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ly S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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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Sally)는 불현듯 잠에서 깨었다. 그녀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침대 옆 탁상을 더듬었고, 곧 휴대전화를 집어들었다. 휴대전화의 홀드 버튼을 누르자 오전 4시 30분이라는 글자가 화면에 떠올랐다. 알람이 울리기 까진 한시간 반 정도 남은 상태였다. 샐리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다시 눈을 감았다. 한 번 깨었던 탓인지, 그녀는 다시금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방에는 샐리의 고른 숨소리만 들렸다. 문틈으로 슬금슬금 비집고 들어오는 복도의 불빛을 제외하곤, 방에는 어떠한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조용하고, 들어오는 빛이 없는 작은 방. 잠들기엔 완벽한 장소였다.
샐리는 몇 번을 뒤척거렸지만, 마침내 그녀에게도 잠이 허락되었다. 그녀는 잠이 스며드는 것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다. 이윽고 완전히 잠에 빠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이었다.

'뭔가 이상해.'

방은 조용했다. 정말 이유없이 조용했다. 물론 다른 이들이라면 아무런 위화감도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샐리에겐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깨어났다면, 그녀의 다른 인격인 샐(Sal) 역시 잠에서 깰 것이 분명했다. 내면의 인격이라도 외부의 상황을 인지하는 건 가능했고, 샐도 샐리도 잠귀가 굉장히 밝으니까. 그런데 그런 샐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잠자리에 들 때에는 분명 샐이 신체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인격이 원하지 않을 때는 신체의 주도권을 넘겨 받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니,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째서 샐이 그런 짓을 했는가 였다. 오밤중에 굳이 몸을 바꿔야 할 이유는 없었다. 무의식이라는 것은 불가능했다. 신체의 주도권을 바꾸려 했다면 샐리가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샐리는 묘한 오한에 몸을 떨며 몸을 일으켰다.

"샐."

샐리가 그를 불렀다. 그는 대답이 없었다. 분명 머릿속으로 울려야 할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샐, 자는거야?"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이후로도 수차례 그를 불러 보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새벽이 지나가고 있었다.


샐이 사라졌다.

샐리는 아직까지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굉장히 혼란스러워했다. 뒤엉켜버린 생각을 잠시 진정시킬 겸, 그녀는 현재 상황을 정리했다.

하루아침에 인격 하나가 사라졌다. 혹은 두개였던 인격이 하나가 되었다.
사라진 인격은 SCP-995-KO와 접촉하기 전 부터 존재하던, 원래 인격인 샐이었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상황을 정리해도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예고도 없었고, 낌새도 없었다. 샐리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다시금 어제 밤 일을 떠올렸다. 샐이 피곤에 절어 잠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샐리는 그런 그를 허약하다고 핀잔했고. 그게 전부였다. 딱히 이상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다른 SCP와 접촉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샐리는 어제 일을 기점으로 며칠 전 일 까지 전부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뇌를 쥐어 짜도 별다른 행동은 없었다.

'무언가 놓친 게 있나?'

샐리는 SCP-995-KO의 보고서를 찾아 읽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SCP-995-KO의 보고서는 그녀가 알던 그대로였다. 보고서를 아무리 읽어 보아도 생성된 인격이 없어지는 내용도, 인격이 합쳐지는 내용도 없었다. 그녀는 혹시 모를 가능성에 실험기록도 미친듯이 헤집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인격이 합쳐지거나, 인격이 사라지는 결과는 실험 보고서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종을 넘어선 수백개의 실험기록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젠장."

그녀는 조용히 얼굴을 쓸어내렸다. 피험체들의 현재 상태를 열람해 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대부분의 피험체가 D계급 이었던지라 실험 이후 처분되었다. 그나마 인격이 하나로 합쳐지는 상황을 연구하기 위해 실험이 진행되곤 있으나, 대부분은 이전에 실험했던 결과와 비슷한 상황만이 반복되었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샐리는 현재 상황을 누군가에게 알릴까 했지만, 곧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누구도 이 상황을 그대로 믿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증명도 불가능하니까. 인격이 사라졌다는 걸 증명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샐리가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고 있을 때, 누군가 개인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샐 박사! 아직도 못 일어나고 있는겐가! 샐 박사!"

과격한 누군가의 목소리. 샐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상대하기 껄끄러운 상대가 몸소 개인 사무실을 찾아주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노이티라트 박사였다.

