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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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와라, D-0912.”

내 이름은 앤드루 카터다.

D-0912의 발이 그를 문지방 너머 곧은 일직선 길로 옮겼다. 밝은 빛이 그의 얼굴로 환하게 쏟아졌다. 삐죽삐죽한 그림자들이 방의 표면들을 가로질러 알 수 없는 모양의 날카로운 예각을 그렸다. 방의 정중앙에는 의자의 실루엣이 돌출되어 있었다.

D-0912는 등 뒤로 자신을 방까지 따라온 의사양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자네는 변칙적 병원체에 대한 예방접종을 맞게 될 거야. 그 다음에는 백신이 효과가 있는지 실험을 수행할 걸세. 의자에 앉게.”

검은 군장으로 얼굴까지 완전히 가린 남자 둘이 문의 옆에 섰다. D-0912는 그들에게로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총을 든 남자들은 이 시점에서 판에 박힌 일상이었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조직이 그 근로자들의 얼굴을 이런 식으로 훔쳐가는 것인지 궁금해햇다. 하지만 이치에 맞는 일이었다. 그도 그들도 모두 희생의 형제들이었다.

자신의 정신 속 연기가 자욱한 오지에서, D-0912는 환상을 보았다. 인간의 몸에 짐승의 피를 가진 어떤 강력한 야만의 신이 어기적거리며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그 신의 피부에 닿은 이 세상의 모든 길과 경계들은 뒤틀리고 나뉘어 하나의 징표가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징표를 바라보았고, 그 징표로서 사람들은 신의 권능을 알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신이 단숨에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그 법칙을 파괴하는 것을 보았으며, 신을 공포와 경이의 눈으로 우러러본다. 그리하여 신께서 요구하시기에 반드시 필요하며 반드시 필요하기에 신께서 요구하시는 희생의 순간이 왔을 때, 사람들은 신의 앞에 끌려나가 산제물로서 죽임당할 그 누군가를 질투하게 되는 것이다. 인류의 속을 샅샅히 뒤지면서 챙겨갈 것은 챙겨가고 나머지는 남겨두며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어떤 엄청난 존재가 있었다. D-0912는 플랑크톤이나 크릴새우에 다름아니었다. 그리고 고래들은 가라앉고 있었다.

신께서 앞으로 나서심과 동시에 D-0912는 임상(林床)을 가볍게 바삭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의자에 앉아라, D-0912.”

D-0912는 높은 의자에 몸을 가라앉히고 차가운 금속이 살을 누르는 감각을 느꼈다. 문간의 경비대원 두 명이 앞으로 나와 그의 팔을 의자 팔걸이에 묶었다. D-0912는 경비대원들의 바이저 너머 밋밋한 광택을 발하는 어둠을 바라보았다. 호수의 수면처럼 잔잔한 어둠이었다. 그 호수 아래에서 거대하고 무지막지한 레비아탄이 되쏘아보고 있다는 것만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왜 여기 있는가?

그의 뇌가 호수 속으로 가라앉아 그 레비아탄을 단단히 붙잡았다. 허파가 불타는 것 같아 수면으로 떠올라야 했을 때까지 붙잡음은 계속되었다. 그는 왜 여기 있는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이 저질렀던 범죄의 희미한 기억이 의식의 끝자락에서 달랑거렸다. 아마 살인이었을 것이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누가 알아주랴? 얼굴 없는 사람들이 그가 정말로 사람을 죽였는지 아닌지 알 게 뭔가? 세상은 넓고, 재단은 더 넓고, 더운 7월 어느 날 오후에 울려 퍼진 총소리는 아주 작은 것이다.

그러니까…

D-0912의 정신은 방황을 계속했다. 그는 자신의 가족이 누구인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은 오직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었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 생각에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부조리가 존재했다. 만약 그가 어떤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어떻게 재단이 그를 손에 넣게 된 것인가? 왜 그인가? 추정컨대 그만큼 손이 더러운 삶을 산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을 것이다. D-0912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를 포함한 여러 사형수들의 운명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재단은 이런 튀는 인간들을 그들의 희생물로서 선택하는 것인가? 역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왜 재단은 희생물이 되는 영예를 사회의 가장 밑바닥 구성원들에게 돌리는 것인가? 확실히 이 실험들은 높은 수준의 정밀성과 수완을 필요로 했고, 또 확실히 비천한 단순 노동 문제는 기계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아예 무시할 수도 있었다. 재단은 세계의 신비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만신전에 무슨 의도로 불량배와 정박아들을 모아놓은 것인가?

