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디트
Verloren und Gefunden, Teil 1
원작: http://scp-wiki-de.wikidot.com/nuri-1-1
영어판: http://scp-int.wikidot.com/nuri-1-1
저자: Dr Ore
영역자: Dr Ore
한역자: Salamander724
IMBW.
누리는 문맹이었기 때문에 글자를 기호로서만 알아보았다. 누군가 그녀에게 그게 무슨 뜻인지 설명하고자 했지만, 그녀는 그 복잡한 단어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녀는 며칠 전에 만 네 살이 되었다…
누리는 그 나이의 평균 체격의, 아주 긴 장발과 동양계 용모를 가진 아이였다. 그 때 그녀는 무슨 하얀 파자마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옷을 파고든 끔찍한 연갈색이 그녀의 눈에도 들어왔다. 이-엠-베-붸라고 읽는 이 기호의 시퀀스는 셔츠에도 녹색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여기 있기 싫었다. 이곳의 어른들은 그녀를 그저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로 여겼고, 아이들은 거의 없었고, 있다 해도 그녀 또래의 아이는 없었다. 대신 이곳에는 아주 이상하고 섬뜩한 사람들이 있었다. 해서, 누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방에 머물렀다. 언제라도 마음먹으면 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그녀를 솔직한 친절로 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자기를 포스Voss 교수라고 소개한 그 사람, 딱 한 명 뿐이었다. 누리는 그 남자를 알렉스Alex라고 불러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녀는 포스가 좋았다. 좀 이상한 냄새가 나고, 심장박동이 정말 이상했음에도. 그의 심장 뛰는 소리는 거의 시계가 똑딱이는 것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교수는 이-엠-베-붸의 우두머리이기라도 한 것인지, 그녀를 찾아오는 일이 드물었다. 그녀를 구슬방으로 데려가는 하얀 긴옷을 입은 어른 두 명은 어린이의 기억 속에 자신들을 충분히 각인시킬 수 없었다. 그들은 친절했고, 아이는 거기서 거짓을 느꼈다. 마치 로봇과 대화하는 것 같았다. 누리는 집에 가고 싶었다…. 엄마도 보고 싶었고….
구슬방에는 뭔지 모를 커다란 통 모양 기계가 있었다. 둥근 창이 끼워진 구멍 너머로 관절 있는 긴 막대들로 짜 만든 지지대가 있었다. 누리는 그것을 보고 거미 두 마리가 네 다리로 서서 서로에게 하이파이브하는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 두 명은 누리와 함께 장치 앞에 멈춰섰다.
"자, 그럼. 준비 되었니, 누리?" 두 어른 가운데 여자 쪽이 물었다.
"어음…."
누리는 이 다음에 일어날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자, 꼬마야. 끝나면 사탕을 줄게" 라고 남자 쪽이 말했다.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결국 누리는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그 뜻이 얼굴에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흉부의 특정한 근육들이 움직이며 수축하기 시작했고, 잠시 뒤 누리는 자신이 이 방을 구슬방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를 혀끝에 느꼈다. 그녀는 둔탁한 백색으로 빛나는, 개암 정도 크기의 구슬을 입에서 꺼내 여자에게 주었다. 그녀는 뾰족한 손가락으로 침 묻은 보석을 받아들었다.
누리는 이 구슬을 빼앗기는 순간을 좋아하지 않았다. 마치 손이나 발을 잘라 내주는 것처럼 잘못된 짓을 하는 느낌이었다. 한편, 구슬이 장치 안에 놓이고 둥근 창문이 닫혔다. 창문을 통해 하얀 빛이 보였다. 실타래 또는 벌레 같은 형태로 끈덕지게 방출되는 빛이 구슬로 흡수되었다.