'더럽게 황송해서 절이라도 해야겠네.'

그녀는 과격하게 문을 열어 제꼈다. 과격한 그의 노크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샐리가 문을 열자, 나이 지긋한 남성이 보였다. 비쩍 마른데다가 푸석푸석한 잿빛 머리카락, 코 밑에는 관리하는 듯 아닌 듯 거친 회색 수염이 자리잡고, 의외로 옷은 깔끔한 가디건이었지만 그 역시 회색이었다.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 끝까지 회색으로 도배된 남성이었다.

"왜요, 회색 박사님."

샐리가 퉁명스럽게 내던졌다. 노이티라트의 얼굴은 잔뜩 구긴 종이 같았다.

"자네에겐 볼 일 없어. 샐 박사 나오라고 전해."

그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샐리에게 쌀쌀맞게 대했다. 그의 말에 대한 대답으로 돌아온 것은 샐리의 한숨이었다.

"아, 샐 박사 나오라고-"

"샐이 없어졌어요."

참다못해 터진 것은 샐리의 본심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말 해 놓고도 아차 싶었는지, 얼굴을 감싸고 낮은 신음을 흘렸다.

"농담따먹기 할 시간 없어! 지금 결재해야 할 서류가 한 두가지가 아니야!"

당연히 그는 믿지 않았다. 회색 사내는 제자리에서 샐이 해야 할 일을 주르르 읊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샐리에 대한 폄하도 교묘하게 섞여있었다. 샐리는 한참을 듣다가 그만하라며 소리를 빽 질렀다. 노이티라트는 물론, 근처를 지나가던 요원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사람말은 끝까지 좀 들어요! 젠장, 안 믿을 줄 알았어요. 어차피 샐 없으면 일 처리도 안 될거 아니에요? 하나같이 무능하기는. 들어와 앉아요. 설명해 드릴테니까."

샐리가 의자 하나를 거의 던지듯이 건넸다. 노이티라트는 꼿꼿히 서 있는 상태였다. 샐리가 그를 노려보았다. 1분 가량을 노려보자, 그는 못 이기겠다는 듯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진작에 이랬으면 시간도 아끼고 좋잖아요."

"본론부터 말하게. 지금 급하니까."

그는 여전히 껄끄럽게 대했다. 샐리는 한 번 더 참고 넘기기로 마음 먹었다.

"뭐, 좋아요. 조금 전 말씀드린 그대로에요. 샐이 사라졌어요. 오늘 새벽 4시 반 쯤 잠에서 깼는데, 그땐 제가 신체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어요. 문제는, 어제 잠자리에 들었을 땐 샐이 신체의 주도권을 잡은 상태 였다고요. 이후로 몇 차례 그를 불러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노이티라트는 주머니에서 펜과 수첩을 꺼내어 끄적이기 시작했다.

"무의식중에 신체를 바꿀 가능성은?"

"저도 그렇지만, 샐은 잠귀가 굉장히 밝아요. 제가 잠에서 깨고 휴대전화까지 확인했다면, 샐은 아마 잠에서 깨었을 거라고요. 게다가 제가 소리내서 부르기까지 했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어요. 지금까지 말이에요."

샐리는 컴퓨터를 켜서 SCP-995-KO 문서를 보여주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SCP-995-KO의 영향을 받은 피험체 중 인격이 합쳐진 사례는 없었어요. 대부분 D계급이라 실험 이후 저와 샐 만큼 오랜 시간을 보낸 사례가 없긴 하죠. 그나마 3계급 요원 한 명에게 실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실험 직후에 자살했어요. 이후로도 인격이 합쳐지는가에 대해서 실험을 계속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었어요. 전부 똑같은 결과만 나왔죠."

그제야 노이티라트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슬슬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듯 보였다.

"이제 이해가 가시겠어요?"

샐리의 말에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샐이 사라졌어요. 명백하게요."

노이티라트는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게선 아무런 표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담담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지 모르는 눈치였다.

"도와주세요."

샐리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동시에 다급함도.

"샐 박사가 내가 아끼는 직원임에는 틀림 없네. 하지만."