D-0912의 정신은 천국과 지옥의 길을 따라 방황을 계속했다. 누가 이 정신 속에 이런 생각들을 심었는가? 감옥에 있을 적에 배웠는가? 불합리하게 불가능했다.

D-0912의 의식의 초점에 세계가 다시 들어왔다. 천천히, 그는 의자에 앉아 긴장을 풀었다. “지금 예방접종을 한다고 했습니까?”

“그렇네.” 실험실 가운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그는 D-0912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D-0912의 입이 비뚤어졌다. 그가 천천히, 침착하게, 박사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방접종 하기 좋은 날이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남자가 클립보드에 무언가를 체크했다.

“제가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어째서 더 큰 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그렇게 쉽게 내다 버리는 겁니까?”

침묵.

D-0912는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말의 신랄한 맛을 느꼈다. “곧 죽을 놈을 참 잘 다루시는군요.”

실험실 가운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물론 그는 죽을 것이다. 문간에 서있는 경비대원들, 방 한가운데 그를 속박하고 있는 의자, 박사의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이 상황에서 금방이라도 닥칠 것 같은 죽음을 느끼지 못하는 건 백치 저능아 뿐일 것이다.

“포박이 헐겁습니다.” D-0912가 말했다. 그는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팔을 몸소 위아래로 꿈지럭거렸다. “고쳐 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박사는 다시 클립보드로 시선을 옮겼다.

D-0912의 영혼psyche에는 사라진 정보와 조각들이 있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 자신을 찾을 수 없었으나, 또한 삶에 지쳐해야 할 자신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과거는 그에게서 찢어져 나갔고, 그의 미래는 미래 그 자체로 속으로 함몰되어 원을 그렸다. 어쩌면 그는 진실로 살아 있던 적이 한 번도 없을 지도 몰랐다. 과거의 불확정성의 안개 속에서 들이쉬고 내쉰 숨결 하나하나가 모두 거짓이었다. 그는 그것들 중 어느 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 그가 진정으로 살아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미래는 끝나고 있었다. 그는 현재 살아있지 않았기에 미래를 신경쓸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재단에는 아무런 반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할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가 증오하는 것은 오로지 재단의 뼈대 속을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는 병신들 뿐이었다. 그를 총으로 쿡쿡 찌르며 방으로 몰아넣고 밤에는 감방 문을 잠그는 그 병신들. 이런 족속들은 그 그리고 나머지 인간 전체와 매우 가늘어 끊어질 것 같은 연결고리를 형성할 뿐이었다. 그는 혹시 깨워줄 이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들러붙을 현실조차 없는 채 꿈 속을 표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박살난 기억의 모래로 인해 흐려진 그의 영혼의 선상에 무언가가 쓰여져 있었다. D-0912는 하늘나라에 닿는 탑을 쌓기 위해 나무를 쪼개고 돌을 깎는 남자들을 상상했다. 나무와 돌이 파괴됨으로써 탑이 만들어진 것인가, 아니면 탑이 애초에 나무의 결과 돌의 모서리 속에 새겨져 있었던 건가? 제국의 비단과 황금이 황제의 어전에 올려졌을 때, 누에의 실잣기와 황금의 번쩍임이 그전부터 언제나 우주에 알려져 있어 필멸자의 전당을 치장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가?

박사가 D-0912의 소매를 잡고 그의 팔을 걷어올렸다. 박사의 손에는 바늘이 들려 있었다. D-0912의 두 눈이 바늘 끝을 따라갔다. 너무 가늘어서 감지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박사는 지금 극단적으로 예리한 나이프를 손에 들고 있는 것이다. 칼날에 번득인 빛이 D-0912의 두 눈을 찔렀다. 그는 끔찍한 황홀경 앞에 벌거벗은 신세였다—

바늘이 D-0912의 피부를 찔러들어갔다. 화학물질의 광채가 그의 정맥을 타고 돌아 정신에 끼얹어졌고 방은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다. 빛이 그의 시각을 압도해 버렸다.