누리는 그 모습을 지켜보기 지겨웠다. 그저 구슬을 돌려받고 싶어서 안절부절하며 기다렸다. 그녀는 기계를 발로 차는 것이 금지되었다. 예전에 이미 한 번 해 봤으니까. 그러면 긴 작업복 입은 사람들을 화나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기계는 결국 자기 일을 끝냈꼬, 누리는 뾰족한 손끝으로 구슬을 되찾았고, 서둘러 그것을 다시 삼켰다. 그녀는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구슬을 삼켜서 내면의 공허함을 잠재우는 것이 그녀 자신에게는 말이 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하지만 기계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구슬은 미묘하게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
"다 됐다."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그가 주머니에서 캔디바를 꺼내 누리에게 건넸다. "이빨 잘 닦아야 한다" 고 당부하면서.
누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두 어른은 누리를 원래 있던 방으로 데려갔다.
특수요원 쿠르트 "프라이가이스트" 담 Kurt "Freigeist" Damm은 IMBW 시설 어딘가, 자신이 배정된 감시실에 무료하게 앉아 있었다. 대부분의 특수요원들과 달리, 그는 전투나 침투에 재능이 없었다. 그의 재주는 비협조적 요소들을 물리치는 쪽에 더 적합했다. 그가 이곳, 통세불능이 되었을 때 폭력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것들을 모아놓은 시설의 책임자가 된 것도 그래서였다.
그는 자기 앞으로 온 종이를 읽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때마다 너덜너덜해진 그림붓처럼 좁은 얼굴 위에 붙은 빨간 곱슬머리가 앞뒤로 흔들렸다.
“이놈 이거 반항하면 내가 못 막는다는 거 댁들도 알잖아” 라고 그가 자기 곁에 선 남녀에게 말했다.
그들은 방금 새로운 연구대상을 배달해 온 참이었다.
“여기 당신만 있는 거 아니요, 프라이가이스트” 라고 받아치며, 마그마-MMagma-M이 오른팔 의수로 머리카락을 고쳤다. “이 악당이 당신 능력에 대한 면역이 있을지는 몰라도, 전통적인 주먹과 수갑으로 막을 수 있어요.”
그녀 옆에 선, 나비넥타이 맨 갈색 머리칼의 마른 남자는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우리 매력적인 마그마-M처럼 투박하게 표현하지는 않겠네만,” 포스 교수가 입을 열었다. “방금 한 말이 참말일세. 이 놀라운 표본을 여기로 가져온 것은, 무엇보다도 여기의 인프라가 가장 탄력적이기 때문이지. 도망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한, 이 남자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네. 그리고 그 사실을 놀라울 만큼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 내일부터 초회 검사를 시작해야 하니, 내 오늘 밤 여기서 묵겠네.”
“저는 제 갈 길 가겠습니다.” 마그마-M이 통보했다. “두 분 안녕히 주무시고. 그리고 교수님, 그 남자 조심하세요. 겉보기보다 훨씬 교활합니다. 잡는 데 시간이 거의 영원히 걸리는 줄 알았어요. 교수님도 그때 계셨잖아요.”
“물론이지” 라고 포스가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내일 아주 신나게 재미를 보겠구만.”
프라이가이스트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웃기게 웃었다.
“아, 거 새끼 그거 벌써 불쌍하려 그러네…….”
“정말 이렇게 머리를 길게 기르고 싶니?" 엄마가 머리카락을 빗어주며 물었다.
“응!”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 크면 공주님 될 거야. 그리고 공주님은 다 머리가 길잖아!”
누리는 엄마가 머리카락을 계속 빗어주는 사이, 자기 머리칼 몇 가닥을 가지고 손장난을 쳤다. 마침내 빗질이 끝났다.
“자, 다 됐다. 이제 나가자. 시장 가야지.”
엄마는 누리의 이마에 뽀뽀를 했다.
“사랑해.”
…
누리는 귀가 아주 밝아서, 심지어 전기설비가 발하는 진동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예컨대, 그녀의 방 문 밖에 붙은 네온등 같은 것. 그래서, 평소라면 만연해 있던 온갖 미세한 소리들이 갑자기 사라진 한밤중, 그 적막에 놀라 잠에서 깼다.
그녀는 잠이 덜 깬 채 일어나서, 두 눈으로 어둠을 꿰뚫어 보았다. 멀리 문 아랫틈으로 비상구 표지판의 불빛이 한소끔 넘쳐들어왔다. 누리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녀는 밤눈도 밝았다.
