관목이나 덤불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렇다면 왜 토끼들이 곁에 굴을 파지 않을까? 뿌리가 얕아서 그럴까? 벌집이 가까워서 그럴까? 둥치에 어떤 포식자가 도사려서 그럴까? 모든 질문은 나오는 대로 반박하는 증거가 튀어나오고 "아니다"라는 대답을 얻으며 다시 들어갔다. 그러나 나무들은 멈추지 않았다. 왜 새들은 저 앙상한 가지에 앉지 않을까? 너무 깡말라서 그럴까? 가시가 덮여 있을까? 독이 발려서 그럴까? 하지만 모든 질문에 "아니다"가 돌아오고 모든 가설이 반박되자 결국 나무들은 저 말 없는 나무를 알아서 자라나도록 내버려뒀다.

몇 년이 지났다. 말 없는 나무는 앞다리를 쳐든 말 높이까지 자라났다. 겉모습도 완전해졌다. 수천 개 가지들이 일그러지며 솔잎들이 미로를 이루고 두터운 청록색이 온몸을 덮었다. 숲의 나무들은 예전만큼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지만, 말 없는 나무가 땅을 따라 펼쳐진 이야기들을 뿌리로 슬슬 긁어대면 다들 멀리하거나 무시했다. 생긴 모습을 두고 비명을 내지르며 법석을 떨고 놀려댔다. "두꺼비 같다", "까마귀 같다" 하는 말로 저 나무를 조롱하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날, 두 다리 달린 짐승들이 나타났다.

짐승들은 무기를 들고 있었다. 먼 옛날 나무들의 선조를 학살했던 그 무기였다. 나무들은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으나 이 사냥꾼 짐승들은 멈추지 않았다. 멈출 때는 숲에게 영원한 침묵을 선고하는 명령을 내릴 때뿐이었다. 뿌리들이 크게 울부짖으며 땅에서 뜯겨 나가고 가지들이 잔디로 떨어지며 가련하게 우드득 부서졌다. 울부짖는 소리가 숲을 무성하게 채우고, 땅에 살던 짐승들은 모두 흩어지고 새들도 새끼들의 눈을 가려주며 수천 무리로 나뉘어 날아갔다.

울부짖는 소리가 숲을 뒤덮고, 두 다리 짐승은 쉴새없이 기계를 몰고 죽은 나무를 싣고 다니며 숲의 맨바닥을 누볐다. 풀들도 울음소리를 내뱉고 묘목들도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말 없는 나무만은 가만히 있었다. 얼마 후 사냥꾼들도 이 말 없는 나무를 눈치챘다. 그러나 금세 자기 하던 일로 돌아갔다. 한 그루 또 한 그루 나무가 땅바닥에 몸을 누이며 저 아래 있는 어머니 자연을 목놓아 불렀다. 그리고 이내, 모든 것이 멈추었다.

사냥꾼들은 말 없는 나무를 훑어보고 왜 이 소나무만은 소리를 내지 않는지 궁금해했다. 그렇게 서로를 쳐다보다가 두 다리 짐승 중에 하나가 나무를 가까이서 살펴보러 나왔다. 그 짐승은 나무의 작달막한 밑둥을 둘러보다가, 설움 가득한 말들의 향연, 그 누구에게도 바쳐지지 않은 의지를 맞닥뜨렸다. 사냥꾼들은 그 간절한 애원을 느끼고 모두 발걸음을 멈추었다. 모두들 가슴 속이 공허하게 울리며 그 나무라는 짐승이 가련하게 여겨졌다.

사냥꾼들은 무기를 들고 나무에게 다가가 그 어린 살결 속으로 꽂아넣었다.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하며. 그러면서 아무 말 한 마디 입에 올리지 못한 채 천천히 그 밑둥을 잘라냈다. 누군가 나무의 일그러진 가지를 피해 앉던 비둘기들이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또 누군가 서쪽에서 불어온 바람인 것마냥 휘파람을 불었다. 사냥꾼들이 나무껍질을 긋자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린 소나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위에서 소용돌이치는 운명을 응시했다. 이윽고 마지막 칼질이 찾아오고, 나무의 맨몸이 차디찬 땅바닥에 쿵 부딪혀 바스러졌다. 뿌리가 바위들 사이에서 솟아나오면서 나무는 나직이 풀썩풀썩 굴렀다. 나무는 위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자기 모습을 내려다보는 매 한 마리를 보았다.

마침내 나무의 정신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사냥꾼들은 나무를 들어올려 시신을 날라 공장의 커다란 공간으로 옮겨놓았다. 공장에서 짐승들은 나무의 뼈와 껍질을 발라내고 살점을 천 갈래로 뜯어냈다. 그리고 살점과 뼈로 고운 펄프를 만들고, 펄프로 동화책을 천 권 찍어냈다.

어쩌면 나무는 작가가 될 운명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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