그의 머리 위에서, 흰 옷을 입은 형체가 눈을 깜빡여 만족스러운 완성을 표현했다. 두 경비대원은 서로를 흘끗 보았다. D-0912는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D-0912는 입술을 움직이려고 애썼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그는 간신히 들을 수 있는 말로, 불명료하게 내뱉었다. “머-멈춰. 오 신이시—”

숲의 어둠이 숲의 경계를 파열시키고 그 바깥 세상으로 숲이 흘러나왔다. D-0912는 계몽과 이해의 굽은 길을 걸었다. 곧게 뻗은 길은 없었다. 세상 전체가 미로였고, 길이 보인다면 회랑만이 곧게 보였다. 빛의 길들이 가리키는 곳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미칠 것 같은 어둠이었다. 화학약품이 타는 불이 연기를 내면서 춤추고 반짝였다. 불이 그를 앞으로 끌어냈다. 그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숲속 깊은 곳에서 길을 잃었을 때까지.

그의 주위에서 숲속의 짐승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D-0912는 그렇게 기억했다.


그의 이름은 앤드루 카터였다.

“자네에게는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주어졌네.” 실험실 가운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1개월동안 SCP 재단의 D계급 인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자유의 몸이 될 걸세.”

“자유의 몸이 된다고요?” 그가 물었다. 그의 정신이 순간 더듬거렸다. 하지만 다시 한번 깨닫자—그래, 그는 범죄자였다. 하지만 그때—

“거짓말 말아요. 난 범죄자가 아닙니다.”

“그래,” 남자가 말했다. “물론 범죄자가 아니지. 하지만 나도 거짓말을 하는 게 아냐. 자네는 새로운 기회가 필요하네.”

“난 무고한 사람을 잡아다 구금하고, 인체실험을 하고, 고문하는 인간들한테 새로운 기회 운운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은 앤드루 카터였다. 그리고 그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당신들은 날 강간했어. 내 뇌가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다고. 당신은 내가 나를 범죄자라고 믿게 만들었어.”

남자가 웃었다. “그리고 자네는 그 거짓말을 참 쉽게도 믿었지. 자기 과거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다는 건가? 자네의 정신이 자네의 것이라고 어떻게 그리 굳게 믿을 수 있었단 말인가? 애초에 자네의 것이 아니었던 무언가를 우리가 어떻게 침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네는 날 때부터 스스로에 대해 무지했던 거야.”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난들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어?”

“나는 자네가 스스로의 역할을 알 거라고 기대했어. 자기 자신이 망치인 줄 모르는 망치는 쓸모가 없다네.”

“넌 도대체 누구야?"

남자의 실험실 가운이 떨어졌다. 서 있는 그의 두 눈은 밤의 산들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한 쌍의 제등처럼 불타올랐다. 그의 머리털이 거칠게 자라났다. D-0912는 그의 살에 새겨진 길들이 뒤틀리고 쪼개지는 것을 보았다. 그의 근육질 목구멍이 쪼개지는 것을 보았고 괴물을 뱃속을 보았다. 뱃속에서는 희생제물의 녹아내린 살점이 썩어가면서 뒤섞이고 있었다.

짐승이 말했다. “만약 네가 네 스스로를 알지 못한다면, 너의 희생은 무의미하리라. 너는 인간의 살이 신의 영으로 화하는 것을 알게 되리라. 네 이것을 알게 되는 날, 너는 새 기회를 찾게 되리라.”

“나는 희생물이 되지 않을 거야.” D-0912가 말했다.

짐승이 다시 한번 웃었다. 이 세상의 모든 연기와 그림자가 그것과 함께 웃는 것 같았다.

그의 이름은 앤드루 카터였다.

그의 뒤에서 금속 울타리가 뻗어나와 시야 앞까지 에워싸고 있었다. 울타리 사이사이에는 감시탑이 솟아나 있었다. 두 경비대원이 뒤에 서서 보고 있었다.

울타리 문이 활짝 열렸다.

“문으로 들어가라, D-0912.” 왼쪽의 경비대원이 말했다.

