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우탄과 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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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들 예상으로 휴면은 이제 5일가량 남았다. 대원들은 하루 쉰 후 엄마원숭이에 업혀 동선의 중심으로 날아갔다. 다른 특무부대도 근처에서 이무기의 휴면 장소를 탐색했다.

“대체 뭘까요? 이무기놈이 감싸고 도는 게.”

헬기 안에서, 신참이 물었다.

“연구원들 말대로 ‘뭔가 중요한 것’이겠지.”
“생명에 위협을 주는 걸 거야. 약점 같은.”
“새끼나 암컷 아닐까요.”
“허이구 잘도 그러겠다.”
“용들은 보물 숨겨놓잖아 보물. 금화더미 아닐까.”
“그건 서양 용이구요. 아 게다가 이건 이무기잖아요!”

난무하는 대답에 신참은 당황했다. 처음 수송기 안에서는 이러지 않았는데. 그는 다비드를 쳐다봤고, 다비드는 웃으며 대원들을 향해 턱짓했다. 신참은 그걸 보고 웃음기 어린 얼굴로 말했다.

“아는 것들이 그것밖에 없어요?”
“뭐? 뭐라구요? 신참 지금 뭐라구요?”

대원들은 황당했지만 웃어넘겼다. 다비드는 웃으며 신참을 툭 발로 찼다. 대원들이 서로 눈짓하다가 신참에게 달려들었고, 신참은 얻어맞으면서 웃었다.

“조용히 해라.”

대장이 창밖을 가리켰다. 대원들이 바깥을 보자 숲 사이로 얼룩덜룩한 풍경이 보였다. 곧 헬기 문이 열렸고 대원들은 줄을 타고 하강했다.

그곳은 마을이었다. 식물에 뒤덮여 버려지고 부서진 마을. 침몰하고 있는. 집들은 부글거리는 웅덩이에 빠져 가라앉고 있었다. 신참은 구역질을 하며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웅덩이 가장자리에는 사람의 손이나 머리, 장기 혹은 뼈들이 진을 쳤다. 모두 흐물거려서는, 산성액 물살에 녹아갔다.

“전에 본거랑은 비교도 안 되게 크네요. 놈이 지키는 게 여기가 맞을까요?”
“장관을 보니 맞을 것 같은데.”
“별로 중요한 게 뵈지는 않네요.”

대원들은 피고름과 콧물이 뒤섞인 듯한 연못 주위를 빙 돌았다. 신참은 풀잎으로 입가를 닦고 대열로 돌아왔다. 그리고 물가에서 뒷머리가 녹은 얼굴을 보고는 경직됐다. 얼굴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 옆에 찰흙덩이같이 우뚝 선 손이 까딱이다가 그를 가리켰다. 신참을 떨리는 입술로 웅얼거렸다. ‘대장님…’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럼 흩어져서 주변을―”
“긴급 상황!”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현재 이무기가 깨어나 동선의 중심으로 향하고 있다. 매우 빠른 속도다! 반복한다, 특수 기동―”

다비드가 처음 느낀 것은 지독한 슬픔이었다. 이무기가 아가리를 벌리자 시퍼런 속살이 드러났다. 혼령들이 한데 겹쳐 눈물로 짜낸 색. 멈출 수 없이 터져버린 울음은 소리를 내지 못했고, 쩍 벌린 아가리로 말없이 비명 질렀다.

흩어져어어어어어어어어어!

대원들은 좌우로 몸을 날렸다. 이무기는 그대로 미끄러져 웅덩이에 머리를 박았다. 대장이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연이어 대원들의 총구에서 불이 터졌다.

“좆같네 진짜! 생리 불순인가 왜 갑자기 깨서 지랄이야!”

이무기가 고개를 쳐들고 대원들을 응시했다. 총알은 비늘에 튕겨져 나갔다. 어떤 피해도 주지 못했다. 이무기가 기지개 펴듯이 목을 길게 뽑았고, 대원들 위로 쓰러졌다. 모두 피했지만 이무기의 물장구에 산성액이 날아왔다. 숲으로 피하던 중, 신참은 이무기의 몸이 미세하게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근육의 압축. 그 다음은? 신참이 대장에게 외쳤다.