샐리가 미간을 좁혔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그를 필요로 한 건 그가 유능했기 때문이야. 유능한 직원은 더 있다고. 이 곳에서 하루에만 사람이 몇 명이나 죽어나가는지 알고 있지않나. 게다가 자네는 샐 박사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티격대격 거렸고. 집중할 상황이 만들어진 건 오히려 좋은 일 아닌가? 굳이-"

그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샐리가 그의 멱살을 잡아올렸다. 노이티라트는 윽, 소리와 함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샐리는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그저 그를 노려보기만했다. 그 시선으로 호수를 바라본다면 모조리 얼어버릴 눈빛이었다.

"도움을 바란 내 잘못이지."

그녀는 회색 사내를 거의 던지듯이 옆으로 밀쳐냈다. 노이티라트 박사는 무기력하게 주저앉았고, 연신 마른 기침을 뱉어냈다. 샐리는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 그를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제기럴, 성격 고약한 것도 와이프랑 판박이군."

그는 바지를 털며 일어섰다. 자신이 중얼거린 것을 그녀가 듣지 않았길 바랄 뿐이었다.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샐리는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음에도, 오히려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한참을 멍하니 있었지만 누구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바로 그점이 더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이쯤되면 잔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더 이상 샐의 잔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재단의 직원들이 타자를 두들기는 소리, 직원들이 잡담하는 소리, 커피를 마시는 소리, 서류를 뒤적이는 소리, 재채기 소리, 귓가에서 서성이는 날벌레 소리. 평소에는 들을 수 없는 크고 작은 소음이 계속해서 울렸다. 샐리는 슬쩍 입을 가렸다.

'토 할 것 같아.'

평소에는 신경 쓸 수도, 신경 쓰이지도 않는 소음이 그녀를 괴롭혔다. 작업환경이 이렇게 시끄러웠는지도 몰랐다. 샐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샐리는 우선 현재 상황을 상부에 알리기로 했다. 그들이 곧이 곧대로 믿으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인격이 합쳐진, 혹은 하나의 인격이 소거된 최초의 상황이라는 걸 알린다면, 또다른 실험이 진행될지도 몰랐다. 그녀는 약간의 기대를 걸어보기로 마음먹고, 상부에 연락을 걸었다.


샐리가 개인 사무실로 돌아온 것은 거의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그녀는 책상앞에 앉아 한참동안을 꺼진 컴퓨터 화면만 노려보았다.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곧 앞으로 엎어지더니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상부는 냉담했다. 현 시간부로 샐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고치는 것이 전부였다. 이외에도 자잘한 수정이 있었지만, 그들은 명확한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샐리는 약간의 지원이라도 없냐고 항의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업무 처리가 더 뛰어난 샐리 박사를 두고 샐 박사의 인격을 다시 만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것이 상부의 의견이었다. 샐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 곳에서 하루에만 사람이 몇 명이나 죽어나가는지 알고 있지않나."

노이티라트의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다소 독특한 경우이긴 했지만, 어찌보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몰랐다. 재단에서는 하루에만 몇 명씩이나 죽어나가고, 거기에 샐이 걸렸다고 생각하면 편할 문제였다.

'언제까지 이럴 순 없어.'

샐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없어진 사람은 없어진 사람이고, 그녀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물론 샐이 사라진 건 아쉬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손 놓고 있는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었다. 그녀는 현실을 직시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루가 지났다. 샐리는 평소보다 더 이른 시간에 사무실로 향했다. 어제 하지 못했던 문서 작업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직접적인 이유가 문서 작업일리 없었다. 간단한 문서 작업이야 하급 요원들에게 지시해도 해결이 가능하니까. 어쩌면 당연하지만, 그녀는 집중할 게 필요했다. 샐의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시선을 돌릴 무언가가 필요했다.
샐리는 책상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그녀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문서 작업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인사 파일을 열어보았다.