D-0912는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었다가 도로 멈추었다. “싫어.” 그가 말했다. “미친 짓의 정의가 무엇인지는 우리 모두 잘 알겠지. 예전에도 이 모든 짓거리를 했던 적이 있었어. 하지만 당신들이 내가 잊게 만들었잖아.”

오른쪽의 경비대원이 무기를 들었다. “복종하지 않으면 쏘겠다.”

“그럼 쏴.” D-0912가 말했다.

재단은 그가 역사의 끝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길을 걷게 만들었고, 이제 모든 주기가 끝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앤드루 카터였고, 이 모든 것이 이전에 일어났으나, 이것이 다시 일어날 때는 지나갔었다.

총소리의 메아리가 공기 속에 울리고, D-0912는 땅바닥으로 무너졌다. 그는 문 너머 마을을 보았다. 숫자들이 공기를 가르고 날아와 마을 주민들을 싸고 돌았다. 숫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었다. 열과 열을 맞춰, 마치 그가 그것들이 그러는 것을 보았던 것처럼, 누차 계속해서. 그는 자신의 뇌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숫자들의 감각을 기억했다. 숫자들은 표현과 방정식으로 변했고 표현과 방정식은 수십억 개의 옳고 그른 수치로 피어올랐다. 진실과 거짓이 혼돈 일반의 특수 사례로 전락했다. 그는 말을 내렸었다. 내 이름은 앤드루 카터다. 말은 징표를 만들었고, 모든 징표는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공기 중에 급증하는 숫자와 방정식은 그 자체로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행과 열을 만들어냈고, D-0912가 충분히 멀리 떨어져서 그것들을 바라보면 숫자의 패턴으로 이루어진 징표가 있었다. 그는 이 징표를 보고 또 보았고, 재단은 그의 정신이 이 징표를 잊고 또 잊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의 정신이 징표를 쫓아갔고 마침내 그가 그것을 찾아냈을 때면 징표의 권능의 원천은 야생 사과나무 가지로 둘러싸여 인간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숨겨진 채 떠돌고 있었다.

두 경비대원은 D-0912의 양쪽 옆에 각각 무릎을 꿇고 앉았다. “무엇을 보았나?” 왼쪽이 물었다.

그는 장인 없이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걸 보았다. 만든 이 없는 물건들조차도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네를 만든 이가 없다면, 자네는 자네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지?” 오른쪽이 물었다.

숲속 어딘가 깊숙한 곳, 모든 뒤틀린 길들이 만나 하나가 되는 곳, 그곳에서, 바람의 속삭임과 밤의 짐승같은 비명까지 하나로 뒤섞이고, 야만의 신의 웃음이 대답에 굴하지 않고 메아리쳤다.

그의 이름은 앤드루 카터였다. 사과의 아삭아삭하고 달콤한 맛이 혀 위에 맴돌았다.

그는 평생동안 물건이 둘로 보였다. 길과 건물이 곧게 뻗어 있고, 구름은 정해진 길을 따라 하늘을 가로질러 떠다니며, 지구는 고요한 태양 주위를 평화롭게 도는 세상이 하나 있었다. 특이점과 진공이 우주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프랙탈 패턴이 땅을 가로질러 퍼져나가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간의 정신에서 방사상의 헤일로가 뿜어나오고, 길은 각도와 나선을 이루며 나뉘어지는 또다른 세상이 있었다. 재단이 오로지 비용과 이득, 그리고 70억 인류를 위한 공익을 최대화하는 것만 생각하는 세상이 하나 있었다. 비록 무엇일지라도, 재단이 더 큰 선이었으며, 재단의 지식을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의 사형수들의 착취를 합리화하고, 그 모든 것이 재단이 더 좋은 보호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

간단하게 말이 안 되는 모순덩어리의 공이었다.

또다른 세상이 있었다. 진리가 재단을 버린 세상이었다. 진리가 합의로 정해지는 것이었고, 재단은 그 합의에 반했다. 재단을 설명할 수 있는 진리는 없었다.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그것이 그것이 그런 바였다. 그 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의 인생의 궤적이 탄생에서 죽음까지 직선을 그리는 세상이 하나 있었다. 그의 인생이 위로 갔다 앞으로 갔다 무한한 밤의 어둠을 향해 뒤틀려 가는 또다른 세상도 있었다. 무언가가 그를 부르고 있었고, 그를 그 자신의 역할을 알게 되는 공간으로 끌고 가는 세상이었다. 그는 그가 될 바가 될 바였다.