“대장! 놈이 이동하려고 해요!”

0.1초. 그 정도. 대장은 상황을 판단하고 명령했다.

“모두 달라붙어! 비늘 틈에 갈고리를 걸어라!”

모든 대원이 갈고리를 뽑고 던졌다. 이무기의 몸이 구부러졌고, 튕겨져 나갔다. 쏜살같이 숲 하나를 벗어났다. 그제야 속도를 줄여 나무사이를 누볐다.

“전원 상태 보고하라!”
“다들 이상 없슴다아아아!”
“엄마원숭이 나와라, 현재 우리 좌표 추적해서 당장 달려와! 잔디깎이는 숲 바깥 경로의 끄트머리에서 대기하라! 그리고 신참!”
“예!”

거센 바람이 온몸을 때렸다. 신참은 비늘을 잡고 대장에게 기어갔다.

“너 눈썰미가 좋더군. 그래, 이무기가 우리 총격 먹고 줄어든 것 같았냐?”
“아주 작은 정도였지만 확실히 줄었습니다.”
“좋아. 효과가 있단 거지.”

잠시 후 엄마원숭이가 모습을 보였다. 대원들은 하나둘 줄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헬기에 오르던 솔로몬이 소리쳤다.

“전방에 낭떠러지! 떨어질 겁니다!”

헬기가 멀어지고 천지가 뒤집혔다. 이무기는 절벽을 넘어 추락했다.

킹과 버락, 오정, 다비드, 신참만이 비늘 위에 남았다. 날카로운 비늘을 잡느라 대원들의 손에서 피가 흘렀다. 뱀은 강 위에 떨어졌고, 충격과 함께 물보라가 그들을 덮쳤다. 신참이 머리를 박고 기절했다. 그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생각 같아서는 손 떼고 뒤로 날아가 버리고 싶은데. 다비드는 깊게 파인 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한 손으로는 신참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제발, 신참. 일어나라. 누군가 그의 허리춤을 쥐어서 돌아보니 신참이 깨어있었다.

신참은 몸을 벌벌 떨었지만 큰 이상은 없었다. 다비드는 그에게 말했다.

“발끝에 비늘을 대고 발에 힘을 실어! 손에만 의지하다간 잘려버릴 테니까.”
신참은 이를 악물고 위치를 옮겨 다비드의 말대로 했다. 소음에 고개를 드니 엄마원숭이가 보였다. 그리고 이무기가 몸을 뒤틀었다.

“비늘에서 손 떼!”

이무기가 몸을 멈췄고, 몸이 빙 돌아 날아갔다. 대원들이 낙엽처럼 허공에 날렸다. 잘린 손가락들이 다비드의 얼굴을 쳤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손을 살폈고, 멀쩡한 걸 확인한 다음, 이무기의 비늘에 부딪혔다.

시야가 점멸했다. 그리고 비명소리에 깨어났다.

이무기는 아직 꿈틀거릴 뿐이었다. 다비드는 신참에게 가려다가 휘청 쓰러졌다. 신참은 손을 부여잡고 악을 지르고 있었다. 그는 의무병인 솔로몬을 부르려다가 그는 이미 헬기를 타고 이동했단 걸 깨달았다. 붕대가 있나 가방을 뒤지려고 보니 가방도 총도 사라졌다. 신참의 손 상태를 보는데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렸다.

“킹과 대원들은 주의해라. 후아레즈가 무장 민간인들의 통신에서 이무기를 발견했다는 말을 들었다. 주변의 총격에 주의해. 킹 부대장은 응답하라! 무슨 일이야? 상황을 보고하라!”

바로 저 앞이었다. 민간인들의 총이 발사됐다. 탄알이 빗발쳐 둘의 머리 위로 날았다. 다비드는 신참을 일으켜 세웠다.