Sally의 인사파일

'Sal(ly)의 인사파일'은 하루 아침에 괄호 두개가 사라져 있었다. 샐리는 인사 파일을 열람했다. 인사 파일은 취소선으로 가득했다. 문서 중 샐과 관련된 모든 내용에 취소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 외에 내용의 변동은 없었다. 단지 샐리가 등장하게 된 배경의 분량이 약간이나마 늘어났을 뿐. 그 외에는 아무런 내용 변화도 없었다.
샐리는 샐이 사라졌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사라졌고, 이제는 문서상으로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게 되면, 언젠가는 샐에 대한 문장은 취소선 째 사라지고, 그 빈 자리는 샐리에 대한 내용만이 가득차게 될 것이 분명했다. 샐리는 입이 바짝 말라가는 걸 느꼈다. 동시에 참을 수 없는 씁쓸함과 갈증이 느껴졌다. 그녀는 급하게 물을 들이켰다. 연거푸 두어잔을 들이켰다. 그러나 여전히 입안에 맴도는 씁쓸함은 가시질 않았고, 갈증도 해소되지 않았다. 그녀는 샐의 빈자리를 채울 필요성을 느꼈다. 스스로 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듭니까."

키가 작달막한 연구원 한명이 옆에 있던 장신의 연구원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연구원의 시선은 모두 샐리에게 향해있었다. 요 근래에 그녀는 남성 직원들과 친해지려는 경향을 보였다. 물론 샐이 사라지기 전에도 활달한 성격이었다. 적어도 샐보다는. 그런데 지금은 뭔가 어색했다. 마치 친해지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처럼. 두 연구원은 그걸 알아채고 있었다. 물론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샐 박사님이 사라지셨다면서 한참을 우울해하고 있었는데, 며칠 사이에 원래 성격으로 돌아오셨어요. 게다가 전보다 더 활발해 진 것 같지 않아요?"

"그러게요. 누가 보면 샐 박사님이 돌아오신 걸로 착각하겠어요. 그런데…… 역시 이상하죠?"

키 작은 연구원은 그의 질문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는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일부러 저러는 것 같다는 건가요."

장신의 연구원은 따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잠시간 침묵을 유지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샐이 사라진지 일주일이 지났다. 샐리는 되도록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녀 생각대로 되기는 힘들었다. 매일 아침마다 샐을 불렀다. 그럴 때 마다 샐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럴 때 마다 공허함에 휩싸였다. 샐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다른 남성 직원들과 친하게 지내보려 했으나, 알 수 없는 거리감에 소름만 끼쳐 곧 그만두기도 했다.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려 하다보니 오히려 다른 직원들과 멀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결국 샐리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일주일 하고도 사흘만의 일이었다. 샐의 빈자리는 채우기 힘들었다. 아니, 채울 수 없었다. 정작 같이 있었을 때는 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었는데, 하루라도 으르렁대지 않으면 하루가 지나간 것 같지 않았는데, 마찰이 없으니 되려 부자연스러웠다.
어느 날, 샐리는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방문했다. 그녀는 주문한 음식을 받아들고 한쪽 식탁 끄트머리에 앉았다. 그렇게 반 정도 먹고 있을 때, 갑자기 수저를 멈췄다. 샐리는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이 스튜라는 것을 눈치챘다. 물론 스튜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평범한 비프 스튜였다. 기지 내 식당이 일류 레스토랑 수준으로 뛰어난 맛은 아니어도, 적어도 한끼를 흡족하게 먹기엔 부족함 없는 맛이었다. 양도, 가격도, 영양적으로도 괜찮았다.
문제는 이전에는 샐리가 스튜를 싫어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찌개나 스튜 같은 건더기가 많은 국물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잡탕같아서 식욕이 떨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 그녀가 스스로 스튜를 주문하고, 벌써 반이나 먹었다. 그녀가 가장 신경쓰였던 점은, 샐리와 달리 샐은 스튜 같은 음식을 꽤 좋아했다는 점이었다. 샐이 스튜를 계속 먹으면 샐리에게 어느정도 영향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 며칠, 혹은 몇 주만에 단기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샐리는 식사를 중단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자신을 알고 있는 직원들을 하나 하나 찾아가 똑같이 물었다. 요즘들어 자신이 뭔가 바뀌지 않았냐고.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답변은 비슷비슷했다.

"미묘하게 샐을 닮아가는 것 같아요."

돌아온 답변은 대충 그러했다. 샐리는 샐과 거의 비슷하게 되어갔다. 신체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내면이 변화하는 것이었다. 성격이 다소 부정적이고 까칠하게 변화하고, 다른 직원들과 접촉을 꺼려하기 시작했다. 취향도 여러 면에서 샐의 취향으로 변해갔다. 결정적으로, 그녀가 거울을 보았을 때, 아주 잠깐이나마 스스로의 모습을 샐의 모습으로 인식하곤 했다.
그 동안은 그저 샐의 빈자리가 너무도 커서 생기는 일종의 스트레스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성격 변화와 심지어는 미미한 환각까지 보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단지 깨달았다고 해서 상황이 변하진 않았다. 심신의 변화를 인지하게 된 후에도, 그녀는 무의식중에 샐과 닮은 행동을 보이곤 했다. 샐리는 그런 상태를 일주일 가량 더 겪어야 했다.