그녀는 문을 열고 복도로 발을 내딛었다. 비상구 표지판을 제외하면, 빛은 한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아니었다. 하얀 벽에, 옆 복도에서 비추어들어온 손전등 빛살이 반사되었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발소리도 들렸다. 누리가 다시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는데, 돌연 생전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코에 와 닿았다. 여럼풋하게 주유소를 떠올리게 하는, 하지만 완전히 이질적인 음표들이 섞여 있는 그런 냄새였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누리는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사람이 누구일지, 불안하게 기다렸다.
아니나다를까, 금발의 여자가 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그 여자는 자기 손전등의 빛이 누리의 얼굴에 떨어지자 겁을 먹고 비명을 질렀다. 누리는 눈이 멀어버리는 것 같아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사람 놀래키면 못 써. 무슨 공포영화에 나오는 도자기인형 같잖아!” 여자가 흥분해서 캬악하고 성질을 냈다.
누리는 여자가 하는 말의 절반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공포영화라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 고작해야 하키마스크를 쓰고 큰 칼을 든 남자들을 상상하고 그게 무슨 상관이냐 싶을 뿐이었다.
“아줌마 몰라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누구세요?”
“쓸데없이 기억할 필요 없는 사람.” 이 돌아온 대답이었다. “우리가 서로 덜 엮일수록 너한테 좋을 거야. 그런데 한 가지만, 혹시 검은 머리에 덩치 큰 남자가 여기 들어온 거 못 봤니? 아마 더럽다고 불평하고 막 그랬을 텐데. 뭐 떠오르는 거 없어?”
누리는 잠깐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본 적 없어요. 근데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제가 코가 좋아요.”
“코?” 여자는 혼란스러운 듯이 물었다. “개처럼 킁킁 한다는 소리야?”
누리는 수긍했다.
“왜 날 도와주려는 건데?” 모르는 여자가 눈썹을 치켜뜨며 말을 이었다. “모르는 사람하고 말하지 말라고 누가 안 가르쳐 주던?”
“여기 다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누리가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그건 참말이었다. 누리는 이 여자 곁에서 더 안전함을 느꼈다. 더 예뻐 보이기도 했고, 엄마 아빠처럼 말할 때 누리를 똑바로 보고 말해주었다.
여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것 참 말 된다. ……어디 보자, 잠깐만 있어 보련…….”
여자는 들고 있던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사람 팔 한 짝을 쑥 빼냈다. 누리는 처음에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지만, 아무리 봐도 진짜 팔이 아니었다. 팔이 어깨에 붙는 그 자리에 전선들이 늘어져 있었다. 누리는 혼자서도 그것을 잘 깨달은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이게 걔 일부였던 거야. 질문하지 말고.” 여자가 그렇게 말하고, 누리에게 냄새를 맡으라고 팔을 넘겨주었다.
누리는 당황으로 얼굴을 찡그렸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금속, 플라스틱, 윤활유, 고무의 냄새가 났지만, 그로부터 유추해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좀 전에 맡았던 이상한 냄새는 이 낯선 여자의 입냄새였고, 그걸 알아낸다고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누리가 몸을 돌려 냄새를 맡아보려 했지만, 그놈의 주유소 냄새만 코를 찔렀다.
누리는 여자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데로 걸어가서 다시 시도해 보았다. 여전히 냄새가 났다. 소용이 없었다. 여자의 입냄새가 너무 지독했다.
그러다 순간, 누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언가 냄새를 맡아서가 아니라, 무언가 멀리서 리듬감 있게 금속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
손전등 불빛이 그녀를 따라와서, 누리는 여자도 똑같이 자신을 따라오고 있음을 알았다. 복도들을 지나서, 누리는 여자를 달고 노크 소리가 들려오는, 기계뭉치들로 가득한 구획으로 향했다. 구슬방도 거기 있었다.
낯선 여자가 갑자기 멈춰 섰다.
“저거 노크가 It's Not Unusual 이잖아?”