“신참 일어나! 움직여야 한다! 대원들과 합류해야 해!”
“뱀이…”
“빨리! 정신 차리고 걸어봐!”
“이무기가 힘을 모으고 있어요…!”

다비드는 움찔했다. 무전기가 치직거리더니 킹의 목소리를 뱉어냈다.

“움직이려고 한다! 다시 이무기 몸에 붙어!”

다비드는 신참의 허리를 감싸고 갈고리를 비늘에 걸었다. 그때 무장 민간인이 나타나 둘에게 총을 겨눴다. 신참이 주먹을 날렸고, 다비드가 총을 빼앗아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그리고 뒤돌아서는데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둘은 날고 있었다.

한 번, 부딪히고서 다비드는 총을 놓칠 뻔 했다. 두 번, 다비드가 잠시 정신을 잃었고 신참이 성한 손으로 총을 낚아챘다. 세 번째에 얼떨결에 정신을 찾고 총을 건네받았다. 등에 올라 비늘 틈에 총을 걸고 손에 쥐었다. 그런데 등 뒤의 신음소리가 심상찮았다.

“신참?”
“다, 다리에 총을 맞았습니다.”
“아 젠장….”

다비드가 다른 대원들을 찾는데 어느새 숲을 벗어났다. 건물 위에 중화기를 차려놓은 마이클을 보았다. 로켓탄이 이무기의 머리를 때렸다. 등이 엎어지고, 둘은 땅 위에 착지했다. 그리고 둘 위로 이무기의 몸이 무너지고 있었다. 엔진 소리. 싸구려 오토바이 두 대가 달려와 둘을 낚았다. 둘은 순식간에 이무기에게서 떨어져 땅바닥에 굴렀다.

“괜찮냐?”

사무엘과 솔로몬이었다. 중화기가 총알을 갈겼고, 고막을 북치듯 뒤흔들었다. 엄마원숭이가 저편에서 서성였다. 잔디깎이는 소리만 들릴 뿐 보이지 않았다.

“빨리 피해야 돼! 반대편에서 잔디깎이가 준비하고 있어!”
“마이클! 그만 하고 내려와! 엄마원숭이 쪽으로 뛴다!”
“잠깐만, 신참이 다리를 다쳤―”

꼬리가 산사태마냥 땅을 긁으며 몰려왔다. 그리고 펑, 건물이 가루가 되어 숲으로 날아갔다. 마이클은 마네킹처럼 공중에 떠올라 나무사이로 떨어졌다. 희뿌연 먼지 속에서 다비드는 불꽃을 보았다. 잔디깎이의 제초 작업이었다. 그는 신참을 업고 내달렸다. 화염이 온 사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사격 중지!”

대장이 외쳤다. 잔디깎이가 연기를 흘리며 위로 올랐다. 이무기는, 아니, 그것은 더 이상 뱀 따위가 아니었다. 놈의 크기는 나무와 엇비슷하게 줄어들었다. 놈이 작은 눈을 희번덕이며 침을 흘렸다. 두꺼운 발톱이 땅을 할퀴었다. 비늘달린 티라노사우루스가 입을 벌렸다. 가래 끓는 소리가 부글댔고, 산성액이 튀어나갔다.

잔디깎이는 급하게 기울어 정통으로 맞는 걸 피했다. 대신 꼬리날개가 산성액에 뒤덮여 녹아내렸고, 헬기는 빙빙 돌며 곤두박질쳤다. 대장이 고함을 질렀다.

공격하라! 사무엘이 다비드에게 권총을 던졌다. 셋이서 나란히 총을 겨누는 동시에 왼편에서 대장과 대원들이 나타나 총을 발사했다. 그리고 숲속에서 로켓탄이 날아와 공룡의 다리에 명중했다. 마이클이 절뚝이면서 숲을 빠져나왔다. 로켓탄의 화염이 꺼지자 공룡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놈이 다비드를 향해 뛰어들었으나 오는 길에 계속 줄어들어 조그만 뱀이 되었다.

뱀의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와 희미한 빛을 발했다.