밤이 깊었음에도 샐리는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어느새 불면증까지 생겨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개인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녀는 컴퓨터를 켰고, 자신의 인사파일을 열람했다. 뭔가 바뀐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높으신 분들이 자신 몰래 연구나 실험을 진행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딱히 바뀐 부분은 없었다. 여전히 인사파일은 'Sally의 인사파일' 이라는 문서명이 박혀 있었고, 문서 내 샐에 관한 내용에는 모조리 취소선이 그어져 있었다.
단념하고 문서를 닫으려는데, 무언가 샐리의 눈에 걸렸다. 부록과 작성물 목록의 중간이었다. 이유없이 한 줄 띄어쓰기가 되어 있었다. 그냥 비워뒀을리는 없었다. 샐리는 인사파일의 폰트를 좀 더 확대했다.

'역시.'

작게나마 점표가 찍혀있었다. 가려진 문서가 있다는 증거였다. 샐리는 점표를 클릭했다. 4등급 이상 직원만이 열람 가능하다는 경고문구가 떴다. 높으신 분들이 샐리에게 뭔가 숨기고 있었다. 샐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4등급 인원 중 가장 친한 사람을 떠올렸다. 이윽고 단 한명이 도출되었고,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샐리는 노이티라트를 찾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4등급 직원 중 그나마 친분이 있는 사람이 바로 그 회색 사내였다.

"아, 안녕하세요."

샐리는 억지로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대답으로 돌아온 것은 나이 든 사내의 콧방귀였다. 샐리는 치밀어오르는 뭔가를 억누르고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부탁의 내용인즉슨, 자신의 인사파일을 확인하고 싶은데 상부에서 막는 것 같으니 좀 도와달라,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이번에도 대답은 콧방귀 뿐이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던 샐리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망할 잿가루 남자 같으니. 한번만 더 코로 가스 분출하면 직장하고 비공 위치를 바꿔버릴거야.'

물론 그건 그녀의 속마음에 불과했다. 주변에 보는 눈도 많은데 함부로 그런 말을 내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샐리는 딱 한번 더 부탁했다. 노이티라트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걸 확인하면 샐 박사를 돌아오게 할 수는 있나?"

의외의 대답이었다. 샐리가 대답하지 못하고 어물거리자, 노이티라트가 말을 이었다.

"요즘것들은 문서 관리가 엉망이야. 내가 이 등급 먹고서 잡다한 뒤치닥거리나 해야겠냐고."

뜬금없이 시작된 푸념. 샐리는 쉴세없이 움직이는 그 입술을 잘라내버리고 싶었지만, 어디까지나 급한 건 샐리였다. 그녀는 잠자코 듣고 있기로 했다.
노이티라트의 푸념은 한참이 지나서야 끝을 맺었다. 어쨌건 그 역시 샐이 돌아오길 바라고 있었다. 그 만큼 문서 정리를 잘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저, 그래서 도와주실 수 있나요?"

샐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노이티라트는 머리를 몇 번 긁적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직원들은 각자 일하기 바빴다. 그는 왼쪽 셔츠 주머니에서 보안카드를 꺼내 샐리에게 건넸다. 그리고 컴퓨터를 빌려주었다.

"딱 한번이야. 30분 후 부터는 추가요금 받을거야. 그리고 이거 걸리면 자네도 나도 모가지니까 뒷처리 철저히 하라고. 어흠."

샐리는 감사인사도 잊고 바로 인사파일을 열었다. 예의 그 문서의 일부분을 열람했고, 보안카드에 적힌 개인 코드를 입력했다. 곧 한장의 보고서가 열람되었다. 샐리는 미간을 좁히고 천천히 보고서를 읽었다. 실험 보고서가 아닌, 연구원들의 가설이 담긴 보고서였다.
그런데 보고서를 읽을수록 샐리의 표정은 점차 굳어져갔다. 초점은 흔들렸고, 스크롤을 내리는 손가락은 떨렸다. 이윽고 마지막 문장까지 읽었을 때, 그녀는 정말로 살아있는 시체 같았다. 그녀는 안색이 새파래진 채 뒷걸음질 치더니, 이내 어딘가로 뛰어갔다. 노이티라트를 포함한 대부분의 직원이 그녀를 보았고, 모두들 제각기 웅성거렸다. 노이티라트는 컴퓨터 앞에 앉아, 열려 있는 보고서를 읽었다.