여자는 노크소리가 들려오는 문 앞에 섰다. 문은 잠겨 있었고, 단단해 보이는 쇠뭉치로 만들어져 있었다.
“흠, 가방 속에 어디 있었을 텐데.” 금발 여자가 중얼거리며 주머니를 한참 뒤적거린 끝에, 누리가 생전 본 것들 중 가장 기묘하게 생긴 열쇠를 꺼냈다. 열쇠는 액체처럼 보였지만, 그 금속성 회색 유체가 방울져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열쇠는 저항 없이 자물쇠 속으로 밀려들어가더니 저절로 돌아갔다.
“단방향 문따개.” 여자가 설명했다. “일단 한 번 경화되고 나면, 처음 썼던 그 문을 다시 열 때만 쓸 수 있지.”
문이 활짝 열렸다. 누리는 여기서 전에도 덩치 큰 남자들을 여럿 보았지만, 지금 앞의 이 남자는 적어도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남자는 머리카락이 검은색이었고, 누리처럼 잠옷을 입고 있었다.
“용케도 왔네, 엘리.” 남자가 궁시렁거렸다. “못 들을 줄 알았는데.”
“못 들었어, 딘.” 엘리라고 불린 여자가 말을 받아쳤다. “냄새를 맡았지.”
여자가 손끝으로 누리를 가리켰다.
“저 들었어요. 냄새는 못 맡았구요. 아줌마 입냄새 때문에.” 누리가 솔직하게 말했다.
“하! 말 잘 했다, 솔방망이flaschenbürste!” 딘이 칭찬해 주었다.
“솔방망이?” 엘리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마치 누리에게 왜 그런 별명을 붙인 것인지 스캔하는 것 같았다. “왜 솔방망이?”
딘이 눈썹을 치켜떴다.
“엘리? 너 설마 얘가 요호라는 것도 모르고 달고 온 거야?”
“이거 참 이례적인 경우로군.” 포스 교수가 특수요원 담, 그리고 경비대원 몇 명을 대동하고 서둘러 중앙통제실로 향하며 말했다.
“저도 안다고요, 교수님.” 담이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만약에 그게 그 신종 보석에서 나온 EMP라면, 우린 정말 큰일난 겁니다.”
“그렇진 않을 걸세. 그랬음 내가 알았겠지. RTI-티탄에 그런 게 다 잡힌다고." 교수가 반대의견을 밝혔다.
담 요원은 자신이 진짜 포스와 대화하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야 했다. 아니, 그는 진짜 포스와 대화하고 있기는 했다. 다만 포스는 여기에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것은 로봇 인형이었다. 진짜 포스는 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 로봇을 조종하고 있을 것이다. 담이 교수의 진짜 몸뚱이를 본 것은 고작 두 번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거대한 옷과 얼굴을 다 가리는 헬멧 아래에 숨겨져서, 거의 인간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중앙통제실에 도착했다. 잠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특수요원은 절단된 메인케이블을 발견했다.
“어거 봐라….” 그가 중얼거렸다.
“내가 좀 보지.” 교수가 그렇게 말하며 부하들을 지나쳐 나섰다. 교수의 왼팔이 소매 속으로 접혀 사라지더니, 용접토치 비슷한 장치가 튀어나왔다. 장치는 용융된 구리를 뽑아냈고, 교수는 그것으로 케이블을 때웠다. 점차로, 건물의 조명들이 돌아왔다.
“웬 납땜인두를 팔에 내장하고 있습니까?” 담이 황당해서 물었다.
“이 몸은 모듈화 가능하다네. 인공기관 작동을 장기간 시험하는 거지.” 포스 교수가 여상히 설명했다. “이거 말고도 다양한 도구들이 들어 있다네. 중공업계의 스위스 군용칼 같은 거랄까. 그나저나, 문 열면서 자네도 느꼈나?”
특수요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뭘요?”
“잠긴 걸 땄잖나.” 포스 교수가 웃으며 설명했다. “이 문을 여는 열쇠는 두 개 뿐인데, 그 두 개 모두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지. 이 방에 들어온 게 무엇이든 간에, 문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걸세. 자, 이 좀도둑이 아직 건물 안에 있다는 데 내기를 걸어도 좋네.”
