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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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어 맥필드Gregor McField의 삶은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에 절은 몸을 이끌고 아침을 먹고, 뜨겁고 진한 커피를 한잔 마신 뒤 직장으로 가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가, 점심을 먹고, 차갑고 연한 커피를 한잔 마신 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가 저녁을 먹고, 퇴근 시간이 되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삶에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한 번도 실행에 옮긴 적은 없었다. 텔레비전에 여행에 관한 방송이 나오면 외국으로 여행 가는 것을 생각하다가도, 한번 여행에 들어가는 돈이나 휴가를 받겠다고 상관과 입씨름 벌일 것을 생각하면 슬그머니 채널을 돌리게 된다. 그레고어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사람이다.

그레고어는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토요일 밤에 별을 보는 것으로 풀었다. 저 광활한 공허의 우주 속에서 빛나고 있는 별을 보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 우주는 어렸을 때부터 그레고어의 마음을 끌었다. 지구에서 벗어나, 별 사이를 날아가는 것을 꿈꾸곤 했었다. 그랬기에 항상 초등학교에서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우주 비행사라고 말했다. 조금 큰 후에는 그 꿈을 접고는 천문학자를 꿈꿨다. 우주로 직접 날아가는 것은 무리여도, 우주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인이 되어서는 단순히 취미로 남게 되었다. 직업으로 삼지는 못해도, 여전히 두 눈과 가슴에는 별을 박을 수 있었다.

그레고어가 가진 천체 관측용 망원경은 최고급은 아니지만, 취미로 별을 살펴볼 정도는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비쌌기에, 업그레이드를 위해 월급의 절반 이상은 따로 떼어놓는 게 일상이다. 그의 집은 도시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라 광공해도 덜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타서, 마당으로 나가 해변 의자에 앉아 하늘을 감상하다가 망원경을 들여다보고는 하는 그 상황이 그레고어에게는 너무나도 좋았다.

오늘도, 여느 다른 토요일 밤과 같았다. 그레고어는 집 안에 들여놓았던 망원경을 밖으로 꺼내놓고, 의자와 탁자를 그 옆에 놓은 뒤, 다시 집으로 들어가 부엌으로 향했다. 흰색에 북두칠성 무늬가 그려진 머그잔을 꺼내어 플라스틱 드리퍼를 얹고는 필터를 그 안에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사놓은 원두를 꺼내어 핸드밀 그라인더에다 넣고는 손잡이를 돌렸다. 그레고어는 그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이상하리만치 좋았다. 갈린 원두를 필터에 넣고는 물을 붓는다. 물을 부으면서 올라오는 향에, 그레고어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띄워졌다. 좋은 향이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냥 커피는 써서 라떼를 즐겨 먹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되려 우유를 넣은 라떼보다는 그냥 블랙으로 마시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아, 세월에 따라 변하는 입맛이란. 그레고어는 추출된 커피가 든 머그잔을 들고 바깥으로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서 좋은 향이 났다.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커피 특유의 은은한 아로마. 적당한 씁쓸함을 즐기고는 목으로 넘기니 약한 신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몇 모금을 더 마시니 몸이 따뜻해져 오는 게 느껴졌다. 그레고어는 컵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의자에 몸을 쭉 펴고 누웠다. 잠시 있으니 눈이 어둠에 서서히 적응되면서, 반짝이는 별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북극성과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자리였다. 거기서 시선을 살짝만 돌리면 페가수스자리와 안드로메다자리, 페르세우스자리가 보였다.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자니,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약간 으슬으슬했지만 따뜻한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시니 오히려 적당한 온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옅은 미소를 지은 채 그레고어는 다시 망원경에 눈을 가져대 대었다.

“…어?”

저도 모르게 나온 소리였다. 그레고어는 잠시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당황하여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양손으로 가볍게 두 눈을 비비고는 다시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여전했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레고어가 천문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자가 아니어도, 이런 현상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머리가 약간 띵해져 오는 것을 느끼며, 그레고어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그레고어의 혼란스러운 머리는 설명을 생각해냈다. 뭔가에 가린 걸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것이 틀림없었다. 그레고어는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망원경의 방향을 돌렸다.




다음 날 밤, 회사에서 돌아온 그레고어는 피곤함도 잊은 채로 다시 망원경을 꺼내었다. 일할 때에도 어제 본 광경이 떠올라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일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퇴근 시간만을 기다렸다. 그레고어는 다시 어제 본 광경을 찾아 나섰다.

잠시 망원경을 들여다보던 그레고어는, 헛웃음을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여전히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하루가 지났는데도 그대로라면, 절대로 뭔가에 가린 것이 아니었다. 의식적으로 하늘을 쳐다보지 않았던 것도, 전부 허사가 되었다. 이미 진실은 그의 머리 깊숙한 곳에 꽂혀버렸다.

망원경을 통해 본 하늘에서는, 북극성이 사라져 있었다. 밝은 폭발 같은 것도 없이, 느닷없는 공허만 남긴 채로 사라져버렸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마크 큐빅 박사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스마트폰 화면을 꺼서 책상 위에 엎어놓았다. 우려했던 상황이었다. 방금 온 전화는, 재단 소유의 천문대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우주의 변칙 현상을 확인하는 부서에 있는 지인이 갑작스러운 소식을 전해온 것이었다. 느닷없는 북극성의 소실. 남반구에 있는 천문대에서는 남십자성이 소실된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서서히 별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현재 재단은 이것이 무슨 일인지, 또 다른 변칙 개체의 소행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에 착수하고 있었다.

마크는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미 경고받았다. 전에 받았던 편지를 다시 한번 머릿속에 떠올렸다. 알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시기가 올 것이라는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재단의 직원인 '마크 큐빅 박사'로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고, 이다음에 취해야 할 행동도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크 큐빅'이라는 개인으로서는 여전히 완전한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왜? 어째서? 재단에서 일하면서 곱게 죽지 못할 것을 각오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끝나야 하는가? 마크는 책상 서랍에 들어있는 권총을 떠올렸다. 지난 번에 마리안느의 방에 두고 나왔었던 USB를 떠올렸다. 은퇴해 농장에서 돼지를 키우고 계신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상한 멘토인 플리처 박사를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마리안느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크는 이미 각오가 되어있었다.


아무도 아닌 자는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에 홀로 서 있었다.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쳤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의 주변에만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쳐있는 것 같았다. 그는 지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범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그 깊고 오래된 눈에는 모든 것이 보였다. 사라져버린 북극성과, 차례차례 망각의 골짜기로 빠져 사라져버리고 있는 천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안 가, 우주에 남은 것은 이 태양계뿐이 될 것이고, 그마저도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었다. 아무도 아닌 자는 조용히 모자를 벗었다. 이제 곧 끝이었다.

모든 것이 끝날 시간이 곧 다가온다.

아무도 아닌 자는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모자를 다시 썼다. 모든 것에 대한 인사였다.

곧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빠직하고 아홉 번째 조각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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