(전략) 샐 박사의 경우, 샐리 박사에게 '흡수' 당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샐리 박사가 보인 행동의 일부에서 샐 박사의 행동과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중략) SCP-995-KO로 인해 생성된 인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향을 받은 피험자의 인격을 흡수하고, 두 인격이 섞인듯한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 '흡수'에는 일정 기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며(후략)

보고서를 읽은 노이티라트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는 샐리를 쫓아갔다.


샐리의 개인 연구실 문은 닫혀있었다. 노이티라트는 노크를 몇 번 하고 문고리를 돌렸다. 연구실 안에서 조용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샐리 박사, 여기 있나?"

노이티라트가 조용히 물었다. 흐느끼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곧 샐리를 찾아냈다. 샐리는 연구실 한쪽에 구겨져 주저앉은 채 억지로 감정을 삼키고 있었다. 채 삼키지 못한 감정만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삼키지 못한 감정이 꽤 많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듣고있는 사람까지 우울해지는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괜찮은가?"

샐리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흐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노이티라트는 어떤 말을 건네야 할 지 몰랐다.

"보고서 읽어보셨죠?"

그녀는 울기 시작한지 한참이 지나서야 처음 입을 열었다. 여전히 양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노이티라트는 짧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제가 샐을 삼켜버렸대요. 그래서 제가 샐과 똑같이 행동하는 거라고……"

"그건 가설일뿐이야. 그런 거에 일일히 신경쓸 필요는-"

"만약 그게 사실이면요?"

노이티라트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샐리에게 마땅한 대답을 해 줄 수 없었다. 서투른 위로도 해줄 수 없었고, 그렇다고 따끔한 충고도 지금은 힘들었다.

"필요하면 호출하게."

그는 샐리가 혼자있을 수 있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것이 최선의 방안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중 그나마 나은 방안을 택한 것 뿐이었다.


샐리는 흰 방에 혼자 있었다. 방에는 전신을 비출 정도로 큰 거울이 하나 놓여있었다. 샐리는 거울 앞으로 몸을 옮겼다. 거울에 그녀 자신의 모습이 비쳐보였다.

꺼내줘.

어디선가 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어디에서 들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마치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었다.

꺼내줘, 샐리.

소리는 점점 더 크게 울렸다. 샐리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꺼내줘, 꺼내줘 샐리.

자신을 꺼내달라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샐? 정말 너야? 어디있어? 샐, 샐!"

샐리가 크게 외쳤고, 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샐리는 갑작스런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그녀를 비추고 있는 거울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오른손을 살짝 들어보았다. 거울 속 그녀는 미동도 없었다. 거울 속 그녀는 거울 밖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 여기있어.

샐의 목소리. 그것은 거울 속 샐리가 내는 소리였다. 거울 속 샐리는 손에 메스를 들고 있었다. 거울 속 그녀는 손에 들고있던 메스를 자신의 정수리에 박아넣었다. 곧 박아넣은 메스를 움켜쥐고, 아래로 천천히 그었다. 이윽고 거울 속 샐리의 얼굴에 세로로 긴 흉태가 남았다.

떨그렁.

메스가 바닥에 떨어졌다. 거울 속 샐리는 양 손으로 자신의 양쪽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양쪽으로 잡아 뜯었다. 검붉은 피가 폭발하듯이 터져 나왔다. 이윽고 샐리의 피부는 허물 벗겨지듯 반으로 찢겨져 너덜거렸다. 반으로 찢겨진 샐리의 피부 안에서, 피투성이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샐이었다. 샐리는 덜덜 떨며 얼어붙어 있었다.

나야, 샐리.

거울 속 그것은 샐의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샐리는 주저앉아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거울은 멀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라졌다.