담은 눈알을 굴렸다. 포스가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것이다….
엘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꼬마 소녀에게서 미미한 현실성 요동을 느꼈지만, 그것에 대해 딱히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여기는 IMBW니까. 그러나, 이제 누리의 신체 일부가 흐려지더니 다시 꼴을 갖추었다. 이제 그녀의 머리 위에는 뾰족한 여우 귀 두 개가 자리잡았고, 윗옷과 바지 사이에는 끄트머리가 흰색인 검은 꼬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동공은 더 이상 둥글지 않고 세극처럼 길게 째졌다. 구미호, 인간의 배를 갈라 간을 먹는 괴물….
“오.” 그녀는 건조하게, 그리고 비밀스럽게 여기 있는 이 개체는 살인본능을 발달시키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실제로 요호들은 조그마할 때 굉장히 귀여운데, 대부분의 포유류는 어릴 때 귀엽다는 것이 엘리의 견해였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 딘이 말했다. “귀가 있고 꼬리가 있는데.”
“어, 딘. 요호들은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티가 안 나잖아.” 엘리가 설명했다. “이제야 누리가 뭔지 아니까 꿰뚫어 보이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한테는 그냥 인간으로 보였어.”
“네?” 혼란스러운 누리가 자기 두 손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제가 어떻게 보이는데요?”
“어, 누리라고 했지?” 딘이 말했다. “내가 방금 전에 말했지만, 너는 귀가 두 쌍 있고 꼬리가 있어.”
슬픈 얼굴로, 누리가 여우 귀를 머리에 눌러 가리고 꼬리를 등 뒤로 숨겼다.
“작작 해, 딘.” 엘리가 화가 나서 말했다. “어떻게 이 조그만 애한테 너는 꼬리 하나에 귀 네 개가 있다고 말할 수 있어!”
“미안해.” 딘이 중얼거렸다.
엘리는 딘이 어린 아이들과 거의 교류가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그러는 사이 누리는 다시 안정을 찾고 기대에 찬 눈으로 엘리를 바라보았다.
“이제 어떡하지?”
갑자기 조명이 돌아왔다.
“이제 가야지.” 딘이 말했다. “엘리, 그거 있잖아 그거.”
“어, 그치. 그런데 그게….” 엘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IMBW는 여기 현실개변 능력자들을 가두고 있잖아. 그래서 사방에 닻들이 있고….”
딘이 눈알을 굴렸다.
“아무 계획도 없이 쳐들어왔구나, 그치?”
“없지?” 엘리가 진실되게 말했다. “우리는 언제나 인디애나 존스 식으로 다 헤쳐 왔잖아, 안 그래?”
“유럽 제일의 싸이코들이 득시글대는 시설에서?” 딘이 말을 이었다. “엘리, 나보다 더 쎈 놈이 있어. 그 놈이 내 팔다리를 용접해 놨다고.”
딘은 소매를 걷어 불탄 인조피부와 그 아래로 드러나 보인 금속 몸뚱이를 드러내 보였다. 누리는 그 화상을 어린이다운 흥미를 갖고 쳐다보았다.
“우와! 아저씨 로봇이에요?” 누리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어, 안드로이드.” 정정해 준 딘은, 열광하는 누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의 비인간성이 드러나면 보통 충격, 공포, 또는 조심스러운 놀라움이 뒤따랐는데, 기뻐하는 누리의 반응은 그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음, 딘.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응, 어 그치. 나가는 길은 알아?”
엘리가 방을 나서자 딘이 뒤따랐다. 누리가 후미였다.
“너는 네 방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니?” 딘이 소녀에게 물었다.
“가기 싫어요.” 누리가 고개를 저었다. “엄마 아빠 있는 집에 갈래요.”
“흠.” 엘리가 나섰다. “딘, 얘가 우릴 도와 줬으니까, 우리도 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줘야 공평하지 않을까.”
딘은 요호가 듣지 못하도록, 힘있지만 조용하게 엘리 쪽으로 돌아보았다.