“저놈 배때기에 든 게 그 빛나는 구체인가요? 뭐랬지? 여의주라고?”
“그런 것 같군. 조심해라. 뱉어낼지도 모르니까. 뱉어내도 절대 접촉해선 안 돼.”

대장은 부하들에게 주시하라고 명령한 후 다른 부대와 상부에 보고를 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킹과 버락이 추락한 잔디깎이로 달려갔고, 솔로몬이 샘의 부상을 살폈다. 잔해 너머에서 대장의 목소리가 웅얼거리는 소리로 들려왔다. 대원들은 긴장 속에서 뱀을 노려봤다.

“다른 부대가 곧 도착할 거야. 이놈을 이송할 격리 전문 차량도 오고 있다.”

대장이 돌아와 말했다. 솔로몬이 샘을 부축하고 대원들과 합류했다. 비니는 들것에 실려 안전한 곳에 옮겨졌다. 잠시 후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렸다.

“뭐야. 벌써 오는가?”
“아니. 잠깐만요. 잠깐.”

후아레즈가 온몸을 뒤졌다. 그는 작은 통신기를 꺼내들었다.

“이거, 민간인들인 거 같은데요. 무장한 놈들.”

엔진음의 주인공은 낡아빠진 트럭이었다. 짐칸에는 녹슨 철제 울타리가 쳐져있었고, 그 안에 총을 든 현지인들이 가득이었다.

“씨발 진짜…. 어떻게 하죠. 대장?”
“조준해. 견제해라. 사무엘하고 후아레즈가 대화해봐.”

대원들은 총을 들었다. 뱀이 가만히 있다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트럭이 멈추고 사람들이 내렸다. 그들도 총구를 앞으로 겨누고 있었다. 구체가 슬슬 뱀의 목으로 올라왔다. 사무엘이 사람들에게 멈추라고 소리쳤다.

“대장. 저쪽 어지간히 화난 게 아닌데요. 말이 안통해요.”

후아레즈가 말했다.

“사살합시다. 눈을 봐요. 뭐든 저지를 사람 눈이에요. 확보 다 했는데 여기서 망칠 순 없잖아요.”

킹이 그렇게 말하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다. 대장은 킹의 팔에 손을 얹었다.

“잠깐만. 조금만 더 대화를…”

총성. 대장의 발 옆으로 흙먼지가 튀었다. 킹이 냅다 총을 갈겼다. 뱀이 구체를 토해냈다. 대원들이 교전에 집중하는 사이 구체는 적들을 향해 굴러갔고, 대원들이 상황을 파악했을 땐 이미 너무 늦었다. 누군가 손을 대자 빛이 폭발했다.

눈이 불타는 듯, 다비드는 두 눈을 움켜쥐었다. 귀가 먹먹했다. 일어서려고 바닥을 짚는데 손이 끌렸다. 아픈 눈을 뜨니 몸이 끌려가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곁의 돌부리를 잡았다. 구체에 가까워질수록 인력은 커졌고, 빛에 닿은 이는 몸이 꺾이고 뒤틀렸다. 죽은 몸은 빛에 흡수되었다. 다비드는 실눈을 뜨고 빛을 바라봤다. 구체는 살덩이가 되어 있었다.

인력이 거세졌다. 돌부리가 뽑혀 굴러갔다. 다비드는 땅을 움켜쥐었으나 질질 끌릴 뿐이었다. 그는 칼을 뽑아 땅에 박아 넣었다. 인력이 한층 더 강력해졌고, 그의 머리 위로 신참이 날아갔다.

손가락 잘린 손을 휘두르며, 구멍 뚫린 다리로 버둥대면서. 다비드는 그가 인력에 짓눌려 살덩이가 되는 것을 보았다. 빛나는 구체는, 요동치더니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궤적을 그리며 어딘가로 날아갔다.

다비드는 인력에 끌려 둥실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땅에서 구른 후 멍하니 빛의 궤적을 올려다봤다. 대원들이 한데모여 말없이 섰다. 얼마 후 지원 부대가 도착했다.
 
 
 
계속해서: 오랑우탄과 뱀-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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