난 줄곧-

샐리는 자신의 오른팔에서 소리가 나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천천히 오른팔로 시선을 옮겼다. 오른팔의 피부가 반쯤 벗겨지고 있었다. 벗겨진 피부에서 샐의 얼굴이 종양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네 안에 있었어.


샐리는 잠에서 깨었다. 식은땀을 잔뜩 흘리고 있었고, 호흡도 불안정했다. 눈동자는 연신 흔들렸다. 온 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먹은 것도 없으면서 위장에 들어있던 모든 걸 게워냈다.
샐리가 화장실에서 도로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그녀는 침대에 올라가지도 못한 채, 침대 옆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그녀는 자신의 오른팔을 보았다. 멀쩡했다. 구토감이 올라올 정도로 생생한 꿈이었지만, 꿈은 꿈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로써는 그것이 다행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었다. 차라리 그 꿈이 진짜라면, 그러니까, 샐이 샐리안에 들어있는 것이 진짜라면, 그녀는 정말 스스로의 살을 갈라버릴 각오도 되어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오른팔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동이 틀 때 까지.


"자네 괜찮나?"

개인 사무실에서 문서 작업중이던 샐리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노이티라트였다. 솔직히 의외였다. 성격 안 좋은 그가 먼저 찾아와서 안부를 물어볼 줄이야. 샐리는 그다지 대답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안부를 물어본 이가 회색 사내여서가 아니었다. 아마 그 누가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샐리는 대답 대신 작업을 멈추는 것으로 답했다. 잠깐동안 두 사람 모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겠지."

노이티라트가 샐리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래도 괜찮을 줄 알았어요. 어차피 제 입장에선 인격 하나가 사라진 거니까요. 정상인으로 돌아온거죠. 어딘가 허전해도, 며칠이면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녀는 말을 흐렸다. 그리고 애꿎은 머리만 긁적거렸다.

"샐이 사라지기 전에."

그녀가 다시 말을 꺼냈다.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럼에도 부자연스럽게 새어나오는 감정은 어찌할 수 없었다.

"좀 싸웠어요. 전 그냥, 그냥 좀 놀린 것 뿐이었는데, 그게 싸움으로 번지고. 마지막엔 험한 말까지 오갔어요. 너 같은 거랑 같은 몸이라는 게 창피하다, 그냥 한쪽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 쯤부터 샐리는 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하루 지나면, 하루가 지나면 다시 풀어질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직 사과도 못했는데. 사과도 못했는데."

그녀는 쌓아뒀던 걸 다 토했지만, 그녀가 울면서 말하는터라, 노이티라트는 그녀가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진정될 때 까지 듣는 척이라도 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30분가량을 더 기다렸다. 샐리는 여전히 훌쩍거리긴 했지만, 조금은 진정이 된 것 같았다.

"아무튼간에, 자네도 나도 샐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죠.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요."

"아주 없진 않아. 물론 명백한 가설이긴 하지만. 일단 진정하고 들어 봐."

노이티라트는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샐이 SCP-995-KO에 손을 대고, 자네의 인격과 신체가 '만들어'졌지."

샐리는 뭔가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대로 자네가 그 돌을 만지면-"

"샐이 나올수도 있다, 그건가요? 하지만……"

그녀는 걱정스러웠다. 그도 그럴 게, SCP-995-KO의 결과는 딱히 긍정적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샐과 샐리는 실험 결과중에서도 굉장히 양호한 편이었다.

"걱정되는 건가?"

노이티라트가 물었다. 샐리는 즉답하지 못했다. 물론 그녀로썬 샐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자칫하면 더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의 SCP-995-KO 실험으로 봤을 때, 죽을수도 있고, 완전히 엉뚱한 인격이 나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만약 샐이라면, 다시 그 돌을 만졌을까요?"

샐리가 반문했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만약 샐이 그 돌을 다시 만지지 않을 거라 해도, 자네 만큼은 그 돌을 만지면 되지. 반면에 샐이 그런 행동을 했다면, 자네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그런 행동을 택하면 된다네. 자네는 샐과 다른 존재야. 하지만 동시에 같은 존재라는 걸 잊지 말라고."

샐리는 잠깐의 고민 끝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요. 실험 승인 받으러 가야죠."

그녀는 실험실을 나섰다.