“겨우 한 번 도와줬다고, 사악하고 잔혹한 걸로 유명한 생물체를 밖에다 풀어놓자고?”
“딘, 얘 나이를 봐. 고작해야 네다섯 살이야.” 엘리가 화를 내며 대답했다. “우리를 공격하지도 않았고, 이미 전에도 우리를 공격하지 않은 요호를 만난 적이 있잖아.1 얘의 종(種)이 피에 주린 걸로 유명하다고 해서 그게 얘를 도우면 안 된다 그렇게 판단할 이유가 못 된다고.”
“그러다 얘가 나이 먹으면?” 딘이 물었다.
“그럼 포스가 얘를 지지고 볶아서 무슨 지식이나 힘을 얻도록 내버려 둘 거야?” 엘리가 받아쳤다.
“그래, 그 말은 또 맞다.”
“저기요, 제가 나쁜 생물체예요?” 누리가 소리쳤다. 간신히 울음을 억누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안 나빠요! 음식도 안 남기고, 잔트만이 끝나면 바로 자러 간단 말이에요!”
“우, 우리가 하는 말이 들렸어?” 딘이 더듬으며 말했다.
엘리는 엘리대로 다른 의미로 놀랐다. 아무리 봐도 한국계일 누리가 독일 텔레비전 이야기를 하니까.2 음, 억양 없이 독일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걸 보니, 아마 한국계 이민자의 후손이겠다고 엘리는 스스로에게 대답했다.
한편, 소녀는 화가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는 딘이 소녀의 시선 때문에 움츠러드는 것을 놀라서 지켜보았다. 엘리와 딘이 한패가 된 이래로 누구도 그럴 수 없었는데!
“미안하다.” 딘이 말했다. “내 말 뜻은 그게 아니고….”
“누가 그 말을 믿겠냐.” 그들 뒤에서 나타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누리는 급하게 엘리 뒤로 몸을 숨겼다. 온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든 간에, 누리는 그를 죽을 것처럼 두려워했다. 엘리가 뒤로 돌아서자, 택티컬 기어를 입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카락이 붉었다.
“귀찮게 전기는 왜 끊었어.” 그가 말했다. “포스가 두손을 다 써서 전선을 땜질하고 있다고.”
“그럼 내 친구를 납치해 가질 말았어야지.” 엘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우문현답이군.” 남자가 불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 선에서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그냥 보내 줬을 거야. 들키지 않고 이렇게까지 숨어들어올 수 있는 놈들은, 대개 괜히 상대하면 문제만 더 커지기 마련이니까.”
그가 뒤통수를 긁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교수양반이 그쪽한테 참 관심이 많아.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지. 하지만 폭력 없이 이 사태를 끝낼 수 있다면, 나로선 정말 감사하겠어. 나 지금 초과근무 중이거든.”
“누리, 저거 누구야?” 엘리가 자기에게 달라붙은 요호에게 물었다.
“무서워요. 귀신을 갖고 다녀요. 귀신으로 살마들을 때려요. 저 사람 싫어요….”
“귀신?” 엘리가 물었다.
“귀신?” 딘의 목소리도 울렸다.
“빵야.” 남자가 건성으로 말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엘리의 발목을 잡고 들어올렸다. 그녀는 순식간에 공중에 거꾸로 매달렸다. 누리는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딘의 뒤로 숨었다. 딘도 보이지 않는 힘에 턱을 얻어맞고, 발을 잡혀 바닥에 메다꽂혔다. 누리는 무릎을 덜덜 떨며 제자리에 섰다.
“우와!” 엘리는 한편,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런 현실개변도 감지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염동력처럼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현상은 무언가 완전히 다른 성격의 것이어야 했다. 정말 이 남자가 귀신을 부리는 건가?
“좋아, 이거 참 새로운…”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은 쿠르트 담Kurt Damm이다.” IMBW 특수요원이 자기 소개를 하며 씩 웃었다. “내 시설에 온 걸 환영한다. 머무시는 동안 즐거운 시간 되시길. 왜냐하면 나갈 수 없을 테니까….”
『누리』의 다음 이야기:
상실과 발견: 제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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