그는 언제나 이 세상을 보아왔다. 빛이 어둠의 아비가 되고, 어둠은 빛을 가리었다. 모든 것들 속에 정보가 숨겨져 있었다. 충분히 가까이에서 보면, 곡선은 직선이 되고, 미로는 통로가 되고, 패턴은 무의미가 되었다. 여러 우주의 재단들은 모순에 모순을 거듭했다. 미로의 혼란이 진리의 명료가 되었다. D-0912는 숲 속의 뒤틀리고 나선형으로 도는 길들을 보았다—그가 길을 잃었던 그곳이었다—그리고 이제 웅대한 패턴이 그의 눈앞에서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몸속에서 화학약품이 일으키는 빛을 보았다—수소 사슬이 비틀려 벤젠 고리가 되었고, 작용기들은 결합해 무언가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을 형성했다. 그는 놀아나고 있었다. 이 분자는 그를 절대 그를 죽일 수 없었다. 이것은 그가 수십번에 걸쳐 처방받았던 기억 소거제와 비슷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의 이름은 앤드루 카터였다. 그리고 그는 살 것이었다.


“웨인라이트 박사?” 오른쪽의 경비대원이 말했다.

D-0912의 고요한 시체를 보고 있던 실험실 가운 입은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예?”

“이제 나가시오.”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는 방에서 나가면서 바닥만 바라보았다.

왼쪽의 경비대원이 동료와 시선을 교환하기 위해 바이저를 조정했다. “어이,” 그가 웃으며 말했다. “보라고.”

그가 등 뒤에서 붉은 액체가 들어있는 주사기를 꺼내보였다.

“자네의 못된 장난에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게, 애덤.”

“나중에 나눠 달라고 내 탓 하지나 말라고.”

“당장 기지 감독관 찾아가서 돌려줘. 머리가 그 정도로밖에 안 돌아가는 재단 직원들에게서 좀도둑질을 한 거라면 아주 재미없을 거야. 게다가 HALMAS는 5등급 제어 물질이야. 허가 받지 않은 배급은 처벌을 받을 수—“

“괜찮아.” 애덤이 주사기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했다. “중간관리자가 알게 될테고, 그 양반은 O5들에게 일러바치겠지. 맙소사, 바삼, 자네 정말 내가 O5들이 그들의 HALMAS 일부를 추적하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자네 점점 제멋대로 그 물질을 사용하고 있어.”

“난 당연한 걸 하는 것 뿐이라네.”

그들 앞에 놓인 의자 위에서 D-0912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거품 물린 입술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즉시 두 경비대원은 앞으로 가서 포박을 풀었다.

“앤드루 카터?” 바삼이 물었다. D-0912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나를 죽이지 않았군.”

“그럴 계획은 없었다네.” 바삼이 말했다.

“당신들은 나를 현실 세계 바깥으로 보내서 무언가로 만들어지게 했어. 재단의 변칙 존재에 직접적으로, 무절제적으로 노출되게 해서—반복적인 기억 소거로—내가 결국 죽임 당할 거라고 믿게 만들었고—내 정신은 재단이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상태가 되었지. 저 사람 주머니에 들어있는 게 뭔지는 몰라도 말이야.”

D-0912가 애덤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애덤은 희미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자네가 알아서는 안될 것들을 이미 알게 되었지. 참으로 조숙하지 않은가?” 그가 말했다.

“자네는 바뀌었네.” 바삼이 말했다. “이제 일급기밀 프로젝트의 상세 시방서를 보게 될 거야. 앞으로 일이 계속될수록, 자네는 재단에 관해서 지금까지 자네가 만났던 간수들 따위보다 훨씬 더 많이 알게 되겠지. 자네는 재단의 머리에 해당하는 집단에 소속되게 된 걸세. 이것이야말로 자네의 평생이 향해온 목적이었어.”

D-0912는 지금까지 앤드루 카터를 가리고 있었던 가면의 썩어가는 시체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기동특무부대 알파-1에 온 것을 환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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