SCP-995-KO의 실험이 승인되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SCP-995-KO의 격리 절차 상으로는 D계급을 대상으로 한 실험만 가능했지만, 상부에서 특별히 허가가 떨어졌다. 노이티라트의 상세한 보고서 덕도 있었지만, 새로운 실험 데이터가 필요한 연구진의 입김도 컸다. 이번에도 동일한 인격이 나오는지에 대해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샐리는 SCP-995-KO 앞에 섰다. 그녀의 눈에 푸른색 돌이 들어왔다.

'괜찮을까?'

마지막으로 든 생각이었다. 실험을 미룰 수도 있다. 혹은 아예 없던 것으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통 받는 건 이제 끝내고 싶었다. 샐리는 결과가 어느 쪽이 되어도 상관 없었다. 어떤 결과든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샐리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푸른색 돌에 손을 댔다.


"뭐, 그래서 지금 제가 여기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샐이 커피를 들었다. 샐리가 SCP-995-KO을 만진 결과, 이전에 존재하던 샐과 같은 인격이 나오게 되었다. 목소리와 외형은 일단 일치했다. 내면의 샐리는 몇 번씩이나 샐의 이름을 불렀고, 예전의 그가 맞는지 몇 차례 되물었다. 그 때 마다 샐은 대답해 주었다. 예전의 자신이 맞다고. 잠깐이었지만, 샐은 샐리가 우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놀랍더군. 정말로 그런 결과가 나올 줄이야. 연구진들이 문서 갱신하느라 바빴다네. 자네의 등장 덕분에 말이야. 유명인사라도 되는 거 아닌가?"

노이티라트가 말했다.

"글쎄요. 어떻게 해야 예전의 제가 그대로 나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샐리와 제가 뭔가 심리적으로 항상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 말이죠. 하하."

샐이 슬쩍 웃으며 말했다. 노이티라트는 웃지 않았다.

"어, 혹시 제가 무슨 말 실수라도 한 건가요?"

"자네는 대체 누군가."

노이티라트의 표정은 굳을 대로 굳어 있었다. 샐은 잠시간 멍해 있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눈치채실 줄 알았습니다."

샐은 반쯤 남은 커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다른 직원들은 예전의 샐이 돌아온 줄 알겠지만, 엄밀히 따지면 아닙니다.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거든요."

"샐리 박사가 존재하기 이전의 자네가 아닌, 샐리 박사가 존재하고 만들어진 샐 박사. 맞지?"

"바로 맞추셨군요. 전 샐리가 만들어낸 인격일 뿐입니다. 그녀가 필요로 해서 만들어진 인격이란 거죠. 제 기억은 예전의 저와 거의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는 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죠. 마치 사진에서 제 사진만 오려낸 듯, 제 자신에 관한 기억은 비어있습니다. 저는 샐리가 기억하는 샐입니다. 예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그저 모습만 같은 사람일 뿐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하지만 자네 스스로가 샐 박사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가?"

"맨 처음, 그러니까, 샐리가 그 돌을 만지고 제 인격이 만들어졌을 때, 저는 제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기억상실증 환자가 이런 기분이었겠죠. 내면에 있던 샐리가 절 불렀을 때, 비로소 제 이름이 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제가 예전의 저인지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예전의 제가 맞다고 했습니다. 거짓말 한거죠."

"왜 거짓말을 한 건가?"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왠지 샐리를 다시 울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직까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전 샐리가 바라던 샐이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이건 너무 드라마 같은가."

샐이 키득거렸다.

"그런데, 이런 말을 막 해도 괜찮은가 모르겠군. 샐리가 듣고있을 텐데."

"그게, 어째서인지 내면의 인격은 외부 사항을 알 수 없게 되어서 말이죠. 내면에 있는 동안은 신체의 주도권을 갖고있는 인격하고만 대화할 수 있는데, 그마저도 한 쪽 인격이 대화를 원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어요. 아무래도 과거의 저는 샐리와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눴던 모양인데, 이젠 그게 자유롭지 않아서 좀 아쉽네요."

"샐리 박사가 지금의 자네와 예전의 자네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글쎄요. 그건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샐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검토한 서류를 노이티라트에게 내밀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그야 뭐, 우선 사과부터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요? 처음 만났을 때 처럼. 자, 그럼 먼저 일어납니다."

샐이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떴다. 노이티라트는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그를 주시했다. 샐리와 또 티격태격하는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샐이 보였다.

"와이프한테 사과부터 해야겠군."

그는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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